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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잔, 잔술 판매 문화 부활?

2024.05.20김은희

산 아래 깨 트럭에서 막걸리 한 잔, 가맥집에서 소주 한 잔. 그간 불법의 여지가 있던 한 잔 잔술이 이르면 4월부터 완전히 허용된다.

글/ 장새별(F&B 컨텐츠 공방 스타앤비트 대표)

언제부터인가 술자리에서 끝까지 달리지 않는다.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다. 대신 잔술을 가볍게 즐긴다. 주로 위스키, 주로 혼자다. 두어 잔만 마셔도 적당히 취기가 차고, 시간을 많이 쓰지 않고, 다음 날 힘들지도 않다. 비슷한 이유로 가볍게 잔술을 즐기는 20-30대가 많아지면서 위스키의 인기가 덩달아 높아지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트렌디한 사람이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좋아하는 지인은 처음 방문하는 곳에 ‘샘플러’가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것으로 주문한다. 위스키, 전통주, 와인, 사케 등 주종도 가리지 않고 여러 가지 술을 맛볼 수 있는 샘플러로 돌진하는데, 요즘은 이런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해 드링크 분야의 오마카세(혹은 테이스팅 코스)를 선보이는 곳도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다이닝에서 소믈리에의 재량에 맡기는 와인 페어링의 확장된 버전이라고나 할까. 사케를 150밀리리터, 300밀리리터 정도 용량의 ‘도쿠리’로 즐기는 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매우 평이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다 불법이었다고?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초, 국세청이 ‘주세법 기본통칙’ 개정안을 시행했을 때다. 단골 바의 바텐더가 다소 ‘심드렁한’ 말투로 전해줬고, 나도 놀라긴 했지만 이내 빈 웃음이나 짓고말았던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 삶 속에 자리 잡은 잔술의 역사는 길고도 기니까. 불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손에 든 위스키 한 잔을 마저 비워냈다.

개정 전 기본통칙의 골자는 이렇다. “술 판매 업자가 술 종류나 규격에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는 주류의 가공 또는 조작으로 본다”며 금하고 있는 것. 즉, 판매자는 제조장에서 병이나 캔에 담아 보내는 그 형태 그대로 판매해야함을 의미한다. 여기에 덧붙여 “탄산이나 다른 주류를 섞는 행위-예를 들어 칵테일-, 맥주를 빈 용기에 담는 행위”를 예외 규정으로 두고 있는데, 여기서 ‘맥주’를 ‘주류’로 2023년 1월 개정한 것이다. 술을 판매하는 업자들은 면허 취득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알게 되는 내용이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몰래 마시는 일도 아닌 일이 불법일 것이라고 소비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에 마시기에 용량이 많거나 비교적 값이 비싼 위스키, 와인 등만 암암리에 허락되어 온 일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이 동묘 앞에서 가격이 1천원인 ‘한 잔’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은 ‘아무 무리없이’ 전파를 탔고, 그곳이 줄을 서서 먹는 성지가 되는 동안에도 그 어떤 법적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여담이지만,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한 잔 역시 등산을 마친 후 산 아래깨 트럭에서 단숨에 털어 넣는 막걸리 한 잔이다. 이처럼 저마다의 장소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즐겨온 잔술이 사실은 불법이었다는 건, 확실히 놀랍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이야기다. 원래 법은 언제나 문화를 뒤늦게 따라오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가 한 번 더 수면 위로 뜨겁게 떠올랐다. 2024년 봄, 기획재정부가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안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다. 빠르면 올 해 4월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앞서 실컷 잔술이 허용됐다고 말을 늘어놓더니 뭔 얘기인가 하면, 그동안은 법령의 하위 개념인 국세청 기본통칙으로만 규정해 왔다면, 즉 주류를 가공하거나 조작하면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범위를 국세청 통칙의 해석 영역에 맡겼다면, 이제는 이를 명문화하여 진짜 법령으로 상향시키며 불법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완전히 불식시킨 것이다.

법은 법인 것일까. 지난해 초 국세청이 주세법 기본통칙 개정안을 발표했을 때보다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앞다투어 뉴스거리로 다루고 술자리 대화의 화제로 올리는 이들도 곧잘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난해였다면 쓰지 않았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특히 초록병 소주-전통 소주와 구분 짓기 위해 초록병 소주라고 언급한다. 이하 소주는 모두 같은 술을 뜻한다-가 관심의 집중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잔술로 판매하던 곳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잔술을 떠올릴 때 가장 익숙하지 않은 술인 동시에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술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장 말이 많은 주 종이 됐다.판매 후 남은 술에 대한 보관 기간과 처리 방법, 위생, 물을 섞는 등의 오용 등에 대한 우려가 주로 거론됐다.

일리는 있지만, 소주에만 집중 포화된 이 우려의 화살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주가 거론된 자리에 어떤술을 대입해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은가.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마시고 남은 위스키를 보관해두었을 때 그 위스키가 다른 위스키로 둔갑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가게와 나 사이에 무언의 믿음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에 불과할 뿐 어떠한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맛도 향도 모르는 처음 만나는 와인병 속에 정말 내가 주문한 와인이 담겨있을 거라는 보장은?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이 일들이 다른 주종에서는큰 잡음 없이 진행되어 온 것을 봤을 때, 사회적 양심의 수준이 무턱대고 우려를 표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잔술 소주가 합법적으로 판매가 가능해진 것이지, 모든 술집에서 소주를 잔술로 판매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다. 사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꺼릴지도 모를 일이다. 테이블에 한 번 가져다 놓으면 그만이었는데잔으로 주문할 때마다 서빙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 한 사람당 잔 하나면 충분했던 것도 매번 다른 잔으로 가져가 설거지만 늘어날지도 모른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용량이나 남은 술에 대해 손님과 시시비비로 이어질 수 있어 이번 법령 개정으로 인해 소주를 잔으로 파는 곳이 단숨에 성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잔술은 이미 이곳저곳에서 판매되어 왔고, 실제 라이프스타일 과 동떨어져 있던 유명무실한 법이 이제야 개정된 것에 불과하다.

대신 내가 기대하는 바는 따로 있다. 누군가는 수면 위로 떠오른 화젯거리를 놓치지 않고 잔 소주를 재치 있게 풀어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어 온 잔술의 정서를 간직하면서도 우려들을 불식시킬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잔술 소주의 부가가치를 높여줄 F&B 기획자들이 나타나주길 기다리고 있다. 단순하게는 ‘소주도 킵(보관)이 되는 집’을 연다면(사실 농촌 가맥집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려점으로 거론되는 남은 술의 보관기간이나 처리방법에 대한 기준을 이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을 섞는 오용에 대한 걱정을 전환해 대놓고 ‘물 탄 소주’를 팔아보는 건? 도수도 가격도 내리면, 적게 마시고도 늘 n분의 1 가격을내야 했던 속칭 ‘알쓰’들의 차마 말하지 못한 속상함을 해소 시켜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역별 소주를 모두 모아 잔술로 테이스팅 할 수 있는 소주 바는 어떨까? 소주를 잔술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으니 고깃집이나 캐주얼한 밥집에서도 위스키 대신 소주를 활용한 다양한 칵테일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가볍게 나열한 아이디어들은 어디까지나 예시에 불과하다. 진짜 말하고 싶은 요지는 열 박자는 뒤늦게 따라온 듯한 법령 위에 우리가 새로운 주류 문화를 한 번 더 써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것이다. 문화 속에서 사회적규범이 생기고, 그 규범은 다시 법이 따라와줄 테니 말이다. 뒤늦게 나마.

그나저나 소주 ‘한잔’하자고 건네는 말이 진짜 ‘한 잔’을 의미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한 잔을 띄어 쓰면 진짜 그 수량을 뜻하고 붙여 쓰면 간단히 한 차례 마시는 술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여러 병이 될 수도 있는 일.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점에 착안해 지인들에게 실없이 건네온 나의 오래된 유머가 언젠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 점이 더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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