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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영화 속 장면들에서 만난 멋진 차 7

2025.06.27.신기호

이런 차를 타고.

① PORSCHE 911 S

영화 <탑건 : 매버릭>(2022)의 마지막 장면엔 1973년형 포르쉐 911 S 모델이 나온다. 오렌지빛 여름 석양을 배경으로 매버릭과 페니가 만나는데 이때 페니가 타고 온 차다. 텅 빈 활주로, 가볍게 부는 바람, 흰 티에 청바지를 입은 매버릭과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마주 선 페니 이 모두가 멋지지만, 투명한 실버 보디의 911 S의 존재감도 그대로 근사하다. 특히 앞 유리에서 부터 트렁크까지 가파르게 떨어지는 클래식한 실루엣은 당시의 911에서만 볼 수 있는 형태여서 더 반갑다. 1973년형 911 S에는 2.4리터 엔진이 들어 있었다. 최고출력은 1백90마력으로 지금 기준에서도 팔팔했다. 영화에서 매버릭은 F-18과 F-14를 비롯해 여러 전투기를 번갈아 타지만 엔딩은 바로 이 1973년형, 실버 컬러의 911 S가 장식했다.

② JEEP WRANGLER JK

영화 <탈주>(2024)의 배경은 초록이 무성한 여름이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들은 그 배경이 대부분 쓸쓸한 겨울인데, <탈주>는 새롭게도 뜨겁고 습한 여름이어서(물론 극 초반에 겨울이 잠깐 등장하긴 하지만) 규남과 현상의 추격전은 더 끈적였고, 그래서 더 쫄깃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차는 지프 랭글러 루비콘과 사하라 모델. 2022년이라는 제작 연도를 감안하면 랭글러의 모델 버전은 JK가 아닌 JL이 맞겠지만, 북한 경제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에는 구형인 JK 모델이 등장한다. 특별한 미학을 심어 두지 않은 특유의 각지고 단순한 형태의 검은색 지프. 차는 영화에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진 않지만 늘 현상의 곁에서 추격마의 역할로 서 있다. 어쩌면 규남을 쫓는 건 현상이 아닌 이 차가운 검은색 지프인가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데, 랭글러 특유의 화려한 컬러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차분한 듯 거친 모습의 JK 버전을 만나니 또 새롭다. JK는 2007년부터 2018년도까지 생산된 랭글러 모델이다.

③ CADILLAC DEVILLE

영화 <그린북>의 배경이 팔팔한 여름은 아니었지만 늦여름과 가을 사이에 놓인 에메랄드빛 캐딜락 드빌은 여름 그 차제였다. 영화의 미장센도 화려한 컬러들로 다채롭게 채워진 덕분에 영화는 내내 선명하고 깨끗했다. 영화에 등장한 드빌은 2세대 세단 모델로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생산된 버전이다. 뒤로 길쭉하고 날렵하게 빠진 피시 테일 실루엣이 시그니처 디자인인데, 1960~1980년대 사이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에서 자주 등장한다. 커다란 차체에 걸맞게 6.4리터 V8 엔진을 사용했다. 드빌의 빼어난 모습 때문인지 예쁜 색감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버전이 있는 영화의 공식 포스터에 전부 등장한다. 이중에는 드빌만으로 만든 공식 포스터도 있다.

④ X-B INTERCEPTOR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2015)의 배경을 여름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영화 내내 들끓던 사막을 떠올린다면 아주 이상할 것도 없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차는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기 이전의 모델들을 활용해 만들었다는 서사가 깔려 있기에 하나같이 프로토타입처럼 투박하다. 주인공 맥스가 타는 X-B 인터셉터는 1979년 작 멜 깁슨 주연의 <매드 맥스>에 처음 등장한다. 차는 포드의 1973년식 팰콘 XB GT에 뼈대를 덧대고, 보닛에는 블로워를 얹어 만들었다. 실제 모델에도 5.8리터 V8 엔진을 얹은 채로 무려 3백 마력 이상의 힘을 뿜어냈다고 하니, 인터셉터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드림 카는 아니었던 셈이다. 참고로 이모탄의 괴기한 차 기가홀스 GIGAHORSE는 캐딜락의 1959년형 드빌 두 대를 포개 만들었다.

⑤ HONDA S2000

영화 <패스트&퓨리어스2>(2003)는 수십 대의 스포츠카가 왕왕 울려대는 엔진 열만큼 그 배경도 뜨거웠던 시리즈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극 중에서 브라이언 오코너가 LA 경찰 배지를 반납하게 되면서 선택한 도시가 마이애미였으니, 2000년대 초반의 알록달록한 마이애미의 여름이 러닝 타임 내내 영화의 배경으로 펼쳐졌다. <패스트&퓨리어스> 시리즈 특성상 한 편에만 수십 대의 자동차가 쏟아지듯이 등장하지만, 두 번째 시리즈에서 그중 가장 존재감이 선명했던 모델은 수키 Suki가 타는 혼다 S2000 모델이었다. 특히 핫핑크의 S2000이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드리프트 장면은 영화 팬들뿐만 아니라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회자되어,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다시 포장된 지금까지도 익숙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혼다의 S2000은 1999년 4월, 혼다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차였을 만큼 혼다가 정성껏 만들어 선보인 모델이었다. 단종은 버전 업을 거듭하다 2009년에 됐다. 무엇보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도 평판이 좋아 아직까지도 혼다의 명차를 이야기할 때 먼저 언급되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런 명성 덕분인지 레고에서는 2005년에 <패스트&퓨리어스 2>의 이름으로 수키의 핫핑크 모델을 그대로 제작해 에디션으로 출시하기도 했다.

⑥ FIAT 128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그려낸 뜨거운 첫사랑의 모습들, 찬란한 시간들, 투명한 감정들은 영화 속 지중해의 여름을 그대로 닮았다. 이 밖에도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여름의 장면들은 풍성한데 이탈리아 북부의 초록빛 풍경, 지중해의 에메랄드빛 바다, 시르미오네의 담벼락에 핀 아기자기한 꽃 등, 두 주인공은 피아트 128을 타고 지나며 이탈리아 북부의 여름 안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는 엘리오가 피아트 128 안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신. 영화에 쓰인 남색 피아트 128은 두 사람의 만남과 연결, 부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매개로 쓰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피아트 128은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올해의 차’에 선정됐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끈 모델이다. 곡선이 거의 없는 각진 형태의 클래식한 모습이 아주 매력적인 소형 세단이었다.

⑦ FORD GALAXIE 500

영화에서 자동차는 종종 아버지의 존재나 상황, 가족의 환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품으로 투영되었는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제작한 영화 <로마>에서도 그랬다. 안토니오는 자신의 차, 포드 갤럭시 500만큼 거대한 인물로 그려진다. 때론 위협적이고 위선적인 그의 모습이 검은색 포드 갤럭시 500을 통해 빗대어 드러나고,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저런 사고들로 이곳저곳이 너덜너덜해진 차는 인간의 인생을 반영하기도 한다. 영화에 등장한 포드 갤럭시 500 모델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미국 중산층을 대표하는 고급 세단이었다. 전장이 무려 5.5미터나 됐을 정도로 크기도 압도적이었다. 길쭉한 보닛에는 커다란 7리터의 V8 엔진이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