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짧게 깎은 권상우가 슬리브리스 차림으로 조명 아래 섰다. 이런 식의 촬영엔 전주처럼 붙는, 즉석 팔굽혀펴기도 안 하고. 그러곤 셔터가 터질 때마다 창밖을 한번 내다 보듯 고개를 들었다.
촬영 시간보다 일찍, 그는 불쑥 스튜디오에 왔다. 계단을 뛰듯 내려오는 발 소리와 철문을 등으로 밀어 여는 기척이 순식간이었다. 후드가 달린 검정 윈드브레이커와 검정색 운동화 차림의 권상우는 뒷마당에서 매일 줄넘기를 하는 청년처럼 건강하고 수수했다. 그는 어딘지 변한 것처럼 보였는데 몇 킬로그램쯤 빠진 체중과 애들처럼 짧게 깎은 머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와 새로 인사를 나눌 때마다 니트 비니를 벗고 밤톨 같은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박박 문질렀다. “어색해서요. 이 정도로 짧은 건 오랜만이라.” 실컷 울고 난 애처럼 기진한 듯 맑은 눈과 굵게 잡히는 큰 주름의 대비 때문에 그는 물색 모르는 애 같기도, 성공한 수완가처럼도 보였다.
설탕을 잔뜩 넣은 커피를 훌훌 마시고 권상우가 조명 아래 섰다. 그에게 건조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연기를 원했고, 별 플롯이 없는 게 핵심이라고 전했다. 그는 볼을 몇 번 오목하게 만들어보더니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수 틀리면 불이라도 확 질러버릴 듯 팽창되어 보이던 이전의 권상우와는 달리 움직임은 느긋하고도 간결했다. ‘하도야’의 극적인 성공 이후 가족과 짧은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권상우가 차기작으로 고른 건 신경성무통증을 겪는 자해공갈단 남순 역할이다. 촬영이 끝난 후, 그는 들어올 때처럼 날 듯이 뛰어 고사를 지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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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강지영
- 포토그래퍼
- 홍장현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정윤기(Jung Yu n Ki), 헤어 / 유다(Duet), 메이크업 / 이소연, 스타일리스트/최아름, 어시스턴트 / 하연주, Retouching | 장원석(W.S. 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