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래, 어떤 물건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듣는 노래, 더불어 생각나는 물건.

HAMILTON

2003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개’를 살펴보면, 알 그린의 앨범 중 하나가 52위에 올라 있다. 놀라운 건 그것이 정규 앨범이 아닌 베스트 앨범이라는 사실이다. 1975년까지의 알 그린의 히트 곡을 모은 앨범 에 대한 여러 평가와 인정만으로도 알 그린이라는 가수에 대한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 요즘 다시 그 시대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주로 아이튠즈 라디오로 음악을 듣다가 유독 와 닿는 노래가 있으면 ‘위시 리스트’에 저장해둔다. 어제 무심코 열어본 위시 리스트에는, 의 거의 모든 곡이 들어 있었다. 알 그린의 노래를 들으면 무겁고 진지한 내용도 아주 편안한 음 높이로 나긋나긋 말하는, 유연하고 성숙한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뜨거워진 손바닥을 차가운 스티어링 휠에 두들기며 흥분과 안정을 함께 누리곤 한다. 그 순간 손목 위로 금색 해밀턴 벤추라가 반짝이는 상상을 해본다. 꽤 아름다운 광경일 거다. 박태일

LOEWE

잠이 덜 깨서 얼핏 흘겨보고 노래 제목을 ‘시가렛&레모네이드’라고 읽었다. 그 이름이 좋아서 앨범 중에서 제일 먼저 들었다. 아름다운 인생의 서막 같은 도입부가 끝나기도 전에 친구에게 전화했다. “진짜 괜찮은 노래를 찾았어. 이 노래 알아?”라고, 좀 들떠서 말이 빨라졌다. 친구는 담담하게 “그거 레모네이드가 아니라 론니니스야”라고 대답했다. 바람 부는 들판에 서 있는 분방한 남자 같던 7분 52초는 어느새 끈적이는 밤바다에 쓰러져 잠든 늙은 사자 소리처럼 들렸다. ‘담배와 외로움’이란 이 노래를 부른 쳇 페이커는 호주 남자로 올해 첫 앨범 <빌트 온 글라스>를 발매했는데, 본명은 니콜라스 제임스 머피. 드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바다로 가는 차 안에서 혼자 듣기로 했다. 새벽 달이 지기 전에 지친 담요 두르고, ‘담배와 레모네이드’ 같은 로에베 옷핀 꽂고, 양손을 하늘 위로 번쩍 치켜들 테다. 오충환

ALL SAINTS

올 세인츠의 주 종목은 가죽 재킷이다. 양감과 길이별로, 오묘하게 다른 가죽 색깔별로 고르는 재미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 가죽 재킷을 입긴 이르니까 대신 앙주라 불리는 크루넥 니트를 입는다. 새끼 양털 실로 만든 진회색 니트는 요즘처럼 아침저녁으로 실크 같은 바람이 불 때 딱이다. 앨리슨 모샤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닮은 이 니트를 입고, 데드 웨더의 60피트 톨을 듣는다. 이 곡은 대체로 아침 출근길에 듣는다. 기타인지 베이스인지 졸음을 쫓는 알싸한 전주 그리고 이어지는 낮고 환각적인 앨리슨 모스하트의 목소리에 마음이 들뜬다. 특히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월요일 아침에 들으면 효과 만점. 사무실 문을 열면서 여기가 뜨거운 한여름 잔디밭 록 페스티벌장이 아닐까 괜한 상상도 해본다. 적어도 노래가 끝날 때까진 그렇다. 김경민 

SAINT LAURENT

믹 플리트우드의 드럼 전주가 나오면 가슴부터 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켜고, 외출 준비를 할 때도 틀어둔다. 플리트우드 맥의 노래는 다 좋지만 드림스를 제일 좋아한다. 스티브 닉스의 철없고 취한 것 같고 버릇 없어 보이는 목소리에 한동안 푹 빠졌었고, “당신이 가졌다가 잃은 것”이란 가사에 충격을 받았다. 이 노래가 실린 루머스 앨범은 엄청나게 성공했지만, 팀 안의 두 쌍의 연인, 존과 크리스틴, 스티비와 린지는 이 앨범 이후 헤어졌다. 녹음을 할 땐 이미 헤어짐의 전조가 있던 시절이었고, 그래서인지 이 곡의 화음은 슬프고도 위태로운 가운데, 어떤 면에선 완벽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을 사로잡을 가치가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모두 매혹시키는 매력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이 곡을 들으면서 나갈 준비를 하고, 생로랑의 이브닝 첼시 부츠와 얇은 골드 링, 두 가지는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한다. 강지영 

BOWERS & WILKINS

더 인터넷의 여성 보컬 시드 다 키드는 묘한 외모(한 음원 사이트에선 시드를 남성 보컬이라고 표기했다)만큼 몽환적인 목소리를 가졌다. 다른 멤버들이 드럼을 치고 기타도 튕기고 키보드까지 두드리는 내내 그녀는 성의 없는 몸짓과 음성으로 노래를 하는데, 힙합도 일렉트로닉도 아닌 게 꼭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도 각별히 좋게 들린다. 그들을 영국으로 불러들인 라레이 리치는 괜한 욕이나 하는 철부지 힙합 가수처럼 보이는 외모와 달리 의외로 꽤 괜찮은 세련된 목소리를 가졌다. 대부분 라레이 리치가 부르고 더 인터넷이 리믹스한 앨범 엔 단 다섯 곡의 노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Overdose’는 잠들 때 매번 오디오 끄는 걸 잊어, 아침에 깨면 저절로 들리는 노래가 됐다. 특히나 보워스 & 윌킨스의 스피커로 듣는 날은 더 깊고 더 낮게 웅얼거리는 통에 노래 제목처럼 잠에서 깬 후에도 멍하다. 박나나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