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드리스 반 노튼의 일과 낭만

2015.12.23윤웅희

태양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남성복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당신을 패션계의 음유시인, 낭만주의자라고 불러요. 이런 수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쑥스럽지만 어떤 면에서 그렇게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아요. 제 컬렉션에는 확실히 이국적인 요소와 낭만적인 정서가 있으니까요. 18세기의 그림이나, 꽃을 수놓은 타피스트리를 보며 뭔가를 떠올리는 경우도 많죠. 그러다 보면 여러 장면이 머릿속에 쌓이고 겹쳐지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요. 제 컬렉션은 늘 그런 식으로 시작해요. 가장 즐거운 순간이죠.

당신의 남성복은 일단 유려하고 섬세하다는 인상이 강해요. 그렇다고 여성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죠. 보면 볼수록 묘한 남성성이 느껴져요. 그게 참 신기해요. 강하고 단단한 것만이 남성적인 것은 아니잖아요? 남성성의 핵심은 진중한 가치관과 진실한 태도예요. 가끔은 화려하거나 대범할 수도 있고요. 요즘 남자들은 여성적이라고 여겨졌던 소재들, 이를테면 트왈이나 실크 소재의 옷을 입는 데 큰 거부감이 없어요. 자수나 꽃무늬도 그래요. 제가 하려는 일은 이런 요소들을 고전적인 색감이나 프린트, 또는 완전히 새로운 공법을 통해 각각의 컬렉션 안에 녹이는 작업이에요. 물론 남성복의 본질은 유지하면서요.

“아름다운 것만큼 고루한 건 없다”고 말한 적이 있죠? 인상적이어서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당신처럼 탐미적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의외라고 생각했거든요. 당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어떤 건가요? 그때의 맥락을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은 강한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긴장감이 없다는 뜻이었어요. 전형적으로 완결된 결과물은 어떤 상상력도 환기하지 못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건 아름다움이나 추함에 대한 가치 판단이라기보단, 개인적인 취향과 생각일 뿐이에요. 다만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부분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섞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위협적인 것을 누그러뜨리는 방식과 더 관련되어 있어요. 그런 것들이 훨씬 더 흥미롭죠.

반대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뭔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싫은 취향이나 경향, 아니면 이런 옷은 죽어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그런 게 있을 텐데요.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것을 크게 구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오히려 예쁘지 않거나 어색해 보이는 것들에 도전하는 편이죠. 거부했던 범주를 내 안으로 통합시키려고도 해요. 그러다 보면 싫어했던 것들이 좋아질 때도 많거든요. 아, 갑자기 하나가 생각났어요. 편협적이고 나태한 사람들. 정말 꼴도 보기 싫어요.

당신은 여러모로 특별한 디자이너예요. 고유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도 이유지만, 브랜드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뒀다는 점에서 분명 그렇죠. 부모님이 앤트워프에서 양장점을 운영했어요. 덕분에 사업에 대한 세부 사항을 이해할 수 있었죠.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도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어디에 중점을 둘지 큰 그림을 그려야 해요. 독립성을 유지하는 건 제가 처음부터 가장 중점을 둔 가치였어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4년 전 인터뷰 때는 본인을 ‘워커홀릭’이라고 얘기했는데, 여전히 그런가요? 저는 제 직업에 열정이 많고 헌신적이에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워커홀릭’이라는 단어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조금 부정적으로 들리니까요. 이 일은 무척 힘들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되돌려줘요. 저는 그 시간과 과정이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느껴요.

쉬는 날은 아직도 정원을 가꾸나요? 당연하죠. 가드닝은 제 삶의 일부예요.

영화나 음악은요?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표범(Il Gattopardo)>이라는 영화를 좋아해요. 1964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죠. 음악은 데이비드 보위 노래를 즐겨 들어요.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프란시스 베이컨이고요.

아, 그러고 보니 디자이너로 데뷔한 지 올해로 30년이 됐네요. 그때와 지금, 뭐가 가장 다른가요? 전보다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좀 더 좋은 옷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어요. 좀 더 참을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하지만, 지금도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당신이 보는 제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요. 다른 사람의 눈과 입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어쩌면 더 객관적일 수 있으니까요.

    에디터
    윤웅희
    일러스트
    곽명주
    출처
    In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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