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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민 “불가능한 건 없어요. 일단 해보면 되니까”

2024.04.19김지현

경험은 희망을 낳는다고 굳게 믿는 차우민의 꿈.

슬리브리스, 와이프로젝트. 팬츠,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
셔츠, 타이, 팬츠, 모두 돌체앤가바나.

GQ 소속사와 ‘운동 금지’ 조항에 대해 원만한 합의가 이뤄졌나요? 화보 촬영할 때 보니 1년 넘게 운동하지 못한 몸 상태라고는 믿기 어렵던데요.
WM 최근에 원만한 합의를 봤습니다. 소속사에 처음 들어갔을 당시에는 제가 생각해도 몸이 큰 상태였어요. 운동만 하기도 했고, 몸이 쉽게 커지는 체질이라.
GQ ‘차우민’이라는 배우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요. 장래희망란에 “영화 포스터 제작자”라고 기입했던 중학생이 주연을 맡은 첫 작품 <밤이 되었습니다>에서 ‘신스틸러’가 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어요?
WM 저희 어머니가 시네필이셔서 자연스럽게 저도 영화를 가까이하며 살아왔어요. 어린 저에게 <화양연화>, <색계> 같은 영화를 보여주셨거든요. 하나둘 작품을 접하다 보니 점점 영화에 대한 동경이 생기더라고요. 장래희망란에 “영화 포스터 제작자”라고 적은 것도 그저 영화가 좋아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보려고 한 거죠. 그 당시 배우라는 직업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으니까.
GQ 꿈을 이룬 소년에게 첫 대본 리딩이나 현장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WM 대본 리딩할 때 제일 많이 떨어요. 진짜 발발발발. (머리를 가리키며) 심장이 여기에 있거든요. 대본 리딩보다는 <플로리다 반점> 첫 촬영 현장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때 현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재밌으세요?”, “왜 재밌으세요?”, “뭐가 재밌으세요?”라고 물어봤거든요. 제게는 첫 작품이자 첫 사회였으니까요. 호기심과 물음이 넘쳐났어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요.

슬리브리스, 지방시. 비니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긴장을 많이 하는 것치곤 되게 의연해 보이던데요. 데뷔 작품인 퀴어 웹 드라마 <플로리다 반점>을 장르에 대한 부담 없이 도전한 것, <밤이 되었습니다> ‘고경준’ 캐릭터의 날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4일을 굶은 것, 이번 화보 촬영 현장에서도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고양이에게 맞추며 촬영한 것. 모두 스물다섯 살 차우민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순간들이죠.
WM (잠시 고민하다) 맞아요. 불가능한 건 없어요. 일단 해보면 되니까. 스스로도 생각이 많아지면 못 할 걸 아니까 그냥 해버려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란 말을 운동할 때 저희 도장 관장님이 입에 달고 사셨거든요. 저도 모르게 이 말을 항상 되새기며 살고 있나 봐요.
GQ 누구나 가끔은 절대 안 될 것 같다고 느끼는 일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WM 지금까진 없는 것 같아요. 최근에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집이 생각보다 보수할 것투성이인 거예요. 집 상태를 보면서 ‘와···. 이건 답이 없다’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미 제 손은 페인트를 찾아보고 있더라고요. 곧장 구매해서 열심히 바르고 있습니다. 어제도 발랐고요.

베스트, 팬츠, 슈즈, 모두 지방시. 슬리브리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왠지 집에서 홀로 대본을 읽으며 작품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고르고, 배역에 대해 고민하는 ‘집돌이’ 배우의 모습이 그려져요.
WM 정확해요. 작품과 배역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음악을 들으면 확실히 감정이 잘 차오르거든요. 그래서 ‘이 배역이 노래를 듣는다면 뭘 들을까?’ 상상해보면서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려고 노력해요.
GQ 유일고등학교의 ‘서열 1위’이자 마피아 게임이 시작됨과 동시에 처절한 생존 본능을 보여준 <밤이 되었습니다> ‘고경준’의 플레이리스트는요?
WM (휴대 전화 화면을 보여주며) <밤이 되었습니다> 촬영을 준비하며 만든 플레이리스트예요. ‘고경준’이 잔혹하게 행동하는 동기가 될 만한 노래들로 넣어뒀어요. 가장 많이 들은 건 ‘황병기 – 미궁’. 이건 ‘고경준’이 잘 때 들을 것만 같았어요. 계속 귀에서 이명이나 환청이 들리는 듯한 분위기로.
GQ 플레이리스트를 보니, 한 인터뷰에서 ‘고경준’을 연기할 때 키워드를 ‘붕괴’로 잡았다고 답한 게 단번에 이해돼요. ‘고독’이 키워드였다는 <스터디 그룹>의 ‘피한울’은 어떤 노래를 듣는 인물로 해석했어요?
WM ‘피한울’은 이미 붕괴된 곳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인물이예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불만도 없어서, 더 나아갈 생각 없이 폐허 속에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서 ‘피한울’은 모든 것을 초월한 클래식을 들을 것만 같았어요. 실제로 대본을 읽을 때도 클래식을 들으며 역할에 몰입하려 했고요.

베스트, 베르사체. 쇼츠, rokh H&M. 슈즈, 프라다. 삭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이 화보와 인터뷰를 볼 독자들을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줄 수 있나요?
WM 오! 너무 재밌을 거 같은데요? 18분에서 20분 정도 되는 플레이리스트면 충분하겠죠? 찾아보겠습니다. (바로 노래를 고르며) ‘moonvampire – Suicide’, ‘Arctic Monkeys – 505’, ‘IDIOTAPE – Whistler’, ‘Cage The Elephant – Too Late To Say Goodbye’. 이렇게 네 곡이 좋겠어요.
GQ 차우민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던 노래 가사나 책 구절은 뭐예요?
WM 어제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읽었어요. 서간집인데 “우울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경험을, 경험은 희망을 낳습니다. 그리고 희망은 마음의 붕괴를 지켜줍니다”라는 문장이요. 요즘 제가 가진 고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말인 것 같아 공감되더라고요.
GQ 어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죠? 저 문장에 반듯한 밑줄을 그은 사진요.
WM 맞아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는 자로 밑줄을 그으면서 책을 읽어요.
GQ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촬영 전에 서점에 들러 몇 권 샀어요.
WM 와, 감사합니다.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제목부터 힘이 돼요.

슬리브리스, 팬츠,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아까 물어보고 싶었는데, 차우민이 에곤 실레 <자화상>에서 좋아했던 문장처럼 인내 끝에 성장이나 성취감을 느껴본 순간은 언제예요?
WM 항상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철학도 좋아하는데, 철학의 여러 갈래가 만나는 점이 바로 ‘침묵’이거든요. 인내하고, 침묵하고. 하지만 이건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이 아니에요. 저희 아버지도 제게 “제3자의 눈으로 너를 한번 되돌아봐라”라는 말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러려면 일단 저는 침묵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거기에서 나오는 인내, 그 인내의 시간이 점차 흐르면 경험이 되고, 경험은 또다시 희망이 되고, 희망은 결국 제 마음가짐이 되더라고요.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참을 인 세 번이면 바보 된다.” 전 아닌 것 같아요. 진짜 강한 사람은 세 번 참는 동안 이미 본인만의 시간 속에서 상황을 타파해 나가더라고요. 저도 인내로부터 배움을 얻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GQ 책에서 만난 인물 중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요?
WM (한참을 고민하다) 진짜 솔직하게 너무 많거든요. 책을 읽을 때마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책을 읽는 게 어떻게 보면 연기를 계속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너무 많은데···. 욕심인가?
GQ 욕심보다는 희망이라고 해둘까요? 누구나 상상할 순 있잖아요.
WM 오케이. 희망! 좋아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타르타> 속 ‘싯타르타’와 서머싯 몸의 작품 <인간의 굴레에서> 속 ‘필립’으로 할래요. 두 소설 다 결국에는 모든 인물이 붕괴하고 몰락하거든요. 신형철 평론가의 <몰락의 에티카>라는 평론서가 있는데 거기 이런 말이 있어요. “우리는 소설을 읽고 캐릭터를 만날 때 그 인물이 몰락하고 붕괴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낀다. 어떻게 보면 동질감도 느낀다.” 제가 ‘싯타르타’와 ‘필립’에게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고, 감히 두 인물의 선택과 삶을 불행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 되돌아봤어요. 저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인물들이에요. ‘필립’은 다리에 장애도 있고, 모든 사람을 시기하고, 자격지심도 강한 인물이거든요. 근데 저는 이 인물이 안타깝고 쓸쓸하게 느껴지기보다 도리어 행복해 보이기도 했어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니까.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입니다.
GQ 이미 두 인물을 어떻게 연기할지도 생각해뒀을 것 같아요.
WM 그럼요. ‘필립’을 연기할 때 ‘나는 어느 다리를 절까?’ 생각하면서.(웃음)

베스트, 지방시.

GQ 인간 ‘김민우’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어요. 취미가 다양하잖아요.
WM 커피, 위스키 다 좋아해요. 커피를 마시고 컵노트를 찾아보는 거에 빠져 있었는데, 최근에 위스키로 넘어왔어요.
GQ 술 잘 드세요?
WM 좋아합니다. 친구들 만나서 밥 먹으며 술 한잔하고, 노래방 가고요.
GQ 오, 드디어 나이대에 맞는 취미가 나왔네요.
WM 어···, 근데 노래방에서 나이대에 맞지 않는 노래를 불러서 다들 놀라요. 가장 많이 부르는 건 ‘강산에 – ···라구요’와 ‘신성우 – 서시’. 친구들도 모두 옛날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고요. 술 한잔해도 옛날 학사 주막 같은 곳에서.(웃음)
GQ 소위 말해 ‘요즘 사람’일 줄 알고 마지막 질문을 차우민의 ‘추구미’로 준비했는데, 약간 애늙은이였어요. 속았네요.
WM 으아···, 어떡하죠? 일단 ‘추구미’가 뭐예요?
GQ 한 사람으로서 차우민이 추구하는 콘셉트요.
WM 음···, 저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붕괴, 우울, 고독, 인내를 지향하는데 이게 저한테는 긍정적인 의미로 다가오거든요. 어떻게 보면 바닥에서부터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니까. 발을 딛고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오히려 붕 떠 있는 상태를 지양하려고 해요.
GQ 붕괴는 어찌 보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WM 또 올라가다 붕괴되겠죠. 근데 그 붕괴가 발칙함을 만들어내더라고요. 항상.
GQ 책과 위스키만 있다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 같은데요.
WM 그렇죠. 오늘 선물해주신 책을 얼른 읽고 싶어요. 고독하게.(웃음)

포토그래퍼
박종하
스타일리스트
임혜림
헤어
요니 at 팀바이블룸
메이크업
혜원 at 팀바이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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