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로다주의 의식주 <1>

2013.05.30GQ

<아이언맨 3>의 토니 스타크보다 더 단단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말리부에 있는 그의 집으로 쳐들어가 구석구석을 살폈다.

재킷은 산드로, 셔츠는 토드 스나이더, 타이는 비스포큰, 타이바는 더타이바, 바지는 폴스미스 런던, 부츠는 산토니, 선글라스는 보스 오렌지.

재킷은 산드로, 셔츠는 토드 스나이더, 타이는 비스포큰, 타이바는 더타이바, 바지는 폴스미스 런던, 부츠는 산토니, 선글라스는 보스 오렌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작은 갈색 가죽 가방을 습관처럼 가지고 다닌다. 그 안을 뒤지면 사각형 니콜레트 껌 몇 조각과 자질구레한 것들이 나온다. 달그락거리는 약병 몇 개, 구충제와 항바이러스제, 빵을 먹을 때를 대비한 몇 가지 종류의 비상약, 그가 살고 있는 말리부 지역을 지키는 보안 업체의 로고가 붙어 있는 남색 비니, 그의 부인인 수잔과 짝을 맞춘 몇 가지 귀금속…. 그리고 우디 해럴슨에게서 받은 편지 한 통에는 아마 대충 뱉어서 처리한 듯한 껌이 붙어 있다. 가방에는 순금으로 만든 아이언맨의 헬멧 머리도 들어 있다. 다우니는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궤적을 그린 그 피규어의 머리를 한 손으로 달랑 든 채로 설명했다. “이 녀석, 웃기죠. 난 이놈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요.“

다우니는 <아이언맨 3> 촬영 중에 보석 세공인에게 특별히 주문해 이 아이언맨 헬멧를 여러개 만들었다. 촬영 마지막 날, 함께 일한 영화 관계자들에게 선물하고는 자신의 몫으로 하나를 남겼다. 그리고 지금, 그 하나 남은 머리를 보고 다우니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여기에는 몇 가지 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아이언맨 헬멧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난 아직도 의미를 잘 이해할 수가 없지만, 뭐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요.” 다우니는 2006년 <아이언맨>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황금처럼 반짝이던 아이언맨 수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로버트 다우니가 매우 특이한 이력을 거쳐왔다는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데, 그는 단순히 기나긴 격변을 거쳐온 것이 아니라 마약, 총기사고, 체포, 중독 치료 등 과거들을 모두 해결해왔다. 몇 년 동안, 다우니가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를 ‘동시대에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하나’라고 소개하곤 했다. 으레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다우니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한번 훑어보면, 그가 동시대 배우들처럼 떠들썩한 성공작이 별로 없는 배우 중 하나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믿을 수 있겠나?

그의 배우 인생 중 가장 인기를 얻은 작품은 (너무 오래전이라 잊힌) 1986년, 스물한 살에 연기한 코미디 영화 <백 투 스쿨>이다. 그 이후 어떤 영화에 등장하든, 결과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 가장 유려한 연기로 칭송받은 두 영화, <회색 도시> 와 <채플린>에도 출연했지만 둘 다 상업적으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반면 그가 상업적인 의도로 고른 영화 역시도 쓴맛을 봐야 했다. 1990년, 당대 최고의 배우 멜 깁슨과 함께 출연한 <에어 아메리카>마저 실패하자 비난은 거의 모욕처럼 쏟아졌다.

“잘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그가 주장했다. “20년 이상 이 일을 해온 많은 사람이 그래요. 단순히 ‘실수로’ 이런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어냈다고요.” 그러나 그는 그 문제가 자신을 곤경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는 실패는 실패대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일부분이 나에게 상처 줄 때가 있긴 해요. 내가 나에게 ‘난 그만둘 거야! 포기라고!’ 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도 지난 10년 사이 다우니의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그는 영화 프로듀서인 수잔 레빈과 결혼했고, 마약과 거의 연을 끊고 살아왔고, “내가 정말 사람들과 하고 싶어 하는 확실한 일”을 하기 시작했으며, 비록 몇 가지 일에서는 기대한 만큼 큰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을 누렸다. 2005년, 블랙 코미디 <키스 키스 뱅뱅>을 찍으면서 그는 이런 식의 행복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다우니는 기쁘게 영화를 마무리했고, 영화는 꽤 괜찮은 평가를 얻었다. 그 영화는 아내 수잔이 감독한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말했다. “영화가 개봉하긴 했는데, 당시 수익이 아마 85불이었나?” 그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 두 단어였어요 . 내 돈은?”

그는 당시 큰 성공 없이 그럭저럭 먹고사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을지 모른다. 반짝 스타의 전성기는 지나갔고, 그는 이제 다른 많은 재능 있는 중견 배우들과 같은 미래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영화에서 ‘가끔’ 좋은 역을 맡거나, 큰 영화에서 ‘가끔’ 좋은 역을 맡거나, 혹은 새로운 종류의 괜찮은 TV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연기하거나. 그러나 다우니는 자신의 인생은 다를 것이라는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이언맨> 제작 소식을 들었다. 이젠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 역할에 대한 다우니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했다. 처음엔 이 영화의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었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를 연기하는 것은 얼핏 구름 관중과 재정적 성공을 보장받는 쉬운 길처럼 보이지만, 이미 수많은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실패 사례를 보여준 바 있지 않나? 에릭 바나에게 물어보면 사례를 수집할 수 있을 거다. 아니면 에드워드 노통, 벤 에플렉, 제니퍼 가너 누구에게 물어봐도…. 게다가 아이언맨은 마블 히어로 중 엄청나게 유명한 캐릭터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우니는 끊임없이 아이언맨 역할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왜인지는 몰라요.” 그가 말했다. “정신분석학자 융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의 이론처럼 좀 신비로운 느낌이었어요.” 심지어 감독인 존 파브로는 마블사로부터 ‟다우니는 좀 힘들겠다”는 말을 들었다. 다우니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파브로는 이후 마블에게 들은 이야기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를 고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다우니는 끈질기게 역할을 고집했고, 결국 카메라 테스트를 받기로 했다.

오디션까지 남은 시간은 3주. 그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다우니로부터 듣고 보니, 슈퍼 히어로 이야기의 캐릭터 탄생 과정과 비슷했다. 집중적인 연습과 “정신적이고 매우 의식적인 과정”을 거쳐 그는 세밀한 부분까지 완벽한, 그만의 캐릭터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그는 각 장면을 꾸준히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한밤중에도 연습했고, 낮엔 두 배를 연습했죠.” 다우니가 롤리 스튜디오의 오디션 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이미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었다. “첫 테이크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순간적으로 나를 잊어버린 것 같았어요. 갑자기 긴장이 확 몰아쳤죠.” 그리고 그가 느꼈던 것들을 천천히 기억해냈다. ‟오디션은 충격, 경외심, 정복감을 모두 느끼게 하는 엄청난 경쟁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이후, 다우니의 경력은 아주 약간 방향을 틀었다. 40대에 접어든 영화배우에게 극적인 행운이 또다시 찾아오길 기대하기는 힘들었지만, <아이언맨 2>의 연이은 성공과 <트로픽 썬더>의 상업적인 성공, 화려한 시리즈물 <셜록 홈즈>, 흥행 기록을 초토화시킨 <어벤져스>가 줄줄이 터졌다. 이 모든 영화가 다우니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심에 그가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실패의 시간들은 아주 먼 과거처럼 느껴졌고, 다우니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졌다. 사실 모두 성공할 만한 상황과 작품이었던 것도 아닌데 잭팟은 터졌다. 2009년에 개봉한 <셜록 홈즈>만 봐도 그렇다. 가이 리치가 감독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세트에서 만든 이 영화가, 혼란스럽고 애매한 불발탄으로 끝나지 않고 이만큼 성공을 거두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 리스트의 모든 영화가 그가 이전에 찍은 영화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내 필모그래피에서, 아주 달콤한 순간들이죠.”

다우니에게 성공을 위헤 특별히 노력하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주말에도 일해요. 이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고 주말에는 아스펜으로 파티하러 가자!’라고 외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우린 꾸준히, 매 주말마다 일하는 거라고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의 인터뷰는 힘들다.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때때로 앞의 대화가 그 다음의 대화와 연결된다는 것을 깨치는 순간들이 있다. 만약 누구라도 다우니를 알게 된다면, 정말 친해지고 싶고, 이상하게 신뢰가 싹트고, 어쩐지 신기한 감정이 싹튼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그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즘 한창 유행하는 괴상한 쇼 같은 거.” 그가 갑자기 영화계의 한 주제를 꺼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이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영화라는 기묘한 산업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치채게 되겠죠.”

뭘 눈치챈다는 거예요?
모두 다요. 말하자면 같은 부류랄까요? 아, 이런 말 미안하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부류일 뿐이에요.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나에게 대단한 경외심을 갖는 사람이, 내가 그저 평범한 멍청이라는 걸 깨닫고 나와 함께 일하는 데 지루함을 느끼는 것만큼 날 기쁘게 하는 일은 없어요. 난 그 순간이 정말 좋아요. 나는 그 지긋지긋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 정말 좋아요.
그건 당신이 종종 말하는 “스스로 언제든 가장 재능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과 앞뒤가 맞지 않아요.
음, 난 그 사실이 다른 사람들의 인식에 서서히 스며들기를 바라요. 어느 정도까지만.
하지만 난 여전히 당신이 스스로를 항상 재능 있는 인간이라고 믿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죠. 하지만 이거 알아요? 나는 뛰어나다고 믿는 내 자신이 머릿속에만 있는 어떤 필름의 주인공인 것 같아 두려워요. 그 안에서 그저 행복하지만 절대 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상황이 닥칠까 항상 두려워요.
그럼 그 필름을 잠시 멈춰봐요. 스스로 얼마나 재능 있는 것 같아요?
(미소 지으며) 아마도 재능이 넘치는 인간들 중 하나겠죠.
그건 당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말이고, 필름 속의 그를 말하는 건 아니죠?
네. 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안 돼요. 요즘 연기자들이 역사상으로 보면 그리 뛰어나지는 않잖아요.
배우로 살아서 안 좋은 점은 뭐예요?
많아요. 내가 피해야 하는 모든 것. 문을 열었는데 거기에 뭔가가 있어서 놀라는 상황이 싫어요. 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런 감정이 폭발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아요. 누구나 사람들은 항상 감정적이죠. 그런데 영화에선 사람들이 실제 상황보다 훨씬 더 감정적으로 행동하곤 해요.
별로네요.
네. 정말 웃긴 건,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 쉽게 사로잡혀버려요.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야, 난 그걸 초월했어’라는 식으로…. 모르겠어요. 이를테면 당신이 암스테르담의 이상한 잡지를 파는 서점에서 라는 책 제목을 봤다고 해봐요.(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개처럼 하는 섹스” 지만 다우니는 “개와 하는 섹스”를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 지역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거예요.”
잠시만요, 지금 지나치게 자극적인 행위랑 비교하고 있잖아요, 그건 사실….
그래요, 짐승 같죠! 미안해요. 하지만 둘 다 그로테스크한 건 맞아요. 난 그걸 그로테스크하다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그런 식으로 반응해요. 당신이 거기에 가면 그렇게 행동할 거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사로잡혀버리고…”
아직도 수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지금 난 사람과 동물 간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녜요. 그리고 적어도 그들은 그 관계 이후, 다음 날 아침이 왔을 때 슬프진 않겠죠.

점심 식사 후 우리는 그의 아내인 수잔의 사무실에서 한두 시간 정도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다우니는 커피를 마시면 두통을 앓기 때문에 후식으로 녹차를 마셨다. 미래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다우니가 한 문장을 불쑥 꺼냈다. “만약 내가 예술가로 성공하길 원했다면, 난 아마도….” 그리곤 잠시 멈추었다. “예술가!” 그는 조소하듯이 중얼거리다가 다른 단어로 문장을 대체했다. 그에게 왜 “예술가” 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냐고 다시 물었다. “왜냐면 난 그렇게 진지하지도 않고, 그렇게 예술적이지도 않으니까요.” 그는 아내의 책상 옆 벽에 걸린 그림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게 예술이죠. 호안 미로예요.” 그는 훨씬 더 확실한 방법으로 그 차이를 설명했다. “그 누구도 미로가 저런 그림을 그려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의 집에는 다채로운 예술 작품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수잔의 사무실 안에만 해도 많은 예술품들 사이에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드로잉이 있었고 왼쪽 벽의 한가운데에는 방크시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호안 미로. “수잔은 미로의 작품을 좋아해요. 완전히 빠져 있어요. 그래서 미로의 작품을 한 무더기 사들였어요. 무슨 컬렉션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그냥 겉핥기 식으로 조금 가지고 있을 뿐이에요.” 보통 이런 식으로 그림을 사들이다간 큰 싸움의 불이 붙었겠지만 다우니처럼 돈에 구애받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건 꽤 괜찮은 취미다.

“나는 피카소를 좋아하고, 그녀는 미로를 좋아해요.” 그리고 미로 그림 바로 옆 벽에는 세 폭으로 된 다우니의 한 살 먹은 아들 엑스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잠시 후에 수잔이 엑스턴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아이를 다우니에게 안겼다. “내 생각에 오줌이 샌 것 같아. 근데 별로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아까 기저귀를 제대로 채웠죠?” 그가 물었다. “네. 잘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어쩐지 제대로 해낸 것 같았어.”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말했다. “한번 걸어볼래? 어떤지 보여줄래?” 그의 아들이 움직였다. “잘했어.” 다우니는 그의 아내 덕분에 엑스턴의 혈통이 자신보다 훨씬 평범해졌다고 말했다. “우리 집안 쪽 사람들도 괴짜가 많았다구요.” 수잔이 항변했다. “아, 그렇지만 우린 그런…. 그런 습관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녀는 말을 흐렸다. “삐딱한 행동?” 다우니가 말했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바로 그 단어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들이 떠날 때 그는 부인과 아들에게 키스를 하고는 아들을 등에 둘러멨다. 나는 그에게 이런 상황이 매우 비현실적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15년 전 삶과 비교해 비현실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내 좀 미안해졌다. “아뇨, 잘못된 단어는 아녜요.”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날 아침, 엑스턴을 유모차에 태우고 함께 산책을 하면서 그의 첫째 아들이 엑스턴만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었고, 다우니는 부자가 아니었다. “당시 아내는 옷이나 집 안 구석구석을 뒤져 동전들을 주워 모으곤 했죠.” 그가 말했다. “나는 한동안은 완전히 그녀에게 기대 살았어요. 그리고 다행히도, 나중엔 돈을 벌었죠. 나는 위대한 게으름뱅이 남편이었어요. 이젠 돈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있지만요.”

한 몇백만 달러쯤 어딘가에 숨겨두진 않았나요?
전혀.
귀찮아서요?
난 온갖 세금 관련 문제로 고초를 겪은 적이 있어요. 인생에 고민거리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하고 싶네요. 세금 문제에 한번 얽혀보라고요. 그러면 아마 세금 문제 처리하느라 모든 걱정에서 해방될 거예요.
엉망이었나 보죠?
조금은요. 나는 일부러 망치려고 한 적은 없어요. 운이 조금만 좋다면, 그걸로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죠. 그것보다 좀 더 운이 좋아진다면,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질 테지만, 어쩌다 갑자기 바람이 나쁜 쪽으로 불면 한 5년 동안은 인생을 망치게 될 거예요.

    에디터
    글/ 크리스 히스(Chris Heath)
    포토그래퍼
    PEGGY SIRO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