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남부 파로에서 맥라렌 570S를 시승했다. 맥라렌 스포츠카 570S는 차체가 가볍고 균형이 정교했다. 운전이 정말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우린 저딴 거 절대로 안 만들 거예요!” 포르투갈 남부 파로의 콘래드 리조트에서 진행된 맥라렌 오토모티브의 570S 프레젠테이션. 글로벌 홍보총괄 웨인 브루스가 어떤 사진을 띄우더니 이렇게 말했다. 롤스로이스와 애스턴 마틴, 벤틀리, 람보르기니가 각각 개발 중인 SUV였다.
맥라렌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꿈은 원대하다. 2018년까지 생산을 4천대로 늘릴 예정이다. 1천7백 대였던 2014년의 두 배가 넘는다. 게다가 SUV 같은 외도로 규모를 뻥튀기하는데는 관심도 없다. 오직 스포츠카로만 승부할 참이다. 맥라렌의 성장판을 열 신호탄이 바로 570S다.
앞모습은 전형적인 맥라렌이다. 갈매기 날개 모양의 헤드램프는 맥라렌의 로고인 스피드 마크를 상징한다. 창업자 브루스 맥라렌의 고향 뉴질랜드의 국조 키위새에 뿌리를 뒀다. 키위란 이름은 수컷의 울음소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날지도 못하는 키위가 속도의 상징이라니 유쾌한 반전이다.
앞뒤 램프는 창백한 LED로 완성했다. 테일 램프는 P1을 연상시킨다. 제동과 방향지시등 기능을 얇은 LED 띠 하나에 합쳤다. 나머지 부분은 큼직한 방열구다. 차체는 알루미늄 패널로 씌웠다. 맥라렌 최초다. 모서리는 시트지를 씌운 뒤 뜨거운 바람으로 잔뜩 수축시킨 것처럼 바짝바짝 오므렸다.
드디어 시승의 막이 올랐다. 리조트 지하 주차장은 맥라렌의 절규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렌지색 570S가 그르렁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도어 핸들 안쪽을 건들자 미끈한 몸매에 금이 가면서 문이 쩍 갈라졌다. 일명 다이히드럴Dihedral 도어다. ‘두 개의 다른 면 사이 각도’를 뜻하는 전문용어다. 맥라렌이 전 차종에 이 도어를 단 건 신의 한 수였다. 한국 기준 2억원대 중반의 스포츠카 가운데 BMW i8 빼곤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이 멋진 문을 여는 순간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문이 열렸을 때 드러나는 휠 하우스와 로커 패널, 잘록한 허리 또한 더없이 섹시하다. 어제의 설명이 떠올랐다.
“570S는 2세대 경량 카본 파이버 섀시인 ‘모노셀 Ⅱ’를 뼈대로 삼았어요. 무게는 75킬로그램에 불과합니다. 650S과 비슷한데 로커 패널의 폭이 더 좁고, 높이도 80밀리미터 낮췄어요. 그만큼 타고 내리기가 편해졌죠.” 맥라렌 신차 개발 총괄, 마크 비넬스의 자랑엔 과장이 없었다.
섀시를 바꾼 결과 문도 조금 더 활짝 열린다. 실내는 650S나 675LT와 레이아웃이 확연히 다르다. 이들 슈퍼 시리즈의 실내는 경주차에 가깝다. 오로지 운전에 집중했다. 반면 스포츠 시리즈는 한층 실용적이다. 실내 공간도 더 넓다. 도어 포켓과 글러브 박스, 센터콘솔까지 챙겼다. 센터페시아엔 터치스크린을 세로로 심었다. 처음엔 어색한데 금세 눈에 익는다. 특히 진행 방향을 따라 꿈틀대는
지도를 볼 때 더없이 편하다. 딱 모니터 끝자락까지가 센터페시아다. 그 사이엔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변속기는 레버 대신 버튼을 꾹꾹 누르는 방식이다.
실내가 넓어 675LT나 650S보단 자세를 잡기가 좋다. 반가운 아이템도 눈에 띈다. 센터페시아 위쪽의 송풍구다. 슈퍼 시리즈는 한 개뿐이다. 그래서 운전자와 동승자 중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570S는 두 개다. 맥라렌은 점점 진화하는 중이다.
버튼을 눌러 엔진을 깨웠다. 와락 덮치는 사운드에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 D 버튼을 누르고 첫발을 뗐다. 가파른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스위치를 눌러 앞머리를 40밀리미터 더 띄웠다.(시속 60킬로미터까지 작동, 옵션.) 그래도 조심스러웠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570S들은 꽁무니로 폭음탄을 쏘아대며 쏜살같이 내뺐다.
570S의 엔진은 V8 3.8리터 가솔린 트윈터보다. 기존의 M838T 엔진을 30퍼센트 수정해 완성했다. 7,500rpm에서 최고출력 570마력, 5,000~6,500rpm에서 최대토크 61.18㎏.m를 낸다. 맥라렌 최초로 ‘스톱-스타트’ 장치를 달아 정차가 잦은 도심 주행의 효율까지 챙겼다. 이 같은 노력은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보상받았다.
보통 스포츠카는 기본 모델을 시작으로 출력을 덧씌워 괴물로 키워간다. 911 카레라부터 시작해 카레라 4, 터보, GT3 순으로 발톱을 다듬는 포르쉐가 좋은 예다. 맥라렌은 아득한 슈퍼 시리즈와 까마득한 얼티밋을 완성한 뒤 스포츠 시리즈를 내놓았다. 레이싱카만 제작하다 스포츠카 생산에 뛰어든 개발 순서와도 일맥상통한다.
몇 달 전 시승한 675LT는 스포츠카의 탈을 쓴 레이싱카였다. 어마어마한 접지력이 뒷받침된 그립 주행으로 최고의 랩타임을 꿈꾸는 데 어울리는 차다. 570S는 다르다. 레이서가 아니라 기분파 아마추어에게 재미를 줘야 한다. 타이어 폭을 줄여 접지력을 낮췄다. 꽁무니를 일부러 흘려서 연기를 피울 수 있는 한계를 낮추기 위해서다. 맥라렌은 570S의 상징으로는 검은 깃털을 앞세웠다. 검은 백조를 암시한다. 과거엔 실존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17세기 호주에서 한 학자가 실제 발견한 이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실제 일어나는 상황’을 뜻하는 용어로 바뀌었다.
570S의 무게는 1,313킬로그램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쾌해졌다. 570S의 적수는 아우디 R8 V10과 포르쉐 911 터보. 제원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570S는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3.2초, 시속 200킬로미터 가속을 9.5초에 끊는다. 그런데 사륜구동까지 얹은 무게를 엄청난 파워로 밀어붙이는 라이벌과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깃털처럼 사뿐하다. 가속페달을 건드리는 순간 경련하듯 힘을 뿜는다. 터보 랙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워낙 빠른 반응과 엄청난 뒷심 덕분이다. 5단 기어로 시속 150킬로미터로 달리다 오른발에 살짝 힘만 주면 시속 250킬로미터까지 단숨에 달려 나간다. 시속 2백 킬로미터 안팎의 가속은 하품처럼 쉽고 무감각하다. 최고속도는 시속 328킬로미터다.
570S는 총 9가지 모드로 즐길 수 있다. 핸들링(H)과 파워트레인(P) 두 개의 다이얼로 조작한다. 각각의 메뉴에서 노멀(N)과 스포츠(S), 트랙(T)을 고를 수 있다. 핸들링은 스티어링 답력과 서스펜션 감쇠력, 파워트레인은 엔진과 변속기 반응을 쥐락펴락한다. 이틀 동안 시승하며 가장 맛깔스러운 궁합을 찾았다. 핸들링은 트랙, 파워트레인은 스포츠였다.
맥라렌은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운전자와 한 몸이 되는 느낌’을 강조한다. 570S에서 이런 재미가 더 두드러진다. 빠른 템포로 굽잇길을 헤집는 재미가 압권이다. 570S의 움직임에는 어떤 생략이나 왜곡도 없다. 내가 두 팔을 뻗어서 앞바퀴를 직접 비트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알가베 서킷은 570S만큼이나 놀라웠다. 롤러코스터 레일 위에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분위기였다. 블라인드 코너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게다가 오전에 내린 비로 노면은 물티슈처럼 촉촉한 상태였다. 내 자신감은 순간 쪼그라들었다. 물결치듯 펼쳐진 서킷에서 맥라렌이 심었다는 스릴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ESC를 다이내믹 모드로 바꾸자 570S는 족쇄를 풀어 던졌다. 시승회의 마지막은 택시 드라이빙. 맥라렌으로 경기를 뛰는 현역 레이서가 본때를 보여주는 순서였다. 압도당했다. 570S는 슈퍼카와 미묘한 경계에 있다. 디자인과 성능은 물론 특별함으로 가득하다. 감성과 재미는 반론의 여지없는 슈퍼카 수준, 가격은 양산 스포츠카 수준이다. 장밋빛 미래다. 투자해도 좋다.
- 에디터
- 김기범(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