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get

엘리베이터 대혁명

2016.03.18GQ

위아래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만으로는 현대 건축을 완성할 수 없다. 

건축가들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일이고, 승강기 제조사들은 제일 빠른 승강기를 만드는 것이 일이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쟁사를 추월할 방법을 구상해야 했죠.

안드레아스 쉬어렌벡은 먼지와 고인 물 사이로 조심스레 공사 현장을 누비는 중이다. 흰색 안전모를 쓴 그는 주렁주렁 매달린 케이블과 목재 지지대를 피해 몸을 낮춰 나아가다가, 좁다란 틈새 너머에 있는 낭떠러지를 가리켰다. “여기서부터 수직으로 80미터입니다.” 정면에서는 인부들이 굉음을 내는 장비를 이용해 최근 콘크리트를 부었던 형틀을 해체하고 있다. 쉴 새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타워는 24시간마다 3미터씩 계속 높아지는 중이다. 독일 슈트투가르트 남동 방향으로 100킬로미터 거리의 로트바일에 세워지는 이 타워는, 완공 시 높이가 244미터에 이르러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속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가 있는 건축물이 될 예정이다. 외장재로는 우아한 나선형 섬유 재질이 건물을 감쌀 계획이다. 튼튼한 반투명 재질은 팽팽하게 당긴 돛과 같은 모양으로 태양 각도의 변화에 따라 색채가 변하는 구조다. 담당 건축가인 헬무트 얀과 베르네르 소벡은 이 프로젝트를 ‘빛의 탑’이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총 건설비용이 6천만 유로(약 8백17억원)나 드는 이 건물은 입주자를 받을 계획이 전혀 없다. 다국적기업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의 CEO인 쉬어렌벡은 이 건축물을 오로지 차세대 승강기 시스템을 시험하기 위한 공간으로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건물의 중심부는 뻥 뚫린 채 비어 있다. 단지 9개의 승강기를 위한 수직 통로만 건설했는데, 바로 여기서 새로 개발하는 승강기 시스템을 시운전한다. 필요 시 승강기를 파괴하는 것까지 테스트할 것이다. 쉬어렌벡의 설명에 따르면, 건물의 하부는 40톤에 달하는 승강기가 종단속도(시속 160 킬로미터)로 낙하해 바닥에 충돌하더라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보강 시공이 되어 있다.

전기공학도이자,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2년 전 신임 CEO로 부임한 쉬어렌벡이 ‘빛의 탑’을 계획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티센크루프는 이미 100킬로미터 거리의 노이하우젠 지역에 승강기 생산 플랜트와 좀 더 작은 규모의 시험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험장은(티센크루프 외 대부분의 회사가 보유한 시험장들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재래식 승강기만 테스트할 수 있다.

쉬어렌벡은 보다 혁명적인 승강기(그가 ‘멀티’ 라고 이름 붙인)를 구상하고 있다. 이 승강기는 상하뿐만 아니라 좌우로도 이동할 수 있으며, 로프나 케이블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이 때문에 건축 중인 타워의 승강기 통로 중 세 곳은 멀티를 위해 특수 설계해 통로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 시운전할 승강기는 미래의 건물, 나아가서는 도시를 설계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실현되기 전에, 일단 티센크루프의 엔지니어들이 ‘멀티’의 시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쉬어렌벡에 따르면 아직도 개발은 진행 중이다. 그는 낙관적이다. “제품 개발도 하고 저 타워까지 올렸는데, 결국 개발에 실패하면 6천만 유로를 날린 꼴이 되겠지요.”

인류 문명의 초창기 시절부터, 승강기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왔다. 아르키메데스는 물건을 들어 올리기 위한 장치를 고안해 기록으로 남긴 바 있으며, 17세기 독일의 수학자 에르하르트 바이겔은 자신의 7층짜리 자택에 도르레를 이용한 운반 시스템을 설치해 사용했다. 1804년 더비셔의 방적공장에서는 6개 층을 오갈 수 있는 화물과 승객 겸용 승강기를 도입했고, 이후 유럽 각지의 공장과 탄광에서는 화물용 승강기가 널리 쓰였다. 이들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동일했다. 승강기의 몸체 혹은 하판을 로프에 매단 뒤 체인이나 평형추를 이용해 위아래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1854년 뉴욕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열린 만국산업박람회에서 엘라이자 오티스는 승강기용 안전 브레이크를 시연했다. 위에서 진행요원이 지탱 로프를 도끼로 끊었는데도, 놀랍게도 승강기는 추락하지 않고 안전 자물쇠에 걸려 멈췄다. 하지만 정작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이후 등장한 ‘수직 철도’로, 이제는 이름이 잊힌, 오티스 터프트스라는 기계공의 발명품이었다. 승강기로서는 최초로 완전 밀폐된 객실(승강기 한 칸) 구조로 설계한 이 장치는, 이동 속도는 느렸지만 객실 중앙부를 관통하는 나사 형태의 증기기관 샤프트로 안전하게 구동됐다. 터프트스의 승강기는 뉴욕과 필라델피아의 호텔 두 곳에만 설치됐고, 이후 관광 명소로 인기를 끌었다. 그 후에는 유압식 승강기도 등장했지만 고층 빌딩에는 맞지 않았고, 곧 전기구동식에 자리를 완전히 내주었다.

1931년에 이르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됐다. 승강기 통로는 64개, 사무용 공간은 102개 층에 달하는, 당시 세계 최고층의 건물이었다. 여기에 설치한 승강기는 객실마다 승무원이 조작했고, 전기구동축에 연결된 6~8개의 케이블을 이용했다. 객실 중량(공실 기준)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평형추는 전용 레일을 따라 오르내리며 객실의 이동을 보조했고, 사고 발생 시에는 별도의 케이블로 작동하는 비상 브레이크가 추락을 막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승강기 시스템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방식이었다. 단순하면서도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 향후 60년간 거의 개량하지 않고 줄곧 그대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도시개발 분야에 일종의 기술적 병목 현상이 야기되었다. 이 방식으로는 건물 안을 동시에 이동할 수 있는 이용객 수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층수가 높은 건물들을 구상했지만, 이미 19세기에 개발이 끝나다시피 한 승강기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발목을 잡히기 일쑤였다. “꽤 재미난 업계죠. 너무나 오래된 분야라는 점이 재미있는 지점이고요.” 쉬어렌벡이 이어서 말했다. “전기가 대중화되던 시기에 발전한 분야거든요. 현재가 산업 4.0시대라면, 이쪽은 산업 1.0에 해당되는 겁니다.”

엘라이자 오티스가 창설한 ‘오티스’사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승강기 제조사다. 다음으로 쉰들러, 코네, 미쓰비시가 있고, 마지막으로는 1954년에 업계에 후발주자로 진입한 티센크루프사가 있다. 수십 년간 이들의 경쟁 양상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초고층 건물, 예컨대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오티스)나 상하이 타워(미쓰비시) 시설의 수주를 위한 경합으로 좁혀졌다.

이들 간 경쟁의 주된 영역은 속도에 국한되어왔다. 세계적 승강기 컨설턴트인 제임스 포춘에 따르면, “건축가들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일이 되었고, 승강기 제조사들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승강기를 만드는 것이 일이 되었습니다.” 쉬어렌벡은 이러한 경합에서 탈피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쟁사들을 추월할 방법을 구상했다.

독일 남부, 무시무시한 콘크리트 타워 안쪽의 모습. 건물이 텅 비어 있어 고래뱃속처럼 느껴진다.

고층 건물에 설치할 승강기의 최적 대수를 정하는 것은 섬세하면서도 복잡다단한 작업이다. 지난 40년간 건축가들과 개발자들에게 고층 건물의 승강기 설치에 대해 자문을 해온 포춘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핵심입니다.” 그는 부르즈 할리파뿐만 아니라 완공 시 세계 최고층 건물이 될 예정인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킹덤 타워 등에 참여한 바 있다. 건물 이용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승강기가 충분히 구비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동시에 건물주도 만족시키려면 각 층의 귀중한 면적을 승강기 시설이 과도하게 잠식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초고층 건물의 경우 또 다른 고려사항이 있는데, 바로 승강기 케이블의 장력이다. 승강기의 운전고도가 520미터를 넘어서면, 이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길이의 케이블은 자기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 고도가 1천 미터를 넘으면 케이블 자체가 파열한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타협적인 시도를 도입한 것이 1970년대 초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의 ‘스카이 로비’ 방식이다. 일종의 공중에 떠 있는 환승센터 개념으로, 스카이 로비는 1백10개 층을 3개 구역으로 나누었다. 가장 아래에서 출발한 이용객이 그 위의 구역으로 올라가려면 스카이 로비에서 다른 승강기로 갈아 타야 하는 식이었다. 세계무역센터에 설치된 승강기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는데, 동시에 50명의 승객을 실어나를 수 있었고 빠른 승차와 하차를 위해 전면과 후면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형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로 하나에 단 한 대의 승강기만 운행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건물 안을 이동할 수 있는 이용객의 수를 제한했다. 이후 ‘세계 최고층 건물’ 타이틀을 이어받은 시카고의 시어즈 타워(1973)와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1998)에는 2개 층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복층 구조의 승강기가 도입됐다.

승강기 분야의 엔지니어들은 수십 년 동안 복수의 승강기가 한 통로를 동시에 운행할 수 있을지 연구해왔다. 이러한 구조의 일종이 1880년대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파터노스터’ 승강기인데, 개방형 객실 여러 개가 루프 형태로 계속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에서는 모든 객실과 이용객의 하중을 단 한 개의 축이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층수가 낮은 건물에만 적용할 수 있었다. 비슷한 개념으로 건물 외부에 승강기들을 나선형으로 연결하는 구상도 있었고, 20세기 초에는 기존의 재래식 로프형 승강기 두 대를 한 통로에서 운용하는 형태의 특허들이 출원되었는데, 충돌 방지 기술이 미흡해 이 시도는 모두 좌절됐다.

한편 일부 승강기 엔지니어들은 이보다 원대한 상상을 하곤 했는데, 케이블이나 도르레가 전혀 필요 없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몇몇 승강기 제조업체의 기술자들이 선형 모터linear motor, 즉 자기부상 방식이야말로 케이블이나 로프 없는 승강기 시스템을 구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티센크루프에서 24년간 경력을 쌓은 베테랑 승강기 엔지니어 마르쿠스 예터는 입사 당시 어느 기술자가 자기부상 문제에 골몰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예순하나의 나이에, 머리카락은 희끗해지고 와이어 프레임의 안경을 쓴 예터는 말 그대로 승강기에 미친 남자다. 가족 여행 때 몰래 빠져나와 경쟁사의 최신 고층 승강기에 잠입해 아이폰으로 속도와 승차감을 기록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제품에 대해선 극도로 조심스러운 그는, 대화를 하면서도 ‘오티스’나 ‘쉰들러’라는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 그는 산업정보 보안 문제에도 철저해, 매주 특허출원 속보를 챙겨 보며 경쟁사 엔지니어들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10년간 ‘멀티’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던 그에게, 가족에게 회사 일 얘기를 얼마나 언급했는지 묻자 그는 짤막하게 “승강기의 혁명”이라고만 답하고 웃었다.

1991년 슈투트가르트 근교 노이하우젠 지역에 있는 티센크루프 승강기 개발부에 첫 출근한 예터는 빈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는 엔지니어를 발견했다. 그 엔지니어는 자기부상열차의 원리를 수직운동에 접목할 방법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티센크루프는 1970년대 초반부터 트랜스래피드Transrapid와 같은 고속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하는 등 자기부상 분야의 선도주자였으며, 여객용 자기부상열차의 시제품도 다수 개발한 상태였다.

그는 자기부상을 통해 마찰력이 전혀 없는 수평 레일 위로 열차를 추진시키는 것과, 짐을 실은 승강기를 수직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라고 인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네덜란드 아헨 대학에서 티센크루프의 엔지니어들은 자기 하중을 운반시킬 수 있는 소형 선형 모터의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실제 승객을 태울 수 있는 규모로 시제품을 확장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앞길을 막고 있었다. 견인식 승강기의 경우 강도와 안전성뿐만 아니라 쾌적한 승차감 때문에 강철로 제작한다. 그래서 대체로 무거울수록 고급 승강기인 경우가 많다. 반면에 부상식 승강기는 초경량이면서도 강도가 매우 높은 재질로 만들어야 했는데, 당시만 해도 그러한 재질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 게다가 케이블이 전혀 없는 선형구동식 승강기 시스템을 구현하면서 충돌 위험 없이 둘 이상의 객실을 같은 통로에서 운행시키는 기술 역시 당시 엔지니어들에게는 없었다. “충돌을 원천봉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기술적 공백이 있었습니다.” 예터가 말했다.

이렇게 티센크루프의 자기부상식 승강기 개발이 정체된 사이, 대서양 건너의 오티스사는 ‘오딧세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시스템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고 있었다. 기존 ‘스카이 로비’ 방식에서 착안한 이 시스템 역시 기반은 선형구동 모터였다. (예터는 “이쪽 업계에서 케이블이 없는 시스템 이야기가 나오면, 선형구동 방식밖에 없다고 다들 동의합니다. 일종의 상식이에요”라고 말했다.) 오딧세이 시스템은 상하 이동을 기존의 재래식 승강기가 담당하는 대신, 스카이 로비에서의 수평운동은 자기부상 트랙 위로 운행하는 ‘여객 포드’로 대체하는 방식이었다. 지층에서 출발한 이용객은 여객 포드를 타고 승강기로 이동해, 승강기가 스카이 로비 층에 도착하면, 또 다른 여객 포드가 이용객을 다음 구역행 승강기로 이동시킨다는 구상. 하지만 오티스는 오딧세이 프로젝트를 위한 시제품을 개발했으나 복잡성과 비용 문제로 인해 생산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고, 1997년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닥치자 결국 폐기했다.

엔지니어들은 슈트투가르트 대학에서 만든 ‘멀티’ 메커니즘의 인터렉티브 3D 모델을 사용한다.

한편, 이 무렵 티센크루프의 발목을 잡고 있던 기술적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방안을 한 경쟁사에서 개발했다. 1996년 쉰들러사는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의 승강기 제어를 선도하고 있었다. 그 핵심은 각 승강기의 정차 횟수를 줄이기 위한 ‘목적지 전송destination dispatch’ 소프트웨어.

이 방식의 승강기 객실에는 버튼이 전혀 없다. 대신 이용객이 승강기 대합실에 위치한 키패드를 통해 목적 층을 입력하면, 알고리즘을 통해 목적지가 서로 근접한 승객들이 같은 승강기에 탑승하도록 소프트웨어가 안내해 총 운행 시간을 단축한다.

이러한 ‘목적지 전송’ 방식으로 곧 업계 전반에 보편화된 ‘스마트’ 승강기 기술은, 각 객실이 동일 통로에 있는 다른 모든 객실의 위치 인식이 필요하다. 이는 곧 둘 이상의 객실을 한 통로에서 동시에 운용할 수 있는 길이 최초로 열렸다는 뜻이다.

2000년, 엔지니어 4명으로 구성된 티센크루프 개발팀은 케이블 없는 승강기 시스템의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 객실 사이, 일정 거리 이내로 접근하지 않게 하는 전자 시스템 개발이었다. 둘 이상의 객실을 사용하는 시스템의 실현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자 티센크루프가 특허를 출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요소는 이미 70년 전에 구상이 끝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 바코드와 자기테이프로 구성된 자체 거리제어 시스템 개발을 마친 티센크루프는 2003년에 마침내 ‘트윈 리프트twin lift’ 시스템을 출시했다.

그리고 예터와 나머지 개발팀은 미래로 눈을 돌렸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라고 예터는 자문했다. 그들은 선형구동 모터에 대한 구상과 기존 승강기의 고도를 연장시킬 수 있는 경량 섬유 로프에 대한 구상에 다시 매달렸다. 진척은 더뎠다. 엔지니어들은 기꺼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개발에 열중했지만, 쉬어렌벡에 따르면 이들 중 진정으로 혁명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자는 많지 않았다. “승강기 분야는 아주 전통적인 업계입니다. 정말, 정말, 보수적이지요.”

쉬어렌벡은 2012년 말 지멘스에서 티센크루프로 옮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본사의 연례행사인 혁신대회를 만들고 처음으로 주재했다.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는 소규모 엘리베이터 업체들을 대상으로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운 회사다. 지점 곳곳에 자율성이 주어진 ‘아이디어 랩’을 운영 중인데, 각 아이디어 랩마다 20~30명의 기술개발자가 배속되어 있고 대학 연구소들과도 연계한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는 회사에 기술적 도약을, 그것도 빠르게 촉발시키고 싶어 했다. 특허출원 소식을 통해 티센크루프 측 엔지니어들은 핀란드의 코네사에서도 그들처럼 승강기 운행 고도를 연장할 수 있는 경량 케이블 개발에 착수했다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아는 한도 내에서는, 한 통로에서 복수의 객실을 운행하는 시스템이나 선형 모터를 연구 중인 업체는 없었다. 쉬어렌벡은 혁신팀에 일단 케이블이 필요 없는 승강기의 시제품을 개발하라고 주문했다.

2013년 초 플리츠하우젠에 위치한 티센크루프 독일 연구센터 소속인 마르쿠스 예터의 연구팀은 새 작업에 착수했다. 기존의 ‘트윈 리프트’ 시스템을 위해 개발한 거리 유지 소프트웨어와 안전 유지 시스템 등 복수 객실의 운용을 위한 기술들을 선형 모터 환경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이들은 전체 시스템의 각 구성요소마다 의사결정 수형도decision tree를 20여 개씩 고려했는데, 결국에는 그 개수가 100개를 넘었다. 이들은 현실성 있는 수준의 중량 한도를 만족하는 객실과 전원이 꺼졌을 때 추락을 막아줄 전자기식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을 개발했다. 여전히 남은 숙제는 객실의 통로 간 이동을 구현할, 이른바 ‘교환기’의 문제였다. 엔지니어들은 이에 대해 20여 가지 솔루션을 구상했는데, 그중에는 별도의 추력 시스템으로 구동되는 운반기가 좌우의 통로를 오가며 객실을 옮기는 형태도 있었다.

가장 현실성이 있다고 평가된 두 가지 ‘교환기’ 시스템 중 최종안을 확정 짓기 위해 연구팀은 각 교환기의 3분의 1 스케일의 목업을 제작했고, 세계 각지에서 슈투트가르트로 소집된 30여 명의 경영진과 엔지니어로 구성된 티센크루프 R&D 자문위원회는 2014년 9월 둘 중 하나를 만장일치로 선정했다. 탈락한 모형은 워낙 복잡하고 구현하기가 어려워 목업을 완성하는 데도 난항을 겪었다. 당연히 이 방식은 한 표도 얻지 못했다. 반면 다른 방식은 비교적 간단했다. 객실은 선형 드라이브를 통해 레일 위를 이동해 ‘환승’ 위치에 도착한다. 이때 레일의 일부가 90도 회전해 그 옆의 통로로 수평이동할 길을 놓아준다. 객실은 이 레일을 따라 옆 통로로 이동하고, 새로운 통로의 레일은 다시 90도 회전해 객실이 수직이동할 길을 터준다. 이 방식의 승강기 객실은 마치 열차 객실처럼 주어진 망 내에서 어떤 방향으로나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혼잡한 시간대에는 이용의 편의를 위해 객실을 증편해서 운행하거나 유지 보수를 위해 손쉽게 망 밖으로 빼는 등의 운영이 가능했다.

기술개발이 마침내 여기까지 진척되자 쉬어렌벡은 6천만 유로짜리 테스트 타워 시공을 승인했다. 이어 2014년 11월, 티센크루프는 공식적으로 ‘멀티’ 시스템을 발표했다. “케이블에 매다는 엘리베이터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렇게 공언한 언론 보도는, 건축가들이 기존에 하지 못했던 평면 배치와 초고층 건물을 설계할 수 있는 새 기술의 등장을 알리고 있었다. 그 건물 안을 상하좌우뿐만 아니라 대각 방향으로도 이동할 수 있는 승강기가 등장하는 셈이다.

‘빛의 탑’을 통해, 쉬어렌벡은 ‘멀티’의 1:1 스케일 시제품을 2016년 중에 시험 가동하겠다는 구상이다. 승강기 컨설턴트 제임스 포춘은 다소 의구심을 표시했다. “일단 그들이 택한 방향은 틀리지 않았어요. 그들이 만드는 건 궁극의 승강기예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최소한 10년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포춘은 ‘멀티’와 같은 개념의 승강기에 관해 아직 규명되지 않은 요소가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재래식에 비해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문제, 자기부상 모터가 승객을 평균적으로 몇 명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지 여부, 밀폐된 객실이 수평이동할 경우 승객들이 당황할 수 있고 급정지하면 넘어질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언급했다.

한편 경쟁업체인 코네는 킹덤 타워의 승강기에 고강도 초경량 탄소섬유 소재의 ‘울트라 로프’ 설치를 추진 중이다. 설치가 완료되면 단일 통로 승강기로는 세계 최고의 고도를 자랑하게 된다. 또한 미쓰비시는 상하이 타워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승강기를 설치할 계획인데, 그 속도가 시속 64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안드레아스 쉬어렌벡은 이런 소식들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재래식 기술의 한계점들을 타파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통로 한 곳에 승강기 객실 한 기만 운행한다는 면에서, 예전과 마찬가지지요.”

마르쿠스 예터는 ‘멀티’ 의 성공 가능성에 자신감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연구 개발을 진행하면서, 너무나 기상천외하고 비현실적이어서 탈락시킨 방식들 중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비현실적이라는 말 자체를 못하게 했어요. ‘이건 미친 짓이에요’ 라거나, ‘이게 작동할 리 없어요’ 라고 말하는 동료들과 일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린 그런 식의 언사를 ‘아이디어 죽이기’ 라고 했어요. 사람들 김을 빼놓잖습니까. 역사를 돌아보아도, 미친 아이디어들이야말로 가장 황홀한 테크놀로지의 시작점이 되었지요.”

    에디터
    ADAM HIGGINBOTHAM
    시각화
    OLIVER BUR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