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서울의 호텔은 진화하고 있는가?

2017.02.11GQ

서울의 호텔은 진화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진화인가.

2017년 서울은 낯선 이들을 위한 침실로 넘쳐나는 도시다. 어느 동네에서 길을 잃든 하룻밤 잠을 청할 곳은 도처에 있다. 이토록 다채로운 선택지에서 호텔을 따로 구분한다면, 그것은 호텔에 숙소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객실이나 세심한 서비스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호텔 사업은 언제나 서울의 자의식과 함께 역동해왔다. 호텔이라는 호명이 각별한 권위를 누리던 시절, 중구에 생긴 특급 호텔들은 사적인 상업시설을 넘어 도시의 상징적인 이정표였다. 1985년 말 일간지들은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7개 대형 호텔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1988년을 전후해 완공된 강남의 특급 호텔들은 조금 쇠락했지만, 그 안팎의 풍경에는 당시 서울이 품었던 낙관적이고 자신만만한 분위기가 여전히 서려 있다.

한동안 변화가 드물었던 서울 호텔의 지형도가 다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부터다. 명백한 원인은 중국 여행객들의 증가였다. 연이은 국제 행사 개최와 서울시의 숙박 시설 지원 특별법도 한몫했다. 호텔 업계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열정적으로 응답했다. 그 결과 서울 호텔의 타임라인은 해마다 놀라운 소식들로 갱신되었다. ‘6성급’으로 게으르게 수식되곤 하는 최고급 호텔 브랜드들이 차례로 상륙했고, 기존의 특급 호텔들은 각각 세컨드 브랜드를 론칭했다. 신축 호텔들의 소식이 기세 좋게 타전되는 가운데, 이전과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 공간들은 유독 ‘부티크 호텔’의 팻말 아래 모여왔다. 지나치게 비싼 호텔과 질이 낮은 숙소로 양극화되어 있던 서울의 숙박 업계에서 부티크 호텔은 실패하기 어려운 기획이었다. 작은 규모 덕분에 어떤 지역에도 비교적 쉽게 입주할 수 있고, 특급 호텔들의 수준 높지만 평준화된 서비스 대신 투숙객과 지역에 대한 구체적 고민으로부터 브랜드의 문법을 찾았다. 바꿔 말해, 부티크 호텔들은 대형 호텔에 비해 입지로부터 더욱 다채로운 영향을 받는다. ‘로컬’과 이야기를 중시하고 도심의 복잡한 시공간에 유연하게 순응한다. 이 작고 참신한 공간은 서울의 지금을 저마다 관찰하고 생각한 결과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의 호텔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는 지역은 중구와 종로구다. 가장 적은 인구가 살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스쳐 가는 지역, 서울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공항을 떠난 후 최초로 당도하는 곳. 정치와 경제, 종교와 문화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이 일대는 도시의 배꼽이라는 별명에 합당하며, 그만큼 크고 작은 숙박업소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 있다. 남산과 광화문, 시청은 서울을 대표하는 특급 호텔들로 가득한 지역이지만, 대로변이 아닌 뒷골목에도 흥미로운 호텔이 많다. 서촌과 북촌의 한옥 레지던스 호텔들이 이방인들을 조용히 모객한다면, 지난 몇 해 동안 차례로 문을 연 북창동의 신신 호텔, 을지로의 스몰하우스 빅도어, 익선동의 메이커스 호텔은 포화 상태의 도심에서 디자인 호텔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 호텔은 건물을 신축할 부지를 확보하는 대신 낡은 채 방치된 빌딩들에서 해답을 찾았다. 스몰 하우스 빅도어는 54년 된 낡은 물류창고를 개조했고, 메이커스 호텔 역시 오래된 사무용 빌딩을 완전히 새롭게 보수했다. 신신 호텔은 오래 전 폐업한 동명의 호텔을 계승했다. 이미 존재하던 건물이나 부지에 들어선 만큼 객실은 좁아졌으나, 작은 공간을 철저하게 활용하려는 재기를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를 기용하는 대신 서울의 젊은 디자인 그룹들이 리노베이션을 주도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지역적 정체성을 디자인에 이식하려는 욕심은 호텔마다 다르게 드러난다. 결과에 대한 호오는 취향에 따라 나뉘겠지만, 거리의 이미지와 밀착하려고 애쓰는 호텔들이 이곳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구도심과는 또 다른 지점에 여의도가 있다. 재작년 광화문에 들어선 포시즌스 호텔과 함께, 2012년 여의도에 콘래드 호텔이 오픈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호텔의 입지로 인기가 높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구도심과 여의도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 여의도는 70년대 매립 사업을 거쳐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로 발전한 지역이다. 관광지로서의 매력보다 오피스 지구로서의 기능이 강력하다는 특징 덕분에 이곳은 모범적인 비즈니스 호텔들의 터전이 됐다. 현재 서울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호텔 브랜드인 글래드 호텔의 첫 번째 거점 역시 여의도였다. 글래드 호텔은 비즈니스 호텔의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부티크 호텔의 기본 원칙들에 충실하게 기획되었다. 호텔의 주된 고객인 비즈니스맨들의 여행을 세심하게 상상한 결과, 이곳은 호텔의 전통적인 유형에서 벗어난 선택을 취할 수 있었다. 객실은 아담하지만 침구는 최고급으로 갖추고, 수트용 옷걸이와 구두 솔 등을 객실에 구비했다. 서랍장 대신 소파와 테이블의 면적을 넓혔다. 중구와 종로구의 부티크 호텔이 지역의 개성과 접속한다면, 이곳은 여의도의 첨단 이미지를 부드럽게 중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유리가 아닌 벽돌로 외관을 마감하고, 세부적인 디자인 요소들도 담백하고 친근한 정서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이곳의 성공을 바탕으로, 글래드 호텔은 최근 논현동에 글래드 라이브 강남을 오픈했다.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함께 객실을 디자인하고,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 라운지 바를 1층부터 3층까지 입점시켰다. 세 곳 모두 밤 9시 이후부터는 라운지 바로 변하고, 층에서 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면 4층에 로비가 나타난다. 여의도의 호텔보다 훨씬 젊고 화려하게 기획했다. 당연한 선택이다. 명동과 여의도가 다른 만큼, 여의도와 청담동도 다르니까.

어느 지역에서 어떤 전략을 택하든, 모든 부티크 호텔이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 시설과 서비스의 규모를 줄이는 한편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엄선한 후 영리하게 운영한다. 쇼핑 아케이드, 스파와 피트니스 센터 등의 부대 시설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국적별로 서너 개의 레스토랑을 거느리는 대신 소수의 업장을 분명한 콘셉트로 선보인다. 재작년 강남에서 오픈한 후 화제가 된 호텔 카푸치노의 경우를 인상 깊게 기억한다. 레스토랑 ‘핫이슈’의 레시피는 미슐랭 2스타 한식당 ‘곳간’의 이종국 셰프와 함께 만들었다. 16층에 위치한 루프톱 바 ‘진토네리아’의 메뉴는 진토닉 단 하나뿐이지만, 몇 십 종의 진과 다양한 토닉을 갖춰놓아 어떤 조합을 주문할지 고민하는 단계부터 마음이 즐겁다. 부티크 호텔의 선택과 집중은 합리적이고 영리하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사용자에게도 이롭다. 지나치게 큰 객실이나 과도한 호스피털리티를 유지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숙박비로 청구될 테니까. 그러나 한편으로, 특급 호텔들의 미덕과 매력은 오히려 그 불필요한 호사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최근에 지은 럭셔리 호텔만의 얘기가 아니다. 높은 천장 아래,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고풍스럽게 낭비된 로비는 그저 아름답다. 백화점과 면세점, 놀이공원과 스타 셰프 레스토랑으로 도심 한복판에 왕국을 세우려는 듯한 롯데 호텔의 자기과시는 유쾌하다. 웨스틴 조선 호텔의 레스토랑 나인스 게이트에서 커다란 통창 바깥 환구단의 소리 없는 경치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서울의 일부다. 트렌드의 변화와 무관하게, 이 호텔들은 각각 서울 자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곳들이다. 서울이 이룩한 도시적 인상에서 이들의 지분은 적지 않다. 더 많은 층위를 더욱 혼란스럽게 품을수록 도시의 표정은 다채로워진다. 2017년과 그 너머, 서울의 호텔 신에서 새롭게 찾아올 아이디어도 그 풍경의 틈새나 대척점으로부터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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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GQ 피처팀
    포토그래퍼
    표기식
    정미환 (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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