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송파도 강남이다?

2017.04.04이예지

혹시라도 강남에서 제외될까 두려워라.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동

서초, 강남, 송파. 이른바 강남 3구로 불리는 지역이다. 강남이란 지명이 소위 ‘잘 사는’ 지역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지역이 내포하고 있는 권위와 선민의식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송파구는 서초와 강남과는 구분되는 점이적인 성격을 지닌다. 강남구 대로변에 솟은 빌딩이나, 서초구의 고급 맨션이나 주택지와는 달리 올림픽 때부터 조성된 아파트 단지가 잔뜩 모인 송파는 서울에서 거주인구 1위를 차지한 베드타운이다. 서초강남권으로 엮기에는 애매한 포지션임에도, 이웃한 강동구와는 선을 긋고 강남권에 편입하려는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는 곳.

주변화되지 않으려는 구심력의 욕망. 그것은 송파와 강동의 경계에서 작동하는, 배제의 욕망으로도 발현된다. 성벽이 가장 견고하듯 송파 가장자리 주민은 피아 식별이 명확하다. 소위 ‘올림픽아파트’로 대변되는 부촌 송파구 오륜동과 강동구 둔촌동의 경계는 두드러진다. 오륜동에 거주하면서 오륜초등학교와 오륜중학교를 거쳐 창덕여고와 보성고에 진학한 이는 이 동네 ‘성골’ 대우를 받는다. 반면 둔촌동, 성내동, 길동 혹은 강동, 하남에서 진학한 학생은 ‘후려치기’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십여 년 전 창덕여고 재학 시절, 학생들은 ‘올림픽아파트’와 ‘비올림픽아파트’를 명확히 구분해 커뮤니티를 형성했고, 그 안에서는 단지(평수를 의미한다)별로 서로의 재력을 가늠했으며, 오륜중학교 출신 간의 카르텔도 공고히 다졌다. 실제로 올림픽아파트와 오륜 출신 재학생은 학부모끼리도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학원 및 과외 정보를 주고받았으니, 아이들의 위계 놀이 이상이었다. 그것은 결과물로도 이어졌다.

지금도 잔존할지 모르겠으나, 당시 창덕여고는 전국 모의고사 1% 안에 드는 학생의 이름을 방송으로 지명해 교장실에 모아놓고 매점에선 살 수 없는 브랜드 빵을 주는 관습이 있었다. ‘빵을 받았다’는 일종의 은어였고, 누가 빵을 받고 못 받았는지는 아이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교장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은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며 선민의식을 부추겼는데, 그 자리의 학생들은 송파, 오륜, 올림픽아파트 출신들이었다. 적나라한 계급의 계승을 목도한 순간. 대부분의 강동 학생들은 성실성을 앞세워 내신파로 전향했다. 이전까지 강북구에 살다 온 나는 ‘올림픽아파트’였으나 출신이 불분명했고, 배제되는 듯 포섭되는 듯 방관자 시점에서 송파와 강동의 계급도를 볼 수 있었다. 창덕여고는 강남의 숙명여고나 세화여고와 함께, 보성고는 서울고나 휘문고와 같은 급으로 매겨지고 싶어 했다. 그러나 8학군에게는 동쪽 촌놈일 따름, 명문고 특수도 없어 수시에서도 딱히 덕을 보지 못했다.

주변을 배제하는 동시에 중앙으로 응집하려는 욕망의 주축은 현재 송파의 심장부인 잠실로 모아진다. 잠실은 섬이었으나, 한강 공유수면 매립 사업을 통해 간척된 땅. 현재는 한강 이남으로 분류되지만 원래는 한강 이북 양주 고을에 속한 곳으로,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송파강을 매립해 지금의 지형이 되었다. 강남과 인접하고 잠실종합운동장과 롯데월드 등 대형시설을 갖춰 부촌으로 거듭난 잠실은 송파의 욕망이 투사된 곳이다. 마침 이 땅엔 사우론의 탑을 연상시키는 마천루가 생겼다. 한반도 초고층 건물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지상 123층의 제2롯데월드타워다. 공사 중 인근 석촌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며 싱크홀이 생기고, 균열과 화재를 비롯해 진동이 발생하는 흉흉한 사고가 이어졌다. 표표하게 솟은 욕망 만큼이나 불안도 심화됐다. 제2롯데월드타워는 개장과 함께 ‘서울 스카이’라는 의기양양한 이름의 전망대도 공개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이는 남산타워 전망대나 63빌딩 전망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곳은 곧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터다.

비대해진 욕망은 전이된다. 지하철 2호선은 성내역과 잠실역, 그리고 신천역으로 이어지며 송파를 관통한다. 그런데 성내역은 어느 순간 ‘잠실나루역’이, 신천역은 ‘잠실새내역’이 됐다. 성내와 신천이 지워진 자리엔 몸집을 불린 잠실이 들어선다. 지하철역 세 곳이 연달아 동잠실 이름표를 단 모양새는 기이하다. 이렇게까지 잠실을 강조하는 까닭? ‘잠실’이 붙어야 집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구 성내역은 성내 시영 아파트가 잠실 파크리오 아파트로 재건축된 시기와 맞물려, 주민 1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어 잠실나루역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집값은 대폭 상승했다. 작년 12월에 개명한 잠실새내역도 마찬가지다. 잠실 트리지움과 엘스, 리센츠 아파트는 역명을 개정한 후 평균 7천만원 정도씩의 값을 올렸다. 개명과 재건축 전 성내는 소박하고 알뜰한 아파트촌이었고, 신천은 번쩍이는 술집이며 곱창집이 불야성인 동네였다. 성내와 신천은 잠실이라는 이름표 아래 지역성을 괄호안에 넣어버렸다.

현재 나는 강남의 동쪽 경계에서 서쪽 경계 지역으로 옮겨와 살고 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서초구 방배동에 속해있지만 사당과 더 가까운 남태령에 거주하고 있다. 나는 이전 송파와 강동의 추억을 떠올리며, 서초에게 포섭 되지 않는 사당과 이수의 기개에 은근히 감탄하곤 한다. 경기도민의 서울 입성 구간인 사당은 언제나 정신 없고 소란스럽다. 2000년대 초반의 감성과 수도권 도심 같은 분위기를 동시에 간직한 이수엔 아직도 태평백화점이 버티고 있고 그 옆으로는 전통시장인 남성시장이 여전히 성업중이다. 사당역과 이수역이 정확히 방배동과 사당동 경계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방배사당, 방배이수 같은 이름이 붙지 않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강남이라지만 강남은 아닌, 그러나 강동만큼은 결코 될 수는 없었던 송파에 대해, 1도 아니고 2도 아닌 1.5의 위치에 대해, 주변부를 배제하는 동시에 중심부에 포섭되고 싶어하는 욕망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이 욕망은 비단 송파의 것 만이 아닌 서울의, 한국의 욕망 같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다. 고향과 여행지, 이제 막 다다른 곳과 언젠가 떠나온 곳, 잘 아는 동네와 두 번 다시 찾지 않은 고장. 우리는 거기서 겪은 시간으로부터 생각과 감정과 말들을 부려놓는다. 제주를, 송파를, 안동을, 충남을, 남원과 철원과 분당을… 여행자이자 관찰자이자 고향사람이자 외지인으로서 각각 들여다본다.

    에디터
    글 / 이예지('씨네 21' 기자)
    포토그래퍼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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