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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와 패션계가 동시에 주목하는 조나 힐

2019.01.28GQ

넷플릭스 드라마 <매니악>에서의 출중한 연기가 첫 연출작 <미드 90>의 호평으로 이어졌다. 단역배우에서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한결같이 수트 팬츠에 농구 저지를 넣어 입는 조나 힐. 그만의 고유한 패션과는 별개로, 조나의 세계는 한껏 팽창하는 중이다.

재킷, 칼하트WIP. 티셔츠, 더 로우. 팬츠, 트레비앙 at 미스터 포터. 안경, 프리드리히 옵틱. 시계, 파텍 필립.

조나 힐의 영화 배급을 담당한 A24의 뉴욕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미드 90>의 포스터가 붙어 있는 회의실에서 힐은 쉴 새 없이 그의 영화에 대해 얘기했다. 지난 계절 내내 이야기를 해왔음에도 지친 기색이 없고, 매번 영화에 대한 얘기를 처음 꺼내는 것처럼 힘이 넘친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과 두려움, 자부심과 흥분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당장이라도 차기작을 찍으러 뛰쳐나갈 것처럼 차려입은 힐은 말한다. “이 영화는 제 가장 친한 친구예요. 슬프거나 화가 날 때, 행복하거나 외로울 때, 언제든 제 방에 들어가 쓰고, 읽고, 생각하며 발전시켜 나갔거든요. 이제 세상에 내놓을 때가 됐어요. 누군가 제 영화를 혼낼 수도 있고 때릴 수도 있고, 안아줄 수도 있겠죠.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연약함을 느끼는 중이에요.”

4년이라는 시간과 20편의 대본 초안, 그리고 힐의 영혼을 갈아 넣어 완성한 <미드 90>에는 스케이트보드와 랩 음악, 90년대 독립영화와 로스앤젤레스까지 사실상 그가 그동안 사랑했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영화는 서니 설직이라는 어린 배우가 연기한 스티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폭력적이고 문제 많은 가정에서 자라나는 스티비는 결국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스케이트보더들의 크루에 받아들여지는데, 그곳에서 마약과 여자를 알게 되고, 콘크리트 바닥을 구르는 스케이트보드가 주는 자유를 알게 된다. 전설적인 스케이트보드 영화 <키즈>가 보여준 근사한 허무주의를 반대로 뒤집은 힐은 자기애와 자기 수용에 관한 사적이면서도 조금은 슬픈 영화를 만들어냈다.

배우로서 힐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특정 종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의 재능 덕분이었다. 힐을 유명하게 해준 <슈퍼배드>(2007), 그리고 그에게 두 번째 오스카상 후보 지명을 안겨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에서 그는 상처를 공격성으로 덮어낸 연기를 선보였다. 그것은 톱니처럼 날이 선 상처였다. 그리고 그는 실생활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늘 여리고 다치기 쉬운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나 굉장히 예민했죠.” <슈퍼배드>에 함께 출연한 후 계속 힐을 알고 지낸 엠마 스톤의 말이다. 하지만 올해 서른네 살이 된, 영화감독 힐은 최상의 상태다. 그는 연기 훈련을 받지 않은 배우들을 섭외해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했고, 그 덕에 영화는 출연자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말들만큼이나 거친 결이 살아 있다. 90년대의 스케이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힐이 추구하는 것은 초월적인 어떤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의 하루가 저물 때 보이는 빛, 친구를 만드는 건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게 어떤 기분인지 같은 것들. 이것이 그가 찾으려 하는 것이다.

힐의 말에 따르면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의 내부 깊은 곳에 있는 뭔가를 변화시켰다. 그는…, 행복해졌다. 적어도 이전보다는. 그렇다고 연기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당장 올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에 금시계와 느슨한 가운을 좋아하며 공감능력이 뛰어난 마약중독 회복자로 등장했으며, 캐리 후쿠나가의 넥플릭스 시리즈 <매니악>에서는 엠마 스톤과 다시 한번 합을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든 것은 스스로를 다시 보게 된 계기였다. 단순히 연기자가 아니라 그가 과거에 출연했던 영화의 감독들, 마틴 스콜세지나 코엔 형제들과 같은 감독들의 동료로 말이다. 힐이 자기 자신을 거장 감독들과 동급으로 보는 건 아니다. 그저 이제는 그들과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뿐. 최근에는 <미드 90>에 관해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과 메시지를 교환했는데, 힐의 어시스턴트가 그 화면을 인쇄해 액자에 끼워 힐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제가 엄청 긴장해서 벌벌 떨며 보낸 문자들과 앤더슨 감독의 답장이 담겨 있죠.” 첫 답장을 받고 힐은 거의 넘어질 뻔했다.

그로부터 15분 정도가 지났을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더니 카키색 반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무섭게 생긴 남자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힐의 입에서 “맙소사”가 튀어나온다. 폴 슈레이더 감독이다. <택시 드라이버>의 각본을 쓴, 그리고 올해만 해도 <퍼스트 리폼드>라는 걸작으로 노익장을 과시한 폴 슈레이더 말이다. 마침 <퍼스트 리폼드>도 A24가 배급을 맡았다. 힐은 “맙소사”를 연발한다.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말이 없다. 슈레이더 감독은 그 특유의 천둥처럼 울리는 거친 목소리로 리셉션에 약속이 있어 왔음을 말한 뒤 앞을 쏘아본다.

힐은 나를 보고 있지만 실은 내 어깨 너머에 관심이 쏠려 있다. 폴 슈레이더의 실물이 등장했고, 그 또한 힐과 같은 이유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힐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우리가 나누던, 아마 뭐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날 대화로 되돌아가려 해보지만 로비에 있는 슈레이더 감독을 또다시 의식해버리고 만다. “제기랄”이라며 입을 연 힐은 “우리 지금 얘기를 계속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요?”라고 말한다. 마침내 용기를 낸 힐은 슈레이더 감독과 눈을 맞춘다. 그러고는 약간 긴장한 채로 손을 흔든다. 슈레이더는 힐을 바라보며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힐의 미소는 더욱 커졌다.

젊은 시절의 조나 힐을 상상해본다. 삼 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힐은 로스앤젤레스 근처, 폭스 스튜디오와 골프장이 있는 체비엇 힐스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건즈 앤 로지스의 회계사였으며 어머니는 의상 디자이너였다. 힐은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심슨 가족과 영화를 좋아하는 꼬마였죠.”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야심을 품고 웃긴 사람이 되었는데, 이는 숨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저에게 유머란 타인과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었어요.” 텔레비전에 빠져 사는 힐에게 부모는 너그러웠다. “하지만 제가 밖에 나가 애들처럼 놀기를 바라기도 하셨죠.”

부모님의 바람은 힐이 스케이트보드를 알게 되며 이뤄졌다. <미드 90>의 주인공 스티비와 마찬가지로 힐은 열두 살 무렵부터 동네 스케이트 숍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저는 이랬어요. ‘난 이제 담배도 피우고, 주변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고, 싸움도 구경하고, 다 같이 웃고 떠들고, 법정에도 서보고, 경찰로부터 도망치고 있네.’ 뭐랄까, ‘뭐지? 반년 전만 해도 딱지치기나 하고 있었는데’라는 식이었죠.” 힐은 보드를 탔기 때문에 “평생 갇혀 살 수도 있었던 인종 및 사회경제적 버블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저의 세계가 정말로 넓어진 거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건 언제나 영화였다. 그는 더스틴 호프먼의 자녀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고, 결국 호프먼의 소개로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작품 <아이 하트 헉커비스>의 단역으로 캐스팅되었다. 나중에 그 영화의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주연 배우 릴리 톰린에게 소리를 지르는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조나 힐이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 그것이 그의 첫 현장 경험이었다. “저의 반응은 ‘할리우드가 이런 곳이었어?’였어요.” 힐은 <아이 하트 헉커비스>를 통해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에서 또다시 작은 배역을 맡을 수 있었다. 원래 힐에게 주어진 대사는 몇 줄 뿐이었다. 하지만 촬영 당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일정이 모두 틀어졌고, 힐은 한나절 내내 세트에 머무르며 저드 애퍼타우 앞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대사들을 선보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힐에게 크게 감명받은 애퍼타우는 힐을 <슈퍼배드>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에 이르렀다. 스물두 살의 힐이 “스물두 살짜리가 좋아하는 영화들 중에서는 <시민 케인>급이라 할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힐의 인생이 평범했던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거다. 힐은 당시 살던 집 위에 걸린 커다란 광고판에 자신의 얼굴이 실려 있었던 걸 기억한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도 저를 몰랐는데, 자고 일어나니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고 다가와 말을 거는 거예요. 하룻밤 사이에 말이죠.”

할리우드에 힐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은 코미디였지만, 그는 진작부터 정극 연기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듀플래스 형제는 2010년 개봉한 멈블코어(초저예산, 비전문 배우로 만든 영화) 로맨스 영화 <사이러스>에 마리사 토메이의 악질적이고 덩치 큰 성인 아들 역에 힐을 섭외했다. 힐이 보여준 연기는 사악하면서도 여전히 코믹한 데가 있었고, 이를 본 베넷 밀러 감독은 <머니볼>(2017)에 힐을 캐스팅했다. 힐에게 주어진 역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야구 분석가로, 극중 덥수룩한 모습의 브래드 피트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힐은 이 영화로 첫 오스카상 후보 지명을 따냈다. 그로부터 몇 년간 힐은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그 외에도 오디션장에 늘 나타난 세 명의 배우가 있었다고 한다. “저까지 총 네 명이었어요. 항상 샤이아 라보프에게 배역이 주어졌고, 라보프가 거절하면 제시 아이젠버그에게 역이 돌아갔죠. 저와 폴 다노는 부스러기를 두고 다투는 식이었어요. 저와 다노는 괴짜들이었고, 나머지 둘이 좀 더 대중의 입맛에 맞는 선택지였던 거죠.”

스물다섯 살에는 대형 영화사에서 <더 시터>의 제작 총괄을 맡았다. 힐이 직접 각본을 고르고 감독을 섭외했으며 스스로 주연을 맡았다. 젊은 힐로서는 야심찬 행보였고, 그는 그 당시를 돌아보며 마치 제3자의 일인 것처럼 재미와 함께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시터>는 모두가 저를 놀릴 때 써먹는 작품이에요. ‘더 록’(드웨인 존슨)을 요정으로 등장시키는 것과 비슷한 거죠. ‘이거 봐! 조나 힐이 정신 나간 베이비시터래!’ 같은. 잘해보려 했는데 안 됐어요.” 힐은 감독으로 데이빗 고든 그린을 발탁했으며 브루클린 출신의 인디 듀오 라타탓에게 음악을 맡기려 했다. 로저 에버트는 영화평에 “그린 감독이 이런 장르의 영화를 찍는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재미도 없는 나쁜 영화를 만든 것은 탓하고 싶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그때 영화를 제작했던 경험은 힐의 미래가 스타 배우가 아닌 다른 길일 수도 있겠다는 첫 번째 실마리를 제공했다.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충분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제게 큰 전환점이었어요. 스물다섯 살에 폭스사에서 만드는 대형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고 그 당시 폭스 사장이었던 톰 로스먼을 만나고 말이죠. 근데 로스먼은 ‘도대체 라타탓이 누군데?’라는 식이었고, 저는 ‘당신은 이해 못 해요!’라는 식이었죠. 뭐랄까,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이렇게 하면 지금까지 만든 다른 어떤 영화들과도 차별화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깨닫게 되죠. ‘아! 여기에서 이럴 게 아니구나’라고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힐이 즐겨 하는 말이다. 그는 많은 배우들이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서사를 피한다. 성공과 성공을 뒤따르는 침체기, 그러고는 다시 위풍당당하게 떠오르는 그런 서사들 말이다. 힐은 오히려 중간 지점에 끌리는 듯하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애매하게 뒤섞인 경험들 말이다. 최근에는 <이너 칠드런>이라는 잡지를 발간했는데, 첫 줄에 “나는 10대 후반에 유명해졌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사람들이 나에게 뚱뚱하고 징그러우며 비호감이라 말하는 것을 들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라고 썼다. 그렇다면 힐은 유명해진 것을 후회할까? 그렇지 않다. 유명해졌기 때문에 그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거스 반 산트 감독을 만나고 <매니악>에 출연하고 <미드 90>를 찍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힐은 세상에 보여준 자신의 첫인상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은 결국 이미 일어난 일이고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해선 빨리 잊는 것이 좋다.

힐이 이제야 밝힌 사실은, 그가 과거에 지금처럼 기자와 마주 앉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괴롭힘 당하는 작은 꼬마가 된 느낌이었어요. 누군가 단순히 웃기고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그 사람을 갈가리 찢어버리죠. 그걸 당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엿 같아요. 마치 아홉 살짜리가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죠. 사람들은 그런 말들에 대해 내가 반응을 보이길 기대할 거예요. 제 반응은, 글쎄, 엉망이었죠.”

대부분의 연기자들은 이런 상황을 적당한 거짓말로 넘기는 법을 익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힐은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항상 제가 ‘실제 생활에서는 연기를 정말 못 한다’고 항상 놀려요. 거짓말을 해도 전부 다 들통이 나버리는 거죠. 잘못이나 실수를 다 들켜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말거나, 듣더라도 상처를 받지 말자’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상처를 받아요. 게다가 저는 예민한 성격이거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어떤 방귀를 뀌냐고 질문을 던진 <롤링스톤>지 인터뷰어와의 끔찍한 인터뷰(“그런 바보 같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웃기는 영화에 출연한다고 해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에 대답할 이유는 없습니다!”)가 그 예다. 데미언 셔젤 감독의 <위플래쉬> 시사회 관람 후, 힐은 자신이 왜 그런 식으로 반응하게 되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고, 마침내 자신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바로 그 환경에서 걸어나오게 되었다.

“전부 다 거의 동시에 일어났어요.” 힐은 기억을 되짚는다. “상황이 어땠냐면, ‘어디 보자. 내가 쉰 살이 되었을 때도 기자들한테 방귀에 대한 질문이나 받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던 중 스파이크 존스와 제 여동생과 함께 <위플래쉬>를 봤어요. 영화를 보고, 우리 모두 감동에 들떠 나오는데 스파이크가 그러더군요. ‘저 감독 몇 살이지?’라고요. 데미언 셔젤 감독은 저보다 어렸어요. 그리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 빌어먹을 각본을 쓰기 시작한 거죠. ‘난 왜 이렇게 남들에게 못되게 굴까? 나는 왜 이렇게 방어적일까? 대체 나의 어떤 부분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며,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근데 그건 남이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개인적인 작업과 창조적인 또는 직업적인 작업 말이에요. 확신을 갖고 원하는 게 있다면 거기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고, 입으로 떠드는 것보다는 실천해야 하는 거란 말이죠.” 그래서 그는 뉴욕으로 옮겨 정말로 그 실천을 해보기로 했다.

 

재킷, 셔츠, 바지, 모두 더 로우. 부츠, 드리스 반 노튼

색다른 사실은, 지난 몇 년간 힐이 의외의 스타일 아이콘이 됐다는 거다. 최근에는 검은 스웨터와 검은 바지, 검은 부츠로 구성된 유니폼을 갖춰 입는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다시피 했는데, 이런 차림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자신의 옷차림에 매료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 해도 힐에게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인터넷상에서 그의 옷차림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환호성을 자아냈다. 힐은 팔라스와 타이다이로 염색된 티셔츠, 그리고 친구들이 운영하는 스케이트 브랜드들에 디자이너 의류를 조합해서 입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 결과 꽤 근사하면서도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마치 우리와 같은 사무실로 출근하거나, 우리가 가는 바에 가는 길에 입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게 조나 힐이었기 때문에 그의 스타일을 둘러싼 하나의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수트 팬츠에 농구 저지를 넣어 입은 거 보셨어요?”라고 힐이 묻는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봤다. 힐이 뉴욕으로 이사한 후 사진사들이 그의 집과 헬스장 근처에 진을 치기 시작한 결과 새로운 장르의 사진이 탄생했다. 현재의 유니폼으로 갈아타기 전 힐이 소호 거리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담배를 손에 든 채 그 당시 즐겨 입던, 점점 더 높은 차원의 스트리트웨어를 걸친 사진들 말이다. 지난 9월에는 그중 하나, 활짝 웃는 표정의 힐이 검은색 수트 팬츠에 화려한 색의 벨트를 차고 경기용 피닉스 선즈 저지를 입은 사진이 인터넷을 아주 뜨겁게 달궜다.(그 모습은 한 트위터리안이 묘사한 대로, “저녁 6시에 회의가 있었는데 7시에는 응원하는 팀이 48점 차로 뒤지고 있을 때”를 보는 것 같았다.)

스트리트 스타일 아이콘으로서 힐의 위상에 대한 질문, 또는 그저 힐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면 과연 본인도 이런 분위기를 인지하냐는 것이다. 한동안은 불분명했다. 하지만 최소한 수트 팬츠에 집어넣은 저지와 관련해서는 확실하다. 조나 힐은 다 알고 한 것이다. “그건 진짜 웃겼어요. 왜냐하면 바이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그걸 두고 멋있네 마네 싸우더군요. 저한테 다가와 ‘수트 팬츠에 저지 넣어 입은 거 진짜 멋있어요’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어요.”

분명히 해두기 위해 말하자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더운 날씨였고, 사진 기자들이 집 밖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선즈의 저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저는 마침 회의에 다녀온 상태였기 때문에 수트 팬츠를 입고 정장 구두를 신고 있었죠. 그게 저한테는 웃겼어요. 농담처럼 떠올린 게 진짜가 되어버린 상황인 거죠. 밖에 사진 기자들이 있는 걸 봤기 때문에 저는 ‘잘 봐, 저기 저 사람들을 제대로 골탕먹일 거야. 다들 내 사진을 찍어댈걸’이라고 했던 거죠.” 그리고 힐의 말대로, 그들은 정말로 힐의 사진을 찍었다.

어린 시절의 힐이었다면 파파라치들로부터 감시를 당하다시피 하거나 포토샵에 능숙한 한가한 네티즌들에 의해 외모와 옷차림에 대한 놀림과 조롱으로 인해 존재론적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져가려 한다. “어차피 집 앞에 카메라를 든 이상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면, 장난이라도 쳐서 어느 정도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어요.” 최근 들어 힐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자세를 익히는 중이다. “제 삶은 평범하지 않아요. 그리고 오랫동안 평범하지 않은 상태였고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평범한 척하려 애써왔어요. 물론 평범한 부분도 있죠. 하지만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모든 것이 이상하고 비일상적으로 변해버리죠.” 그리고 힐은 이제 그의 말대로, 전부 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힐이 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식당인, 스시 전문점 슈코로 들어섰다. 힐은 사포질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바 너머로 몸을 숙여, 슈코의 셰프 지미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그가 아래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아차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톱밥은 손끝에서 팔꿈치까지 달라붙었고 대팻밥으로 범벅이 되다시피 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유니폼이 황갈색으로 물든 것이다. 어떻게든 닦아내기 위해 화장실에 다녀온 그는 웃음과 함께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한다. 평정심을 되찾아보려 할 거라고 말하며. “쉽게 당황하는 편이에요. 시작부터 양팔에 톱밥을 잔뜩 묻힌다거나 하면 말이죠….” 우리는 다행히 바가 아닌, 지하의 동굴 같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힐은 긴 한숨과 함께 긴장을 덜어내고는 미소 짓는다. “파티 같은 것보다는 아늑한 분위기가 훨씬 나아요. 서른네 살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사회 불안이 있거든요.” 나중에 엠마 스톤이 들려준 얘기에 따르면, 그는 가벼운 대화 같은 걸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둘이 <매니악>을 찍을 당시 촬영 중간에 시간이 생겨도 그랬다. “힐은 관계의 본질과 불안이 생겨나는 지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했죠.” 엠마 스톤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종업원이 등장해 첫 코스를 차리기 시작한다. 서부에서 잡은 던저니스 크랩에 오이와 국화를 곁들인 요리다. “저는 맨날 점심으로 꽃을 먹어요”라고 힐이 농담을 던진다.

<미드 90>에서 스티비의 가정환경은 평탄치 않다. 편모슬하에서 형(루카스 헤지스)과 지내는데, 스티비는 형을 존경하지만 한편으로는 형으로부터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티비가 집 밖을 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친구들을 사귀며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사실은, 바로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티비와 마찬가지로 힐도 이런 깨달음을 경험했다. “대사 중에 ‘남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본다면, 나의 삶을 다른 누구와도 맞바꾸려 하지 않게 될 거야’라는 게 있어요.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이 바로 그 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죠. 저도 그 말을 강하게 붙잡고 살아가요. 사실 이런 거죠.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며 하나둘 쌓여 온 부끄러운 순간들을 내다버리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 조금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자기 스스로를 받아들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리고 나는 이런 내가 좋아’라는 거죠. 저는 제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느라, 또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실제와 다르게 규정하는 것을 들으며 꽤나 힘든 20대를 보냈어요.” 엠마 스톤은 <미드 90>을 보는 순간, 그게 조나 힐 자신에 관한 영화라는 점을 알아챘다고 한다. “힐의 어린 시절이 굉장히 많이 반영되었다는 게 명확하게 보였어요. 힐은 그 모든 걸 각본으로 옮긴 뒤, 스스로를 활짝 열어 보인 거죠.”

종업원이 스시가 담긴 접시를 더 가지고 와 “어린 새우”라고 설명하자, 힐은 짐짓 놀라며, “어린 새우는 제가 힙합을 할 때 쓰는 이름이에요”라고 말한다. 안색이 살짝 어두워진다. “어린 새우라는 말이죠? 갓 태어난 새끼들? 이런, 어린 새우라는 걸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데.” 최대한 어린 새우 스시를 피해 식사를 하던 그는 마지막에 결국 그것만 남자,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간다. 하지만 곧바로 냅킨에 뱉어버렸다. “너무 어려요! 너무 어리단 말이에요!”

힐은 작년 여름 대부분 무명에 가까운 배우들을 데리고 35일에 걸쳐 <미드 90>을 찍었다. 힐은 촬영장에서 10대 배우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마치 <슈퍼배드>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마이클 세라와 엠마 스톤, 마사 매카이작, 그리고 크리스토퍼 민츠 플라스와 보낸 시간이 떠올랐어요. 다 같이 주저 앉아 점심거리를 집어 먹으며 서로를 놀리고 욕하며 놀던 것들. 어릴 땐 다들 그러기 마련이잖아요?” 그리고 이제는 힐이 어린 친구들 사이에 앉은 어른이 되어버렸다.

힐은 <미드 90> 촬영을 마친 후 곧바로 <매니악> 촬영에 들어갔고, 연말이 되어서야 영화 편집을 마칠 수 있었다. 2017년 12월 22일 힐의 친형이자 뮤지션 매니지먼트에서 일했던 조던 펠드스타인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인은 폐 색전증이었는데, 쉽게 말하자면 혈전이 이유였다는 것이다. <미드 90>의 초기 버전에는 형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있었다. 극중 스티비와 형 사이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스티비는 형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형으로부터 세상을 배운다. 하지만 동시에 형은 스티비가 벗어남으로써 자립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힐 형제의 관계도 그와 비슷했는지 궁금했다. “힙합은 확실히 형에게 배웠어요. 형의 방을 몰래 들락거리며 모든 걸 배웠죠. 형이 저보다 여섯 살 많았고 또 취향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영화와 음악에 대한 제 취향도 더 좋아졌죠. 형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도 여느 형제들처럼 싸우며 자랐죠. 하지만 저와 제 형에 대한 전기 영화는 아니에요.”

영화의 최종 버전, 그러니까 극장에 걸린 버전에서는 형에 대한 헌사를 뺐다. “저와 가깝고 친한 사람들은 형에 대한 언급을 이해했어요. 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하자 다들 ‘저게 뭐야?’라는 식의 반응을 했죠. 대중에게 제 삶의 사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어요. 형에게 바치는 영화인 건 맞지만 직접적으로 형을 언급하지는 않기로 했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타이밍이 정말이지 최악이었어요.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죠. 영화에 너무나 감사해요.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저를 구해줬어요.” 그는 영화의 완성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해야만 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작업을 마쳤다고 한다. 지난 가을 토론토 국제영화제 직전에 최종 편집을 끝냈다. 최종본을 보내며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내보내는 것 이상의 심정이 들었고, 수많은 감정이 한데 뒤섞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별이 어려운가 봐요.”

“어떤 일이 있으면, 그 속에서 인생의 교훈이라든가, 깨달음을 찾아내려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그게 무엇이든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어떤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그 일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저처럼 영화를 사랑하거나 글 쓰는 것을 사랑한다면 거기에 모든 걸 쏟아붓게 되잖아요. 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낸다고 믿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거지같이 나쁜 경험들이라 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만 한다면 뭔가를 얻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런 식으로 인생을 대하려고 하고, 그 덕에 제게 도움이 된 적도 많아요. 당연히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완벽해질 거예요.” 힐은 잠시 말을 멈춘다. “사실, 연습이 완벽함으로 이어지진 않죠. 하지만 연습하면 나아지긴 할 거예요.”

힐은 <미드 90> 촬영 시작 일주일 전 스파이크 존스가 그에게 해준 얘기를 남들에게도 종종 들려준다. 둘이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존스가 그에게 “영화를 찍을 준비가 되었다는 게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의 너는 열려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고 말해줬다는 것이다. 그 말대로, 힐은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든 만들어질 수 있도록 내버려둘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게 저를 행복하게 해줬어요. 영화든 인생이든 제 마음이 닫혀 있을수록 흐르는 것을 흐르는 대로 두지 못하고 삶 그 자체에 맞서 싸우는 것 같거든요.” 이제야 털어놓는다.

<미드 90>이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고 힐의 인생관도 그중 하나다. 있는 그대로 느끼라는 것.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대로 살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도록 두라는 것이다. 극중 한 등장인물이 야심을 품는 것을 두고 하는 얘기가 있다. 나켈 스미스가 연기한 스케이터가 그 등장인물인데, 그는 프로를 꿈꾸는 아마추어로 지금보다 실력을 키우고 싶어 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솔직하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그는 이렇게 말해요. ‘열심히 해라.’ 노력이라는 것을 다들 유치한 것으로 치부한다는 게 그 친구의 말이죠. 하지만 저는 열심히 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 캐릭터가 하려는 말은 결국, ‘우리 모두 망했다. 그러니 그냥 여기에 다 같이 있자. 같이 열심히 스케이트보드 타자’ 이거예요.”

재킷, 브루넬로 쿠치넬리. 티셔츠, 스웨트 팬츠, 모두 더 로우.

About These Clothes
조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패션 애호가다. 팰리스 후디와 타이다이 그레이트풀 데드 티셔츠를 벗고, 세련된 영화감독 차림으로 변신한다 해도 그만의 고유한 느낌을 없앨 수 없었다. 떠오르는 럭셔리 남성 패션 브랜드 더 로우의 은은한 수트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는 헤리티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칼하트의 단정한 초어 코트까지 소화해내는 지금이야말로 그가 이제 미니멀 스타일을 받아들일 적기라는 걸 보여준다. (2018년을 뒤흔든 저 유명한 피닉스 선즈 저지 사진을 포함해 인터넷에 도는 그의 많은 사진에서 보이는 첼시 부츠는 조나 힐 본인의 것이다.)

    에디터
    Zach Baron
    포토그래퍼
    Jason Nocito
    스타일리스트
    Matthew He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