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이는 말하지 않고 노래한다.
고전적인 옷이 잘 어울려요. 어쩐지 이하이에겐 옛날 사람 같은 기품이 있어서. 제가 좀 옛날 사람이에요. 요즘 유행어도 모르고, 노래도, 옷도, 옛날 거 좋아하고. 음악도 CD나 LP로 듣는 거 좋아해요.
어떤 노래요? 아니타 베이커 노래 들으러 단골 LP바에 자주 가요. 한국 노래는 더 옛 노래를 듣게 돼요. 산울림, 들국화, 최백호 선생님 노래 좋아하고.
‘누구 없소’도 한영애의 노래를 오마주한 곡이죠. 트랙만 들었을 땐 몰랐는데, ‘누구 없소’라고 하는 순간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부르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왜 옛 노래가 좋아요? 어릴 때부터 창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그땐 목소리가 더 낮고, 쇳소리가 났거든요. 그러면서 느낀 게, 한국적인 소울은 ‘한’이 아닐까 하는 거예요. 요즘은 울면서 슬프게 부르는 노래가 많지만, 옛날엔 담담하게 슬프게 부르는 노래가 더 많았잖아요. 부모님 세대만 해도 힘든 걸 굳이 말로 하지 않는 시대였어요. 제가 가진 것도 그런 정서 같아요. 말하려고 하지만 말할 수 없고, 계속 생각해뒀다가 나중에 말하는.
말하려고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건 어째서예요? 저는 낯도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고, 말로 뭔가를 옮기는 게 어려워요. 생각이나 감정을 말로 옮기면 그 의미가 제가 원했던 거랑은 늘 조금씩 다르게 전달되거든요.
어릴 때부터 말수가 없었나요? 네. 말을 안 하고 자꾸 행동만 하니까 사람들이 이상한 애로 생각했어요. 말수도 없고, 표정도 없고, 갑자기 사라지고. 저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요. 말없이 생각하다 머릿속에서 내린 결론만 행동으로 옮겨버리니까, 사람들이 보기엔 뜬금없어 보이는 거죠. 어머니도 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애라고 하셨죠.
이를테면 어디로 튀곤 했어요? 야단을 맞아도 안 울고, 집을 나가라고 하면 놀이터 나가 놀고, 차에서 혼나다가 내리라고 하면 그냥 내렸어요. 하하. 주변에서 마이웨이라고들 그랬죠.
어린 이하이는 어떤 마음으로 그랬을까요? 규칙이 싫었어요. 제 자유를 침범하는 게 싫었고, 제가 원하는 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일찍 벗어나 열일곱 살 때부터 일을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나와 보니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많더라고요. 하지만 좋아하는 게 일이 되니 그 기질이 누그러졌어요. 노래할 수 있게 됐잖아요. 저한텐 이것만 할 수 있게 해주면 되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규칙을 지키는 건 힘들지 않아요.
노래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불러요? 제게 노래는 솔직해지는 시간이에요. 평소에 제가 말하지 못했던 것들,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것들. 제 속에 있는 저를, 솔직한 마음으로 표현하는 게 노래죠.
열일곱 소녀였을 때부터 세상을 오래 산 것 같은 목소리라고 생각했어요. 이하이의 정서가 ‘말하려고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건 어디서 출발한 걸까요? 부모님이 맞벌이라 옆집에서 절 키워주셨어요. 혼자서 하루를 보낸 적도 많았죠. 조용하게 지내서인지 귀가 밝았어요. 옆집 물소리, 소곤소곤한 말소리도 들리고, 멀리서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엄마인지 아빠인지 알았죠. 제 목소리가 좋다고들 해주시지만, 귀가 더 밝은 것 같아요. 사실 전 노래 부르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해요.
외로움을 타나요? 전 평생 제가 덤덤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안 그런데 그런 척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외로워서 팀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는데, 혼자만의 시간은 잘 보내요. 누워서 넷플릭스 보거나 ‘혼술’해요. 독주나 와인을 좋아해요. 몸이 차서 반신욕하고 레드 와인 한잔하고 자곤 해요. 맑고 가벼운 걸로요.
요즘 좋아하는 뮤지션은 누구예요? 요즘 가수는 디 인터넷, 앤더슨 팩 좋아해요. 요즘 가수인데 옛날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디 인터넷 ‘Under Control’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매일같이 들은 노래에요.
가사가 힘이 됐나요? 제가 공백기가 기니까 주변에서 걱정이 많으셨잖아요. 그런데 난 이걸 다 컨트롤하고 있어. 난 다 잘 해낼 수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보컬이 시드랑 비슷한 구석이 있네요. 소리의 질감, 베이스의 울림, 그런 걸 좋아하나 봐요. 그래요? 저 너무 좋아해서 공연도 보러 갔어요. 저한텐 묵직한 베이스, 드럼 소리 정말 중요해요. 우퍼 쾅쾅 울리고, 성대 웅웅 울리는 그런 소리가 좋아요.
이하이, 하면 또 레이백하는 독특한 리듬감이잖아요. 규칙 지키는 걸 싫어해서 음을 슬쩍슬쩍 미나 싶기도 하고. 진짜 그럴 수도요. 제가 곡을 만들 때 규칙 없이 만들거든요. 규칙을 배우신 분들과 작업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셨는데, 이젠 내버려 두세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희한한 리듬 타는 걸 좋아했어요. 재즈하는 친언니가 곡을 셀 때 리듬을 따보라고 종종 시켰거든요. 엇박 타고, 1-3박자가 아니라 2-4박자를 뒤로 타는 걸 좋아했어요. 소울, 재즈 좋아한 것도 리듬다이가 좋아서 그랬던 것 같고.
자작곡 ‘20분 전’은 시니컬해서 재미있더라고요. 경험담이에요. 여자분들이 통쾌하다며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노래할 때 솔직해지는 것처럼 곡 쓸 때도 그래요. 전 영화나 책을 보고 가사 쓰는 걸 못 해요. 직접 경험한 것만 쓸 수 있거든요.
<케이팝스타> 때부터 지켜봐 온 사람들은 이하이를 아직도 어리게 보죠? 그때는 어른스러운 아이라고들 생각하셨죠.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이젠 자연스럽게 성장한 모습으로 봐주시면 좋겠네요.
이젠 사랑도 알게 됐나요? 음, 어려운 거는 알겠어요. 재미있고 쉬운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연애할 땐 어떤 타입이에요? 저는 제가 평생 차갑게 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참고 기다리고 희생하죠. 하지만 애매하게 굴 바에는 차갑게 해요. 전 애매한 건 딱 질색이라.
어떤 사람 좋아해요? 전 완벽한 사람 안 좋아해요. 너무 잘생긴 사람도 별로예요. 제가 좋아하는 건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아는 사람. 불완전한데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면 너무 매력 있어요. 저도 완벽하지 않잖아요. 많은 사람이 그렇죠. 그런데 결점이 너무 많은데, 어떤 거 하나를 제대로 해서 다 설명이 되는, 완성돼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뭔가를 확실하게 하려는 어떤 것 하나가 이하이에게도 있나요? 일을 확실하게 하려고 해요. 음, 그리고 관계에서도 맺고 끊는 게 확실해요. ‘썸’ 과정에서도 확실한 게 좋고요. 전 충분히 시간이 지났는데도 상대가 말이 없으면 직접 물어봐요. 아니야? 그럼 나는 시간이 없어요. 이렇게.
유예하는 걸 싫어하는군요. 아깝잖아요. 누려야 할 더 재미있는 게 많이 있는데 계속 똑같은 게 반복되면.
3년간의 공백기 동안엔 구슬을 꿰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요. 예전엔 쉬는 동안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고민을 많이 하면 더 좋아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게 절 망치는 습관 같더라고요. 이번엔 생각을 깊게 하는 대신 손을 움직였어요. 구슬 파츠를 엄청 사서 모으고 종일 집요하게 꿰요. 구슬을 꿰서 팔찌, 머리핀 만들고…. 사람들 나눠주면 또 뿌듯해요. 나중엔 그게 앨범 아트워크에도 반영됐죠.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 년을 외롭게 산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고려가요 ‘정석가’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천 년을 외롭게 산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굉장히 멋진 말이네요. 마음에 들어요.
이하이에게 끊어지지 않는 끈이 있다면 뭔가요? 노래요. 전 뭐든 잘 질리는데, 구슬도 하루 꿰고 나면 일주일은 못 꿰는데, 노래만큼은 매일 해도 매일 좋아요. 뭔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됐다고 생각하고 해요. 노래도, 가수도 그렇게 해왔어요.
오래 전 인터뷰에서 자기 색을 지키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답한 마음은 여전한가요? 네. 전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성실하고 묵묵하게 하고 싶어요.
예능 출연을 잘 안 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 없어요. 그냥 제가 재미없는 사람이라. 또 제가 너무 마이웨이로 할까봐. 하하.
인스타그램에 구슬, 꽃, 나비가 가득하던데,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걸 좋아해요? 단조로운 것보다 화려한 게 좋고, 커다란데 화려한 것보다는 소소한데 화려한 게 좋아요. 나비를 특히 좋아하는데, 아름답고 자유롭잖아요. 나비는 비선형적으로, 어디로 갈지 모르게 날고, 도망가면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게 좋아요. 그 자유로움이 좋아서 자꾸 그리게 돼요.
꿈을 자주 꿔요? 네. 잠들면 하늘색을 많이 봐요. 오늘 화보 중 하늘색 톤 같은, 애니메이션 <마이 리틀 포니>의 페가수스 같은,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그런 색. 오늘도 보고 싶네요.
- 에디터
-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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