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티시는 버버리에서 펴낼 그의 책, 첫 번째 챕터를 쓰는 마음으로 첫 컬렉션의 언어를 추리고 거르고 섞었다.
버버리의 2019 가을겨울 컬렉션을 위해서 리카르도 티시는 우선 그가 만든 바로 전 컬렉션을 복기했다. 봄여름 컬렉션은 버버리에서 리카르도 티시만의 코드를 발견하는 작업이었다. 전통과 역사, 좋은 유전자와 너그러운 평판을 두루 지닌 귀족적 브랜드에 터프하고 와일드한 몽상가가 새로 합류했으니, 자신만의 색깔을 표현할 언어를 찾는 게 급했다. 완벽한 칭송은 아니었고 다소의 소란도 있었으나 꽤 인상적이었던 그의 버버리 데뷔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 다음에 집중할 때이고, 그는 버버리에서 펴낼 티시의 책, 첫 번째 챕터를 쓴다는 마음으로 첫 컬렉션의 언어를 추리고 거르고 섞었다. 첫 장의 주제는 폭풍. 영국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것들, 날씨, 문화, 규율과 반항, 체계와 자유 같은 대조적인 것들의 공존을 생각하니 극적인 콘트라스트의 끝에 폭풍이란 단어가 있었다. 그래서 쇼장으로 테이트 모던의 지하 창고 ‘탱크’를 골랐다. 탱크의 공간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환경에서 하나의 컬렉션을 선보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쪽 공간은 체계적이고 전통적인 정연한 런웨이로 꾸몄고, 저쪽 공간은 벽면에 설치한 철골 구조를 오르내리는 청년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배경으로 모델들이 등장하게 했다. 쇼 오프닝을 맡은 최소라의 뒤로 지지 하디드, 이리나 샤크,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프란 서머스 등 아름다운 모델들이 천천히 혹은 빠르게 나왔고, 음악은 M.I.A가 맡아 90년대에서 시작해 바로 지금으로 마무리 짓는 매력적인 사운드를 연출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부터 소개하고 있는 버버리 하우스의 네 가지 캐릭터인 걸, 보이, 레이디, 젠틀맨의 테마는 이번에 더 분명해졌다. 버버리의 ‘소녀’들은 시어링과 에코 퍼 코트, 오프숄더 코르셋, 레이스 슬립 드레스에 두꺼운 고무 밑창을 댄 스니커즈와 첼시 부츠를 신는 식으로 로맨틱한 분방함을 보여줬고, 우아하면서도 강한 ‘레이디’를 위해선 비구조적 실루엣의 트렌치, 유려한 카 코트, 울 캐시미어 판초, 날렵한 테일러링 드레스, 플리츠 스커트에 크리스털 장식을 더한 펌프스, 키튼 힐 슈즈 등을 마련했다. ‘소년’들은 패널을 덧댄 트렌치, 더블 버튼 패딩, 시어링과 퀼트 파카, 빈티지 체크 패치워크와 애니멀 프린트 포인트를 더한 경쾌한 옷들, 테이프 장식이나 가죽 디테일을 덧댄 트랙 팬츠에 스니커즈를 신고 네오프렌 양말을 신었다. ‘젠틀맨’은 스트라이프 울 더플코트, 테일러링 아우터에 귀엽고 실용적인 퀼트 베스트를 겹쳐 입기도 하고 잉글리시 핏 수트, 플리츠 팬츠, 보트넥 니트 웨어와 실크 저지 셔츠 등의 감각적인 룩에 고무 캡 토 브로그와 첼시 부츠를 신고 런웨이에 진중함을 더했다. 이 밖에도 흐르는 듯 부드러운 실루엣의 블랙, 화이트, 베이지 컬러 이브닝 드레스와 빈티지 체크, 스트라이프와 토마스 버버리 모노그램, 오이스터와 밧줄 등의 귀여운 디테일이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고 런웨이에 줄지어 나왔다. 여기에 아주 강력한 액세서리들, 특히 TB 백과 엑스트라 라지 사이즈의 남성용 소사이어티 백, 새롭게 선보이는 3개의 스터드 장식이 있는 타이틀 백은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이고 룩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 에디터
- 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