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게임이 트렌드를 주도한다

2020.01.22GQ

게임이 ‘애들이나 하는 오락 거리’에서 이제 트렌드를 주도하는 위치를 넘보고 있다. 과거 영화와 스포츠가 그랬던 것처럼.

루이 비통이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를 모티프로 캡슐 컬렉션을 발표했다. LoL에는 그보다 먼저 루이 비통의 디자이너 니콜라 게스키에르가 디자인한 캐릭터 외형, 스킨이 출시됐다. 루이 비통스러운 캐릭터 스킨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LoL의 개발사 라이엇게임즈는 이 스킨을 돈을 받고 파는 대신(물론 돈으로도 살 수 있지만) 충분한 플레이타임을 달성하면 무료로 얻을 수 있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 LoL 유저 수는 크게 증가했다. 게임을 접었던 유저는 돌아왔고 관심 없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무도 이 스킨을 원래 이름인 ‘트루대미지 키아나 프레스티지 에디션’이라 부르지 않는다. ‘루이 비통 키아나’로 부른다. 그리고 2020년 초반 출시될 ‘루이 비통 세나’를 궁금해한다. LoL은 유저를 확보하고 한 단계 높은 브랜딩을 이뤄냈다.

기업, 특히 역사가 깊은 기업에 게임은 매력적인 수단이다. 게임이 전 세계적인 오락 거리로 발전하자 이를 통해 리브랜딩을 하려는 시도가 꾸준했다. 오래된 기업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어렵고 생소하고 구식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현재 고객층과 미래의 고객층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다. 오래된 브랜드에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공간, 신규 브랜드에는 자신들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수단이다.

게임과의 협업은 많은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패션 업계에선 이번에 화제가 된 루이 비통 이전에도 수차례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휠라는 유명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PUBG)와 컬래버레이션 의상을 출시했다. 모스키노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 모티프의 캡슐 컬렉션을 발표했다. 그보다 더 이전에는 프라다가 RPG게임 ‘파이널판타지13’의 주인공 라이트닝을 메인 모델로 세워 자사의 제품을 홍보하기도 했다. 다양한 협업으로 유명한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는 삼성 갤럭시와 같은 IT 기기 외에도 <존 윅>이나 <그것> 등 영화와의 협업까지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겉보기에 전혀 새로울 바 없는 패션과 게임의 협업이 과거에 비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루이 비통이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협업은 축구장에 광고판을 넣는 수준이었다. 기업이 단방향으로 유저에 브랜드를 주입하는 식이다. 휠라에서 출시한 PUBG 가방과 옷은 특이했다. 프라다에서 게임 여주인공을 메인 모델로 내세운 시도는 신선했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도 PUBG 로고가 크게 박힌 옷을 입고 나가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모스키노는 심즈 게임 안에 자사의 옷을 출시했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각 기업은 게임을 활용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려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루이 비통과 LoL의 협업은 기업과 유저 양방향적이다. 유저에게 루이 비통은 단순히 쇼윈도 너머 상품이 아니라 내가 소유하고 조종하며 상대하는 캐릭터로 존재한다. 루이 비통의 이번 행보는 단순히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기업을 소유하고자 하는 Z세대의 욕망을 정확하게 찔렀다. 이제 그들은 루이 비통의 옷을 입은 ‘키아나’를 플레이한다. 그리고 그 옷을 찾기 위해 루이 비통 온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한다. 캐릭터가 입은 옷, 착용한 가방과 신발을 찾고는 즐거워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렇듯 타 업계가 게임에 손을 뻗게 만든 첫 번째 잠재력은 바로 현재의 넓은 수요층이다. 갤러그와 테트리스를 경험한 1세대 게이머는 기업과 사회의 의사결정권자로 성장했다. PC와 콘솔 게임의 태동과 발전을 함께한 게이머층은 구매력과 구매 의사를 모두 지닌 주요 소비자층이 됐다. 모바일 게임과 PC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현재의 게이머들은 과거에 비해 그 숫자가 큰 폭으로 늘었다.

구매력이 있는 국가, 이른바 선진국에 사는 청소년 중 게임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10대부터 40대까지의 고객층은 어떤 방식으로든 게임을 한 번은 경험해봤고, 게임과 게이머에 대한 이미지도 과거보다 우호적이다. 실제로 2018 롤드컵 결승은 전 세계에서 약 1억 명이 시청했을 정도다. 아직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장이다.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두 번째는 미래 수요층에 접근하는 좋은 창구라는 점이다. Z세대 혹은 GenZ라고 불리는 이들은 인터넷 환경이 익숙하고 소셜 미디어와 광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데 거부감이 없다. 이들에게 게임은 스포츠의 대체제다. 또한 단순한 유흥을 넘어 동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하나의 문화적 도구다. Z세대는 수동적인 소비자상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히며 행동한다. ‘좋은’ 기업을 지지하고 자발적으로 홍보한다. ‘나쁜’ 기업을 배척하고 비판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브랜드에서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 그 자체를 소비한다. 말하자면, 한번 자리를 잘 잡으면 초두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각 기업이 브랜딩 창구로 게임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임 시장이 매력적인 마지막 이유는 꾸준하고 빠른 발전이다. 기술적인 발전과 시장의 발전 모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다. 10년 전 게임의 그래픽을 지금 보면 웃음도 안 나온다. 각지고 뻣뻣한 움직임과 조악한 표현. 전부 그 당시에는 최고의 그래픽이자 아름다운 묘사로 칭찬받던 것들이다. 고작 10년 만에 게임의 그래픽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불쾌한 골짜기’를 걱정할 정도로 발전했다. 한 레이싱 게임은 게임 화면과 실제 드라이빙 영상을 동시에 봐도 어느 게 진짜고 어느 게 그래픽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조작법도 마찬가지다. 스틱에서 게임 패드, 키보드와 마우스를 넘어 컨트롤러를 휘둘러 테니스를 치고 운동도 한다. 소비자의 니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업계이고, 그만큼 변화와 혁신이 계속된다. 게임과 현실을 결합한 증강현실(AR), 온전히 게임으로 몰입하는 가상현실(VR) 기술도 나날이 발전 중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와 소비자의 취향 속에서 식상할 틈 없이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

게임 시장도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다. 최근 게임 업계의 눈은 남미와 동남아시아를 바라보고 있다. LoL 역시 지역 리그가 있을 정도로 동남아에서 인기가 높다. 남미는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유저를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해외 서비스 과정도 기존 산업에 비해 쉽고 빠르다. 덕분에 유명 게임 중에서는 한 국가에서만 서비스하는 게임을 찾아보기가 더 힘들다. 국내 게임사인 펄어비스의 ‘검은사막’도 북미 유럽, 일본, 중국, 러시아에 더해 남미까지 서비스한다. 즉, 글로벌 히트 게임 하나를 파고들면 글로벌 브랜딩이 가능하다. 양과 질 모두 급격한 성장을 반복한다. 게임을 해본 사람이 게임 종류를 바꿀 수는 있어도 게임 자체를 그만두는 경우는 드물다.
한 게임의 유저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전체 게임 유저가 줄어드는 일은 그보다는 적다.

게임 업계에서도 한 단계 더 깊숙하게 들어간 협업에 주목하고 있다. 한 캐릭터 디자이너는 키아나 스킨을 극찬하고는 “그래픽이 발전하면서 게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한층 더 실제에 가까운 묘사가 가능하다. 다른 업계의 제안을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게임 업계에서 먼저 움직여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1인 게임 개발자는 “이런 협업이 일반화되면 게임 개발의 문법이 바뀔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PPL이 일상화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도 했다. 게임 캐릭터가 휴고 보스 재킷을 입고 싸우다 갤럭시 탭으로 정보를 찾고, 톰 브라운 백팩에서 레드불을 꺼내 마시며 에너지를 채울지도 모를 일이다.

게임은 20년 전 ‘애들이나 하는 오락 거리’에서 이제 트렌드를 주도하는 지위를 노린다. 이제 기업들의 시선도 게임을 향하고 있다. “그래봐야 게임이지. 너무 과대 평가 아닌가?”라는 사람들이 있다. 맞다. ‘아직은’ 기성 시장에 비해 작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장의 급격한 발전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볼 때 남은 건 시간문제다. 루이 비통이 보여주지 않았나. 미래는 여기에 있다고. 글 / 김강욱(게임 칼럼니스트)

    에디터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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