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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퍼들의 지상낙원

2021.08.20GQ

니카라과를 흔드는 잇따른 위기에도 그들의 서핑 문화는 커져가고 있다. 부딪치고 깨져도 일어나는 것이 서퍼의 기본이듯.

니카라과 북쪽의 어촌 마을, 엘 트란시토.

“산 후안 델 수르 San Juan del Sur에서 막 돌아왔어요.” 2015년 뉴욕 어느 밤 파티 현장, 바 모퉁이에 기대 서 있다 만난 그는 어딘가 초연한 수행자 같았다. 그가 여행한 곳은 태평양 연안의 조용한 어촌으로 지금은 서핑 마을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곳의 정글에 새로 짓는 호텔 이야기, 그 호텔에 거주할 아티스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한 이야기, 그곳의 파도와 바람과 햇빛과 소리…. 짙은 어둠이 연해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눈 그날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산 후안 델 수르를 향해 니카라과행 편도 티켓을 끊고 비행기에 올랐다.

니카라과 남서부의 해안 도시 산 후안 델 수르는 급부상한 서프 신과 니카라과의 저렴한 물가 덕분에 새로이 등극한 여행지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북쪽의 이웃 국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에 비하면 니카라과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연간 5퍼센트씩 꾸준히 경제 성장을 이뤘고 특히 관광업이 호황을 누렸다. 연중 3백 일 이상 일정하게 불어오는 해풍은 거의 쉬지 않고 서핑을 즐길 수 있는 파도를 만들어낸다. 나는 산 후안 델 수르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해변 플라야 마데라스 Playa Maderas에서 6개월 동안 머물렀다. 니카라과는 나의 두 번째 고향이 되었다.

평온한 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본래 니카라과는 오가는 파도처럼 독재와 혁명이 끊이지 않는 나라 중 하나다. 최근의 큰 혼란은 2018년 4월에 일어났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재정 절약을 위해 퇴직 연금을 줄이고 사회보장보험 요율을 올리는 등의 개혁안을 발표한 것이 촉발제였다. 시민들은 과거 독재정치를 답습하는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대통령은 시민들의 목소리에 무력으로 응수했다. 3백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다쳤다. 니카라과 여행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세계 각국에 떨어졌다. 사람들은 니카라과를 떠나기 시작했다. 회사가 문을 닫고 관광 산업이 황폐해졌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니카라과를 떠났다. 그럼에도 남아 삶을 꾸리는 이들도 있었다. 자유분방하며 모험심을 지닌 서퍼들, 나처럼 니카라과와 헤어나올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이들이었다.

포포요 해변에 자리한 호텔 수요 카바나스 포포요의 객실.

포포요의 리조트 란초 산타나 Rancho Santana.

엘 트란시토에서 파도를 타는 서퍼.

만들라 호텔의 실외 장식.

엘 트란시토의 만들라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서핑 천국인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다. 현재는 코스타리카 북서쪽 노사라 Nosara에서 지낸다. 그러나 이 여러 거처지 중에서도 니카라과는 특별했다. 멋진 파도를 지닌 바다, 아름다우면서 붐비지 않는 마을. 많은 데를 경험할수록 이런 곳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더욱 알게 되어 다시 니카라과로 가고 싶은 충동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나는 픽업 트럭의 난간을 꼭 잡고 일어선 채 오랜만에 다시 니카라과로 들어섰다. 코스타리카와 니카라과 사이의 주요 국경인 페나스 블랑카스 Peñas Blancas부터 산 후안 델 수르를 거쳐 숙소인 아시엔다 이구아나Hacienda Iguana에 도착하기까지 자연의 농장과 닦이지 않은도로 위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첫 행선지는 하얀 백사장이 1.6킬로미터가량 이어진 콜로라도 해변 Playa Colorado이다. 가파르고 자비 없는 파도가 전 세계에서 온 프로 서퍼들과 파도 마니아를 끌어들인다. 그중에서도 1백8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맞춤형 피시보드를 들고 바다에서 막 나온 젊은 여성에게 시선이 멈췄다. 단 한 번도 파도를 놓친 적이 없을 것 같은 멋진 보드였다. 보드 주인의 이름은 타티아나 디 스피리토 Tatiana Di Spirito. 열렬한 서퍼이자 영국과 이탈리아, 칠레, 페루 등의 레스토랑에서 일해온 셰프다. 현재는 이곳 해변 근처에서 카사 아나나스 Casa Ananas라는 이름의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내 공간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느낀 유일한 나라가 바로 니카라과예요. 위기 전까지는 아주 쉽게 잘 흘러왔죠.” 2018년부터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정권과 국민의 충돌, 연이은 허리케인, 이제는 세계를혼란에 빠뜨린 팬데믹까지,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그의 식당에 도착했다. 소박한 화덕 옆에 테이블이 몇 개 놓인 공간이 아담했다. 타티아나가 금세 신선하고 먹음직스런 음식을 내어왔다. “손님은 있을 때도있고 없을 때도 있어요.” 볼로네이즈 소스의 수제 뇨키와 참치 타르타르, 정통 이탈리아 피자가 테이블을 채웠다. 타티아나도 함께 앉았다. “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서핑을 하고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살아가죠. 서핑은 공짜 치료제예요. 서핑이 제 목숨을 구했어요.”

다음 날 아침, 타티아나가 추천한 또 다른 해변 마을 포포요 Popoyo로 향했다. 콜로라도 해변에서 북쪽으로 약 40분 거리다. 중앙 아메리카에서 최고의 파도를 즐길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라고 했다. 큰 파도가 다가올 무렵이면 현지인들이 팔에 보드를 낀 채 자전거를 타고 몰려온다. 어서 파도와 서퍼가 몰려오기를,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포포요 남단의 해변 플라야 산타나 Playa Santana부터 북단의 리조트 매그니픽 록 Magnific Rock까지 약 10킬로미터 길이의 모래사장을 따라서는 서퍼들의 소박한 오두막부터 고급 부티크 리조트까지 다양한 숙박 시설이 즐비하다. 내가 방문한 12월에는 대부분의 호텔이 비었거나 문을 닫았지만 해변은 언제나 열려 있다. 튀긴 플랜틴과 밥, 콩, 치킨을 주문할 수있는 바닷가의 작은 식당은 지칠 줄 모르는 서퍼들과 어부, 농부, 간단히 끼니를 때우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말리부 포포요 호텔의 욕실.

서프 스쿨을 갖춘 포포요의 호텔 시레나 서프 하우스 Sirena Surf House의 테이블.

만들라 호텔의 수영장.

서프보드와 강아지.

콜로라도 해변에서의 승마.

포포요에서 만난 자레드 로사 Jared Rosa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이다. 지금은 이곳에서 비밀스런 해안과 하이킹을 즐기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는 어디든 갈 수 있었지만 니카라과를 선택했어요. 니카라과가 저를 부른 거죠.” 포포요에서 산 12년 동안 로사는 태평양을 오가는 파도를 배웠다. “예전에는 서퍼와 백패커만이 이 세계에 발을 들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현지인부터 여행자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는지 놀라울 정도예요.” 그는 내게 파도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서핑 포인트로 플라야 산타나와 랜시스 레프트 Lance’s Left, 포포요 아우터 리프 Popoyo Outer Reef를 후보에 두었지만, 비기너 베이 Beginner Bay의 바람과 허리 높이의 필러는 이번 여행의 첫 파도를 타기에 완벽한 조건이었다. 서핑 라인업에는 두 명뿐이었다. “작은 일들을 즐겨보세요.” 로사가 말했다. “오늘 같은 날들을 말이죠.” 조금 있으면 몇몇 서퍼가 몰려와 몇 가지 트릭을 뽐내고 함께 모여 일몰을 감상할 것이다. 라틴 크리스마스 음악이 큰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느리게 흘러간 지난 몇 주가 이미 인생에 새겨졌다.

말리부 포포요의 수영장.

프라이빗 골프&비치 리조트 아시엔다 이구나아의 객실.

휴식 중인 강아지.

말리부 포포요 호텔의 풍경.

란초 산타나 호텔 내 레스토랑 라 타케리아 La Taqueria의 타코.

콜로라도의 일부 프라이빗 해변은 특권층을 위한 곳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포포요의 일반적인 서퍼들의 정신에는 반하는 폐쇄적인 곳들이다. 하지만 파도를 좇는 새로운 외국인들이 유입되면서 콜로라도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내가 만난 한 포르투갈인 커플은 니카라과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팝업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이스라엘인 셰프와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해 로컬 서핑 학교를 설립한 벨기에인 서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보석상과 그녀의 프로 웨이크보더 남자친구까지, 이곳에 모인 라이프스타일에는 모험심과 에너지가 넘쳤다. 이들은 니카라과의 예측 불가능한 바다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다. 이곳 사람들은 가장 험난한 폭풍을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닦고 있는 것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2천여 명이 사는 어촌 마을 엘 트란시토 El Transito가 나온다. 이곳에서 서핑은 작은 경제 단위를 형성한다. 한때 니카라과의 끝에서 끝으로 소를 모는 목장주들의 주요 통과점이었는데, 특히 1990년대에는 부유층이던 마나과 거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2년에 발생한 쓰나미가 모든 것을 쓸어갔다. 오늘날 엘 트란시토는 조용한 서핑을 원하는 서퍼들의 관문이다. 여전히 매력적인 마을 엘트란시토는 붐비는 곳을 벗어나고 싶은 이들을 유혹한다.

“이곳은 마치 30년 전의 툴룸 Tulum 같아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으로 서퍼이자 선장, 그리고 2019년에 오픈한 엘 트란시토 내 유일한 스마트 호텔 만들라 Mandla의 공동 설립자인 데미안 브리스토 Damian Bristow가 말한다. 멕시코 카리브해의 도시 툴룸은 고대 마야인들의 마지막 해상 무역 도시라는 역사가 있다. “지금 엘 트란시토는 다시 태어나고 있어요.” 그가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데미안 브리스토가 영국 출신 셰프 케이티 헌트 Katie Hunt와 함께 지은 만들라 호텔은 마을의 중심 해변에 있다. 마른 종려나무 잎으로 만든 초가지붕의 개방형 주택 팔라파가 고전적인 매력을 전한다. 해피아워가 되면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과 바에 이웃들이 찾아온다. 파도 가까이에 조성해둔 나무 데크에 앉아 있으면 씩씩한 파도 소리와 어딘가 먼 곳에서 날아온 것 같은 바다 향기와 야자수 잎을 스치는 바람결,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웃음 소리가 곁에 머문다. 낙원이 있다면 이런 곳이겠지.

“굴 좋아해요?” 헌트가 신선한 조개가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오며 묻는다. 저녁 시간쯤에는 파도는 거의 사라지고 바다는 마치 어부가 그날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간 것을 기념하듯 잔잔한 호수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파도는 끝나지 않는다. 엘 트란시토에서 더 북쪽으로 향하면 찾을 수 있는 해변 아포센티요 Aposentillo는 밤에도 아주 강한 파도가 몰아치는 전설적인 곳이다. 심하게 치는 날은 보드가 튕겨나갈 정도다.

야자수에 달린 조명.

플라야 에스콘디다 해변 Playa Escondida.

만들라 호텔 앞 서퍼.

여행 마지막 날 아침, 나는 니카라과에서의 마지막 서핑에 나섰다. 롱 보드에서 일어나기를 몇 번이나 실패하자 심한 곱슬머리에 검게 그을린 한 남자가 나를 향해 노를 저어 다가왔다. 그가 즉석에서 파도 타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의 이름은 카이로 아길라르 Kairo Aguilar, 나이는 스물셋. 아길라르는 유망한 서퍼이자 학교 코치였다. 몇 달 동안 일이 없었다는 그에게 레슨비라도 내야 마땅할까 고민하는 게 보이는지 그가 손사래를 쳤다. “어부였던 시절에는 시간당 1달러 50센트씩 벌었어요. 서핑 코치로는 시간당 25달러씩 받고요. 지금은 관광객이 많이 없어 일이 줄었지만 뭐, 괜찮아요. 그사이 저는 나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어요.” 불안정한 세태와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니카라과의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온다. 마침내 나는 그 파도 위에서 스스로 섰다. 진정한 삶으로 가득한 이곳, 단순하나 강력한 근성의 바다에서.

말리부 포포요 호텔의 침실.

파도 소리와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야자수 잎 소리가 들리는 만들라 호텔의 데크.

만들라 호텔의 팔라파 풍경.

THE LOWDOWN

<플라야 콜로라도 해변 PLAYA COLORADO>
아우레아 호텔 Aurea 프라이빗 골프&비치 리조트인 아시엔다 이구아나 Hacienda Iguana가 있는 다목적 호텔. 매력적인 파도의 에메랄드 코스트 Emerald Coast 근처이며, 유칼립투스 나무가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있다. 현지에서 공수한 월계수나무나 소나무 같은 자연 소재에 콘크리트와 금속을 더한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더블 룸 약 90유로부터. aureanica.com
카사 아나나스 Casa Ananas 매주 메뉴가 바뀐다. 특히 카르보나라 링귀네, 라자냐 델라 논나, 바삭한 카프리초사 피자 같은 정통 이탈리아 요리 메뉴는 큰 놀라움을 선사한다. 해변 근처 정원에 자리 잡은 이곳은 라이브 음악이 흐르고 바다에서 막 나온 서퍼들과 만날 수 있는 장소다. facebook.com/casaananasnicaragua

<포포요 POPOYO>
말리부 포포요 Malibu Popoyo 최상의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서핑 롯지. 올 인클루시브 서비스에는 바로 옆에 위치한 농장 라 킨타 La Quinta에서 직접 공수해온 망고나 드래곤 프루츠, 코코넛, 플랜틴 같은 유기농 과일과 착즙 주스 같은 메뉴뿐 아니라 서핑 레슨, 보트 여행, 요가, 종종 열리는 댄스 파티 같은 이벤트가 포함된다. 마사지와 반사요법 서비스는 파도에 두들겨 맞은 몸을 풀어준다. 더블룸 약 2백 유로부터. malibupopoyo.com
가 서프보드 Ga Surfboards 가 서프보드의 오너인 기지 아마도르 Giezi Amador가 만든 커스텀 보드를 구입하는 일은 니카라과를 찾는 서퍼들에게 거의 통과 의례다. 포포요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마도르는 11년 전부터 자신의 보드를 직접 수리한 후 독특한 디자인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숍은 마을 중앙의 길모퉁이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찾기 어려울 수 있지만 마을 사람 누구에게든 물어보면 아주 쉽고 빠르게 길을 안내받을 것이다. facebook.com/gasurfnica

<엘 트란시토 EL TRANSITO>
만들라 Mandla 전 요트 선장과 셰프의 협업으로 탄생한 이곳은 야자수 나무가 바스락거리고 파도가 치는 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마른 종려나무 잎으로 만든 초가지붕의 개방형 주택 팔라파가 지역의 고전적인 매력을 전하며, 코코넛 껍질에 담아 주는 열대 스무디는 서핑을 즐기기 위한 완벽한 연료 역할을 한다. 독채 사용 1박당 5백40유로부터. mandlanicaragua.com

 

    Writer
    Jade Moyano
    Photographer
    Oliver Pilc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