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해야 할 한국 근현대 건축 | 지큐 코리아 (GQ Korea)

기록해야 할 한국 근현대 건축

2022-04-04T21:35:23+00:00 |living|

쌓아 올려야 하는 기록은 건축물의 높이뿐인가, 그를 완성하기까지 들인 시선인가. 지금부터라도 그 사유와 집념과 결과가 보호받고 기록되길 염원하는 한국 근현대 건축을 그러모았다.

1980년 준공 당시의 경동교회. 김수근문화재단 소장 사진.

경동교회 김수근, 1980년
경동교회의 외관은 마치 두 손을 모은 듯한 형상이다. 속세에서 종교 공간으로 이르는 과정의 전환을 위해 교회의 입구는 대로에서 빙 돌아 올라가 뒤편에 두었다. 건축가는 1층은 인간과 인간, 2층은 인간과 하느님, 3층은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위한 공간을 구성했다. 김수근이 설계한 3대 종교 건축물 중 하나이기도 한 경동교회의 내부 예배 공간은 십자가 위로 난 유일한 천창을 통해 빛이 내려오게 하고 노출콘크리트로 마감해 원초적인 동굴 같은 느낌을 만들었다. 마치 초기 교회인 카다콤의 지하 묘지처럼, 오로지 빛과 어둠만으로 침묵의 공간을 구성했다. 장례식과 결혼식, 두 경우에만 열리는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 등불을 밝히는 숨겨진 외벽의 공간 등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찬 교회 공간은, 미디어 장치와 대형 집회 시설로 확장된 오늘의 교회와 달리 종교 공간이란 무엇이며, 이를 통해 무엇을 나누고자 하는지 보여준다. 임진영(건축 전문 기자·오픈하우스서울 운영자)

기적의 도서관, 무주 공설운동장 외 공공 프로젝트 정기용, 2003~2011년, 1996~2008년
누구나 다 건축가가 될 수 있지만 정기용과 같은 건축가가 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기용이 행한 공공건축에서 엿보이는 소신과 삶과 건축의 의미를 향한 진중한 물음들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때 순천, 진해, 정읍 등 전국 6곳에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며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무주라는 조그마한 소도시에 공설운동장, 곤충 박물관, 버스 정류장, 면사무소 같은 공공건축을 통해 삶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건축을 구현했다. 그곳에는 화려한 어휘의 건축은 없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했기에 가능한 공간이 즐비하다. 정기용 건축가가 늘 되새기던 말마따나 “작용과 반작용, 상호 쌍방적 관계가 감성적으로 일어나는 ‘감응의 건축’”이 싹 틔었다. 이정훈(건축가·조호건축사사무소)

1975년 7월, 서울 종로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거리 풍경. 대한출판문화협회 소장 사진.

출판문화회관 홍순인, 1975년
출판문화회관은 경복궁 사거리 동십자각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방향으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코너에 있다. 건축가 홍순인이 설계한 또 다른 건축물 이마빌딩의 편평한 입면과는 달리 출판문화회관에서는 깊은 음영이 만드는 입면이 눈에 띈다. 다시 말해 창문 디테일이 외벽에서 꽤나 많이 셋백 Set-Back 된 모습이고, 1층에는 회랑까지 있다. 이마빌딩과는 다른 태도의 입면을 갖고 있지만, 건물이 놓인 장소의 배경으로 적합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출판문화회관은 갤러리와 박물관이 줄지어 선 길에 위치해 있다. 이마빌딩이 오피스 지역 중심에서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풍경의 배경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면, 출판문화회관은 박물관 길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풍경에 어울리는 배경이다. 윤희영(<도무스 코리아> 편집장)

1921년 10월 1일자 <매일신보> 3면에 실린 이훈우의 민립서울병원건축설계도.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제공.

이훈우의 건축 전반
현재까지 한국 최초의 근대 건축가로 알려져있는 건축가 이훈우(1886~1937)는 부산, 경성(현 서울), 진주, 평양 등지에서 다수의 건축을 설계했다. 그의 대략적인 삶과 작품 연보는 그간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밝혀졌으나, 개별 건축의 구체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훈우는 1920년 자신의 사무실을 개설한 이후 학교, 종교 시설, 언론사 등 민족 자본과 관련된 공공적 성격의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고, 신문 기고를 통해 전문가의 의견을 사회에 확신시키는 데도 열심이었다. 서사가 빈약한 한국 건축계로서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 건축의 시금석 역할을 한 이훈우에 대한 건축적, 역사적 평가가 절실한 상황이다. 황두진(건축가·황두진건축사사무소)

1988년 1월 출간된 <젊은 건축가 홍순인 작품과 그의 생애>에 실린 이마빌딩 도면과 전경. 이마산업 소장 자료.

이마빌딩 홍순인, 1983년
이마빌딩과 앞서 소개한 출판문화회관은 10여 년간 근처를 오가며 매번 눈에 띄는, 좋아하는 건물이었고, 알고 보니 한 건축가의 작품이어서 놀란 기억이 있다. 홍순인은 1982년 나이 마흔에 타계하기까지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여러 수작을 남겼다. 그를 기리는 책 <젊은 건축가 홍순인 작품과 그의 생애>에는 그를 두고 “범용 아닌 수월의 추구, 범속 아닌 미의 추구, 그러면서 편집 아닌 포용적인 인간성”이라 묘사했다. 이마빌딩은 15층 규모의 오피스 빌딩인데, 건물의 코너 부분이나 창문의 건축 디테일을 다룬 방식이 유독 섬세하다고 느꼈다.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한 건물은 대체로 창문을 안으로 셋백 Set-Back 시켜서 입면에 음영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마빌딩은 창문과 외벽이 한 면이다. 음영이 최소화된 건물의 검박한 입면이 건물이 놓인 장소의 배경으로 제격이라 생각했다. 건물은 동서의 도로와 면해 있는데, 로비의 동서 방향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민간 기업의 오피스 빌딩 로비가 도시 가로를 연결한다는 이야기는, 설계 의도로는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실제로 경험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희영(<도무스 코리아> 편집장)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처음 디자인 개념이 담긴 엑소노메트릭(투영도). 건축가 김종성 소장 자료.

밀레니엄 힐튼 서울 김종성, 1983년
대표적 근대 건축가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인 김종성이 설계했다.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을 통해 매우 제한적으로 세계 건축을 접했으나, 해방과 한국 전쟁을 거치며 세계 건축의 현장에서 직접 교육과 수련을 거친 한국인 건축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힐튼 호텔은 그 대표 사례다. 힐튼 호텔을 비롯한 유의미한 근현대 건축이 조기에 철거되는 것을 방지하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황두진(건축가·황두진건축사사무소) 
힐튼 호텔의 로비는 한국에서 가장 기품있는 환대의 공간이다. 커다란 공간감을 만들고 싶었다는 건축가 김종성의 바람은 주변 지형에 대응한 것이기도 하다. 김종성은 내내 타임리스, 즉 시간을 초월한 재료와 공간을 말한다. 트래버틴과 녹색 대리석, 시간이 지날수록 번들거리는 브론즈, 참나무 패널링과 같은 풍요로운 마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논리로 따지자면 요즘의 건축에서는 더 이상 사용할 수도 없는 비싼 재료다. 마감뿐일까. 땅값이 비싼 서울에서는 공간도 박해진다. 사람이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구체적인 수치는 배려되기 어렵다. 힐튼 호텔의 공간감은 고전적인 공간의 질서를 가진 3.8미터의 모듈에서 출발한다. 클래식이 갖는 우아함. 성장을 갈망하던 시기의 풍요와 공간의 품격은 그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곳이 그저 휩쓸려 사라진다면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리는지 깨닫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임진영(건축 전문 기자·오픈하우스서울 운영자)

1965년 설계, 1967년 준공된 서병준산부인과의원의 당시 정경. 김중업건축박물관 소장 사진.

서산부인과의원 김중업, 1967년, 현 아리움 사옥
우리의 건축 역사에서 이처럼 지독하게 개인적인 조형 감각을 드러낸 작품이 또 있을까. 합리성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고, 전통과의 연계를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자연에 대한 시원적 접근 정도가 건축가의 순수 조형 의지를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유기적인 곡면들이 모여 건물의 윤곽을 형성한 가운데 기둥은 마치 종유석처럼 흘러내리며, 평면에는 산부인과 병원이라는 프로그램을 반영해 출산과 관련된 각종 성적 상징이 가득하다. 기술적, 산업적 뒷받침이 부족했던 시절이 만든 비정형의 기념비로, 1세대 현대 건축가 김중업이 스스로 가장 애착을 가졌던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사적 영역의 저층 건물이라는 점에서 부동산 개발의 유혹에 완전하게 노출되어 있기에, 간판이 바뀔 때마다 일시적 안도감과 함께 지속되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다. 국내 최초로 한 건축가의 작업을 모은 김중업건축박물관이 2014년에 설립되어 그의 건축에 대한 재조명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무척 반갑지만, 그가 남긴 건축물들의 유지, 보존, 재생은 박물관이 홀로 담당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보다 많은 이의 관심과 행동을 필요로 한다. 우리 도시의 많은 부분은 합리적, 보편적, 경제적인 접근으로 조성될 수밖에 없지만, 개인적이면서도 많은 사람의 감성과 공명하는 이러한 사례마저 살아남을 수 없다면 후대에 전해지는 우리 건축과 도시의 모습은 지극히 납작할 것이다. 최원준(숭실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온양민속박물관 구정미술관(현 구정아트센터)의 천장. 1982년 개관 직후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소장 사진.

온양민속박물관 구정미술관 이타미 준, 1982년, 현 구정아트센터
우리의 독특한 문화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근현대 건축은 전통과의 연계점을 모색하며 전개되어 왔다. 재일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이 국내에 설계한 첫 작품인 구정미술관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법을 선보였다. 형태와 공간은 완전히 새롭게 창작하되, 재료를 통해 우리 전통과의 접점을 구현한 것이다. 타원의 독특한 평면에 기와의 맞배지붕을 올리고, 이 일대의 황토로 흙벽돌을 구워 건물의 긴 외벽을 완성했으며, 건물을 둘러싼 담 역시 지역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전체 윤곽은 지역의 ㅁ자 가옥을, 상부의 형태는 거북선을 모티프로 했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 조합은 선례가 없는 이타미 준의 현대적 창작이며, 전통적 감수성은 기와, 흙벽돌, 돌담 등 재료와 구법이 지닌 물성과 질감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건축계가 형태와 공간에 주목하는 동안 잊혔던 재료의 속성, 특히 지역성과 토착성과의 끈끈한 관계가 되살아난 것이다. 주류와는 다른 시점의 독특한 접근법들이 충실하게 전해질 때, 우리 건축 환경은 다양성의 폭과 두께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최원준(숭실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사진가 표기식이 촬영한 2021년 12월 대신아파트의 모습.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대신아파트 건축가 미상, 1971년
1971년 신길동에 세워진 대신아파트는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여러 가지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우선 채광 및 환기를 위한 특별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Y자 평면을 들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저층부 기단을 구성하고 있는 시장의 존재다. 원조 주상복합 건축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 할 만하다. 중앙 계단실을 중심으로 양쪽의 바닥 레벨이 서로 다른 소위 스킵 플로어 형식인 것도 빠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마감재로 벽돌을 사용한 점이다. 현재 대다수의 아파트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여러모로 보아 한국 공동주거사에 획기적인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설계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현재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터라 깊이 있는 조사 연구가 시급하다. 황두진(건축가·황두진건축사사무소)

2005년 출간된 <차운기를 잊지 말자>에 실린 재건여수교회 내부 사진. 저자 이중용 제공.

택형이네 집, 재건여수교회 차운기, 1994년, 1997년
차운기의 건축은 당시 주류를 이뤘던 한국 건축의 전형적인 어법을 과감하게 탈피한다. 비정형이라 불리는 즉물적인 건축 어휘는 지금 시선으로 보아도 새로움이 가득하다. 김중업의 건축에서 쓰였던 풍요로운 곡선은 차운기를 통해 거친 선과 면들로 채워지고 새로운 재료의 구법과 만나면서 독창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특히 ‘택형이네 집’에서 보여준 폐자재를 이용한 재료의 재활용, 깨진 옹기로 덮인 지붕선은 현대적으로 해석된 한국성의 새로운 대안을 보여준다. 재건여수교회에서 시도한 이중 곡면 형태의 과감한 시도는 열악한 한국 건축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중요한 프로젝트로 기억될 것이다. 이정훈(건축가·조호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