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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몸 값>은 제 인생의 로또예요"

2022.06.22김은희

이주영 씨, 순응하겠다면서요.

컷아웃 드레스와 플레어 팬츠, 모두 버버리. 삭스 앵클 힐, 지미 추. 로고 체인 초커, 돌체&가바나. 볼드 링, 보테가 베네타. 체인 브레이슬릿, 펜디.

GQ 이번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 촬영 끝나고는 왜 펑펑 울었어요?
JY 신기하게도 저 지금까지 촬영장에서 운 적이 진짜 없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제 컷에 “오케이!” 소리 듣자마자 눈물이 빵 터졌어요. 저 다음에 선배님(오민애 배우) 신 남아 있었는데 제가 계속 울어서···, 프흐흐흐. 이 작품을 하며 힐링을 많이 했어요. 여러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눈물이 난 것 같아요.
GQ 지금까지 촬영장에서 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JY 한 번도 없어요.
GQ <보이스>(2021)에서 엄청 달려서 두 엄지발톱이 다 빠졌을 때도요?
JY 그땐 발톱이 그렇게 된 줄도 몰랐어요. 집에 가서 알았어요. 발톱 상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신발이 좀 딱딱했어서.
GQ <독전>(2018)에서 원래 농아 형제이던 캐릭터가 이주영 씨로 인해 남매로 바뀌었을 때도요? 기쁨의 눈물이 고였을 수도 있잖아요.
JY 그때도 울진 않았어요.
GQ 원래 눈물이 없어요?
JY 아뇨, 푸흐흐흐흐. 눈물 있는데 음, 그때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으아아아아 앗싸!” 이런 느낌. “으아아아아앗싸!”
GQ 그럼 <몸 값>(2015)으로 처음 배우 이주영이 됐을 때는요?
JY 그때도···, 으하하하하.

데님 재킷, 데님 팬츠, 데님 스커트, 레더 부츠, 모두 발렌시아가. 실버 링, 알렉산더 맥퀸.

GQ 그런데 이번에는 왜 눈물이 났을까.
JY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은 엄마와 딸 이야기인데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이 작품이 좋았어요. 그리고 감독님과 제 성향이 비슷해요. 감독님 보면 제가 평소에 하는 행동을 하는 거예요.
GQ 예를 들면요?
JY 저도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하나 눈치를 본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래서 누군가 불편하지 않게 항상 뭘 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저보다 더 심한 거예요.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아, 나랑 비슷한 사람이구나. 그러면서 감독님과 이 작품 자체에 동질감을 많이 느꼈어요.
GQ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이 부분이 너무 궁금해지더라고요. 시나리오 수정 단계에서 빠졌다가 이주영 배우가 “이건 꼭 넣어야 한다” 해서 살아난 신.
JY 아, 휴게소 신. 맞아요. 하다(이주영 배우가 맡은 역할)는 왜 이렇게 꼴통일까 싶다가, 휴게소에서 하다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하다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 마음을 대변해야겠다, 이 작품을 해야겠다 확신하게 만든 장면이었는데 좀 바뀐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어요. 이 장면이 없으면 하다의 마음도, 하다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도 풀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구구절절. 그럼 원래대로 가자, 그렇게 됐어요.
GQ 이주영 배우가 느꼈다는 동질감이 묻은 장면이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살리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싶어지네요.
JY 하다와 상황은 다르지만 저도 결핍이 있는 것 같아요. 전 첫째고, 둘째와 1년 반 차이예요. 그러니까, 동생이 태어나면서 저는 엄마의 사랑을 다 뺏긴 거예요. 그런데 저는 또 혼자 잘 놀았대요. 그래서 엄마가 늘 주영이만 있으면 든든하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거예요. 원래는 엄마 사랑을 받으려고 동생을 막 괴롭히는 게 정상이래요. 질투하고.
GQ 오히려.
JY 네, 저는 표출하지 않고 혼자 잘 놀았던 거죠. 지금도 그래요. 친한 친구들도 제게 무슨 일이 있을 때 나중에야 알아요. 표현을 잘 안 하니까. 티를 잘 안 내니까.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화이트 탱크톱, 새틴 플리츠 스커트, 모두 로에베. 블랙 레이스업 부츠, 디올. 블랙 니 삭스, 버버리.실버 체인 이어링, 보테가 베네타. 실버 이어커프, 알렉산더 맥퀸. 벨트로 연출한 멀티 참 네크리스, 돌체&가바나.

GQ 현실의 이주영은 표현을 잘 못 하는 사람이군요.
JY 못 해요. 그래서 연기할 때 해방감을 느껴요. 너무너무. 연기를 하면 내 감정이라고 하지 않으면서 내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거잖아요. 타인의 감정이라고 하면서. 그런 점이 저와 너무 잘 맞아요.
GQ 스물아홉 살 때, 데뷔작 단편 <몸 값>에 캐스팅한 이충현 감독 말로는 “저 사람이 누군지 도무지 잘 모르겠어서” 함께했다고 하더군요.
JY 오···. 많이 듣는 말이에요. 으하하하. 감독님도 말씀하셨단 건 처음 알았어요.
GQ 그래서 이주영이라는 인물에 맞게 캐릭터를 수정하기도 했대요.
JY 그때 제가 관련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어떻게 여기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스태프와 배우를 모집하는 필름메이커스라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이트가 있거든요. 거기 통해 하루도 놓치지 않고 지원해야겠다, 그러곤 숙제처럼 정말 매일매일 오디션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보통 감독님들이 저를 잘 못 쓰세요. 외형적으로 너무 특이하니까. 키도 크고. 이충현 감독님은 오히려 그런 점을 저의 매력으로 생각하셨던 거죠. 연기 한번 안 해본 사람을, 감독님의 대담한 선택이셨죠.

화이트 탱크톱, 새틴 플리츠 스커트, 모두 로에베. 블랙 레이스업 부츠, 디올. 블랙 니 삭스, 버버리.실버 체인 이어링, 보테가 베네타. 실버 이어커프, 알렉산더 맥퀸. 벨트로 연출한 멀티 참 네크리스, 돌체&가바나.

GQ 그 전엔 모델로 활동했죠. 그 시절을 암울했다고 표현하는 걸 많이 봤어요.
JY 맞아요. 어릴 때부터 패션 잡지 보는 걸 좋아했어요. 엄마에게 잡지 보여주면서 “엄마, 나 여기 이 옷 사줘” 하면 엄마가 사주셨어요. 그런데 잡지에 ‘믿을만한 (모델) 에이전시’라고 나왔길래 거길 찾아갔어요. 그렇게 모델 일을 시작한 거예요. 저는 시작할 때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지 않거든요. 그냥 시작. 그때가 열여덟이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잘되는 것에 비해 저는 잘 안 되고, 그런 일을 너무 어릴 때부터 겪으니까 단순히 ‘오디션에 떨어졌다’가 아니라 제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죠. 그게 반복되다 보니까 너무 힘들었죠. 한 10년을 계속 매달려 있었어요. 중간에 포기하면 나한테 지는 것 같은 느낌?
GQ 나마저 나를 부정하는 느낌.
JY 진짜.
GQ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잖아요. 싱가포르와 뉴욕으로 직접 활로를 찾아 나서고, 서울 패션 위크 무대에 서기 위해 디자이너들을 홀로 찾아갔단 일화를 보면서 동굴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거든요.
JY 누굴 믿어. 언제까지 기다려. 나는 이제 20대 후반인데. 그 마음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혼자 막 찾아다녔는데 그게 더 잘되더라고요. 어? 잘되네? 그럼 내가 외국에 한번 가봐야겠다. 그래서 싱가폴과 뉴욕에 갔는데 엄청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어요. 대신 뉴욕의 대형 에이전시에서 콜이 왔어요. 그때 딱 모델 일을 그만뒀어요.
GQ 동굴 끝에 빛이 보인 순간 같은데 왜요?
JY 이전보다는 잘될 때였으니까. 여기까지 해봤으면 진 게 아니다 싶었으니까.

블랙 턱시도 재킷, 레더 브라 톱, 타이다이 데님 버뮤다 팬츠, 모두 아미. 골드 네크리스,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GQ 그러고 나서 1년도 안 되어 <몸 값>을 찍게 된 건데, 그 안에서 이주영이란 신인은 좀 신기해요. 혹시 당시 대본이 상세하기보다 애드리브를 장려하는, 현장에 내던져두는 스타일이었나요?
JY 애드리브가 있긴 했는데, 촬영은 하루였는데 저희가 연습을 두 달 했어요.
GQ 원 테이크 영화라서 그런 거죠?
JY 아, 대사 연습을요. 동선 맞추는 건 그 전날 하루 연습한 거예요. 두 달 동안 대사 연습하면서 감독님이 저희가 편한 말로 계속 수정했어요. 몇십 번을 수정하셨대요. 되게 집요한 면이 있으세요, 프흐흐흐. 형수 오빠(상대 역, 배우 박형수)도 왜 안 찍냐고, 단편 이렇게 오래 연습한 건 처음이라고. 저는 처음이니까 너무 좋았죠. 보면 제가 웃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그것도 원래 대본에는 없었는데 형수 오빠가 너무 웃겨서 제가 계속 웃음이 터지는 거예요. 그래서 대본에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애드리브처럼 느껴진 건가 봐요.
GQ 두 달을 연습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처음인 것처럼 웃어요?
JY 친한 친구도 영화 보더니 그러더라고요. “야, 너 진짜로 웃으면 어떡해.” 평소랑 똑같았대요. 그냥, 너무 재밌었어요. <몸 값>은 제 인생의 로또예요. 그 작품 덕에 <독전>과 <라이브> 오디션을 보게 된 거예요.

컷아웃 드레스와 플레어 팬츠, 모두 버버리. 삭스 앵클 힐, 지미 추. 로고 체인 초커, 돌체&가바나. 볼드 링, 보테가 베네타. 체인 브레이슬릿, 펜디.

GQ 윤여정 배우가 그랬거든요. “나는 배고파서 연기했는데 남들은 극찬을 하더라고. 그래서 예술이 잔인한 거야.”
JY 와···. 저는 허기와 충만함 둘 다 있었던 것 같아요. 모델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케이스이니까 배우 일은 허투루 하지 않고 잘 해나가고 싶다, 그 마음도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또 사람이 너무 잘하려고 하면 더 안 되잖아요.
GQ 욕심이 붙어서 그런가?
JY 그래서 이제는 모든 상황에 순응할 수 있기를 바라요.
GQ 순응하기를요?
JY 무언가를 바라는 데는 단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떤 세속적인 것들을 바라게 되잖아요. 나의 성공 그런 거. 그런데 여러 가지 일을 겪어오면서 지금은 그냥 제가 어떤 상황에서든 순응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됐어요.
GQ 도전적이지 않으면서 도전적인 행위로 느껴지네요.
JY 내가 어떤 일을 선택하고 임하는 건 도전적으로 하지만, 그 외의 다른 환경은 제가 통제할 수 없잖아요. 좋다고 교만해지지 않고, 나쁘다고 절망하지 말자. 그걸 바라는 거예요. 평정심이라고 해야 할까?

스킨 컬러 보디 수트, 디올. 골드 볼 네크리스,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멀티 후프 이어커프, 알렉산더 맥퀸.

GQ 내일은 머리를 쇼트커트 스타일로 자를 거라고요.
JY 오늘요. 이 촬영 끝나고 바로. 새 작품 <머니게임> 때문에요. 그래서 아까 헤어 실장님께 앞머리 필요하면 그냥 잘라도 된다고 했어요.
GQ 애써 길렀는데 아깝지 않아요?
JY 어차피 또 자랄 거니까. 미련 없어요.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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