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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결국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것 같아요"

2023.02.27전희란

이승기의 지지 않는다는 말.

아우터, 이너 톱, 팬츠, 모두 루이 비통 × 쿠사마 야요이. 슈즈, 라프 시몬스.

아우터, 본봄. 이너 톱, 팬츠, 모두 베트멍 at 분더샵. 슈즈, 디스퀘어드. 뱅글, 부첼라티. 헤드피스, 돌체&가바나.

아우터, 아크네. 팬츠, 디젤. 이너 톱, 릭 오웬스. 슈즈, 라프 시몬스.

아우터, 팬츠, 슈즈, 모두 프라다. 링, 크롬하츠.

 

톱, 팬츠, 모두 로에베. 슈즈, 구찌.

아우터, 팬츠, 모두 뉴인. 슈즈, 알렉산더 퀸. 아우터, 팬츠, 모두 에곤랩 at 10 꼬르소 꼬모 서울. 슈즈, 보테가 베네타. 이너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며칠 전 SNS에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품을 올렸죠. 그 작품 이름 알고 있어요?
SG Not Afraid of Love.
GQ 맞아요. ‘사랑이 두렵지 않다’. 저도 그 제목이 좋아서 마침 사진을 찍어두었거든요. 돌이켜보니, 그것이 오늘의 암시였나 싶더라고요.
SG 아하하하. 제가 그렇게 똑똑하고 치밀하지는 못해요.
GQ 그러면 하필 그 작품이었던 이유는요?
SG 저는 그 작품이 톱 3로 꼽을 정도로 좋았어요. 위트 있잖아요. “두렵지 않아” 라고 말하는 덩치 큰 코끼리가 사실은 굉장히 두려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고. 저요? 비슷한 면이 있죠. 연예인으로 살면서 사람이라면 당연히 표현해야 할 사랑이나 권리, 목소리 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해야 했으니까요. 자제하는 것이 몸에 배었는데 이제 조금씩 깨고 나오는 중이에요.
GQ 바로 몇 시간 전에 돌연 결혼 발표를 했죠. <연예가중계> 리포터가 된 기분으로 묻겠습니다. 기분이 어때요?
SG 차분하고 담담해요. 결혼을 결심한 지는 꽤 오래됐거든요. 그 친구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굉장히 마음이 편했어요. 제 옆에서 많이 애써준, 너무 사랑하는 친구죠. 그런데 편지를 써 내려갈 땐 어찌나 떨리던지···.
GQ 사랑은 이승기를 어떻게 변화시켜요?
SG 용기도, 자신감도 더 생겨요. 전투력이 다르죠. 물러서지 않을 이유가 명확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보려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어요.
GQ 원래라면 오늘의 첫 인사는 “안녕하셨나요?”가 되었을 거예요.
SG 안녕, 하려고 노력합니다. 2022년만 해도 안녕하지 못했다고 말했어요. 해가 바뀌니까 마음도 기분도 달라지더라고요. 돌덩이처럼 무거웠던 무게도 조금 가벼워졌고요. 안녕하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안녕해야만 하는 이유도 생겼죠.
GQ 그사이 50억 기부라는 엄청난 일도 있었고요.
SG 얼마 전 이코노미 클래스 타고 해외에 다녀왔어요. 전에도 좌석이 안 나면 이코노미 종종 탔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승기 50억 기부하고 이코노미 타네, 대단하다” 그러더라고요. 하하하하. 저에게 관심 없었던, 심지어 저를 좋아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응원해주시는 걸 보고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울컥할 정도로 힘이 됐어요.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고 느껴져서.
GQ 기부처를 일일이 찾아가서 보고 결정하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SG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모든 기부는 좋은 거예요. 다만 이번 기부는 좀 달랐어요. 그 돈은 저에게 정말 귀한 돈이에요. 피 같은 돈이라고 하면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느껴질 정도예요. 제 청춘의 스트레스와 아픔, 절망을 모두 갈아 넣은 돈이니까요. 그래서 더욱 로스 없이 쓰고 싶었어요.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똑똑히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에 기부하고 싶었죠.

셔츠, 팬츠, 코르셋, 모두 드리스 반 노튼. 슈즈, 보테가 베네타. 선글라스, 아크네.

GQ 이승기에게 가장 고차원적인 행복은 뭐예요?
SG 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사람보다 많은 다인원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개인으로 인해 열 명, 혹은 그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고 무언가 바뀔 수 있다면 굉장히 멋진 일이잖아요. 이번에 기부하고 나서 느낀 보람도 굉장했어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제가 굉장히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GQ <써클하우스>에서 주식 투자에 몰두하는 한 게스트에게 “제가 부자로 보이나요?”라고 물었죠. 정작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건 소소한 일들이라고 하면서.
SG 저는 행복이 대단한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굉장한 자산가들과 만나 이야기 해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으면서 술 한잔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들 해요. 저는 ‘T’ 성향이에요. 제게 생긴 50억으로 건물을 산다고 할 때 주어질 행복이 내 안에 조금도 동요를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돈이 아픈 아이 들을 위해 쓰인다? 그 생각을 하니까 (가슴 앞에 두 손을 움켜쥔다) 여기서 올라오는 벅참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걸로 끝. 제 마음을 더 찌릿하게 하는 곳 으로 가는 거죠. 산수나 수학으로 계산이 완성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GQ 순간 굉장히 행복한 얼굴이 보였어요. 이 얼굴, 승기 씨가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 Table Concert’ 시리즈에서도 본 것 같아요.
SG 맞아요. 그때도 정말로, 정말로 행복했어요. 작년에 가장 행복하게 했던 방송을 묻는다면, 저는 테이블 콘서트를 꼽을 거예요.
GQ 자유보다는 관리와 절제로부터 고독과 성숙을 배웠다고 말한 적 있는데, 마침내 이승기의 자유가 거기 있는 것 같았어요. 그로부터 확실한 울림도 있었고.
SG 어디서도 부르지 못했던, 제가 부르고 싶은 곡들로만 골랐어요. 잘 부르면 칭찬 받고 싶잖아요. 처음엔 소소하게 보여주려고 기획했는데, 점점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돈도 많이 들였죠. 투자로 따지면 완전히 실패예요.(웃음)

톱, 오와스. 팬츠, 디젤.슈즈, 돌체&가바나.

GQ 최근 한 예능에서 ‘마음’이라는 과목이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말을 했죠.
SG 처음 연예인이 되고, 이 세계를 버텨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어른들과 소통하는 법도 어렵고, 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도 몰랐죠. 좌충우돌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인간관계’라는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수업이 있다면 사람들이 오해로 인해 분노하는 일도 없을 테고, 덜 싸우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최소한 무지로 인해 불행을 겪는 일도 없을 테고요.
GQ 저는 담대함은 타고나는 건지 묻고 싶을 것 같아요. 제가 당신에게 느낀 그것.
SG 담대함은 성향이 아니라 신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면 가는 거죠. 다만 그 신념이 안착되기까지 수많은 두려움을 깨고 가야 해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신에게 용기를 달라고 했더니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을 주고, 행복을 달라고 했더니 절망을 주었다. 저도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다만 이것은 올바르지 않다,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는 거죠. 가다 보면 예상보다 고통스러운 시련이 따라와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쉽게 하잖아요? 그런데 그건 본인이 예상한 수준이 아니에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고통이죠. 하루에도 열 번씩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수준의 시련을 극복해나가야 ‘두렵지 않다’는 마음, 담대함이 생기는 것 같아요.
GQ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배웠나요?
SG 결국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것 같아요. 길 가다가 눈에 띄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죠. 좋은 건 항상 구하고, 견뎌낸 뒤에 주어지더라고요.
GQ 나는 한없이 약하기만 한 것 같은데, 사람들은 강하게 보기도 해요?
SG 모든 사람은 똑같은 것 같아요. 시련을 덜 겪고 어떤 위치까지 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것만은 자신해요. 왜? 제가 경험했고, 주변에서 봤으니까요.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쯤은 남들이 할 수 없는 걸 극복해서 그곳까지 간 거예요. 경험해본 사람들은 타인의 노력을 절대 깎아내리지 않아요.

톱, 로에베.

GQ 데뷔 때부터 들은 “끼가 없다”는 주변의 날선 평가는 어떻게 견뎠어요?
SG 그냥··· 해야 하니까, 포기할 수 없으니까. 계속 갈래, 포기할래? 거기서 포기가 더 두려우면 계속 가는 거예요. 그렇게 저울질하다 보면 답이 나와요. 가다 보면 답이 보일 텐데, 가만히 서서 답을 찾으면 그거 커닝 아닌가요?
GQ 그러면서 힘이 생기던가요?
SG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요. 그런데 가다 보면 정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깨달음이 올 때가 있어요. 그게 쌓이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GQ 찾아올지 아닐지 모르는 타이밍을 기다리며 묵묵히 걷는다.
SG 저는 사람들이 “묵묵히 걷는다”라는 말에 속는다고 봐요. 멀리서 보니 묵묵해 보일 뿐 그 사람은 절대 묵묵히 걷는 게 아니에요. 미친 듯이 치열해야 해요. ‘묵묵히, 변명도 하지 않고, 핑계도 대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땀 흘려서 가겠다’가 “묵묵히 걷는다”는 말에 모두 포함된 의미라고 생각해요.
GQ 자신감이라는 결정체가 마침내 빚어진 때가 기억나요?
SG 저는 지금이 제일 자신감 있어요. 지켜야 할 사람이 있고, 회사가 있고, 제 크루들이 있죠. 제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게 자신감인 것 같아요.
GQ 10년 전 “좀 알 것 같은 건 예능, 계속 모르겠는 건 연기”라고 했죠. 지금은요?
SG 최근에 <대가족>이라는 영화 촬영을 하며 김윤석 선배님과 처음 호흡을 맞췄어요. 정말 꿈이었는데. 장르가 드라마라서 감정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야 했는데, 선배님의 연기를 보면서 제게 많은 울림이 있었어요. 뭐랄까, 그분은 연기를 점화시키는 위치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허리쯤을 가리키며) 이런 곳에서 툭 튀어나오더라고요. 멋이나 척이 아니라 배우의 해석과 플레이가 몸으로 체화되어 상대방을 납득시키는 게 연기구나, 깨달았어요. 연기는 이제 요만큼 알 것 같은 정도랄까. 예능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고요.
GQ 누구도 다치지 않는 방식으로 웃음을 주는, 대단한 사람이죠.
SG 저는 희극인들의 반짝이는 재치와 순발력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대신 프로그램이 가야 하는 방향으로 재미있게 갈 수 있도록 드라이브해줄 뿐이죠.
GQ 베스트 드라이버인가요?
SG 세이프티 드라이버요. 아주 짜릿하진 않아도 편안하고 재밌게 모십니다.
GQ 지금 제일 잘하고 싶은 건 뭐예요?
SG 음악이요. 내년이 20주년이라 지금부터 슬슬 시동을 걸고 있어요. 라이브 공연을 많이 할 거고, 아시아 투어도 할 거예요. 하나의 쇼 같은 공연! 제게 깃든 지금의 자유가 음악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올지 모르겠어요.
GQ 자유라는 날개를 달고, 비로소 피크 타임으로.
SG 지금, 부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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