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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브랜드는 왜 줄을 서게 할까

2023.12.05전희란

브랜드의 성과가 긴 줄로 판가름 나는 이때, 줄의 길이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긴 대기열 끝에 마침내 만나는 어떤 것이다.

글 / 한지인 (브랜딩 전문가)

브랜드의 성과를 ‘줄 세우기’로 재고 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한다더라, 오픈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줄을 서야 한다더라, 줄 길이가 얼마나 된다더라 하는 풍문이 들려와야 비로소 잘하는 브랜드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가게에 들어가서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서 나오는 일이 사고파는 교환 행위를 넘어서서 무척이나 확장된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실감하게 되는 세상이다. 줄을 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단순히 합리적인 이유만이 아닌, 무언가가 더 복잡하게 들어서서 기어코 줄을 서는 인내를 감내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수많은 줄 중 가장 애가 타는 마음이 담긴 곳은 아마도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을 향한 줄일 것이다. 최애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기 위해 콘서트장 앞에 진을 치던 아이돌 팬의 역사가 배어 있기도 한 이 줄은, ‘한정된 시간’ 동안 ‘한정된 수량’으로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상에 대한 갈망이 더해져 강력한 원동력을 지닌 채 쭉 발전해왔다. 경제적 시선으로 다시 말하자면, 한정된 공급량에 대한 초과 수요로 인해 상품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이 팬 문화라는 결집된 정서와 결합하면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희소성을 가지는 상품에 커뮤니티가 함께 형성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브랜드와 깊은 감정적 연결감을 느끼게 되고, 상품에 대한 애정이 줄서기라는 행위를 통해 열정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이 강력한 애정과 열정의 마음을 사업가들이 놓칠 리가 없는 것. 팬들을 줄 세울 줄 아는 아이돌은 직업의 차원을 넘어서서 문화와 산업으로 돈 버는 능력을 확장해나가며 지속적인 신상품 출시와 다양한 컬렉션 구성과 같은 소비를 위한 기획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렇게 최애를 마음에 지니게 만드는 것은 비단 아이돌만이 아니다. 더 이상 서브 컬처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지로 올라와 팬덤을 형성한 다양한 주제와 상품들이 모두 덕후 템이 되어 ‘한정판 신상’의 줄 세우기를 시전하고 있다. 프라모델과 피규어에서부터 나이키, 포켓몬 빵까지 애정하는 상대를 만나고자 긴 줄을 만들어 기다림을 감내하는 행위는 마치 중세 유럽 왕을 알현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던 기사들의 고양된 마음과 겹쳐진다. 물론 대상에 대한 애정과 열정, 희소 가치에서 오는 경쟁률, 대기 시간의 설렘을 모두 더하고 극대화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하늘 위에 꼭 붙들어 맨 왕실 커튼 뒤 전략가의 모습도 함께 그려지고 말이다.

본능적으로 줄을 서고 기다림을 견디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동조와 안정’이다. 적을 피해 도망치는 집단 행동에 기인한다는 동조 본능은 모두 함께 줄을 섰다는 다수의 검증을 근거로 불안이 줄어들고 안정감을 가지는 효능을 발휘한다. 이러한 동조 본능을 소비 행동을 통해 해소하는 것은 마치 돈을 주고 안정감을 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만 같다. “너도 있어? 나도 있어”와 같은 간단한 확인을 통해 우리는 같은 집단에 속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아니, 구매하게 된다. 동조를 통한 안정감 획득이 더욱 강화되는 루트가 있는데, 바로 SNS 공유를 통한 소셜 화폐 가치(Social Currency Value)의 발행과 유통의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소비를 통해 겟하게 된 상품 혹은 서비스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입지를 드러내고, 이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전략이 사람들로 하여금 줄 서기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원소주 마셔봤어? 런던베이글 먹어봤어? 거기 가봤어? 그거 해봤어? 이런 질문을 스몰챗 주제로 사용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 노력은, 내가 속한 집단과 연결감을 늘 놓치지 않으며 안전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더 나아가서는 나는 안전하므로 나의 가치 또한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적 행위다. 물론 그 중심에 브랜드 이름이 쓱 들어간 데는 또 다른 본능, 모든 욕망을 브랜드 소비의 방향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사업가의 그것이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말이다.

명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계관이 가장 대표적으로 동조 본능을 기반으로 하는 소셜 화폐 사회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정도의 구매력이라면 나는 어느 급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공식은 샤넬과 구찌의 세계관이 생기기도 훨씬 전인 상류층 역사로 거슬러 끝없이 올라간다. 집단사회를 만들어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와 거의 맞먹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불친절 응대를 전략으로 삼는 일부 패션 브랜드의 전략은 아랫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략적으로 탑재해 ‘줄 서서 여기 껴주는 걸 고마워해야 해’라는 가스라이팅 심리를 이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브랜드의 줄 세우기라는 목표는 아주 쉬운 몇 가지 방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품이 가진 시간성과 공간성을 모두 ‘한정판’으로 설정해 구매 경쟁률을 높이면서 뾰족한 팬층을 발굴하고, 이 상품을 가지면 어떤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지 인플루언서의 희망찬 사진과 영상을 통해 널리 퍼뜨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궁금해지는 것은 바로 ‘줄을 서서 상품을 손에 넣은 그다음’에 대한 이야기다.

줄 세우기의 욕망은 더 큰 장악의 욕망으로 이어진다. 줄 세우기에 성공한 브랜드는 더 큰 사업 확장을 위해 조금씩 공급량을 늘려나갈 것이다. 상품의 희소성이 서서히 낮아지고 줄을 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간증이 점점 확산되는 이때, 바야흐로 브랜드의 진짜 운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줄을 서면서 느꼈던 애정, 열정, 설렘, 동경, 갈망의 순간을 계속 붙잡아놓을 만한 강력한 매력을 현실 속에서 생경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가? 결국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제품력과 스토리의 실체다.

남들보다 먼저 줄을 서서 구매에 성공한 이 제품이 나에게 제공하는 기능과 경험이 파면 팔수록 더 많은 것을 나에게 선사하고 있더라, 라는 이야기로 순항해나갈 때야말로 줄 세우기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지 않을까? “줄 서서 먼저 살 수 있어서 좋았다”라는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브랜드야말로 진짜 승자인 것이다. 줄 세우기를 통해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브랜드의 실체는 자신감이거나 사기, 둘 중 하나다. 기다리는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심리적 고양 상태에 집중하는 브랜드는 기대에 부응할 만큼의 상품력을 스스로 믿고 확신한다. 반대로 기다린 사람들의 소진 상태에 집중하는 브랜드는 기대감에 기대어 상품의 허점을 숨길 수 있다는 효과를 노린다. 결국 사람들 마음의 플러스 상태 혹은 마이너스 상태에 집중하느냐가 줄 세우기의 진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브랜드는 두 종류로 나뉜다. 줄을 세우기 위해 안달하는 브랜드와 미안해하는 브랜드. 소비 심리로 돈을 버는 브랜드와 제품력으로 돈을 버는 브랜드의 차이다. 원소주는 공급량을 늘리면서 수출 전략을 펼치고 있고, 일 년 치 예약이 차 있던 목란은 매달 예약을 새로 받고 있다. 생산량과 지점을 늘리고 줄 세우기를 쉽게 만들어주는 간편한 예약 시스템을 구축해놓았을 때도 흥하는 브랜드가 진짜다. 줄 선 끝에 마주한 상품과의 만남이 긴 대기열에서 만들어진 기대감과 비교할 때 나에게 얼마나 임팩트가 있는가, 이후에도 지속해서 이 줄에 설 용기를 주는가에 대한 대답에 따라 그러한 브랜드가 되느냐 혹은 오히려 사라지는 브랜드가 되느냐를 판가름한다. 줄 서서 장보던 농부시장 마르쉐가 매주 곳곳에서 열리는 요즘, 장보기가 수월해져서 좋은 것처럼 말이다. 탕후루가 내년에도 유행할지는 미지수지만, 매년 이맘때 우리를 찾아오는 붕어빵 트럭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공고하다. 그리고 대만카스텔라와 벌집아이스크림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더는 없다.

세상은 두 가지 부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줄을 서는 사람과 줄을 서지 않는 사람. 엄밀히 말하자면 일단 줄을 서고 보는 사람과 이 줄이 내 줄인지 판단하고 예/아니오를 선택해서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가는 펭귄이 설정한 길이 먹이 낙원을 향해 있다면 ‘퍼스트펭귄’이라는 왕관이 씌워지지만, 뒤따르는 펭귄들을 모두 벼랑 끝으로 내모는 펭귄은 ‘레밍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무능한 길잡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할 대상은 과연 그 한 마리의 펭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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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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