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모스크바의 새로운 남성성

2026.05.11.신예지

수트의 문법은 느슨해졌고, 남성복은 더 자유로운 태도로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Moscow Fashion Week가 보여준 새로운 남성성의 방향.

House of Leo at Moscow Fashion Week.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드러난 메시지는 분명했다. 남성복은 이미 정형화된 수트의 공식을 넘어섰고, 모스크바의 디자이너들은 형태와 실루엣, 그리고 스타일링의 의미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주목할 점은 모스크바 패션 위크가 꾸준히 이어온 로컬 디자이너 육성과 독립 브랜드 발굴의 결과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런웨이는 새로운 디자이너들에게 강력한 도약의 무대가 되었고, 그들의 컬렉션은 이제 글로벌 패션 신 안에서도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 정교한 테일러링과 유희적인 텍스처, 그리고 컨셉추얼한 피스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태도까지. 지금의 현대적 남성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House of Leo at Moscow Fashion Week.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건 하우스 오브 레오(House of Leo)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기반 브랜드인 하우스 오브 레오는 익숙한 블랙 수트의 문법 안에서 미묘한 변주를 시도했다. 하이웨이스트 팬츠와 짧은 트위드 재킷의 조합은 클래식한 남성복 비율을 새롭게 뒤집었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텍스처는 룩 전체를 조형적인 인상으로 완성했다. 단순히 잘 재단된 수트가 아니라, 움직임과 비율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접근이었다.

Edder at Moscow Fashion Week.

에더(Edder)는 보다 유희적인 방식으로 포멀웨어를 다뤘다. 체크 셔츠 프린트 위로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는 듯한 타이는 일종의 착시 효과를 만들며 룩 전체에 아이러니를 더했다. 여기에 후디와 니트 팬츠를 결합해 포멀과 캐주얼 사이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냈다. 기존 오피스 룩이 가진 rigid한 분위기 대신, 지금 시대가 원하는 편안한 포멀웨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에 가까웠다.

Sovushkas Bag at Moscow Fashion Week.

전통적 요소를 가장 감각적으로 풀어낸 브랜드는 소부슈카스 백(Sovushkas Bag)이었다. 브랜드는 아르메니아적 유산에 뿌리를 둔 전통 카펫 기법을 활용한 대형 백을 통해 민속적 무드를 스트리트웨어의 언어로 재해석했다. 데님 중심의 단순한 룩 위에 놓인 텍스타일 백 하나만으로 전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고, 에스닉 무드와 도시적인 감각이 예상 밖의 균형을 만들어냈다. 전통은 무겁고 진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볍게 비트는 방식이었다.

Ianis Chamalidy at Moscow Fashion Week.

블랙을 가장 입체적으로 사용한 컬렉션은 야니스 차말리디(Ianis Chamalidy)의 ‘Sacrum Lux’였다. 구조적인 롱 코트와 여유로운 셔츠, 복합적인 레이어링은 단색 룩임에도 강한 깊이를 만들어냈다. 장식보다 중요한 건 테일러링의 밀도였다. 전체 룩은 마치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고스 무드를 떠올리게 했고, 절제된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한 실루엣이 드러났다.

Ivan Kutuzov at Moscow Fashion Week.

한편 이반 쿠투조프(Ivan Kutuzov)는 워크웨어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루즈한 데님 점프수트와 오버사이즈 셔츠는 기능성이라는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구조주의적 실루엣을 통해 하이패션에 가까운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모든 디테일에는 이유가 있었고, 장식 대신 구조와 기능으로 완성된 룩은 오히려 더 강한 존재감을 남겼다.

Kanzler at Moscow Fashion Week.

미니멀리즘의 방향을 제시한 건 칸츨러(Kanzler)였다. 샌드 컬러 수트와 니트 후드를 활용한 스타일링은 도시적인 라이프스타일 안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룩을 완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컬러와 레이어만으로 완성된 룩은 지금 시대의 실용적 럭셔리를 설명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Two Joy at Moscow Fashion Week.

프레피 룩을 가장 유연하게 풀어낸 브랜드는 투 조이(Two Joy)였다. 스트라이프 폴로 셔츠와 체크 팬츠, 그리고 카우보이 벨트까지. 서로 다른 코드들이 뒤섞였지만 룩은 의외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니트와 비즈 액세서리 같은 디테일은 전형적인 남성복 문법에 장난스러운 리듬을 더했고, 클래식한 대학생 스타일은 보다 자유로운 스트리트 감성으로 확장됐다.

Stas Lopatkin at Moscow Fashion Week.

마지막으로 스타스 로팟킨(Stas Lopatkin)은 작은 디테일 하나가 룩 전체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허리에 묶인 선명한 컬러의 스카프는 단순한 스타일링 요소를 넘어 하나의 제스처처럼 기능했고, 베이식한 룩에 즉각적인 긴장감과 드라마를 더했다. 러시아 발레의 미학과 유럽적 클래식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브랜드는 남성복 역시 충분히 감각적이고 서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번 시즌 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성복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훨씬 유연해졌다는 점에 있다. 수트는 더 이상 규칙의 상징이 아니며, 테일러링은 권위를 위한 장치보다 각자의 취향과 태도를 설명하는 언어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지금 모스크바의 디자이너들은 그 변화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가장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