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art

경기장이 아니라 집입니다만? 가구가 된 스포츠

2026.05.14.하예진

NOT A COURT, A HOME.

빅터 솔로몬 VICTOR SOLOMON

©VSVSVS Inc.

빅터 솔로몬은 스포츠를 파인 아트로 끌어올리는 아티스트다. 대중적인 스트리트 컬처인 농구와 역사적으로 종교와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를 충돌시키며 낯선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물은 극도로 반짝이고 빛나는 무엇이다. 마치 NBA의 화려함을 예술로 밀어붙이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 과장된 재료가 작품 전반에 활용된다. 농구 골대로 샹들리에를 만든 리터럴리 볼링 Literally Balling 시리즈는 그의 커리어를 보여주는 대표작. 백보드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림은 24K 금으로, 네트는 금 체인이나 샹들리에 크리스털로 재구성했다. 이토록 상반된 재료와의 조우 아래, 기능에 충실한 스포츠 장비가 궁전에 걸릴 법한 럭셔리 오브제가 되어 새로운 맥락을 획득한다.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종교적 상징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일까. 샹들리에로 변모한 골대에 농구의 성전에 놓인 토템처럼 신화적인 서사가 덧씌워진다. 고급 소재에 대한 탐구와 상징적인 내러티브를 결합하는 그의 방식은 스포츠 트로피 디자인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작가가 운영 중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VSVSVS INC는 NBA, NFL 등 주요 리그의 챔피언십 트로피를 제작한다.

타이렐 윈스턴 TYRRELL WINSTON

타이렐 윈스턴은 버려진 사물들을 다시 엮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거리에서 수집한 오브제들은 작가의 손을 거치며 더 이상 폐기물이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물질로 다시 읽힌다. 그의 작업은 길가에 버려지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한, ‘사연 있는’ 물건에 남아 있는 지속적인 에너지를 탐구하고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테면 골대의 일부였던 네트를 메탈 처리해 만든 작업에는 이런 사연이 있을 테다. 득점의 순간을 받아내던 네트는 제 기능을 잃고 버려졌지만, 그 형태와 서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오브제로 새로 고침된다. 이런 작업은 우리가 흘려보낸 것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남겨진 것은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물들을 병치하며 그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끌어내는 작업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또다른 작업에서는 버려진 농구공, 뉴포트 담뱃갑, 미술 서적이 함께 놓인다. 서로 다른 시간과 맥락을 지닌 사물들이 한 구조 안에서 병치된 채 각각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은 채 공존한다. 버려진 것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단지 다른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타이렐의 작업은 사소해 보이는 인간 존재의 흔적 속에도 여전히 지속적인 의미가 남아 있다는 걸 떠올리도록 우리를 은근하게 밀어붙인다.

MWO

매년 전 세계에서 3억 5천만 개 이상의 테니스와 파델 공이 생산되지만, 대부분은 몇 번 사용되지 못한 채 폐기된다. 고무와 펠트가 겹겹이 결합된 구조라 재활용도 어렵다. 바이오 디자이너 마틸드 위톡 Mathilde Wittock의 관심은 이같은 폐기 자원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는 연구로 향한다. 그녀의 디자인 스튜디오 MWO는 버려진 테니스공을 새로운 소재로 바꿔, 소리를 흡수하는 가구와 공간 구조를 만든다. 대표 작업인 사운드바운스 Soundbounce는 버려진 테니스와 파델 공을 다시 가공해, 벽 패널부터 파티션, 벤치, 라운지 체어까지 다채로운 아트 퍼니처로 새 생명을 부여한다. 제품 하나에 1제곱미터당 약 283개의 공이 재사용되는데 이는 약 8.5킬로그램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친환경이지만 디자인에 타협은 없다. 테니스공 고유의 촉각적인 감각을 유지하고, 기존의 선명한 테니스공 컬러에서 톤을 낮춘 그윽한 그레데이션 컬러를 자체 개발했다. 새로 태어난 모습은 가구에 가깝지만 버려진 테니스공을 가공한 이 소재의 본질은 공간의 소음을 조절하는 데 있다. 소리를 흡수해 공간의 울림을 줄이는 모듈형 음향 소재로, 음향 연구소 테스트를 통해 높은 수준의 소리 흡수 성능도 검증됐다. MWO의 작업은 폐기된 소재를 재사용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버려진 공은 다시 쓰임을 얻고, 전혀 다른 역할로 공간에 남는다.

피시스 PIECES

©Karl Hab

브루클린 기반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언 에스테틱 퍼슈트 An Aesthetic Pursuit가 전개하는 홈 디자인 라인 피시스. 부부 디자이너 제니 카플란과 크리스 코라도, 그리고 오랜 협업 파트너 타이샤 쿰스가 이끄는 이 팀은 익숙한 것의 형태를 비틀어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이들의 두 번째 컬렉션인 코트 시리즈 Court Series는 스포츠 문화에서 출발한다. 스포츠 코트 위에 그려진 선과 색,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이 영감의 재료가 된다. 코트의 그래픽은 확대되고, 잘리고, 재조합되어 러그와 스툴 세라믹 같이 전혀 다른 물성으로 재해석된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미학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테니스 코트를 닮은 그라스 코트 Grass Court 러그는 이토록 매력적인 변환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디자인. 테니스 코트의 기하학적 선과 구조를 뼈대 삼고, 울과 비스코스를 혼합한 소재를 강렬한 색으로 염색한 러그다. 다양한 핸드 터프팅 기법으로 제작해 표면에 입체적인 높낮이와 질감이 표현되어 평면적인 코트의 이미지를 촉각적으로 살아 있는 구조로 바꾸어놓는다. 그라스 코트는 경기장의 일부를 잘라낸 단면에 가깝다. 테니스 코트의 연장선상처럼 그라스 코트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공간의 결이 달라진다. 코트의 선과 색이 바닥을 채우며, 정적인 공간에 스포티한 리듬이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