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네 가지 색깔, 크루넥 니트

2013.08.22GQ

크루넥 니트를 새로 살 때마다, 아름다운 죄를 짓는 기분이다.

Margaret Howell
마거릿 호웰의 이 수수하고 평범한 룩은 그야말로 최적의 조합, 최상의 배합이다. 아주 개인적인 기준이고, 감상평을 적자면 런웨이보다는 일상에서 고졸하게 빛날 룩이라고 하겠다. 케이블 니트와 울 팬츠, 투박한 구두는 각각도 좋지만, 함께 있을 땐 더 이상의 파트너가 없다. 게다가 남색, 회색, 검정의 가뿐한 ‘하모니’. 니트의 두께와 몸에 맞는 정도도 훌륭하고 팬츠의 길이도 딱 알맞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앞머리를 널 듯 부슬부슬 내리지 않고 시원하게 확 넘긴 후 쓴 도톰한 베레. 그리고 더 좋은 건 되는대로 집어 쓰고 나온 것 같은 안경이다. 어벙하면서 어딘지 덜떨어져 보이는, 이런 종류의 매력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생각나는 단어가 있지만 차마 여기 적을 순 없다. 강지영

Ami
남자가 스웨터를 입으면 뭔가 있어 보인다. 묵직한 검정색 스웨터는 어두운 과거가 있는 남자 같고, 짙은 갈색 하이넥 스웨터는 고등교육을 받은 편집증 환자, 사진처럼 옅은 크림색 크루넥 니트를 입은 남자에게선 고집스러운 작가 냄새가 난다. 산책을 좋아하고 몽유병 같은 기괴한 병도 있는 남자. 크루넥 니트는 얇은 것으로 골라 재킷과 함께 입어야 한다. 다 드러내지 않을 때 훨씬 아름다우니까. 빨간색 비니는 탐험가다운 풍모, 부츠는 거침없는 기세의 상징이다. 이런 룩엔 세련된 향기보단 지난 일주일의 냄새가 다 들어찬다면 더 좋다. 독한 술 냄새, 연하게 밴 담배 냄새, 미묘한 머스크 향, 체취가 한 데 뒤섞인 ‘쿰쿰’한 냄새여도 괜찮다. 오충환

Hermés
크루넥은 확실히 남자가 입어야 멋지다. 평범한 크루넥 니트지만 굵은 목과 묵직한 어깨에 착 내려앉으면 완벽한 형태감이 살아난다. 니트 룩은 색깔의 어울림이 제일 중요한데 새하얀 터틀넥과 곶감색 니트, 개나리색 바지의 조합은 사실 상상도 못했다. 색깔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베로니크 니샤니앙답다. 쇄골 뼈를 웃도는 적절한 목선, 리브단을 손목과 밑단 끝에 넣는 대신 목선에 보일 듯 말 듯 넣는 세심함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충분한 시간을 써서 공들여 만든 티가 확 난다. 이 룩에 재킷을 덧입든, 바지만 바꿔 청바지와 입든 다 괜찮다. 사실 노란색 바지는 좀 부담스러우니까. 김경민

Prada
아가일, 페어아일 스웨터를 거쳐, 아일랜드의 클랜 패턴을 그대로 재현한 아란 스웨터까지 ‘요즘 대세’를 자처하고 나설 테지만, ‘그냥’ 크루넥 스웨터야말로 단연 멋지다. 무늬나 장식 없이 색깔과 형태가 완벽한 크루넥 스웨터를 입으면, 잘 지은 고시히카리 쌀밥을 먹는 기분이 든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듯, 입으면 입을수록 점점 더 멋있어진다. 그러나 그만큼 완벽한 크루넥 스웨터를 만나는 건 드문 일인데, 프라다 쇼에서 이 스웨터를 보는 순간 “정답!”을 외치며 손을 들 뻔했다. 같은 회색인데도 미묘하게 다른 수만 가닥 털실의 뒤엉킴. 적절한 너비와 조임. 그냥 입어도, 안에 입은 셔츠가 삐죽 튀어나와도 좋을 중도적인 길이. 백 점 만점에 백십 점이다. 박태일

    에디터
    강지영, 오충환, 김경민, 박태일
    포토그래퍼
    FAIRCHILD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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