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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서

2016.07.18유지성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서 2주를 지냈다. 낮과 밤이 똑같아졌다.

공항에서 기차로 15분. 암스테르담 중앙역의 정문으로 나가면 도시의 중심인 담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 ‘담락 거리’가 곧게 뻗어 있다. 그 거리를 따라 내려오다 어느 골목으로든 좌회전을 하면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낡은 백화점 뒷골목도, 시장통의 구석도, 기차역 근처 후미진 길도 아닌, 도시의 시작에서 심장으로 향하는, 인체에 빗대자면 한쪽 허파 정도의 입지와 그만큼 광활한 규모의 그곳.

이 도시 사람들은 그곳을 ‘레드 라이트 디스트릭트’라 부른다. 번역하자면 홍등가. 하지만 암스테르담의 레드 라이트 디스트릭트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세대주택도 많고, 전지구적 품절 사태를 일으키는 스트리트 브랜드의 본점도, 남반구까지 낱낱이 훑어 희귀한 음반을 판매하는 레코드 가게도 있다. 그 사이사이에 ‘윈도’라 불리는, 여자들이 서 있는 속이 붉고 투명한 유리문이 있다. 그러니 홍등가(라 불리는 동네)에 접어든다고 곧장 욕망이 솟는 밤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물며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된, 때마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구교회의 외벽을 마주 보고도 예외 없이 윈도가 듬성듬성 들어서 있으니.

레드 라이트 디스트릭트에 2주가량 머물렀다. 밤을 잊은 도시. 어쩌면 맞고 어쩌면 틀린 말. 여름이면 오후 10시까지 해가 떠 있으니 이 도시가 (특히 이 계절만큼은) 밤을 잊은 것은 맞겠으나, 그보다 낮이든 밤이든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이 더 알맞을 것이다. 이른 오후 윈도의 커튼이 열린다. 주요 거점마다 들어선 주점도 비슷한 시각부터 성업중. 그 주점을 마주 보고 선 윈도야말로 ‘명당’일까? “똑똑똑”, 여자들의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운하를 넘어 반대편까지 줄기차게 들려오니까. 피리 소리에 이끌린 하멜른의 소년들처럼 남자들은 다리를 건너 유리문 속으로 사라졌다.

남자들이 다가오든 말든 몸을 비틀어 굴곡을 뽐내는 여자, 두꺼운 뿔테 안경에 가터벨트를 드러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자, 창문 안에서 거리로 키스와 윙크를 날리는 여자…. (2013년 총 조사에 따르면) 레드 라이트 디스트릭트에는 4백9개의 윈도가 있다. 9백 명이 넘는 여자, 일일 약 4천 명의 이용객, 평균 6~15분의 시간, 매일 소비되는 2천 개 이상의 콘돔. 윈도를 포함한 내부 공간은 여자들이 직접 빌려서 쓴다. 그리고 평균 1백50유로(약 20만원) 정도의 금액을 매일 건물주에게 지불한다. 또한 구역이나 골목마다 각기 다른 인종별, 장르별 특징이 있다. 장르라면 전기를 이용한 ‘일렉트릭 섹스’나 SM 플레이 등을 전문으로하는 곳도 있으며, 어디서든 촬영은 엄격히 금지된다.

“난 파리에서 나고 자랐어. 그런데도 암스테르담은 정말 달라. 여기 내 또래들은 틴더 앱이유행하기도 전부터 틴더를 쓰는 것처럼 연애를 하고 있었다니까?” 암스테르담 거주 5년 차, 자유분방이란 말이 자석처럼 따라붙는 스물다섯 살의 ‘파리지엔’은 이 도시의 거침없는 연애와 섹스에 여전히 놀라워했다. “그런데 오히려 남자들은 유럽의 몇몇 나라처럼 적극적이진 않아. 오히려 순간적인 쌍방합의에 가깝지.” 데이팅 앱인 틴더는 쉽고 간단하다. 상대방의 사진을 왼쪽으로 쓸어 넘기면 거절, 오른쪽으로 넘기면 당신이 좋다는 뜻. 그렇게 서로 ‘좋아요’를 보낸 사람들끼리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질척거릴 일도 없고 실패할 확률도 낮다. 어쩌면 틴더를 닮은 이 도시의 연애야말로 윈도 앞에서 벌어지는 행동 양식과 비슷하지 않나? 이름도 국적도 알 수 없는 여자의 유리문으로 다가가는 것. 그렇게 보내는 몇 분 혹은 몇 시간.

흥정인지 유혹인지 윈도우에 바짝 다가서 말을 거는 남자들, 그것을 내치는 대신 기꺼이 긴 대화에 응하는 여자들, 창문을 두드리거나 손짓할 뿐 그 이상은 잡아끌지 않는 그녀들의 태도, 개중에 보이는 키가 훌쩍 큰 남자들은 관광객이 아닌 여기 사는 사람들일까? 모두의 취향, 모두의 친절, 모두의 섹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엔 너무 버젓한 이 광경에, 결국 모든 게 헷갈리고야 마는 빨간 불빛의 도시. 지금은 암스테르담의 밤 9시 30분. 여전히 해가 밝다. 거리의 붉은 빛도, 취한 사람들의 붉은 얼굴도.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레이터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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