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묻는 직업의 가치 | 지큐 코리아 (GQ Korea)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묻는 직업의 가치

2020-09-22T19:42:43+00:00 |tv|

아직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시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친절하고 유혹적인 안내서.

“맞죠? 3수인가 4수인가 한 언니. 아직도 연주하나 보네요.”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매우 직설적이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뿐만 직설적인 게 아니다. 이 드라마는 당신이 타고난 재능을 하나쯤은 갖춘 사람인지 과감히 테스트하려 든다. 당연히 먼저 테스트에 접어든 사람들은 바로 이 드라마의 두 주인공이다. 이미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천재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은 재능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믿으며, 반대로 재능이 없어서 늘 부진을 면치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채송아(박은빈)는 그 말에 화를 낸다. 어느 쪽의 입장에 공감하든 상관없다. 이미 드라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연출의 색감과는 반대로 차갑고 냉정하게 시청자를 바라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 어린 라흐마니노프를 처음 마주한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의 니콜라이 즈베르프 교수는 말한다. “스쳐지나갈 사람하고는 악수 안 해. 네가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를 증명해봐.” 채송아는 국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켜지만, “3수인가 4수인가 한 언니”에 머무를 뿐이다. 즉, 그는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를 증명”할 수가 없다.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받아온 강요를 마주한다. 모두가 베토벤을, 모차르트를, 라흐마니노프나 브람스를 꿈꾸라고 가르치는 현실 말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다. 이 드라마는 실제로 유수의 대학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작가의 이력을 백 번 활용해 말한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니 마음의 준비를 할 것.

이토록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드라마에서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브레이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화려한 예술인들 사이에서, 먹이사슬의 최하위에도 끼지 못하는 채송아가 주인공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켜는 젊은 음악가들은 아름답고 우아한 존재처럼 묘사되지만, 공연 중 휴식시간을 뜻하는 ‘인터미션’이라는 이름을 지닌 펍에 앉는 순간 예술의 효용을 자조한다. “그런데 정말로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아무도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순간, 여기에 망설임 없이 답을 내놓는 것이 바로 채송아다. “그래도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다고요. 왜냐면 우리는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있는 어른이자,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며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어른인 것이다.

타인에게는 취미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영역, 그래서 대학 구조조정이 있을 때도 인문대학과 함께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던 영역. 혹자에게 예술은 실용성이 없다는 점에서 사치품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도 하며, 실제로 예술은 의식주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치의 영역에 가깝다고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채송아의 입을 빌어 말한다. “음악을 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그래도 믿어야”만 이 산업이, 세계가 유지될 거라고. 정작 “나조차도 음악으로 위로받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던 채송아가 절망적인 순간에서 박준영이 말없이 건네는 연주에 불현듯 눈물을 터뜨린 순간은 예술이 한 사람의 세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예술의 얼굴을 하고, 작가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직업이 지닌 가치를 믿느냐고.

이 드라마가 조용히 일으키는 파동은 여기에서 나온다. 굳이 예술을 전공하거나 미술, 음악, 공연 등에 취미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 이 드라마의 직설적인 물음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단순한 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보는 사람이든 작가처럼 매번 새로운 것을 써내야 하는 사람이든 간에,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하는 일에서 단 한 번이라도 “가슴이 뛰는” 순간을 발견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시원한 답변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당신이 선택한 길은 가치 있는 것이 되고, 채송아처럼 비록 꿈만 꾸다 끝나는 삶일지라도 그 삶이 절대로 의미없는 길은 아니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의 제목은 결국 당신의 삶을 사랑하냐는 물음이다. 브람스, 슈만, 클라라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 각자의 삶이었다는 뜻이다. 재능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완성되는 게 진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