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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출연료는 왜 치솟고 있는가? 전문가가 말하는 이유

2024.05.13김은희

배우 몸값이 높아질수록 국내 제작 환경의 앓는 소리도 커져간다. 배우들의 출연료는 왜 치솟고 있나? 그 발화점에는 무엇이 있는가?

글 / 이지현(영화평론가)

올해 초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드라마 산업의 위기에 관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제작사와 방송 플랫폼 관계자들은 배우의 급격한 출연료 상승에 관해 우려를 표시했고, 상반기를 지나면서 당시의 걱정은 실재가 되어 나타났다. 얼마 전 <매거진 한경>은 ‘배우 몸값 1회당 3억원, 치솟는 K콘텐츠 제작비’란 제목의 기사를 내 놓았는데, 해당 기사는 지상파에서 회당 1억원을 받던 배우가 넷플릭스에서 2억 원의 개런티를 받았고, 이후 스스로 출연료 기준을 상향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톱 배우의 출연료 문제는 대중에겐 다소 악랄하게 비칠 우려가 있다. 만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작품이 실패한다면, 사태의 원인으로 그 배우가 지목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패를 통한 수익 창출의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배우에게도 나쁘게 작용한다. 에드가 모랭의 언급처럼 스타는 “현대적 생산품”의 일부지만,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아니다. 그러므로 배우 개인의 보호를 위해서도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은 다소 위험하다. 대부분의 스타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투자 지표를 형성하지만 그 힘이 안정적이지는 않다.

작년 말. 영화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어느 감독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투자 관련 문제가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고 설명하면서, 그는 주연 배우의 승낙으로 오랜 고민의 과정이 단번에 해결되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다. 글로벌 OTT의 출연 이전부터 줄곧, 스타의 프로덕션 장악력은 강력 했다. “우리의 작업은 인간의 얼굴과 함께 시작된다”고 고백한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언급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 인간의 얼굴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 도없다”고 말한 칼 드레이어의 직관도 함께 상기된다. 어쩌면 제작 환경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요소가 부추긴 위기감으로 인해 배우에 대한 불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K-영상 콘텐츠의 제작 생태계가 급변하는 시점에서, 업계를 떠도는 불안감이 스타의 몸값 잡기로 귀결되고 있는 듯 느껴진다.

<포브스>는 얼마 전 ‘2023년 할리우드 배우 수익 순위’에 대한 집계를 발표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영화 매출이 소개된 결과라 눈길이 갔다. 기사는 작년에 최고 수익을 올린 배우로 아담 샌들러를 지목했고, 영화 <바비>(2023)의 주인공인 마고 로비를 2위에, 그리고 같은 영화에 출연한 라이언 고슬링을 4위에 올렸다. <포브스>의 집계는 아티스트들의 계약 내용만으로 순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에이전트나 변호사 등 전문가의 인터뷰와 흥행 데 이터를 기반으로 수치가 추정된다. 그리고 해당 결과에는 극장 개봉작의 추가 수익이 포함된다. 작년에는 특히 할리우드의 파업으로 TV 프로그램 다수가 지연되 거나 단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개봉작의 수익이 늘어났다.

기사 내용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아담 샌들러였다. 그는 지난 해4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와 스탠딩 콘서트 투어에 참여한 결과 막대한 계약금을 얻었다. 이는 6위의 제니퍼 애니스톤과 비교된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애플 TV의 여러 콘텐츠에서 활약했으며, 과거에 출연했던 TV 드라마 시리즈의 혜택으로 큰 수익을 올렸다. 바로 <프렌즈> 시리즈다. <프렌즈>나 <빅뱅이론>과 같은 메카히 트급 프로그램들은 재방송 여부와 계약 관계에 따라 장기적으로 또 다른 개런티가 보장된다. 이러한 계약 방식은 현재의 넷플릭스 방침과는 상반된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계약 조건은 할리우드의 스타들에게 많은 걱정을 안기고 있다. 시즌 전체를 일괄적으로 계약하는 플랫폼의 방침이 부수적인 판권을 전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장기적으로 어떠한 수익도 배우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작년 업계의 1위는 아담 샌들러였지만, 향후 그가 지속적으로 비슷한 이득 을 취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케이블 TV 스타로 활약하는 <왕좌의 게임>의 출연진들이 훨씬 더 유리해 보인다. 비슷한 우려가 국내 제작 환경에서도 발견된다. 바로 <오징어 게임>(2021)의 사례가 그렇다. 넷플릭스는 황동혁 감독의 이 놀라운 시리즈에 무려 2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그리고 이 작품만으로 9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챙겼다. 하지만 업체 방침에 따라 제작진이나 배우들에게 흥행 인센티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넷플릭스였기에 가능한 투자였지만, 승자 역시 그들 뿐이었다. 영화 <승리호>(2021)의 개봉 사례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식적으로 이 영화에 투입된 자금은 2백40억원대로 알려져 있는데, 플랫폼은 3백 10억원 정도에 구매했다. 개봉 직후에는 제작비 회수에 관해 회의적인 입장이 많았지만, 업계 다수는 넷플릭스의 향후 국내 영화계 개입을 우려했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자본주의의 물결에서 그 지표를 톱 배우의 위상이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로컬에서 끌려가던 예술적 열망 사이에서는 불만이 표출된다. 여러 고민의 틈새에서 넷플릭스는 여전히 국내 영상 시장을 장악하는 중이다. 다양한 콘텐츠 제공을 바탕으로 시장 우위를 보이던 기존 제작 방식은 메커니즘이 바뀌면서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만약 K-영상 콘텐츠가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담보한다면, 그리고 잠정적인 대규모 시장을 확보한다면, 실상 논쟁은 불필요하다. 배우 몸값이 부른 위기감이 투자의 다양화에 대한 담론으로 해결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리우드의 기존 계약 방식은 힌트가 되어 준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이미 두루 경험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한 <어벤져스> 시리즈를 떠올린다. 작년 보도에 따르면 이 작품을 통해 배우가 얻은 수익은 한 해에만 무려 5천만 달러에 이른다. 계약에 따른 추가 수익이 합산된 결과로, 이러한 내용을 우리는 ‘러닝 개런티’라고 부른다. 러닝 개런티의 첫 시작은 <포레스트 검프>(1994)였다. 영화사 파라마운트가 투자를 고민하는 사이, 배우 톰 행크스가 결단을 내렸다. 그는 1천만 달러의 고정 수수료를 포기하고 추가 계약을 진행했으며, 알려진 것처럼 영화가 성공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흥미롭게도 실패 사례와 달리, 성공한 배우의 몸값은 대중들에게 오히려 칭송받는다. 아무리 상상을 뛰어넘는 비용이 지불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공정하 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방식을 일종의 ‘계층형 보너스 시스템’이라 부를 수 있다. 다만 이 방식의 계약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배우가 제작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모든 경우에, 수익과 연관된 투명한 감사 과정이 요청된다. 정부의 통제 시스템 역시 이 과정에서 다양하게 검토 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정부 주도로 ‘제작비 대비 배우 보수의 상한선 설정’에 대한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좀 오래된 내용이긴 하지만, 이러한 가이드를 바탕으로 지원금이 투입된 모든 영상물의 제작비 비율이 조정된다. 그리고 최근 프랑스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압박 정책을 발표했다. 국립영화영상센터(CNC)는 TV에 적용하던 제작비 순환 모델을 변형해서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합의를 거쳤다. 그 결과 넷플릭스는 앞으로 매출의 최소 20퍼센트 이상을 프랑스나 유럽 시장에 재투자 해야 한다. 기존에 존재하던 방침을 일부 변형해서 만들어낸 약속이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정부 주도로 넷플릭스와 합의가 이루어졌다. 4년간 무려 3조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격적인 투자에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더 건전한 방향으로 자금 유통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추가 장치가 있어야 한다. 단언 컨대 배우 몸값이 알리는 위기감의 고조는 시스템의 파괴를 지향하지 않는다. 스타 시스템은 원래부터 동일화와 사회화의 모델을 바라보며 성장한 장치다. 그러니 그 성취를 왜곡할 필요는 없다. 표준화가 생성되더라도 예술적 표현은 억제되지 않아야 한다. 어려운 균형감이지만 반드시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도구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