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보드카에 빠진 보드카

2011.08.19GQ

일렁이는 보드카 속에 보드카 한 병이 출렁인다.

아침마다 후회로 해장하는 게 두려워 요즘은 잘 경험하지 못하지만, 술 마실 때 가장 짜릿한 순간은 필름이 끊기기 직전이다. 그 순간은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할 때처럼 모든 장면이 아름답다. 아주 약간 슬로 모션이 가미된 영상 같기도 하고, 왠지 호소력 있는 유머를 구사하는 것 같은 순간. (물론 음주는 적당히, 주사는 책임감 있게 부려야 한다지만, 청춘은 뜨겁고 마실 술은 많다.) 앱솔루트 보드카에서 최근 출시한 리미티드 에디션 ‘앱솔루트 일루젼’을 처음 봤을 때 그 기분 좋은 순간이 떠올랐다. 매해 두 번씩 패키지 마케팅을 꾸준히 하고 있는 앱솔루트의 이번 여름 에디션은 라벨이 물에 어른거리는 효과를 표현한 병이다. 병 뒤쪽에 라벨을 좌우 반전시켜 입힌 다음 이 라벨을 병 앞에서 쳐다보면 술에 비쳐 라벨이 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색깔도 없고 향도 없는 술인 보드카만이 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이 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른해지는 게 꼭 필름이 끊기기 직전 순간 같다. 분명 이 병을 디자인한 사람도 똑같은 기분을 느껴봤겠지? 그게 아니라면 풀이 있는 야외에서 술을 마시다 아이디어를 떠올렸거나, 술잔과 술잔을 테이블에 늘어놓고 신나게 술을 마시다 디자인을 시작했을 테다. 이달엔 야외 수영장을 다녀온 뒤 친구와 함께 거실에 드러누워 이 앱솔루트 보드카를 마셨다. 수영장 안을 헤엄치던 기분이 계속 이어지는 듯했다. 사진은 보드카 병을 보드카 속에 빠뜨린 것이다. 보드카로 꽉 채운 풀장 안에서 마음껏 술을 마시는 기분이랄까? 앱솔루트의 패키지 마케팅은 자꾸 보드카를 마시게 만드는 요상한 힘이 있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김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