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안대회 선생님

2011.12.05정우영

안대회는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다. 그래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다.

은행나무는 하늘의 노랑을 땅으로 옮긴다. 성균관의 은행나무는 6백 년이 넘었다. 유생들은 그 앞에서 문득 겸허해졌을 것이고, 글 읽는 이유를 생각했을 것이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안대회가 그 밑으로 왔다. “지금 우리 교육은 거의 백 퍼센트 미국식 교육이에요. 사회라는 말은 ‘Society’의 번역어죠. 조선에는 사회란 말이 없었습니다. 교육의 뼈대 자체가 달라져서, 한국의 고전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요. 정말 훌륭하다면 내 할아버지가 아니라 남의 할아버지에게 배우는 게 더 낫다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 생각엔, 이 땅에서 과거에 했던 경험은 어떤 식으로 굴절됐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과 굉장히 깊은 연관 관계가 있어요. 큰 변화가 있었지만 정서상 굉장히 연결돼 있어요.” 그건 이를테면, 같은 곳의 같은 은행나무를 볼 수 있기에 가능한 만남이다. 안대회는 이 만남의 성실한 중매자다. “지금이나 그 시대나 인간 사는 근본은 다르지 않다”는 확신으로, 때로는 구름처럼 어렴풋한 윤곽까지 “필자와 번역자의 중간 즈음”에 서서 전한다. 하지만 안대회가 소중한 것은 조선 문화사와 고전 시 전문가로서, 그것을 현재로 소환하는 역할에 한정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재미없는 인생은 별로 없어요.” 안대회는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을 거둔 채, 일반적인 고전으로 보기에는 하찮은 분야와 하찮은 사람들을 다룬다. <추재기이>의 추재 조수삼이 하층민을 다루면서 그랬듯이,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따뜻하다. 그를 보면,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그래서 스스로가 귀해지는 건 고전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같다. 안대회는 자신의 제자들인 한문학과 학생들이 “더 공손하고 깍듯하다”는 평판을 듣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 역시 윤리적이지 못할진 모르겠지만,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하긴 합니다. 고전의 영향 속에서 행동이 자꾸 그런 쪽으로 옮겨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대회가 쓰는 엄청난 양의 단행본과 논문, 칼럼 등을 근거로 단순히 다작이라고 말하기 꺼려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가 다작한다는 의식 없이 자신을 이끄는 ‘방향’으로 옮겨간 결과가 곧 그의 저작이기 때문이다. 올해 나온 책만 봐도, <천년 벗과의 대화>는 약 10년 동안 쓴 칼럼을 모은 것이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햇수로 4년 동안 전국의 섬을 기행한 결과다. <북상기>는 작년에 번역을 끝내놓은 것이다. 곧 발매할 <정조 치세어록>은 작년부터 올봄까지 썼다. 안대회는 “유사 이래 연구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이든, 중국 도서관이든 얼마든지 검색할 수 있다”고, “일관된 자기 생각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과거보다 더 빠르게 저작도 논문도 쓸 수 있다”고 했다. 근년에, 10년 전부터 모아온 노비 시인 정초부의 작품을 “시집으로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올 한 해 꼬박 하고 있는 또다른 작업은 시론인 동시에 시인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첩>을 겸재 정선의 그림과 함께 풀이하는 작업이다. 제목처럼, 시가 품어야 할 ‘풍격’을 24개로 분류한 이 탁월한 저작은 중국 문학사에 우뚝한 발견으로 손꼽힌다. 혹시 이 가운데 지향하는 풍격이 있냐고 물었더니, “실경實境”이라고 했다. 그가 번역한, ‘실경’에 대한 사공도의 문장이다. “감정과 본성이 가는 대로 따를 뿐/기묘한 것을 억지로 찾지 않는다/만나는 것을 하늘에 맡길 때/맑게 울리는 드문 소리이리라.” 안대회라는 ‘방향’에서 배움을 구한다는 것이 또한 그럴 것이다. 은행나무 잎 떨어지는 소리 들릴지도 모르겠다.

    에디터
    정우영
    포토그래퍼
    김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