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시간을 달리는 남자

2012.11.12GQ

애드리언 브로디는 뉴욕에서 악동처럼 자랐고, 힙합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수트를 입고 미간에 주름을 잡으면, 갑자기 시간은 사라진다.

수트와 셔츠는 타미 힐피거 컬렉션, 넥타이는 구찌.

수트와 셔츠는 타미 힐피거 컬렉션, 넥타이는 구찌.

애드리언 브로디가 편한 자세로 무심하게 한쪽을 바라보고 있다. 1931년에 완공된 뱅크스 헌틀리 빌딩의 로비가 무척 맘에 드는 모양이다.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여자친구 라라 리에토를 바라보며 가늘게 미소 짓는다. 늘씬한 다리에 자로 잰 듯한 몸매, 엉덩이까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라라 리에토는 할리우드 여자들의 전형적인 유니폼이 된 카우보이 셔츠와 짧은 반바지에 묵직한 부츠를 신고 있다.

리에토는 완전히 오늘을 사는 여자다. 반면에 브로디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시대, 그 어떤 장소에도 어울리는 사람 같다. 그가 과거의 멀리 떨어진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많이 출연했기 때문이거나, 홀로코스트 영화 <피아니스트>나 인도를 배경으로 한 <다즐링 주식회사>에 출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브로디는 어쩐지 시대를 초월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일순간 넋이 나간 듯, 뭔가에 홀린 듯 수줍음을 타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화보촬영이 있었던 날은 무더웠지만 애드리언 브로디는 상쾌한 기분을 유지했고 누구보다 촬영에 집중했다. 주변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응하면서도, 동시에 먼 곳에 있는 낯선 사람 같은 인상을 풍겼다. 타임머신 안에서 방금 기어나온 사람 같다고나 할까? 그는 잠시 후에 입게 될 수트를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옷을 잘 입는 걸 좋아해요. 수트가 역시 최고죠.” 브로디가 여자친구의 손을 놓고 메이크업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강한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요?
남자들은 보통 감정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아야 강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장악해야 강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전 아버지에게 반대로 배웠어요. 남자는 감정이입을 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요. 그게 남자의 조건이 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좋은 남자를 만들어준다고 하셨어요. 아무튼 배우로 살아가면서 제가 가진 그런 능력이 일을 하는 데 해를 끼친 적은 없어요. 오히려 그 반대였죠.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어요?
아버지는 선생님이셨어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지, 아이들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잘 아는 분이셨죠. 관대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기도 했어요.

가장 최근작인 <디태치먼트>에서 선생님 역을 맡았죠? 주인공 헨리는 학생들을 잘 이해하지만 정작 본인은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어요.
맞아요. 헨리는 강한 남자가 아니라 비극적인 남자죠.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는 영감을 주고 격려하는 사람이에요. 세상에는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아이들이 넘쳐나요.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연기했던 헨리라는 선생님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죠. 그러면서 역설적이게도 한편으론 헨리가 아이들보다 훨씬 더 나약한 사람이잖아요? 전 이런 영화들이 저에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이런 형태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거,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좋아요. <디태치먼트> 속의 남자는 상처받기 쉽고, 그러면서도 방어기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나약하고, 어두운 남자죠.

    에디터
    앤 필리피(Anne Philippi)
    포토그래퍼
    KAI Z F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