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은 윔블던 주니어 대회 준우승자다. 요즘은 화내지 않는 법을 훈련하고 있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죠? 수능 걱정은 없겠어요.
네, 이제 운동만 하니까요.
윔블던 주니어 대회에서 준우승했죠? 강력한 스트로크 때문이라고들 했어요. 실책도 적고요.
스트로크에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자신감이 생기면 실수가 적어지나요?
위축되지 않으니까 연습한 대로 할 수 있어요.
‘내가 잘한다’는 느낌이 들면 오히려 실수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 게 자만이라면…. 자만심과 자신감은 다른 것 같아요. 자만심은 시합 끝나고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준우승 하고 왔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시합 전에 하는 버릇 있어요?
좀 많이 자려고 하는 편이에요. 무조건 아홉 시간 이상 자요.
꿈은 자주 꿔요?
정말 피곤하면 안 꾸는데 꿀 때도 있어요. 한때는 쫓기는 꿈을 많이 꿨어요.
그거 키 크는꿈 인데.
키가 183센티미터예요. 성장판 재보면 아직 열려 있대요.
키가 크면 서브가 강해질까요? 서브가 약점이라고 지적 받죠?
187센티미터 정도가 목표예요. 190이 넘으면 별로 안 좋아요. 너무 크면 민첩성이 떨어지니까요.
그럼 지금은 빠른 편이에요?
저는 빠른 편은 아니에요. 제 친형도 테니스 선순데, 형이 훨씬 빨라요. 키는 좀 작은 편인데 굉장히 민첩해요.
이제 시니어 대회 나가니까 형과 시합을 자주 하겠어요.
아직 한 번도 못 이겼어요.
형에게 유난히 약한가요?
실력 차이도 있는데…. 형이 왼손잡이라 상대하기가 어려워요.
형보다 잘하는 점은 뭐예요?
코치님께서 공 보는 눈이 좀 좋다고 하세요. 상대방이 어디로 칠지 예상을 잘하는 편이에요. 공이 어디로 갈지 본능적으로 보여요.
그건 타고나는 건가요?
그런 것도 있는데, 경험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제 시니어 경기도 출전하니까 나이 제한이 없잖아요.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형들하고 시합해보면 엄청 까다로워요. 형들이 노련해서 공 보는 눈이 진짜 좋아요.
10년 후는 어떨까요? 우리나라 테니스 선수 중에도 주니어 때 메이저 대회에서 준우승한 선수가 네 명이나 있었지만, 다들 시니어에서 빛을 보진 못했어요.
저와 같이 다니는 코치님이 그때 잘했던 형들을 다 보셨어요. 그래서 매일 뭐 때문에 안 됐는지 말씀해주세요. 주니어 대회에서 제일 큰 대회만 뛰니까 시설이 좋잖아요. 그러다 시니어 무대로 넘어오면 시설이나 분위기가 안 좋아서 적응을 잘 못한대요. 내가 여기서 왜 해야 하나 이런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저는 다들 거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테니스가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어요?
가끔 해요. “만약 여기서 성공을 못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 생각해요. 그 이상은 생각 안 해요.
테니스가 아니고, 다른 운동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가끔 몸 풀기로 축구를 하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고 비웃어요. 좀 개발이에요. 하하. 팀 뽑으면 항상 제일 마지막에 뽑혀요. 다들 진짜 테니스하길 잘했대요.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지 잘하는 운동이 있을 것 같긴 해요.
공부는 어때요?
관심 없었어요. 원래 눈이 약시가 심해서 테니스를 시작했어요. 예전엔 눈이 마이너스 0.3이었는데, 작은 글씨 안 보고 뛰노니까 0.6이 됐어요. 한데 그때 공부 좀 해놓을 걸 후회도 돼요. 영어로 인터뷰하고 싶어요. 외국 선수들한테 말도 걸고 싶고요.
조코비치가 우상이죠?
조코비치는 멘탈이 엄청 강한 선수예요. 올라운드 플레이어인데다, 파이팅도 엄청 멋있어요. 승부사예요.
내성적인가요?
테니스를 할 때는 전혀 아니고요, 친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는 좀 시끄러운 편이에요. 처음 만난 사람들하고는 낯을 좀 가리고요.
테니스도 좀 무던한 사람이 잘할까요?
예민해도 그걸 숨기는 선수가 잘하는 것 같아요. 자기 감정을 표출하면 안 돼요. 상대방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죠. 화가 나도 참아야 해요. 그래서 러시아 선수들하고 경기하면 좀 편한 게 있어요. 러시아 선수들은 다혈질이다 보니까 화내다가 한 세트를 그냥 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참 고맙죠.
조코비치 같은 경우엔 화를 막 내잖아요.
그런 선수들은 테니스를 많이 하다 보니까 감정 컨트롤이 되는 거예요. 일부러 화를 내면서 풀어버리는 거죠. 화를 내도 그 다음 포인트에 지장이 안 가요. 근데 저는 한번 화가 나면 아직 컨트롤이 안 돼요. 스스로 무너지게 돼요. 끝도 없이 계속 욱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코치님과 연습 중이에요. 화나도 참고 경기하기. 매 경기마다 참고 또 참고 있어요.
분노가 힘이 될 순 없을까요?
어떤 선수는 너무 소심해서 화를 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참기만 하다가 게임을 망치는 거예요. 속으로만 삭히다가 점점 소심해져서 자신감을 잃어버려요. 근데 그럴 바에는 열 받으면 라켓 한번 부수고 다음 포인트에 집중하는 게 낫죠.
일부러 상대 선수를 화내게 할 때는요?
그런 걸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선수도 있어요. 공을 밖으로 쳐낸다거나 상대방이 싫어하는 공만 주기도 하죠. 그런 선수에게 경기를 잘 푼다고 해요. 어쩔 땐 네트 쪽으로 들어오는 상대 선수 몸 보고 세게 때리기도 해요. 원래는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 그냥 돌아서버리죠. 서로 이기려고 시합하는 거니까 신경 안 쓰죠.
승부욕이 정말 강하겠죠?
전 좀 심해요. 뜻대로 안 될 때 화가 정말 많이 나요. 그럴 때마다 진짜 성격이 안 좋다고 느껴요. 좀 제 성격이 마음에 안들 때가 있어요.
혈액형이 혹시….
O형이요.
역시…. 요즘 고민 있어요?
가끔 심리 상담을 해요. 상담 선생님이 제가 자신한테 너무 엄격한 편이라고 말씀하세요. 그 말 듣고 깨달았어요. 운동할 때 특히 그래요. 운동 안 하고 오면 기분이 진짜 안 좋아요. 지금 동계 훈련 기간이라서 기초 체력 위주로 운동하는데, 너무 힘들어요. 근데 막상 쉬엄쉬엄하면 집에 와서 재미있는 TV를 봐도 엄청 기분이 나빠요. “아, 내가 왜 그랬지” 이런 생각이 들어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잘하고 싶어서요?
꿈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꿈은 역시 톱 텐?
톱 텐과 그랜드 슬램 둘 다요. 언제나 트로피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엄청 타고나는 거예요. 타고난 상태에서, 엄청난 노력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잘되겠죠. 사실 지금 랭킹이 낮은 선수도 딱 보면 느낌이 와요. 저 사람은 곧 랭킹이 높아지겠구나, 아니겠구나.
자신은 어떨 거 같아요?
전 모르죠. 제가 저를 볼 순 없으니까요.
이길 때 징크스가 있어요?
양치질할 때 양치 다 하고 입 여섯 번 헹구는 거요.
오늘도?
최근엔 계속 그래요. 그럼 이겨요.
- 에디터
- 양승철
- 포토그래퍼
- 목정욱
- 스탭
- 헤어, 메이크업 / 이가빈, 어시스턴트 / 이채원, 박현상, 스타일리스트 / 박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