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탄생-최치원전>, <교감>, <불쌍>, <부엌 – 삶의 지혜를 담다>, <총,천연색>, <타타타 : 여여하다>는 올해, 미술가 최정화가 연 전시 제목이다. 그의 작품은 어디에 있든 모든 걸 이겨냈다.
올해 당신의 작품은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주변을 전부 이겨내는 것 같았다. 특히 ‘연금술’과 ‘세기의 산물’은 서 있거나, 기둥이 되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어도 그 화려한 색 때문에 ‘살아남겠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생존의 미술이라…. ‘이미꽃’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왕관을 바쳤다. 이 말을 하면 모두가 슬퍼할까 봐 전시 설명에선 뺐다. 지금 온 세상의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빛이다. 그리고 색. 번쩍번쩍이는 건 주술이고. 나의 작품이 그런 역할을 한 것 같다.
사실 당신이 올해만 화려한 색을 쓴 건 아니다. 하지만 특히 올해, 다양한 색을 작품 안에 밀어붙였다고 해야 할까? 예전부터 “Your heart is my heart”라고 말했다. 작가가 만든 작품보다 관객의 세계가 훨씬 더 훌륭하다. 디지털 이후의 세상은 작품이 독보적인 것이 아니라 느끼는 사람이 유일무이한 시대다. 올해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 다가갔다면 그건 나의 변화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도 그렇고.
그 색들은 민속신앙을 향한다. 알록달록함의 근본은 민속신앙에서 시작한다. 흔히 무시했던 오방색은 민속, 혹은 무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리고 그 색은 생활의 색이다. 하지만 잠깐, 기독교가 그걸 대체한 거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존중했다. 복잡하다. 어제의 역사니깐. 지금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완전히 짬뽕으로 섞인, 엉망진창이다. 이게 한국의 현재 모습이다. 난 여기서 희망을 봤다. 그리고 이걸 자랑으로 여긴다. 어지러운 간판도 제발 고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있는 거 건들지 말고, 이대로 청소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묵히고 삭히기. 그리고 중요한 게 빛과 볕이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문구가 있다. “황금은 태양의 그림자. 태양은 신의 그림자.” 빛과 볕은 모든 곳에 골고루 스며든다.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 모두. 그 덕분에 대자연이 숨을 쉬고 꽃을 피운다. 비로소 거기에서 색깔이 나온다. 네팔, 칠레, 브라질, 덴마크 색은 모두 똑같다. 이걸 우리가 무속인 줄 알고, 민속인 줄 알고, 억눌러놓았다. 그게 중요한 건데, 그 색이야말로 아름다운 꽃인데.
그 색이 덮고 있는 건 플라스틱이다. 리움에서 열린 <교감>전에서 당신의 작품, ‘연금술’을 봤다. 플라스틱 위에 색색으로 크롬 도금되어 밧줄처럼 길게 매달린 작품이었다. 강제동선으로 관람해야 하는 고미술 박물관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고려 청자를 본 후 ‘연금술’을 보고, 다시 조선 백자를 보고 나와서도 그 작품을 봐야 했다. 과거의 첨단 소재와 현대의 첨단 소재가 완전히 다른 색으로 부딪혔다. 하지만 전시 소개에는 “보잘것 없는 플라스틱으로 예술의 가치를 찾는다”고 쓰여 있다. 과연 플라스틱이 싸구려 소재일까? 심지어 그 작품은 FRP라는 최첨단 소재로 만들었다. 내 작품을 이야기할 때마다 ‘싸구려’라는 말이 나온다.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 나는 한 번도 싸구려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전부 자기네들끼리 만든 말이다. 내가 플라스틱과 처음 만난 건 인도 여행을 하면서다. 비닐봉지도 씻어서 사용하는 걸 봤다. 여자들은 플라스틱 통을 하나씩 들고 강가에 다가가는데 그 모습이 장엄했다. 플라스틱은 영스러운 도구였다. 신성한 도구. 우리는 지금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만든 작품 속에 있으면 여기가 연옥인가 싶다. 그거다. 그게 내가 원한 거다.
종교적인 걸 의도한 건가? 아니, 의도한 적 없다. 하지만 종교적이란 말은 괜찮다. 종교적인 것은 그 출발이 바뀔 수 없다는 말이니까. 내가 만들어놓고도, 마지막에 라이팅까지 다 하고 나면, ‘어 이거 뭐가 있는데 이건 뭘까?’ 싶다.
종교적이다? 예스. 이런 말 절대 한 번도 안 했는데 내가 종교적인 걸 인정한다. 해놓고 나면 나도 느낀다. 민망하지만 그렇다. 나도 내가 싫다. 특종 종교는 아닌데, 종교성 혹은 신성, 그러니깐 서브라임sublime, 숭고성에 대한 이야기들. 내가 자신을 자꾸 싫어하는 이유가, 어쩔 수 없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다. 내가 어릴 때 겪은 결정들이 무섭기도 하고.
이를테면? 싫다, 다 싫다. 다 보기 싫다.
<타타타 : 여여하다>는 올해 당신의 마지막 전시다. 이번 신작에선 플라스틱이 아니라 망치와 못과 같은 철 소재를 이용했다. 그리고 기존 작품에서 가져온 제목 ‘연금술’을 그대로 쓰면서 ‘철기시대’를 붙였다. 재미있는 건 망치 뒤엔 장도리가 없고, 못은 바깥을 향한다. 장도리를 뺀 건 철저히 의도했다. 연금술이라는 뜻이 시크릿 아트Secret art다. 비술. 왜 그런가 하고, 계속 자료를 보고 있다. 오늘 새벽에 깨서 외국책을 번역한 걸 읽었는데 정말 정확하다. (수첩을 꺼내 읽으며) 최고의 연금술이 뭐냐는 설명, “자연과 생명과 죽음과 영혼과 무한과의 깊고 깊은 비밀을 해명하기 위해 무지개로 푼다.”
무지개? 옛날 책이니깐, 딱 거기까지만 쓰여 있다. 다른 설명도 있다. “연금술은 지상계와 천상계, 물질과 정신 사이에 열린 흐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상하, 물질과 정신. 어떤 구조든 완전성을 해체하는 것, 그게 연금술의 근본이다. 그리고 결합의 신술.” 이렇게 표현이 된다. 나는 설치나 조각을 연금술로 풀고 싶다.
하지만 연금술은 실패했다. 그게 그 사람들의 인생이다. 비금속으로 금속을 만들어내는 게 연금술인데, 나는 비금속인 플라스틱을 황금처럼 만들었다. 그게 연금술이다. 그 당시 연금술사가 놓친 게 뭐라고? 빛과 볕이다. 근데 나는 지금 빛과 볕을 놓치지 않았다. 빛과 볕이 만드는 색을 담았으니까.
예술의 맥락이 아니라 무조건 예뻐야 된다는 말엔 동의하나? 예뻐야 되고 멋있어야 된다는 건 근본이다. 하지만 그걸 떨칠 때 진짜 예술이 나온다. 진짜 크리에이티브가 나타나고.
그걸 떨쳤어도 예술을 모르는 사람에겐 마냥 아름다운 것에 시선이 머문다. 동의한다. 내가 제안한 아름다움은 확실히 아름답지 않나? 게다가 이전의 아름다움과는 다르다.
아름다운 걸 추구하는 것이 하고 싶은 것일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자주 말했다. 올해는 어땠나? 전혀 못했다. 올해는 몽땅 제도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 서울시, 예술의전당, 부산, 온양 모두 마찬가지다. 최정화가 시키는 대로 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데.
그럼 할 수 있는 걸 했나? 그렇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만 했다. 하고 싶은 건 공공미술이다. 작년에 내가 일본에서 ‘태양의 선물’이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올리브로 유명한 쇼도시마에서 작품 의뢰가 왔는데, 나한테 기념비로 꽃나무, 과일나무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런 나무는 필요 없다고 했다. 대신 금색 올리브 잎 모양에다가 아이들의 소망을 적어 올리브 왕관을 만들었다. 그애들이 자라서 할아버지가 될 거다. 그러면 그들은 가족들에게 내가 옛날에 쓴 거라고 말하겠지. 그럼 나는 그들에게 기억을 만들어 준 거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아트다.
공공예술에 좀 집착하는 이유가 있나? 1퍼센트가 예술을 갖는 게 미워서.
2006년, 댄 플래빈의 형광등과 3천원짜리 형광등이 다르지 않다며 함께 설치한, <믿거나 말거나 박물관> 전시가 생각난다. 미술은 짜고 치는 ‘고도리’다. 사실이지 않나? 21세기 혹은 22세기에 나올 수 있는 공공예술은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이때는 미술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 그게 예술인 것 같다. 그걸로 나도 먹고살고, 이름값도 나온 거다.
올해 당신의 삶은 어떤가? 요즘도 스트레스가 없나? 최근에 스트레스가 있다. 예술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쉬려고 한다.
스트레스가 행복이…. 되진 않는다. 근데 가끔은 행복이다. 하지만 서울역 <총,천연색> 전시 이후부터 정신이 없었다. 전시가 끝난 후엔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특히 끝난 후 일주일은 최악이다.
일 말고 집착하는 건? 일에 집착해야지 딴 데 뭘 집착하나? 그거 잘못된 언어다. 일에 집착한다는 뜻은 나쁜 얘기가 아닐 텐데, 그걸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일에 빠졌다’는 건 좋은 말이 아니다.
하필 올해, 전업 예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예전에는 항상 취미일 뿐이라고 했는데. 이제 폭파시켜야 한다. 증폭.
- 에디터
- 양승철
- 포토그래퍼
- 신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