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돋아나는 이연이라는 뿔.

GQ 생일 기념 사우나 여행은 잘 다녀왔어요?
LY 으하하하. 완전, 완전 잘 다녀왔어요. 가보셨어요? 부산 허심청 온천탕 정말 추천해요. 그렇게 큰 목욕탕 처음 봤어요. 경주도 너무 좋더라고요.
GQ 온천 사우나 여행이라는 테마가 생기롭더라고요.
LY 요즘 러닝을 엄청 하거든요. 임세미 배우가 러닝을 진짜 열심히 하는데 그녀의 영향으로 친구들이 다 하게 됐어요. 뚝섬에서 뛰고···, 서울에 온천 있는 거 아세요? 자양동에 우리유황온천이라는 데가 있어요. 뚝섬에서 시작해 5킬로미터에서 10킬로미터 뛰고 온천 가는 게 루틴이 되면서 그 맛에 빠진 거예요.
GQ 뜨거운 물의 시원한 맛에.
LY 완전. 그리고 유황이어서 확실히 물이 달라요. 보통 제 생일쯤인 2월에서 3월이 항상 일 끝나고 살짝 쉬었다가 다음 작품 들어가는 시기거든요. 그래서 해외로 여행을 많이 갔는데 이번에는 친구들과 국내 온천 여행을 떠나보자 하고 다녀왔어요. 사실 3~4일 전 경주에 또 갔다 왔어요. 이번에는 효도 여행으로. 너무 좋아서 엄마와 이모 모시고 다녀왔어요.
GQ 말 그대로 <경주기행>이네요.
LY 맞아요. 그런데 정말로 저는 경주에 <경주기행> 찍으면서 처음 가봤어요. 첨성대 있는 동네에 가면 정말 큰 고분과 낮은 한옥들밖에 없어요. 고분은 무덤이잖아요. 적당히 큰 것도 아니고 정말 크고 동그란데, 그것들이 아파트와 집 사이에 공원처럼 있는데 그 무덤 앞이 미술관이기도 하고, 무덤 앞에서 커피도 마시고, 대화도 하고, 그런 풍경이 너무 생소하고 묘하고 좋더라고요.

GQ 새 작품이 이연 씨에게 경주라는 도시는 일단 확실히 남겼군요.
LY 네, 이런 새로운 도시가 있구나 하는 점을 남겼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인연도. 제게는 같이 작업하는 배우분들이 누구인가도 작품 생각할 때 크게 차지하거든요? 저는 제가 잘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계속 더 성장했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저는 아직 많이 배워야 해요. 저는 저를 잘 믿지 않아서, 저를 옆에서 봐줄 분이 계시면 그것만큼 의지되는 일도 없어요. 일단 제가 제 일을 잘하려 하고 허투루 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런 모습을 선배님들이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같이 만든다’는 느낌이 강해져요. 운이 좋게도 정말 다 좋은 분들을 만났고요. <경주기행>에서 만난 세 분의 선배님(배우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과의 카톡방이 지금도 활발해요. 영화가 공개되면 더 좋을 텐데(<경주기행>은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제게 너무 감사한 인연을 남겨줬어요.
GQ <21세기 대군부인> 현장에서는 무슨 노래를 부른 거예요?
LY 진짜 많이 불렀는데, 으하하하. 그게, 유수빈 선배가 노래를 자주 불렀어요. 혼자. 크라잉넛, YB, 그러다 (이)지은 선배랑, (변)우석 선배랑 같이 부른 건 김동률 선배의 ‘Replay’. 그리고 촬영하던 시기가 지은 선배 <꽃갈피 셋> 앨범이 나온 때여서 ‘Never Ending Story’도 부르고.
GQ 유수빈 배우가 혼자 흥얼거린 건 본인 긴장을 풀기 위한 방법 아니었을까요?
LY 그렇죠. 그런데 그때가 저와 둘이 촬영할 때였는데 대기하는 동안 너무 추웠고 밤이어서 졸리니까 선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저도 같이 불렀어요. 그러다 다른 날 지은 선배가 화음을 넣기 시작했고.
GQ 이연 씨가 있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 같네요.(웃음)
LY 제가 작품마다 최소 한 분씩 꼭 인연을 얻어가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연기 사상은, 배우는 고립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죠. 특히 시나리오를 읽거나 분석할 때는. 그런데 그 분석도 어떨 땐 타인이 보는 시선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이 일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잖아요. 결국에는 사람을 연기해야 하고. 저는 좀 무던히 현장에 있는 편이어서 그런지 다들 편안하게 여겨주시는 것 같아요. ‘대군부인’에서 제가 막내거든요. 다 선배, 오빠, 언니여서 많이 예뻐해주신 것 같아요.

GQ 배우들끼리 막역해진 현장이라고 들어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연 씨가 노래와 연이 있는 걸로 알아요. 펑키 재즈 뮤지션을 꿈꿨다고요. 괜찮다면 그때 이야기도 나눠볼까요?
LY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내내 음악을 했어요. 펑키 재즈라는 장르를 제가 고른 건 아니었고, 대학교 들어가서 음악 합주하고 무대 서는 걸 반복하면서 잘 맞는 장르를 고르게 됐는데 제가 하게 되는 게 보통 그쪽이더라고요. 약간 리듬이 있는. 그래서 이게 잘 맞나 보다, 한번 해보자 했는데, 사실 대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무대공포증은 이미 왔어요. 대학교 때는 버티는 싸움이었어요. 버티다가 그냥 아예 부러진 것 같아요. 더 이상 안 되겠다, 할 만큼 한 것 같다 싶은 그때가 오더라고요. 눈물 나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게 확실한 계기였는데, 2학년 때 일주일에 한 번씩 무대에 서야 했어요. 누구든 자유롭게 보는 무대였어요. 하루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드럼 스틱 소리가 탁 탁 탁 나자마자 눈물이 나는 거예요. 무대에서. 입도 못 떼고, 노래 한 곡 부르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무대를 내려왔어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길로 휴학했어요. 아, 나는 가수는 못 하겠구나.
GQ 무대공포증은 왜 왔다고 생각해요?
LY 완벽주의가 심해지고 있었어요. 음악을 할 때. 그러니까, 보컬은 무대 최전방에 서잖아요. 지금 같은 마음이었으면 어쩌면 괜찮을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음악 외에 다른 감정을 내비치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런 강박이 생기다 보니까 앞에서 관객분들이 개인 얘기를 옆 사람과 속삭일 수도 있는데, 그게 다 제 욕처럼 들렸어요. 수군수군하는 것같이. 바싹 마른 나뭇가지가 어디 박혀 있는 것처럼 제가 무대에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아요. 작은 자극에도 뚝 부러질 수 있는 상태인데 애써 버텼던 거죠. 버티다가 그렇게 부러졌던 것 같아요.

GQ 곧잘 했을 것 같은데. 목소리만 들어도 노래 참 잘했을 것 같아요.
LY 너무 못하진 않았고(웃음) 그냥 적당했던 것 같아요. 뛰어났어야 했는데 ‘애매-’하게 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완벽주의가 찾아왔던 것 같아요. 몇 번 잘해서 1, 2등 제쳐보기도 하고, 그러니 더 욕심나고, 하면 되나 보다 하다 부러졌어요.
GQ 그때만 해도 배우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무대공포증을 해결해보려 연기 치료를 받아본 거였잖아요. 그때의 시간 기억나요?
LY 그 첫날 때문에 연기를 계속하게 됐어요. 첫날 가자마자 연습실에 있는 발레 바를 옥상 난간이라 생각하고 연습실 저 끝에서 저 끝 발레 바까지 뛰어가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소리치라는 거예요. 사방은 거울이고, 다른 분들이 쳐다보고 있고,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도 하라니까 아이 모르겠다 하고 막 뛰어가서 발레 바를 잡았는데, 욕을 엄청 했어요. 진짜 엄청. 뭔가 억울했나 봐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싶었나 봐요. 결국 발레 바를 잡고 주저앉아서 한참을 엉엉 울었어요. 처음이었어요. 누구 앞에서 그렇게 운 게. 그런데 다들 저를···, 뭐라고 해야 하지, 행복하게 저를 보면서 박수를 치고 있는 거예요. 엉엉 울다가 ‘하우, 이제 좀 괜찮다’ 하고 뒤를 봤는데 다들 “와아아” 박수를 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이게 뭐야?(웃음) 선생님도 너무 잘했다고 하고. 그런데 그게 제게 키가 됐던 것 같아요. 아, 울어도 되는구나. 여기선 내 감정을 그냥 이렇게 다 꺼내놔도 되는구나. 그렇게 첫날 풀려버리니까 그다음 수업이 재밌고, 또 재밌고, 기다려지고, 재미를 완전히 느껴버렸어요. 그래서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걸 업으로 삼아도 되겠다. 그런데 그 ‘되겠다’는 뭐라도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음악을 할 때도, 그 전에 육상부로 운동할 때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어요.

GQ 귀한 경험이다. 응어리가 탁 튀어나온 순간이었나 봐요.
LY 엄청. 저도 모르게. 확실히 음악하던 시절의 저보다 연기하는 제가 훨씬 자유로워요. 표현을 하고, 대화를 하고, 그냥 인간의 성향 자체가 치료가 된 것 같아요. 친구들도 많이 달라졌다고, 좋은 사람 됐다고 그래요. 그 전에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웃음) 대가 엄청 센, 고집이 진짜 센 사람이었거든요.
GQ 바싹 말랐던 사람이 수분을 머금게 됐구나.
LY 완전. 완전 유연해지고 여유도 생기고, 참 신기해요.
GQ <소년심판>(2022)에 나온 이연 배우를 보고 소년인지 소녀인지 그 모호한 매력에 한참을 검색한 기억이 나는데, 더 나아가 흥미가 더해진 때는 <약한영웅>(2022) 이후 노출된 여러 자리를 통해서예요. 날것의 사람 같은 거죠.
LY 으하하하하하.
GQ 이에 대해 이연 씨에게 어린 스님 역할을 입혔던 <절해고도>(2023) 김미영 감독이 남긴 말이 있는데 대중의 시선에서도 너무나 공감이 돼서 읽어볼게요.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까. 카메라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편안하게 제 감정을 표현하며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연 배우는 엄숙하지 않더라.”
LY 그러니까 결국에는 이게 또 이어지는데, 제가 무대공포증이 생긴 이유를 알다 보니까 어떤 자리든 내가 아닌 모습에 맞춰서, 내가 아닌 모습을 지키면서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 같아요. 제가 심성이 삐뚤어져서 고삐가 풀리면 욕을 한다든지, 누군가를 비웃는다든지, 갑자기 가운뎃손가락을 든다든지 이럴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그냥 법규를 지키고 도덕적인 사람인데.
GQ 나대로를 보여줘도 괜찮다는 거죠.
LY 네! 그래서 그냥 좀 나대로 있자, 나대로 있어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정제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냥 편안하게 해도 된다는 것. 아무도 나한테 그걸 바라지 않는다는 것. 딱 하나 제가 지키는 건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 것. 흐하하. 회사에서도 저의 원래 모습을 좋아하지만, 대신 “다리만 붙이자”. 그런데 그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게 지켜져요. 좀 더 정돈돼요. 최대한 그것만.

GQ 하지만 <약한영웅>도, <소년심판>도 어느덧 4, 5년 전 이야기예요.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작품을 할수록, 무언 중에 요구받는 것들이 생기잖아요.
LY 그렇죠. 그런데 저는, 들통날 짓은 하지 않아요. 그건 제가 아니잖아요. 제 옷이 아니잖아요. 이미 맨날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이렇게 예쁜 사진 찍을 때 한 번씩 입고 그러면 되지, 제가 굳이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입는다고 해서 더 예쁨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또 그것은 진실도 아니고, 만약 그렇게 나와 다른 태도와 옷을 입었다 쳤을 때 평소 돌아다닐 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며, 너무 복잡해지는 거예요. 그럼 그냥 원래대로 살아야 하는 거예요. 저는 절대 집에 가만히 못 있는 스타일이거든요? 평소에도 편안하게 살아야 이 일도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왜냐면 배우는 고립되면 안 되는데, 만약 제가 다른 옷을 입으면 고립될 것 같아요. 스스로 고립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GQ 밖에 나가면 들통나니까.
LY 들통나니까! 저는 돌아다니지 못하면 안 되는 사람 같아요. 카페도 가야 하고 등산도 가야 하고 운동도 가야 해요. 그래서 저는 나중에 아무리 엄청 유명해진다고 해도 여행도 다니고 걸어 다니고 즐길 거 즐기고, 그냥 사람처럼 사는 그것을 계속할 거거든요? 어떻게 아무도 절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미워하실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냥 이 세상에 태어나 바라는 건, 미워하는 사람들보다 응원해주는 사람이 더 많은 인생을 살고 싶기는 해요.

GQ 이연 씨가 <길복순>(2023) 작품 끝내고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생각나요. “선배님들을 무의식적으로 빤히 쳐다보곤 해요. 지나온 모든 순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을 하고 계시거든요.” 지나온 희로애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그 얼굴이 무엇인지 너무 알겠는 거죠. 그러면서도 궁금해요. 이연 씨에게 그 얼굴은 어떤 이목구비예요?
LY 하, 일단 눈이 진짜 좋아요. 눈에 감정이 이글이글하거든요? 그런데 입매는 되게 차분해요. 결국에는 기운 같은데, 얼굴의 기운이 답을 찾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어떤 숙제가 떨어졌을 때 계속 답을 찾고 있는 듯한 기운 있잖아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할까? 눈이 되게, 되게 바쁘고, 감정을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입은 차분해요. 선배님들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선배들은 정말 최선을 다하세요. 그런 태도가 너무 멋있어요. 그래서 그런 얼굴들을 계속 보게 돼요.
GQ 본인에게 물어서 미안하지만 지금 이연 씨의 얼굴은 어떤 것 같아요?
LY 제 얼굴은 많이 유해졌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메이크업해주시는 원장님도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얼굴이 바뀌었다고. 날카로운 게 살짝 사라지고 유해졌다고. 그런데 저도 그걸 느껴요. 조금 더 여유가 생긴 얼굴 같다. 마음에는 하나도 여유가 없는데···. 으하하하. 사실 언제나 이글거리지만, 하여튼 날카로움은 좀 유해졌어요. 그런데 저는 제 턱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여기에 제 고집이 다 있어요. 그래도 뭐, 아까 이야기 나눈 것처럼 옆에서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라는 말에 예전에는 스트레스 받았던 것 같거든요? 그냥 놔두지 왜 저래, 속으로 ‘내 맘임’ 이랬다면 이제는 듣는 것 같아요. 그냥, 듣는다.
GQ 그 말을 듣지는 않지만 듣는다.(웃음)
LY 네! ‘그렇구나’.(웃음) 결국 내 것을 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대기만성 한다고 생각해요. 길을 잘 닦고 싶어요. 들통날 일 없는 나다운 길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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