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잘못 씹으면 이빨 다 나간다”며 으르렁대더니, 어느새 “이 정도면 훌륭해”라고 멋을 낸다. 이제 지코는 굳히기에 들어가나?
바비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일단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블락비 지코 형이에요.” 고맙죠. 저를 인정하고, 자기보다 위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얘기하는 거잖아요. 그런 말들이 동기부여가 돼요. 바비가 그런 점이 멋있어요. 사람을 인정할 줄 아는 거죠. 보통 스스로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뮤지션들은 그런 말 잘 안 해요. 그러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아무렇지 않은 듯, 원래 여기가 제 자리였다는 듯이 말하죠.
그렇다면 지코는 바비보다 뛰어난 래퍼인가요? 아직 순수하게 랩만 따지면 제가 더 잘하는 것 같아요. 바비가 갖고 있는 재능이 있고 저한텐 저만의 것이 있긴 하지만요. 바비한테 항상 얘기해요. 산 넘어 산이라고.
지코 위에 또 다른 산이 있다는 건가요? 그게 또 저죠. 저는 저를 넘을 거니까. “네가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있을 거야.”
자극을 받는 방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자신보다 뛰어난 누군가를 잡기 위해 힘을 내거나, 누가 쫓아온다는 사실에 동력을 얻거나. 저는 보통 위를 보는 편이에요. 아래를 보고 따라잡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따라잡힌 거라고 생각해요. 탈 아이돌 래퍼 같은 수식어가 저는 솔직히 좀…. 저는 여기서 짱 먹으려고 온 게 아니거든요. 만화나 영화 <크로우즈 제로> 같은 걸 봐도 스즈란 고교 전체에서 짱이 돼야지 어떤 학급 짱 이런 건 의미가 없잖아요. 내가 최고가 될 거야, 이런 맘보단 그저 잘하고 싶은 맘이 더 커요.
실력이 늘었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나요? 직접 느끼는 순간은 드문 것 같아요. 그보다는 남들한테 가식 없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알게 되는 쪽이에요. 그냥 “야, 너 잘하더라”는 별로 와 닿지 않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전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된 것 같다, 같은 말요.
최근에 받은 가장 인상적은 피드백은 뭐예요? 타블로 형이 ‘Well Done’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을 문자로 써서 보내주셨어요. 거기가 멋있다고. “열정도 지나치면 해가 된다는 말”이라는 가사.
프로듀서로 출연한 <언프리티 랩스타>에서도 아이돌이란 편견과 싸우고 있다거나, 그걸 굳이 이겨내려 한다는 인상은 아니었어요. 그보단 이미 증명했고, 그래서 여기 나왔다는 당당함이 엿보였죠. 겨우 스물네 살밖에 안 됐지만, 솔직히 온갖 경험을 다 해봤어요. 커리어도 그렇고 인생가도에 있어서도 그렇고. 그래서 좀 초연해진 것 같아요. 힙합으로 인정받겠어, 같은 맘은 이제 없어요.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힙합이나 랩 얘기를 하면 저를 포함시키는 걸 느끼기도 해요. 나를 하나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구나…. 이제 좀 실감이 나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죠. 굳이 따로 어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미 자연스럽게 하고 있으니까. 오늘 인터뷰 끝나고도 일리네어 레코즈 형들이랑 워커힐 호텔에서 공연해요. 이게 제 삶이잖아요. 아이돌 멤버들이 가끔 힙합곡 내면 이렇게 말해요. “나 아이돌인데 어쩌라고. 그렇지만 뭐뭐뭐.” 괜히 욕 쓰고. 자기가 진짜 힙합이라면, 그렇게 얘기 안 해도 인정받겠죠.
정식으로 발매한 첫 솔로곡 ‘Tough Cookie’ 이후 자신감이 붙은 건가요? 아, ‘Tough Cookie’가 기점은 아니었어요. 사실 원래는 발매할 생각이 없던 곡이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랩 음악은 일기처럼 자기가 겪은 걸 곡으로 기록해서 발표하는 게 맞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나중엔 얘기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Touch Cookie’를 내게 된 거예요. 내고 나서 한 5개월 됐나? 지금은 그런 가사 못 쓸 것 같아요. “난 음중(음악중심) MC이기 전에 그냥 엠씨지” 같은 말.
이어서 3개월 뒤쯤 두 번째 싱글 ‘Well Done’이 나왔어요. 그동안 믹스테이프에 수록된 곡이나 ‘Tough Cookie’의 가사에 꽤 날이 서 있었지만, ‘Well Done’에선 이렇게 말하죠. “눈 부릅떠 다 극복했어, 이 정도면 훌륭해.” 완전히 만족하는 건 아니라도, 지금까진 잘해온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피처링한 자메즈 형 가사에도 “앞으로도 계속 앞으로 갈 거지만”이란 구절이 있듯이, 더 나아갈 거지만 일단는 수고했다는 맥락이죠.
자메즈는 < Show Me The Money 3 > 에서 아이돌 래퍼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낸 출연자였어요. 그런데 지코의 노래에 참여했죠. “형, 같이 해요”라고 제안하자마자 승낙한 걸 보면 절 인정하는 거겠죠. 자메즈가 방송에서 바비랑 붙었었잖아요. 그때 자메즈 형 랩 듣고 깜짝 놀랐거든요. 너무 잘해서. 떨어져서 되게 아쉬웠어요. 그분의 랩을 더 듣고 싶었는데. 그래서 혼자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찾아 듣고 그랬어요.
솔로 활동을 병행하는 아이돌 멤버는 대개 둘 중 한 쪽으로 말하곤 해요. “그룹 활동은 그룹 활동이고, 솔로곡 할 땐 제 것을 하는 거죠.” 혹은 “그룹 안에서 제 지분을 서서히 넓혀갈 거예요.” 전 아예 다른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블락비 음악에 제 얘길 하진 않잖아요. 전 블락비가 힙합이라고 생각 안 해요. 많은 분이 듣고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거죠. ‘Her’는 록 블루스고 ‘난리나’는 댄스곡이고. 힙합이 없어요. 사실.
소속사 홈페이지에도 ‘힙합 아이돌’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힙합이 베이스로 있긴 하죠. 그렇지만 우리가 힙합이라고 PR하고 싶진 않아요. 솔로 지코는 말 그대로 지코에요. 내가 갖고 있는 러프한 이야기를 랩이란 악기를 통해 얘기하는 사람. 블락비에서 제 역할은 어떤 매개체? 멤버 7명이 최대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일이죠. 온전한 제 얘기 말고 다른 주제를 랩으로만 풀어냈다면 사람들이 결코 공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Tough Cookie’에 “메이저 가수들 깔 거면 어디 나부터 건드려봐”라고 썼어요. 함께 활동하는 다른 뮤지션들에 대한 동료의식 같은 건가요? 모두 각자의 위치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인디에서 음악 하는 분들 중 일부는 꼭 < Show Me The Money >나 <언프리티 랩스타>를 비하하면서 자기들 게 진짜라고 말해요. 아니, 자기들 음악이 진짜라면 그냥 그걸 계속 지키면서 증명하면 되는 거잖아요. 자기랑 다르면 이단이라 생각하고, 메이저 가면 변한다고 말하는 건 좀…. 그렇게 무조건 타도할 거면 나부터 건드려보라는 가사예요.
꼭 국내 음악 신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죠. 해외 래퍼들 사이에서 이기 아잘레아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래퍼의 태도에 관해서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봐요. 자기는 힙합이란 문화를 이런 태도로 대하는데, 쟤는 저런 식으로 하는 것에 대해 분노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저 자기 PR하려고 건드리는 건 아니라고 봐요.
< ZICO on the BLOCK >시리즈를 비롯한 믹스테이프를 데뷔 전부터 계속 발표했어요. 태도든 실력이든 “날 제대로 보라”는 선언처럼 보였죠. 맞아요. 열여섯 살 때 낸 믹스테이프는 절 광고하려고 했던 거죠. 너 나 알아? 들어봐. 나 쩔어. 버벌진트가 인정한 애야. 확성기 들고 외쳤던 거예요. 그리고 데뷔 이후엔 안 좋은 일이 좀 많았어요. 그 당시의 생각을 고스란히 적어서 다른 믹스테이프로 낸 거죠. 여과 없이.
아무래도 래퍼는 좀 굴곡이 있을 때 더 좋은 가사가 나오죠? 맞아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외로운 일이든 모든 게 다 재료가 돼요. 제 감성과 상황이 맞아떨어졌을 때. 무난하게 살 때가 제일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코는 지금 약간 위험한 것 아닌가요? 꽤 안정 궤도에 오른 것 같은데. 아, 저는 그럼 그걸 재료로 쓰죠. ‘Well Done’ 같은 가사. 도끼나 더 콰이엇 형들도 자기가 이뤄낸 얘기를 하잖아요.
제이통이 이끄는 벅와일즈 크루에 합류한 뒤로 확실히 신에서 지코를 보는 시선이 꽤 달라졌어요. 솔직히 멤버들끼리 음악적 교류는 거의 안 하거든요. 망나니 집단이에요. 음담패설에, 뒷담화에. 하하. 그런데 우리가 다 뭉쳤을 때 나오는 오묘한 힘이 있거든요. 그게 저한테 큰 힘이 돼요.
한편으로 온도차를 느끼기도 해요. 뮤지션들에겐 인정받고 있지만, 이른바 ‘힙합 리스너’들이 주목하는 래퍼란 인상은 덜해요. 리뷰나 평론도 드물죠. 일단은 제 독자적인 결과물이 얼마 없다 보니 피드백 기회 자체가 적은 것 같아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왜 나한텐 피드백을 안 해주지? 가끔 아이돌 랩 나올 때만 지코 괜찮지, 이런 얘기 하고. 뜨뜨미지근 한 거예요. 아무래도 제가 씹을 거리라도 부지런히 던져야 되는데, 그런 소스를 안 내놨던 것 같아요.
왜 믹스테이프 홍보를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나요? 들을 사람은 알아서 들어요. 그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는 거지 꼭 들어주세요, 하면서 요란스럽게 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요즘은 믹스테이프 자체가 많이 변질됐잖아요. PR의 수단이 됐죠. 전 믹스테이프는 고유한 거라고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비즈니스적으로 대하고 싶지 않아요. 이 문화를 대할 땐 이 문화의 방식 그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짬뽕시키지 말고.
음… ‘Tough Cookie’가 발매됐을 때, 한 힙합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나온 반응은 이랬어요. “눈 화장하는 게 무슨 힙합이야.” 하하. 맞아요. 기분 안 나빠요. 그래서 저 힙합 공연할 땐 무조건 눈 화장 지워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힙합이라고 말하는 애가 눈 화장하고 랩하고 있으면. 그래서 아이덴티티를 다르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블락비 활동할 때는 제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콘셉트가 있잖아요.
다음 솔로곡에선 화장 안 한 지코를 볼 수 있나요? ‘Tough Cookie’ 뮤직비디오에서도 전부 화장하고 나온 건 아니에요. 일부분에서만 했는데, 더 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랩을 듣고 싶은데 거북하다면 아, 오케이, 내가 자제할게. 그래도 완전히 노 메이크업은 좀 그렇죠. 카메라가 있으니까. 어쨌든 과도한 눈 화장은 안 할 거예요. 저도 예전에 제가 한 걸 보면 좀 싫을 때가 있더라고요. 노력하겠습니다.
래퍼들은 어떤 옷을 입느냐로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해요. 랩에 대한 굉장한 열의와 별개로, 스타일을 과시하려는 맘은 썩 없어 보여요.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랩할 땐 좀 더 그런 것 같아요. 저 가사에서 옷 자랑 안 하잖아요. 저랑 같이 어울리는 형들은 건물을 사고, 차 바꾸는 얘기를 하는데 내가 굳이 티셔츠 얘기를 해야 되나? 싶은 거죠. 그리고 솔직히 옷 되게 좋아하지만 나 패셔니스타예요, 하면서 광고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면 뭘 사고 싶어요? 아, 최근에 차도 바꾸고 옷도 많이 사는 편이에요. 과시를 안 할 뿐이지.
아직 건물 올릴 정도는 아닌가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빚 청산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아이돌 그룹에서 래퍼가 음악적 주도권을 쥐게 된 건 썩 오래된 일이 아니죠. 지코, 바비와 B.I, 용준형, 랩몬스터…. 더 이상 래퍼는 그저 노래 못하는 멤버가 아니에요. 거기서 힙합이란 장르를 편견 없이 들으면서 자란 새로운 세대가 보인다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한가요? 힙합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잘 태어난 것 같아요. 일단 2013년 컨트롤 대란 때 신에 몸담고 있던 래퍼였다는 사실이 저한테 의미가 커요. 한국 힙합의 중요한 분기점이었잖아요. 제가 1996년에 완전히 아기였다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그때 힙합이 진짜 장난 아니었잖아요.
이런 것 한번 해볼까요? 탑 5 래퍼. 버벌진트, 타블로, 개코, 이센스, 아… 빈지노.
저는 이센스, 빈지노, 도끼, 스윙스…. 한 자리는 일단 비워둘게요. 딱 제 리스트는 랩만 따졌을 때의 얘기예요. 그 사람의 음악이 힙합 문화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가, 무대는 어떤가 이런 것 빼고요. 정말 랩을 해부해보면 이 다섯 명인 것 같아요. 애티튜드 같은 거 얘기하면 도끼 형이 1위죠. 얼마나 멋있어요.
그중엔 누가 1등인가요? 가사 1등, 플로우 1등 이런 건 다 정할 수 있어요. 전제적으로는 너무 어려워요.
“내 경쟁 상대는 딴 데 있어. 방송국엔 Nothing.”이라고 가사에 쓴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적어도 TV에 나오는 래퍼 중엔 지코가 1등인가요? 아니요. 그런 얘기라기보다, 항상 아이돌 래퍼 얘기가 나오면 제가 비교 대상이 돼요. 그러니까 그만 비교하라는 얘기예요. 난 딴 데 가서 놀아야 하는데, 왜 거기에 가두느냐고.
지코의 랩은 안정적이에요. 모든 항목이 수준급이죠. 하지만 뭔가 한 부분이 특출나다는 느낌은 덜한 듯해요. 이를테면 바비 같은 경우엔 가사 전달력이 떨어지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스윙스에겐 ‘펀치 라인’이라는 한 방이 있듯이. 일단 저는 리듬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한 부분도 안 놓치려고 하는 것도 제 장점인 것 같아요. 가사 쓸 때도 한 줄도 그냥 안 넘기거든요. 계속 분석해요. 처음부터 끝까지의 맥락이든 라임이든 뭐든.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제 발목을 잡는 것 같기도 해요. 강박적으로 쓰니까.
틀리는 것도 미덕이 있을 수 있죠. 후루룩 나오는 느낌도 있어야 되는데, 성격상 그게 안 돼요. 난제예요 난제. 곡을 많이 만들면서 요령이나 노하우가 생긴 뒤론 더 모험을 걸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무지할 때가 제일 창조적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래도 작곡이나 편곡은 어떻게든 되는데, 가사는 정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여기서 한발 더 가야 하는데, 그 한발이 뭘까, 생각을 많이 하죠.
작곡은 보통 공동 작업으로 많이 했어요. 지코의 몫은 어디까지인가요? 전반적인 편곡에 참여하고 당연히 비트도 찍어요. 멜로디만 쓰고 그런 거 아니에요. 대신 이론적인 것들은 도움을 받죠. 예를 들면 코드 보이싱. 그런 부분을 공동 작업하는 팝타임 형이 굉장히 잘해요. 작곡 크레딧 혼자 먹겠다고 제가 완벽하지 않은 부분까지 다 하려고 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통 멜로디만 쓰는 게 무슨 작곡이냐고 하잖아요. 그것도 작곡 맞아요. 톱 라인을 잘 쓰는 게 진짜 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요. 비트? 일주일만 배우면 누구나 찍어요. 보통 기계 다루는 걸 굉장히 대단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다 할 수 있어요. 큐베이스 요즘 버전엔 코드 정해주는 가이드도 있는데요 뭐. 그런 것보다 감성에서 나오는 부분이 어려워요.
끝내주는 남의 비트에 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래퍼라면 누구나 꿈꾸는. 아직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없어요. 아무래도 직접 제가 작곡이랑 편곡을 하다 보니까, 누구한테 뭘 요청하는 게 번거로운 일이란 걸 알게 됐어요. 계속 수정 요청하고 그런 건 곡 쓰는 사람한테도 좀 실례고. 그럴 바엔 그냥 제가 만들어서 하는 게 더 편한 것 같더라고요. 물론 엄청난 비트가 있으면 거기에 랩을 하고 싶겠죠. 제가 쓰고 싶다고 얘기할 거예요. 저는 그런 곤조 없어요. 꼭 제가 만든 비트에 랩을 해야 한다는 식의.
피처링 제안은 많이 안 들어오나요? 박보람의 ‘예뻐졌다’, 효린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정도를 제외하면 참여곡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아요. 엄청 많이 왔죠.
왜 안 했어요? 듀엣곡이야말로 요즘 성공의 급행열차인데. 굳이 제가 그걸 배고파할 시기가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제 것을 만들어서 할 시기죠. 1월에만 피처링 제안 30건이 왔어요. 그중엔 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좀 자중하려고요.
보컬과 랩 듀엣 말고 랩과 랩 듀엣은 어때요? 해볼 만한 시기인 것 같은데. 맞아요. 그런데 정말 너무 바빠요. 심하게. 쉴 틈이 없어요. 저도 어쨌든 아이돌이잖아요. 스케줄이 계속 있어요. 해외 가고, 인터뷰에, <음악중심> MC 등등. 활동기간이 아닐 때도 절대 쉬는 날이 없어요. 스케줄 다 끝내고 새벽에 곡 작업하는 거예요. 그래서 ‘Tough Cookie’에 이렇게 썼잖아요. “내 아이돌 데뷔는 네 입장에선 어드밴티지.” 시간적 여유마저 있었다면 진짜 내가 씹어 삼킨다, 이런 의미가 있죠.
그런데 정작 솔로 음반에 대한 예고는 하지 않고 있어요. 블락비의 자리가 안 잡히다 보니까 계속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작년 <4가지쇼>에서 얘기했거든요. 이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 중이에요. 아직 확실히 내겠다는 맘을 먹은 건 아닌데, 작업은 계속하고 있어요.
블락비의 곡을 꾸준히 프로듀싱하고, 솔로곡도 성공적으로 발표했어요. 다음 목표는 뭔가요? 뭔가 선택해야 할 시기처럼 보이기도 해요. 어느 정도 이미지는 굳혔다고 생각하지만, 1백 퍼센트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아예 지코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게 올해의 목표예요. 흥행을 떠나서 지코라는 브랜드 네임을 각인시키는 게. 음반을 낼 수도 있고, 매체를 통해서일 수도 있고.
비장의 무기가 있나요? 굉장히 많아요. 제 목표는 랩스타가 아니에요. 랩도 랩이지만 프로듀싱에 정말 욕심이 많거든요. 얼마나 한계가 없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요. 제 영역을 얼마나 확장시킬 수 있는지, 그게 얼마나 넓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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