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불쾌지수

2015.07.27이충걸

오전 두 시. 아파트 공원에서 호르몬 넘실대는 청소년들이 서로 죽일 듯 깔깔댄다. 곧 “야, 잠 좀 자자!” 핏대 불거진 아파트 주민의 목소리가 후텁지근한 밤공기를 베폭처럼 찢자마자 “거기, 조용히 해라!” 경찰차 메가폰이 앵앵거리는 건지 으르렁대는 건지 알 수 없는 경고음을 내지른다. 난 멜라토닌 한 박스를 먹고 겨우 잠들었는데 그 소동에 깨어선 이레이저 헤드를 한 채 몸부림친다. “내가 왜 이 시간에 저런 소릴 들어야 돼?” 하지만 그 시간엔 갈 곳도 없으니 세상이 온통 짜증스럽다. 내 말은, 도대체가 짜증 나는 사람들은 자기만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항상 그게 문제다.

모임마다 글루건으로 붙인 듯 마이크를 놓지 않는 사람이 있다 치자. 어떻게든 돈을 안 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게 누군지 생각 안 난다면 당신이 그 사람일지 모르지. 결론은, 미안하지만, 당신은 이미 짜증 나는 사람이고 주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한 시간 넘게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데 기사 아저씨가 노래를 튼다. 따라 부르시는 것까진 괜찮다. 가사 틀리는 거? 뭐 그런 것쯤. 그런데 반 박자씩 늦는 건? 뭔가 갑갑해진다. 게다가 과하게 구성지다. 짜증이 솟구친다. 마침내 억지 바이브레이션까지 쌍으로 분주해지면 아,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하지만 그분은 좋아 죽겠는 얼굴인걸….

인생의 중심에 쓰여 있진 않지만 넓게 포용되는 사회적 제약이 하나 있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 하지만 축하한다. 방금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짜증 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할 거다. 만약 당신이 고속버스를 탔는데 방광이 찢어질 듯해 차를 세우게 한 다음 뾰족뾰족한 침엽수 속으로 사라지면, 덤불 속에 사자 무리가 숨어 있다 해도 그대로 떠나버리자고 소리칠 거다. 사자가 당신을 잡아먹었음 좋겠지만 짜증 나는 음식은 배가 고파도 먹기 싫겠지. 사실 그게 더 짜증 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쭉 나열하자니 어쩐지 이건 죽기 전엔 끝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럼 다음 생엔? 그것도 안 됨. 다음 생은 없으니까. 일백 번 고쳐 죽는다 해도 소용없어. 짜증도 계속 코멘트와 포스팅을 필요로 하니까. 살아 있는 한 남에게 불쾌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삶의 짜증 나는 부분을 편집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젠 받아들여야 하나? 개인적 삶의 뒤틀림에 대한 괜한 분노야말로 나르시시즘의 새 물결일까? 그래 봤자 나만 분노의 과녁이 될 뿐인데? 짜증 나게 하는 것들이 거의 도덕적인 혐오를 부르고, 아무리 피부를 홀딱 벗길 듯 화를 내도 거기에 어떤 무게나 권리는 없다. 뻔뻔한 그 누구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것 이다. 진짜 다 공룡처럼 가죽이 두껍다. 왜, 어째서 나만 빼고 모두가 일상의 짜증 나는 일들을 너끈히 다루는 거냐고?

입만 열면 바쁘다는 사람(요새 안 바쁜 사람이 있나?), 갑자기 물어봐서 생각이 안 난다는 사람(인생에 리허설이 어디 있다고?), 자기보다 핸디캡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마음 놓고 무례한 작자(다 못생겼다), 약속 같은 건 개똥으로 여기는 사람(아무리 작은 약속도 약속이지), 양반다릴 해야 하는 식당으로 예약하는 사람(왜 발 냄새를 맡으며 먹어야 하나?)….

하지만 이 페이지를 남의 흉으로 채우진 않겠다. 축구 얘기 그만하란 말을 절대 못 알아듣는 사람이나, 한 점 관심 없는 낚시 얘기만 내년까지 하는 사람 얘기도 관두자. 나보다도 나를 잘 대해주지 않는 사람들 얘기로 왜 시간을 낭비해야 하지? 소리 내며 밥 먹는 사람, 음식 앞에서 파찰음으로 침 홍수를 퍼붓는 사람, 먹은 자리가 더러워도 너무 더러운 사람, 사방에 담뱃재를 터는 사람, 그게 왜 문젠지 모르는 사람…. 생각은 시작한 게 잘못이라서 짜증 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진다…. 탁자가 갈라지도록 울트라 초고주파음으로 떠드는 여자애들도 적어야지. 남 얘기 안 듣고 말 자르는 데 명수인 사람, 특히 내 얘길 안 듣는 사람, 술 마실 때 팔꿈치를 직각으로 드는 사람, 있는 힘을 다해 정치를 경멸하지만 저 혼자 후련한 걸로 다인 사람, 세상을 자판 위에서만 재단하는 사람, 지식은 과시로 기개는 냉소로 표현하는 사람, 엄청 교육받았다면서 매일 뭘 먹었는지만 필사적으로 올리는 사람, 무엇으로든 어떻게든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

개인이 아닌 다른 사회에도 짜증이 난다. 지금 당장 아줌마들 목소리가 가장 시끄러운 세 나라를 말할 수 있다. 욕먹을 소리지만, 정말 있다. 프랑스 아저씨들도 똑같이 이상하지만 짜증 나는 국적이 따로 있을 리 없으니 그 이야긴 패스! 젊은 부부? 이 또한 레벨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지뢰 밭이다. 집에서야 아기 목소리를 내건 말건 나랑 무슨 상관? 하지만 공공 장소에서 모든 얘기를 영유아처럼 하는 건? 두 살짜리 아기 앞에서 나폴레옹 알현하듯 무릎 꿇고 앉아선 나를 가리키며 “저 아저씨가 너 자꾸 이러면 떼찌, 이럴 거예요”라던 어떤 젊은 엄마(지금 쓰면서도 짜증이 난다)도 있었다. 그 아기에게 내가 무슨 대수라고? 남자들도 다를 게 없다. 나도 그랬다. 앞으로도 매일 그럴 것이다.

살아보니 제일 짜증 나게 하는 말은 “짜증 난다”는 말이더군. 오직 자기만 순백인 사람도 제일 짜증 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걸리적대는 걸 싫어하면 꼭 누구랑 부딪치게 돼 있지. 어쨌든 완전 짜증 나는 순간, 어설픈 유머라도 불러올 수 있다면 살아가는 고통의 나머지를 조금이라도 극복 할 수 있겠지. 그것이 파스텔 풍경을 잃어버린 세상 속에서 울혈된 마음을 풀어주고, 찢긴 마음을 상상력으로 엮고, 물리적 관계의 단단한 모서리를 완화시키겠지, 라고 지혜로운 척 쓰자니 더 짜증 난다. 나는, 실은, 내가 남에게 똑같이 짜증 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모두 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직은 너무너무 불쾌한 여름이니까….

    에디터
    이충걸(GQ KOREA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