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전반기가 막을 내린 지금, 새롭게 마이크를 잡은 여섯 명의 프로야구 해설위원을 낱낱이 분석했다.
이종범, < MBC 스포츠 플러스 > 시즌 초 그의 해설은 거침이 없었다. 목소리도 시원시원하고, ‘만담’이라 할 만큼, 과거의 경험과 농담을 섞어가며 넉살 좋게 마이크를 잡았다. 흥분하면 흥분하는 대로, 안타까우면 안타까운 대로 감정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1회 첫 타석부터 상대팀을 뒤흔들던 선수 이종범을 좋아했다면, 그런 공격적인 해설 또한 반가웠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설가라면 모든 상황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어느 정도 냉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구단 전용 채널 혹은 이른바 인터넷 방송의 ‘편파 해설’이 아닌 이상 그렇다. 아직까지 이종범에게선 그런 차가운 면모가 썩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개인적 감회에 젖는 듯한 인상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엔 “해설 학원을 다니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꽤 달라진 모습이다. 경험을 경기 상황에 대입시켜 설명하는 요령이 생겼고, 무엇보다 선수를 직접 취재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자료를 분석하는 것만큼이나 해설위원에게 중요한 부분. 말수가 줄다 보니, 짧은 시간 많은 얘기를 하다 생기는 발음이 뭉개지는 문제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직까지 이종범이란 이름값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지만, 사뭇 열의가 보인다.
최원호, < SBS Sports > 최원호는 공부하는 해설위원이다. 그는 운동역학을 바탕으로 투수에게 가장 알맞은 투구폼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최원호피칭연구소의 대표이기도 하다. ‘야구 오버핸드 투구 동작에 대한 운동역학적 분석’이란 이름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가 < MK스포츠 >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 ‘최원호의 진짜 투수’엔 최원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상세한 투구 메커니즘에 대한 얘기들이 있다. “최원호를 투수코치로”라는 야구 애호가들의 반응이 그저 좋은 해설가에 대한 칭찬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은퇴 후 해설위원과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치다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로 부임한 손혁의 전례도 있다. 실제 최원호의 해설은 일견 코치와 감독의 시선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분석을 넘어 전문가적 조언이라 말할 수 있는 내용이 꽤 포함되어 있다. 그대로 받아 적어 선수들이 되새길 만한 이야기들. 은퇴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현장의 애환을 공유하기보단 현장의 잘못된 점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응당 해설위원이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여전히 덕아웃에 같이 뛰던 동료들이 남아 있는 젊은 해설위원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같은 방송사의 타자 출신 해설위원 이종열과의 궁합도 좋다. 웬만한 해설위원 못지않은 식견의 정우영 캐스터가 방송을 이끌어나가고 이종열이 타자, 최원호가 투수에 대해 말할 때면, 야구보다 해설을 듣는 재미에 채널을 고정하게 된다.
김진욱, < skySports > 두산 베어스 감독 시절, 경기 중의 그는 꽤 여유가 있어 보였다. < skySports >는 올해 새롭게 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한 방송사다. 갓 은퇴한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해 인기몰이를 할 법도 하지만, 그들은 스카우트 출신의 이미 검증된 해설위원 이효봉과 함께 김진욱 전 감독을 영입했다. 오랜 경험이 꼭 좋은 해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은 몇몇 전례를 통해 증명되었지만, 김진욱은 자신의 경험을 무척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일단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경기 상황에 맞춰 흥을 살리거나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은 온전히 캐스터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리고 이어서 해설가의 역할인 부연설명과 분석을 덧붙인다. 여유롭다는 것이 감독으로서는 때로 결함이 될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어느 편도 아닌 제3자의 눈으로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 해설가에겐 꽤 중요한 미덕이다. 또한 김진욱의 해설은 쉽다. 코치와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며 터득한 요령일까? 야구에 대한 배경지식이 다소 부족해도 듣기에 무리가 없다. 대체로 비판보다는 칭찬을 많이 하는 편. 선수뿐만 아니라 시구자도 칭찬하고, 치어리더도 칭찬하고, 열심히 응원하는 팬도 칭찬한다. ‘모두 까기’ 해설가라 불리며 각광을 받고 있는 이순철 위원과 대척점에 놓을 수 있을 듯하다. 몰랐던 내용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에 야구를 보는 게 너무나 즐거운 초심자들에게 유독 반가울 만한 해설.
정민철, < MBC 스포츠 플러스 > 정민철의 선수 시절 기록을 살펴보면 놀라게 된다. 그는 뛰어난 투수였지만, 그를 당대 최고로 꼽는 야구 애호가들은 드물다. 하지만 그의 통산성적을 살펴보면, 정민철이야말로 명실상부 90년대 최고의 투수다. 그는 그렇게 단기간의 ‘임팩트’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보다 꾸준히 기록을 쌓아나갔다. < MBC 스포츠 플러스 >의 화려한 해설위원진 (그래서 잠깐만 방송을 보며 들어도 금세 누가 해설가인지 알아챌 수 있는) 사이에서도 정민철은 은근히 자기 색을 드러낼 뿐이다. 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목소리. 경쾌한 목소리로 경기의 흥분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되, 감정이 넘치지 않도록 차분히 누르며 말하는 듯한 인상이랄까. 극적인 상황에서도 눈에 띄게 목소리가 커지거나 말이 빨라지기보다는, 목소리의 고저나 억양을 조절하는 식으로 특유의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경기에 방해가 될 일도 거의 없다. 그래선지 특히나 이종범이나 양준혁같이 화끈한 해설위원과의 궁합이 좋다. 유머러스한 면모도 굳이 숨기지 않지만 내내 입담을 과시하기보단 정보를 전달하는 쪽에 집중 하는 편. 기록을 비롯한 여러 숫자를 꼼꼼히 제시하며, 타 리그 선수나 역사에 대해서도 꽤 해박하다. 시원하거나, 웃기거나, 진중하거나, 따뜻하거나, 냉철한 해설위원은 있었지만 어쩐지 이렇게 산뜻하다는 말이 꼭 어울리는 해설위원은 본 적이 없다.
송진우, < KBS N 스포츠 > 선입견이라면 선입견. 강속구가 돋보이는 투수에겐 ‘야생마’ 같은 별명을, 제구가 뛰어난 투수에겐 ‘꾀돌이’ 같은 별명을 붙인다. 해설위원을 맡긴다면, 왠지 제구가 뛰어난 투수들이 더 좋은 해설을 선보일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송진우는 그저 준비가 덜 된 걸까? 서클체인지업 연마 이후 리그에서 손꼽힐 만큼 칼날 같은 제구를 선보이던 그의 해설은 선수 시절 그가 보여준 모습과 거리가 있다. 캐스터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치고 들어오는 경우가 잦아 두 사람의 말이 겹치기 일쑤고, 문장의 주술구조를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전달하는 정보의 함량 역시 야구를 조금만 본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만한 내용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닌, 그저 쉽고 당연한 내용을 얘기하는 쪽에 가깝다. 이를테면 “홈런을 친다는 것은 타격감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 무엇보다 지난 4월 9일 삼성 대 롯데전 해설에서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얘기한 본인의 바셀린 부정투구 사실은 그의 선수 시절의 대기록을 크게 훼손시켰다. 공부와 준비를 하는 것은 다음 문제인 듯 보인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하는 것이 급선무다.
진필중, < Spotv > 올해로 2년 차. 지난해 진필중의 해설은 사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말투도 거칠고 긴 문장을 완성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탓에 과한 비판을 받고 있다는 인상도 분명히 든다. ‘겉볼안’이라고 해야 할까? 목소리나 감정 조절에서 단점이 두드러지다 보니 내용 또한 그럴 거라는 편견. 투수 출신 진필중은 적어도 투수에 대해 얘기할 때만큼은 꽤 전문적이다. 단, 상황별로 기복이 있는 편. 깜짝 놀랄 만한 ‘디테일’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그저 “공이 좋습니다”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을 마칠 때도 있다. 그래서 진필중이 해설을 맡았을 때는 캐스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화를 주고받듯 질문을 던져 진필중의 ‘콘텐츠’를 이끌어내야 한다. 혹은 타자 출신의 해설위원과 ‘더블 캐스팅’을 해보는 건 어떨까? 올해 처음 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한 < Spotv >는 시즌 중반 이병훈 위원을 영입하며 해설가를 더 늘렸다. 이병훈 역시 찬반이 다소 갈리는 해설가다. 프로야구 신생팀이 이것저것 다 잘하는 ‘5툴 플레이어’를 영입하긴 어려우니, 수비면 수비 장타면 장타 한두 가지라도 확실히 해주는 선수부터 일단 영입하는 것과 비슷한 행보다. 진필중 역시 아직 완전히 매끄럽진 않아도, 자기 색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거기에 잘 어울리는 조각이다.
- 에디터
- 유지성
- ILLUSTRATION
- 문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