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구찌는 어떻게 다시 정상에 복귀했나?

2017.03.27강지영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어쩌면 패션을 강렬하게 사랑하는 동시에 끔찍하게 미워할지도 모른다. 그가 만든 구찌 2017 가을 겨울 컬렉션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FIRST LOOKS BY BRATISLAV S72_35

올더스 헉슬리는 <여러 여름이 지난 후 백조가 죽는다>라는 책을 썼다. 알렉산드로 미켈레? 그라면 여러 계절이 지난 후 상식과 관념은 죽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전제는 그 자신과 함께하는 여름과 겨울이겠지만. 그동안 패션 역사에 어떤 디자이너가 이토록 사랑에 헌신했으며 패션을 그 자체로 열망하고 소재를 다루려는 욕구가 충만했을까. 한편으로는 이 정도의 컬렉션을 완성하려면 그 자신, 죽도록 스스로를 괴롭히고 온갖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리란 연민도 든다. 등장과 동시에 모던 패션에서 남자 옷과 여자 옷을 나누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역설했던 그는 이번엔 모든 종류의 이분법을 거절했다. 본질과 현상, 어둠과 빛, 육체와 정신, 선과 악, 안과 겉. 양면성을 찬양하고 기존의 상식과 반대되는 해석을 기꺼이 환영한다. 얼핏 철학서의 프롤로그 같지만 쉽게 생각하면 패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모티브로 삼은 것이 연금술사의 실험실과 정원이다. 쉽게 말해 물질을 변화시키는 꿈의 과정이라 말해도 좋다. 연금술사의 정원에는 동물과 식물이 가득하고 그것들을 선택하고 분석해서 분해한 후 처리한다. 딱정벌레, 풍뎅이, 수련, 송충이, 장미, 나방, 무당벌레, 팬지, 작약, 나비, 벌, 개미, 박쥐, 다람쥐, 수선화, 너구리, 데이지, 호랑이, 아이리스, 염소, 왜가리, 부엉이, 아메리카 올빼미, 엉겅퀴…. 남자 컬렉션과 여자 컬렉션을 합쳐 무려 1백 벌이 넘는 구찌 2017 가을 겨울 컬렉션에서 옷과 함께 등장한 것들이다. 이게 참 말이나 글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우주의 온갖 것이 뛰노는 정원을 옮겨온 듯한 찬람함에 대해서만은 꼭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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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에 나온 옷과 액세서리의 면면을 살펴보면 점점 궁금해진다. 무엇이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이런 정도의 복잡한 창작으로 이끌었으며, 이렇게까지 만들려면 도대체 작업 과정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까. 동시에, 커다란 책상에 식물도감과 동물 박제, 곤충 표본, 그리고 뭔가 <신들의 사생활>이란 제목 비슷한 게 붙은 철학 서적을 늘어놓고 그 안에 파묻혀 있는 그의 강박적인 모습도 연상이 된다. 체크 수트의 벨벳 칼라에 크리스털과 비즈로 각각 꽃잎과 잎사귀를 만든다. 양말에 GG로고를 넣되 가운데는 초콜릿색 두꺼운 실로, 테두리는 그보다 얇은 금색으로 마무리한다. 복싱화 끈은 리본으로 만들고 끝은 핑킹 가위로 뾰족하게 처리한다. GRG 헤드 밴드의 탄성은 이마 위로 머릿결이 부스스하게 나올 정도만. 중세시대 벽화 프린트 수트 칼라엔 큐빅을 박는데 간격을 맞춰 한 줄로 도열시킨다. 보타이 보석 장식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을 불규칙하게 섞어서. 기병대 모자에는 깃털과 장미 잎과 가위를 달되 간격은 이렇게 저렇게. 염소 머리 반지와 풍뎅이 팔찌와 독수리 머리 반지는 어떤 손가락에 끼우고 팔찌는 날개가 오른쪽으로 향하게. 어쩌면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팀 디자이너들은 그의 주문 사항을 받아 적느라 손가락에 경련이 일어났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디테일은 구찌와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Detail

사진가 페트라 콜린스는 어린 시절을 지낸 헝가리를 추억하면서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구찌 2017 봄여름 아이웨어 컬렉션 필름을 만들었다. 체크 반바지 수트를 입은 소년과 분홍색 시폰 드레스를 입은 소녀, 타이거 헤드 블루 셔츠를 입은 꼬마는 거실에서 잠든 할머니를 두고 환상 여행을 떠난다. 장미 넝쿨과 웃자란 풀들이 가득한 시골길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곳은 푸른 타일로 사방을 장식한 옛날식 목욕탕. 그곳에서 나비 모양 선글라스를 쓰고 금빛 스팽글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를 만난다. 꼬마들이 걷고 달리고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동안, 구찌의 아름다운 안경과 선글라스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브리지에 골드 경첩을 단 검정 안경, 크리스털을 빼곡하게 붙인 커다란 선글라스, 투박해 보이지만 고유한 분위기가 있는 더블 프레임 안경. 노란색과 푸른빛을 엷게 뿌려둔 것 같은 페트라 콜린스의 영상은 인스타그램 #guccidreamscape로 찾아볼 수 있다.

Hungary Dream 

    에디터
    강지영
    포토그래퍼
    SPONSORED BY GUCCI, COURTESY OF GUCC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