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재지팩트 <Waves Like>의 핵심 키워드 5

2017.06.09GQ

시작, 시티팝, 입대, 여름, 재즈의 관점으로 들어 본 재지팩트 2집.  

#시작 태초에 힙합의 시작이 디제이(혹은 프로듀서)와 래퍼의 만남이었다는 거창한 사실까지 갈 것도 없이, 빈지노의 출발선엔 재지팩트가 있다. P’Skool의 < Daily Apartment >의 객원 래퍼로 활약한 이후, 그가 택한 길은 화려한 솔로가 아닌 오랜 친구이자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와의 협업이었다. 둘은 고교시절 힙합 동아리에서 만났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빈지노가 시미 트와이스가 재학 중이던 학교의 동아리에 “꼽사리로 딱 꼈다”(2010년 <힙합플레이야> 인터뷰 中)고 한다. 그러다 의기투합해 2008년 팀을 결성했고, 2010년 가을 첫 음반을 냈다. 당시 이미 여러 힙합 커뮤니티(< Show Me The Money > 이전, 힙합 커뮤니티의 여론은 힙합 뮤지션의 평판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에서 빈지노가 어느 레이블로 가느냐, 어떤 곡을 자기 이름으로 처음 내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의외의 선택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 더, 그는 입대 전 마지막 음반으로 재지팩트의 EP를 들고 나왔다.

 

#시티팝 타이틀곡 ’하루종일’은 흔히 ‘시티팝’이라 통칭하는 음악, 일본 뮤지션 안리(Anri)의 ‘Last Summer Whisper’를 샘플링했다. 힙합 뮤지션들이 샘플을 어떻게 다루고 구워삶느냐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어떤 곡을 샘플링했느냐다.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는 이른바 ‘통샘플링’이면 어떤가. 적어도 ‘하루종일’엔 지금 젊은이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부지런히 살펴보고, 그것을 어떻게 자기 식으로 구현할 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있다. 공간계 효과를 잔뜩 먹여 먹먹하게 들리는 랩마저 80년대 시티팝 음반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보컬의 질감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면, 꿈보다 해몽일까.

 

#입대 “Young KNight이 일단은 제가 군대 가기 전날이라고 생각을 하고 썼던 거고, 제 여자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던가 그런 게 좀 있어가지고.” < HiphopLE >와의 인터뷰에서, 빈지노는 이렇게 말했다. 빈지노는 < Waves Like > 발매와 동시에 입대했다. “Stay strong love 내 최고의 스웩이 너야.”, “다시 돌아올게 내년 모레쯤”. 친구들과 밤거리를 쏘다니고 연인과 시간을 보내기도 부족한 입대 전, 빈지노는 술잔 대신 마이크와 펜을 잡고 가까운 친구와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그녀를 위한 곡을 만들었다. “잠은 여전히 없지 I’m always awake”(‘Up up and away’ 중)라는 빈지노식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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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 음반은 여름을 앞두고 나왔다. 마침 서울의 최고기온이 거의 30도에 육박한 5월 29일에 발매됐다. < Waves Like >를 계절에 빗대자면 명백한 여름일 것이다. “멕시코에서 영감을 얻는데”, “작년과 올해 여름 거리엔 농구 저지가”, “근데 이 날씰 난 놓칠 수 없어, 야외 맥주엔 치킨”, “저 파도 위에 I’m splash, 웃옷 까고 I’ll be on my wave”라는 빈지노의 가사만으로도 단서는 충분하다. 거기에 더해 브라질 뮤지션 마르코스 발레의 ‘Virabrequim’과 안리의 ‘Last Summer Whisper’를 샘플링(원곡이 수록된 음반 이름 또한 < Heaven Beach >다)했으며, 커버 사진 역시 누군가의 집이라기보다는 느긋한 여행지의 전망처럼 보인다. 빈지노는 꼼짝없이 여름을 훈련소에서 보내게 됐지만, 그는 시미 트와이스와 함께 그들이 알고 있는 여름에 대한 감각을 망라하며 한 장의 음반을 완성했다. 재지팩트는 굳이 강조하지 않았지만, < Waves Like >를 콘셉트 음반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어떨까. 여름이라는 은근한 콘셉트 안에서 빈지노와 시미 트와이스는 힘을 빼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하다. 창작자와 똑같은 태도로 즐기기엔 편안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면 다소 헐겁게 들린다. 빈지노의 장기인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다 비슷한 내용의 ‘에고’를 쉴새없이 내비치는 가사, 곡과 섞이기보다 넘치는 듯한 드럼머신 계열의 소리가 도드라지는 리듬섹션(‘Don Emoji$’와 ‘Young Knight’, ‘Cross The Street’ 등에서)이 모두 그렇다. 다만 ’분위기’라는 테두리만큼은 단단하다. 브라스나 보컬 샘플 혹은 신시사이저 ‘패드’ 유의 잔향이 긴 소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 똑같은 가사를 반복해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이 그 테두리일 것이다. 가까이서보다 멀리서 그림을 보듯 감상하는 쪽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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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지금 < Waves Likes >를 향한 평은 엇갈리는 중이다. 팬덤에서부터 그렇다. 대부분의 당황과 아쉬움은 “재지팩트인데 예전처럼 재지하지가 않다”는데서 출발한다. 이 EP는 당연히 힙합 음반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재즈보다는 솔이나 훵크에 훨씬 가까운 인상이다. 그러니 재지팩트의 < Lifes Like >보다 빈지노의 전작 < 12 >(특히 ‘Time Travel’이나 ‘젖고있어’ 같은 곡)의 곁에 두는 게 더 자연스럽다. < 12 >엔 시미 트와이스의 곡이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이 음반은 다소 헷갈린다. < Waves Like >는 재지팩트의 변신인 동시에, 빈지노의 익숙한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빈지노는 별 설명 없이 입대해버렸고, 이 음반은 그렇게 의외의 방식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진화인가, 변절인가, 안주인가. 그렇다면 다음 음반은 누구의 비트와 함께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나올까, 그리고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은 빈지노가 데뷔했을 때부터 이미 익숙한 질문 아니었나?

    에디터
    유지성('Playboy Korea' 부편집장)
    사진
    빈지노 인스타그램,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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