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미야자키의 왕좌는 과연 신카이 마코토의 것일까.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 선언을 한 뒤 주춤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너의 이름은.>의 폭발적 흥행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가히 제4차 아니메 붐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디지털이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작가들과 제작사들은 각자 나아갈 방향을 찾는 데 여전히 애를 먹는 듯하다. 때문에 언론에서 떠들어대듯, 포스트 미야자키의 자리에 누가 앉을 지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과연 일본 애니메이션은 향후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먼저 신카이 마코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너의 이름은.>을 만들어 지금의 아니메 붐을 촉발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신카이라는 스타의 탄생은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그 징조는 2003년 발표한 단편 <별의 목소리>로, 당시 전문가와 대중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 높은 퀄리티의 작업을 거의 혼자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단연 미야자키의 뒤를 이을 재목이란 찬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진짜 강점은 스토리에 밴 풍부한 감수성에 있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등 이후 장편들은 기존 애니메이션 팬을 넘어 관객층의 외연을 넓힐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의 성과는 그 놀라운 흥행과는 별도로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 할리우드 3D CG 애니메이션에 빼앗겼던 관객들의 시선을 일본 애니메이션 쪽으로 어느 정도 되돌려놨다는 데 의미가 깊다. 또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꼭 저연령층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국내 더빙판의 목소리를 배우가 맡아야 되니, 전문 성우가 해야 되니 하며 수입사와 팬들 사이에 벌어진 신경전도 청소년 이상의 연령을 가진 관객층의높은 관심도를 잘 반영한다.
<너의 이름은.>을 일본 역대 영화 흥행 기록 4위에 올려놓은 신카이는 쉬지 않고 신작 기획에 착수했다. 그 소식에 팬들은 차기작도 <너의 이름은.>의 수준이나 그 이상의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여러 여건상 제작 팀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어서다.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손발이 맞는 제작팀을 계속 유지하는 일은 감독의 작가성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지브리 출신의 작화감독 안도 마사시 등은 이미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때문에 차기작을 제작하려면 새롭게 제작팀을 꾸려야 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신카이에 대한 기대가 계속 올라가는 이유는 포스트 미야자키로 지명된 다른 작가들의 활동과 결과물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일 것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는 얼마 전까지 포스트 미야자키의 대표주자였다. 언론에서의 기대치는 신카이에 비할 바 없이 높았다. <썸머 워즈>, <늑대 아이>, <괴물의 아이> 등 신카이보다 훨씬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어왔기에 인기도 폭넓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매 작품 일정 수준의 작품성은 유지했지만 그만의 작가성은 다소 빈약했다. 애니메이션은 실사영화보다 시각성이 훨씬 강한 매체이기에 비주얼이 가진 독창성이 매우 중요하고, 그것이 곧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다. 호소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비주얼을 만들어 내는 데 취약하다. 실사영화처럼 스토리를 잘 엮어가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스토리에 맞는 최적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한달까.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을 생각해봤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작품의 제목일 것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일으킨 화제성도 궁극적으로는 원작의 스토리에 있다. 반면 신카이는 어떤가? 아름다운 밤하늘과 별,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배경 등, 빛으로 대변되는 그만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끊임없이 화자된다.
물론 호소다가 이후 만들 작품에서 어떤 새로 운 비주얼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기대한 만큼 감동을 주거나 그 이상 볼거 리를 제공하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탄생 20년을 넘어선 지금에도 여전히 관련 시리즈를 제작, 히트시키고 있는 안노 히데아키도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그는 애니메이션보다 실사영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추세다. 작년에 총감독으로 선보인 <신 고질라>는 일본 실사영화 흥행 1위를 거두었다. 4단 변이나 빔 난사 장면은 고질라의 신세기를 열었다는 평가다. 흥행 덕에 후편도 보장받았다. 물론, 얼마 전부터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2> 제작에도 시동을 걸어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중이다. 이런 행보는 사실 감독이 아닌 제작자 입장에 가깝다. 그는 이미 제작 일선에선 한 발짝 물러나, 제작 관리에 더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그가 스스로 말했듯, 애니메이션에서는 한계치까지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기도 했다. 곧 예순이 될 나이임을 감안 해도 안노가 포스트 미야자키 시대에 주역이 되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
그 밖에도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있다. 신카이와 1973년 동갑내기 요네바야시 히로마 사는 스승인 미야자키 밑에서 <마루 밑 아리 에티>와 <추억의 마니>를 발표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내 제작부가 해산되자 순식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그는 지브리 시절 동거동락한 니시무라 요시아키 프로듀서와 의기 투합해 <메리와 마녀의 꽃>을 준비했다. <메리와 마녀의 꽃>은 디테일한 움직임, 캐릭터들의 풍부한 표현, 배경 미술의 탁월함 등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명맥을 그대로 잇고 있다. 하지만 이후로도 자기 것을 발견해 보여주지 못하면 지브리 아류에서 멈추고 말 것이다. 그에게는 지브리의 적자로서 지브리의 벽을 뛰어넘는 것이 당면 과제일 터다.
그런데 지난 2월, 변수가 하나 생겼다. 다름 아닌 미야자키다.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2013년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번에 이를 철회하고 장편 제작 복귀를 공식적으로 알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유작이 될지도 모를 백발의 감독이 내린 결단에 사람들의 마음은 존경과 우려로 뒤섞였다. 포스트 미야자키를 거론하는 시대에 당사자인 미야자키가 등판한다는 아이러니에 습관적 은퇴 번복이란 조롱도 있었다. 그렇다면 미야자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복귀한 걸까? 혹자의 말처럼, 자신의 빈자리는 자신밖에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굳이 증명하기 위해서였을까?
지난해 방영된 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난 50년 지기인 동료 야스다 미치요의 부탁으로 다시 나올 결심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은퇴작이었던 <바람이 분다>는 태평양 전쟁의 정당성과 일본 제국주의의 미화로 볼 수 있는 작품었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더욱이 <바람이 분다>는 그 스스로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 아니라 프로듀서의 강력한 요청으로 기획한 작품이었기에, 미야자키는 내심 그런 꺼림칙한 은퇴를 잘 정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입김으로 창작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은 작가는 없을 테니 말이다.
업계에서 신으로까지 불리는 미야자키는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제1차 아니메 붐부터 지금까지 근 40년 가까이 선두 자리에서 내려 오지 않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에 알린 공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인물이 업계에 다시 등판했으니, 길지는 않더라도 포스트 미야자키 시대는 잠시나마 미궁 속에 빠져 있을 게 분명하다. 반면 관객들은 신구 작가들이 앞으로 펼칠 향연에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1997년 <모노노케 히메>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그랬듯, 몇년 뒤 미야자키와 신카이가 스크린에서 한판 신작 흥행 대결을 벌일지 모른다는 기대가 크다. 업계도 이를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체 판이 더 커질 기회라며 반기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종잡을 수 없는 판도에도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디지털이다. 즉, 3D CG 기술 위에 일본 특유의 수작업 방식을 이상적으로 접목해 작가들마다 생각하는 최적의 영상을 뽑아내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디지털 제작에 회의적이던 미야자키조차 연필이 아닌 펜 마우스를 쥐고 작업하는 모습이 상황을 잘 말해준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규모는 2010년 무렵부터 2배가 급성장해 2조원대를 넘어섰는데, 이 역시 디지털 스마트 기기의 보급에 영향이 크다. 매체가 다양해져 보는 통로가 많아지니 자연스레 보는 사람도 많아지고 부가 수익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안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이다. 제작비 38억을 들여 지금까지 4천억 이상 벌어들인 <너의 이름은.>은 재능 있는 한 명의 작가와 효율적인 디지털 제작 시스템이 잘 결합된 성공 사례다. 이 점에서 보면, 신카이는 이미 포스트 미야자키일지 모른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턱없이 모자란 인원과 여건으로 그 흥행을 뛰어넘어 포스트 미야자키 시대의 확실한 기점을 세웠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작가를 주축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적은 인력과 낮은 비용으로 높은 품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향점이 만들어진 셈이다. 아직 신카이 마코토가 포스트 미야자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시금 활력을 되찾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곧 또 한 번 새로운 왕좌의 주인이 나오리라 믿는다.
일본에 대한 생각과 말과 행위에는 여전히 예민한 촉수가 도사리고 있다. 단순한 팩트일 뿐이라 해도, 가벼운 취향의 갈래라 해도, 거기엔 늘 개인적 입장과 맥락을 벗어난 것들이 고려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 ‘친일파’나 ‘한일전’ 같은 말이 여기에 조성해온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자칫 덫을 피하느라 중심을 잃는 경우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두루 경계하며, 우리는 여행, 아이돌, 쌀, 자동차, 맛집, 로봇, 애니메이션 등 요동치는 단서를 두고 일본의 지금을 불쑥 들여다보기로 한다.
- 에디터
- 글 / 황의웅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창작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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