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반수의 신이 실재하며, 수천 년 전의 왕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듯한 나라. 보름간 이집트에서 보낸 신화 같은 시간.
들쭉날쭉 서 있는 오래된 건물과 새 아파트 단지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검은 메르세데스-벤츠를 탄 수트 차림 남자들이 보였다. 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승객도 눈에 들어왔다.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은 촛불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선 이집트의 여가수였던 움 쿨숨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랑으로 채운 아름다운 밤, 천 일보다 값진 하룻밤.” 카이로에 밤이 오는 중이었다.
목적지는 나일강이었다. 약 5천 년 전, 문명을 일으켜 세우는 토대가 되었고, 현대에 들어선 이집트 공화국의 동맥이 된 6천6백 킬로미터의 물줄기. 나일강이 없었더라면 카이로는 물론 이집트도 세계사에 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야 어찌 됐든, 현재 나일강은 카이로에서 거의 유일한 여백의 공간이다. 약 1천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에서 그나마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 나일강 주변이다. 보트에 올라 낚시를 즐기는 가족, 강기슭을 뒤덮은 커플, 정복을 입은 채 헤엄치는 해군사관학교 생도 등 열사의 땅에 사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나일강에 당도하자 길게 줄지어 정박한 모터보트가 물결에 일렁였다. 더위를 피해 다급하게 호텔을 찾아 들어가 안도했던 오후, 요란한 음악에 맞춰 밤새 춤을 추던 밤, 카이로를 전부 태우려는 듯 시뻘겋게 떠오르던 태양 등 이곳에서의 추억을 하나둘 복기하던 찰나였다. 그런데 2011년 전후로는 기억에 공백이 있다.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라바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진 시기였다. 유혈 사태가 발생하고 정치 상황이 점점 복잡해지자 어쩔 수 없이 이집트를 떠나야 했다. 1년 뒤, 시민들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새 대통령을 선출했다. 광장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겨우 12개월이 지나 새로운 정부는 군부 쿠데타로 전복됐다. 이집트는 다시 혼돈에 빠졌다. 당연히 관광 산업도 쇠퇴했다. 한때 이집트를 찾는 1년 관광객의 수가 동기간 영국 대영박물관의 관람객 수보다 적은 해도 있었다. 관광 산업을 되살리려는 프로젝트가 곧장 가동됐다. 포시즌스가 카이로의 전설적인 호텔 셰퍼드를 인수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카이로에서 가장 사랑받는 호텔인 나일 힐튼은 나일 리츠칼튼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수년간 버려진 채 방치돼온 타흐리르 광장의 조경도 다시 시작됐다.
이집트 관광 산업 재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라니아 알 마샷 박사가 있다. 2년 전부터 이집트 관광부를 이끌고 있는 관료이자 이집트의 첫 여성 장관이다. 결단력이 강하고 단호한 동시에 온화한 미소로 무장한 사람이다. 카이로 동물원이 내다보이는 사무실에서 그녀가 들려준 개혁안은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고, 호텔의 기준을 높여 젊은 층의 방문 유도를 골자로 한다. 이집트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통째로 바꿔놓겠다는 생각이다. “여태까지 고대 이집트가 남긴 유산이 관광 산업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집트와 이집트인 모두를 기념하고 싶어요.” 그녀가 말하는 새로운 관광 자본은 예술, 디자인 그리고 이집트에 얽힌 스토리다. 보석 세공사와 길거리 음식, 10일간 후르가다 내륙에서부터 홍해의 산맥을 아우르는 하이킹 코스, 그리고 예수와 그의 부모가 이집트 내에서 움직인 경로를 따라가는 여정 등이 이에 포함된다.
물론 쉽지 않은 계획이다. 한 호텔 매니저는 “여기는 이집트라서…. 아무리 장관이라고 해도 아마 원하는 바의 반도 이루기 힘들 겁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정치 게임에 걸린 문제라는 뜻이다. 현 정권에서 구상 중인 관광 산업 회생안의 최종 결정권자는 결국 대통령이다. 최고 지도자에 대한 이집트 내부의 반감이 적지 않기 때문에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항공과 호텔 예약은 꾸준히 차오르고 있다. 여객선도 다시 본업을 되찾았다. 속도가 더디긴 해도 이집트는 분명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관광부 장관과 나눈 이야기가 여운을 남겨서일까? 카이로 비엔날레 개막 파티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신화나 피라미드를 둘러싼 미스터리에는 관심이 많아도 현시대의 이집트가 지닌 창의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이집트의 영화배우, 제작자, 디자이너, 음악가와 가수가 아랍어권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13회째를 맞이한 비엔날레는 이를 상기시키기 위해 이집트 예술가들을 무대에 올린다. 행사에 참석한 한 기자가 말했다. “어쨌든 비엔날레가 개최되었다는 점만으로도 이집트 예술의 미래는 긍정적이에요. 마지막 비엔날레가 8년 전이었거든요.” 행사장에선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릭 오웬스와 그의 프랑스인 뮤즈인 미셸 라미,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유세프 나빌, 레바논 화가 아이만 바알바키가 보였다. 그들은 정부 관료와 유럽 외교관들 틈바구니에서 여기저기에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엔 기자로 향했다. 오래된 예술 작품이자 고대 세계의 상징적 존재인 피라미드를 마주했다. 물론 피라미드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지만, 빼곡한 건물들 사이에 솟은 거대한 봉우리를 볼 때면 언제고 무기력하게 압도당했다. 경외심은 피라미드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커진다. 피라미드 하나를 이루는 블록은 총 2백만 개가 넘는다. 블록 한 개의 높이는 대부분 성인 남자의 키를 훌쩍 넘어선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낙타를 타라고 아주 절박하게 호객하는 무리 사이를 홀로 빠져나왔던 적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피라미드 주변에서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때처럼 절박하지는 않았다.
피라미드가 보이는 곳에 이집트 박물관이 개관하는 올해는 더 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10억 달러를 쏟아부어 지은 박물관은 이집트가 보유한 고대 유물을 과시하기 위해 유리와 화강암을 층층이 쌓아 올렸다. 이곳에는 5천 점이 넘는 투탕카멘의 보물이 최초로 전시될 예정이다. 리넨 소재의 속옷부터 부메랑처럼 생긴 투창기 등 대중에게는 처음 공개되는 물건들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와 박물관이 고대 이집트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유이한 곳은 아니다.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노천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도시 룩소르가 있다. 파라오와 당대의 이집트인이 남긴 생생한 기록을 보고 싶을 때면 종종 찾던 곳이다. 룩소르엔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왕 세티 1세의 묘가 있다. 그는 즉위한 지 3년 만에 사망한 아버지 람세스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수습해 국가 내부의 질서를 회복했고 왕국의 영토를 확장했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예술이 가장 번창한 때도 세티 1세가 통치하던 시대였다. ‘왕가의 계곡’에 잠들어 있던 세티 1세의 무덤은 최근에야 다시 개방됐다. 수십 년에 걸쳐 상습적인 침수로 인해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문을 닫은 이력이 있다. 당시만 해도 다시는 문을 열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주변 환경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정비한 끝에 3천3백 년 된 왕의 무덤은 다시 사람들을 맞는 중이다. 신의 가호를 받으며 등장하는 왕의 그림, 상징을 내포한 신비로운 표식들, 당시의 별자리를 새긴 천장. 공기마저도 심오하고도 묘한 세티 1세의 무덤 안에서 몇몇 사람은 오랜 시간 묵상에 잠겨 있었다.
이집트 관광 산업이 소생하고 있다는 증거는 룩소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랍의 봄 이후 나일강을 따라 오가던 대다수 선상 호텔은 영업을 멈춘 바 있다. 다행히도 갑판 위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강둑의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태운 채 선상 호텔은 다시 강을 따라 운항하고 있었다. 조금 더 작은 여객선 다하비야 역시 바쁘게 떠다녔다. 별도의 동력기관 없이 돛을 이용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선박이다. 특히 다하비야를 이용해 룩소르 남부에서부터 아스완의 에스나까지 6일에 걸쳐 항해하는 ‘누르 엘 나일 Nour El Nil’은 이집트를 찾는다면 반드시 경험해야 할 프로그램이다. 관광객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무덤과 사원을 둘러볼 수 있고, 플라타너스 그늘이 드리운 시골 마을을 거닐 기회도 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예인을 해야 하지만, 밧줄에 줄지어 앉은 물총새와 야자 농장 앞의 물소, 바나나와 사탕수수 농장을 돌보는 농부를 만나는 경험을 생각한다면 이마저도 흔쾌한 과정이 된다.
보름 동안의 여행 일정이 중반을 넘고 있었다. 그래도 이집트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소화할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다하비야 갑판에 앉아서 캔버스 차양 아래에서 책을 읽었고, 강바람에 취해 잠이 들기도 했다. 나일강 항해는 단지 이동이라는 개념보다는 공간과 시간을 통과하는 게으른 여정에 가까웠다. 원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방문한 뒤 지중해 연안을 따라 클레오파트라의 무덤에 가볼 예정이었다. 시간이 남는다면 홍해 연안도 들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밧줄이 당겨지며 내는 우드득거리는 소리, 서두를 필요 하나 없다는 듯 바람에 실려 떠밀리는 배, 차가운 술잔에 맺힌 물방울 앞에서 미리 세워뒀던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다시 찾은 이집트에서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느리게 흘렀고, 나일강의 수면은 낙조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 에디터
- Anthony Sattin
- 포토그래퍼
- Alistair Taylor-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