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코로나19가 드러낸 팬 사인회와 음반 수익의 상관관계

2020.05.11박희아

음반 판매와 직결되는 팬 사인회를 포기할 수 없는 K-pop 시장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영상 통화 팬 사인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인 지난 2019년 12월, ‘V HEARTBEAT’ 팬사인회에에서 팬들이 질서 있게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한 보이그룹의 팬인 C씨는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멤버의 팬사인회에 참석했다. 정확히 말하면, ‘참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돌 그룹들이 팬사인회를 영상 통화 서비스를 활용해 진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C씨는 팬사인회 당첨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한 친구의 작은 가게를 빌려 배경을 꾸몄다. 아름다운 배경에서 ‘최애’ 아이돌과 영상 통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상상조차 못한.” C씨는 약 3분 가량을 영상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이날의 영상은 C씨의 스마트폰에 고스란히 저장됐다.

“솔직히 현장 팬사인회보다 좋아요.” C씨가 영상 통화를 통한 팬미팅을 “현장 팬사인회보다 좋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오로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면 팬사인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수많은 팬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인을 받는 줄이 아니라 대기하는 자리에 앉아있는 팬들 중에는 여러 명이 동시에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며 원하는 멤버의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개중에는 “무례할만큼 멤버에게 ‘야, ◌◌◌! 너 여기 안 봐?’라며 소리를 지르는” 팬들도 있다. C씨는 “이런 팬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쾌감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좋다”며 “3분 동안은 둘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만 깔끔하게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영상 팬미팅에 참여한 또 다른 팬 K씨도 “조용한 데에서 얘기할 수 있고 나만 간직할 수 있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코로나 시대에 생긴 신개념 팬사인회다.

그러나 이런 팬사인회, 혹은 팬미팅은 사실상 그들의 소속사 입장에서는 금전 마련을 위한 자구책 차원에서 기획된 것이다. 한 아이돌 그룹 소속사 관계자 A씨는 “팬사인회를 해야 앨범이 많이 팔리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팬사인회 진행이 어려워서 생각해낸 게 바로 영상 팬미팅”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팬사인회가 있는 주의 앨범 판매량은 그렇지 않은 주의 앨범 판매량과 작게는 몇 배, 많게는 수십 배씩 차이가 난다. 앨범 팬사인회를 주관하는 몇몇 음반 판매사에서는 팬사인회 당첨 기준에 대해 다양하게 제시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팬사인회 경험이 있는 C씨나 K씨는 “대부분 제비뽑기라고 말은 하지만 B사의 경우는 많이 산 양대로 ‘줄세우기’ 경험이 많고, C사의 경우에는 그나마 가끔 ‘n장의 기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여기서 ‘n장의 기적’이란, 팬사인회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수십 장, 수백 장이 아니라 n장, 즉 10장 미만을 구입해서 당첨이 되는 경우를 뜻한다. 수십, 수백 장씩 구입하는 게 일상이 된 팬들 입장에서는 기적이나 마찬가지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제껏 한국의 아이돌 그룹 소속사들이 앨범 판매에 상당부분 의존해온 현실을 보여준다. 소액의 출연료가 들어오는 방송 출연을 제외하고 주요 수입원이 되는 콘서트, 특히 해외 투어 등이 모두 취소되면서 그들이 의지할 곳은 사라졌다. A씨는 “사인회 취소보다 콘서트나 기타 큰 수입원이 되는 행사들이 모조리 취소되면서 생긴 타격이 사실 훨씬 컸다”면서 “그나마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게 사인회를 영상 팬미팅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프로듀서 B씨는 “지금은 앨범을 낼수록 손해인 상황인데 컴백을 안 할 수는 없었다”며 “하지만 다음 앨범을 내려면 자금을 회수해야 되는데 그중에 중요한 팬사인회가 사라지면 기본도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A씨나 B씨 모두 입을 모아 “팬사인회를 통한 앨범 판매 수익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수십 장, 수백 장에 이르는 앨범을 사서 팬사인회에 응모하는 팬들이 지금의 밀리언셀러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한국 아이돌 산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물론 팬사인회가 없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많은 양의 앨범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관행에 비춰볼 때, 한층 분명해진 사실은 한국 아이돌 산업이 코로나19라는 의문의 바이러스로 팬데믹을 맞이하며 기반부터 흔들릴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영상 팬미팅을 통해 앨범을 판매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은 당분간 그대로일 것이다. 그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 새로운 마케팅 방식을 고민하고, 성공적인 전략을 만들어낸 회사가 팬데믹 시대에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팬들은 그들의 제도에 소비로서 순응하게 될 것이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