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트럼프의 ‘뷰티풀’에 던지는 질문

2021.03.16GQ

트럼프가 남기고 떠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연방 건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행정명령이다. 아름다운 건축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Beautiful.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가장 즐겨 쓰는 단어다. 트럼프의 모든 말과 글을 데이터베이스화한 사이트 팩트베이스 factba.se의 자료에 따르면, 그는 지난 4년의 재임기간 동안 트위터와 연설, 기자 회견 등을 통해 ‘뷰티풀’이라는 형용사를 총 4천9백43회 사용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대통령 취임 후 6개월 동안, 트럼프는 35가지 인물과 사물, 상황 등을 ‘뷰티풀’하다고 말했다. 그 대상은 동물원의 고릴라부터 석탄과 군사 무기,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야유를 받은 순간, 대한민국 영부인 김정숙 여사까지 다종다양했다. 고릴라와 뷰티풀? 동물원 우리 안에서 네 살배기 아이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결국 총살당한 고릴라가 그 아이를 붙잡고 있던 모습을 “마치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것 같았다”고 묘사하며 트럼프는 ‘뷰티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뭔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여백을 메우기 위해 쓰는 단어 같기도 하다.

트럼프의 ‘뷰티풀’이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작년 12월 21일, 그가 임기 중 203번째로 서명한 행정명령 ‘아름다운 연방 건축물 증진 Promoting Beautiful Federal Civic Architecture’을 통해서였다. 임기 중 온갖 대상에 ‘뷰티풀’이라는 형용사를 남발하는 동안에도 트럼프가 건축물과 관련해 그 단어를 사용한 대상이 이민자를 통제하기 위한 미국-멕시코 장벽뿐이었다는 사실은 괴상하지만, 얼핏 보기에 행정명령 자체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건축이 아름다우면 좋지 뭐. 그것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짓는 공공 건축이 아름답다면 더더욱. 그런데 이 대목에서 슬며시 피어오르는 의문. 건축과 아름다움, 아름다움과 건축. 대체 아름다운 건축이란 무엇일까?

현대 미술의 역사는 당대를 지배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파괴해온 역사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전적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원시 공예와 변기, 통조림 같은 대량 생산 공산품 등이 예술로 ‘인정’ 받으며 산산이 부서졌다. 이러한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존엔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 무엇인가가 충격을 주고, 예술로 인정받고, 주류로 인정받으면, 다시 그에 반기를 든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가장 실용적인 예술의 한 형태인 건축에서도 마찬가지. 오랫동안 아름다운 건축은 고전적 건축과 동의어였지만, 어느덧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며 상대적 개념이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 이렇게 썼다. “아름다운 건축이란 무엇일까? 현대로 오면서 이 질문은 답이 없을 수도 있는 거북한 질문이 되었다. …(중략)… 한때 건축가의 중심 과제로 간주되던 아름다움의 창조는 이제 진지한 전문적 토론의 장에서 조용히 증발하여 혼란에 빠진 개인이 책임질 영역으로 물러나버렸다.”

트럼프의 203번째 행정명령은 이러한 흐름을 철저히 거스르거나 외면한다. 행정명령엔 ‘beauty’와 ‘beautiful’이라는 단어가 총 11회나 반복해 등장하지만, ‘아름다운 건축’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당위를 이야기한다. “연방 건물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아름답지 않은 건축은 보다 명확하게 규정한다.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건축 운동으로부터 파생된” 브루탈리즘과 해체주의 건축. 행정명령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못생기고, 일관성이 없다(ugly and inconsistent).” 그리고 엘리트 건축가와 평범한 미국인을 구분 짓는다. “연방 건물을 설계할 때는 동료 건축가들의 평가가 아닌, 건축주(client)인 미국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이 행정명령에 따르면, 소수의 건축가들이 아닌 다수의 미국 시민은 브루털리스트 건축의 무뚝뚝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닌 고전적인 건축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고전적인 건축이 보편적으로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찬란한 당위.

이에 대한 건축계의 반응은 즉각적 반발보다는 안도에 가까웠다. 미국 건축사협회(AIA) 대표인 로버트 아이비는 “생각보다 광범위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말했고, 컬럼비아대 건축학 교수인 하인홀드 마틴은 “이 행정명령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지난 12월 언론에 공개된, 연방 건물을 고전 양식으로 지어야 한다는 행정명령 초안의 내용보다 여러모로 순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로부터 한 달 뒤면 차기 대통령 조 바이든이 취임해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취소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트럼프의 재선 실패로 이 모든 것이 실없는 해프닝처럼 지나가리라 여겼다. 기껏해야 지지층의 결집을 의도한 여러 제스처 중 하나 정도로 보였달까. 하지만 그로부터 2주 뒤 일어난,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답지 않은 사건이 아름다운 건축을 권장하는 행정명령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도록 만들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대통령 선거의 부정 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차기 대통령 인준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 진압된 사건이다. 미국 연방 의회가 물리적 피해를 입은 것은 1983년 테러 이후 처음이며, 자국민에 의한 피해는 역사상 최초다. 트럼프는 시위대를 진정시키기는커녕 선동하고 독려했다. 그리고 그들이 점거하고 파괴한 미국 국회의사당은 트럼프의 203번째 행정명령이 밝힌 ‘아름다운’ 건축, 즉 미국의 고전적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트럼프의 독려를 받은 시위대는 그 ‘아름다운’ 건물의 문과 창문을 뜯고 들어가 가구와 집기를 부수고, 소화기를 분사하고, 음식을 먹고 거리낌없이 용변을 보았다. 심지어 도난당한 의원 발언대가 옥션 사이트 이베이에 매물로 오르기도 했다. 비현실을 넘어 초현실적인 사건이었다.

사실 누구도 이 행정명령이 트럼프의 의중을 직접적으로 반영했으리라 믿지 않았다. 그 자신 부동산 개발업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고전적인 건축 양식을 자신의 건물에서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현대 건축 기술을 상징하는 자재 중 하나인 유리로 뒤덮인 트럼프 타워 건축에서 비평가들이 문제 삼은 건 특정 양식이나 미감이 아닌 ‘철학의 부재’였다. 트럼프에게 건축은 미학도 양식도 철학도 태도도 아닌 철저히 비용과 이윤의 문제였다.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늘릴 수만 있다면, 아름다움이든 철학이든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임기 중 트럼프가 집요하게 추진한, 어쩌면 현대판 만리장성이 될 수도 있었을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은 재선 실패와 함께 건설이 중단되었다.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찾아본 ‘짓다 만’ 국경 장벽(의 토막)이 사막에 덩그러니 놓인 모습은 그 자체로 공허한 대지 미술 또는 거대한 시대착오적 농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 선거 결과에 따라 장벽이 완성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고, 누군가에겐 막대한 이윤을 안겨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무사히 치러진 지금에 와선 트럼프가 주장해온 대선 부정 선거 음모론부터 ‘아름다운 건축’에 대한 행정명령, 의사당 점거 사태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 역시 짓다 만 장벽의 잔해처럼 보인다. 조금도 웃기지 않은 거대한 농담. 쓸모 없고, 시대착오적이며, 전혀 아름답지도 않은.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좇는 이들에 의해 앞으로 뭔가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분명히 품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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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정규영(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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