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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듯 바라본 매혹적인 자동차

2021.04.02GQ

훔치듯 바라본 매혹적인 얼굴들의 기록.

포르쉐 911 Turbo S Coupe

911 TURBO S COUPE ― 콘크리트가 만들어낸 그늘은 시원하기보다 차가웠다. 그 아래 똬리를 틀 듯 가만히 들어앉은 회색빛 포르쉐도 그랬다. 도시의 색을 닮은 포르쉐에서는 뜨겁게 울부짖던 맹렬한 배기음도, 도로에 바짝 엎드린 채 내달리던 역동적인 속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멈춘 보닛에서 회색 수트가 떠오를 때면, 이름 모를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꼭 저 컬러의 911을 탔던 것도 같았다. 이런저런 시시한 단상을 끊어낸 건 겹겹이 교차된 구조물을 기어이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었다. 산산한 그늘 아래로 파고든 햇살의 집요함은 흐르듯 이어지는 포르쉐의 유려한 자태를 내리 비췄다. 그때부터 커다란 상체와 단단한 바퀴, 그리고 그것들을 거뜬히 견인할 건강한 심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캐딜락 XT4

XT4 ― 컴컴한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XT4를 한참 지켜봤다. 제법 크지만 둔해 보이지 않고, 매끈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묘한 매력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XT4가 흘린 요술에 맥없이 홀려서는 고개를 쭉 빼고 보는 노골적인 추태마저 저질렀다. 이 모든 시작은 Y자로 가늘게 솟아오른 헤드램프부터였다. 아이라인을 빼 올린 여성의 섹시한 눈매를 닮은 헤드램프의 라인을 따라 보닛에서 A필러, A필러에서 리어 램프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곡선 없이 직선으로만 이어진 실루엣은 제법 멋지고, 매력적이었으며, 캐딜락의 세련된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신선했다. 어떤 아름다움이 잊히는 건 더 아름다운 무엇이 나타났을 때다. 더 바라보면 이 세련된 실루엣도 금방 잊힐까 고개를 얼른 돌렸다.

아우디 R8 V10 Performance

R8 ― 천둥 같은 엔진 소리가 지하 주차장을 가득 채웠다. 도대체 어떤 차가 이렇게 커다란 울림통을 가졌는지 궁금해 고개를 빼고 엔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납작 엎드려 그르렁대는 R8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서킷 출발선 앞에서 철렁, 하고 떨어지는 녹색기를 기다리 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시원하게 모든 랩을 마친 후 체커기를 받고 서서 숨을 고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엔진에 열이 남은 R8은 달리지 않아도 달리는 모습이 상상됐고, 출력을 증폭시키지 않아도 폭발해 가속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커다란 타이어를 꼭 맞게 감싼 펜더를 봤을 땐 파란색 맞춤 수트가 떠오르다가, R8의 허리를 받치고 있는 카본 블레이드에서는 탄탄하고 매끈한 턱시도의 커머번드가 생각났다.

제네시스 GV70

GV70 ― 빨간색 GV70이 들어서자 주변이 달리 보였다. 녹이 올라올 정도로 낡은 철문은 그럴싸한 빈티지 무드가 더해져 제법 있어 보였고, 콘크리트를 때려 부어 만든 볼품없는 고가 다리는 이름 모를 작가의 조형물처럼 보였다. 한술 더 떠 고가 다리 아래 생긴 단면은 마치 퍼즐에서 툭 떼놓은 조각처럼 GV70의 리어 라인과 꼭 맞아떨어져 보이기도 했다. 그런 GV70의 묘한 존재감에 선처럼 그어놓은 가늘고 긴 라이트 라인이 켜졌을 때, 초라한 뒷골목은 순간 미래 공간으로 신생했다. GV70이 비좁은 골목을 빠져나가기 위해 방향등을 켰을 때 다시 골목은 어떤 무대보다 화려하게 빛났는데, 그게 또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이 모든 환영은 빨간색 GV70이 돌아 나가면서 색안경을 벗은 것처럼 말끔히 지워졌다.

    에디터
    신기호
    포토그래퍼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