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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 떠난 고추장 치킨버거에 생긴 일

2021.06.09GQ

뉴욕으로 떠난 고추장 치킨버거에 별안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애초에 한국적인 음식, 한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고추장 논란이 뜨겁다. 시작은 지난해 9월 말 한국 쉐이크쉑에서 한 달 동안 한정으로 선보인 고추장버거였다. 전 세계 쉐이크쉑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공개하는 한정판이라고 소개하며 고추장 쉑, 고추장 치킨 쉑, 고추장 프라이를 함께 출시했다. 쉐이크쉑의 컬리너리 디렉터로 신제품 개발을 총괄하는 마크 로사티가 서울 여행 중 한국 전통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메뉴명처럼 세 가지 신제품을 관통하는 특징은 고추장이다. 여기에 잘게 썬 양배추와 김치, 소스를 버무려 만든 김치슬로를 더했다.

고추장 쉑은 김치슬로, 소고기 패티에 에멘탈 치즈, 오이피클을 얹고 고추장 마요 소스를 발랐다. 고추장 프라이는 주름진 모양으로 썬 크링클 컷 프라이에 고추장 마요 소스, 고춧가루, 쪽파, 베이컨을 올렸다. 셋 중 한국적 요소가 가장 많이 가미된 건 고추장 치킨 쉑이다. 김치슬로 위에 닭 가슴살 패티를 올렸다. 두툼한 닭 가슴살을 수비드 조리하여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살린 패티에 고추장 글레이즈 소스와 참깨를 더한 모습이 딱 양념치킨이다. 햄버거 번 사이에 넣어 먹는다는 게 새로울 뿐 양념치킨에 양배추 코울슬로를 곁들인 익숙한 맛이다.

논란이 시작된 건 올해 1월 미국 쉐이크쉑에서 고추장 치킨버거를 출시하면서부터다. 현지인 입맛을 고려해 메뉴에 변화를 줬다. 고추장 쉑은 메뉴에서 뺐다. 고추장 치킨 쉑은 코리안 스타일 프라이드치킨 샌드위치로 이름을 바꾸고 김치슬로 대신 백김치슬로를 넣었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한인 가족이 운영하는 김치 회사 ‘최씨네 김치’에서 만든 백김치를 썼다. 고추장 마요 소스에 찍어 먹는 치킨 바이트와 고추장 프라이도 함께 내놨다. 이 세 가지 메뉴를 2021년 1월 5일부터 4월 5일까지 미국 전역에서 한정 판매했다. 고추장은 홍고추와 찹쌀, 메주를 넣어 만든 한국인의 최애 소스로 매콤달콤하며 감칠맛이 풍부하다는 설명도 더했다. 국내 언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MBC <뉴스투데이> 이슈톡에서는 “고추장 김치버거 미국 본토 진출”을 키워드로 뽑았다. 코로나19 상황에도 한류 열풍을 타고 ‘K푸드’의 인기가 대단하다, 고추장 김치버거의 현지 반응도 좋다는 식으로 다룬 뉴스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정작 미국 내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가 컸다. 문화적 도용이란 주장이었다. 문화적 도용이란 주류 문화권에서 비주류 문화권의 전통이나 관습을 무단으로 베끼는 걸 말한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은 없다.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또는 재미로 가져다 쓰는 거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속옷 패션쇼에서 모델이 미국 원주민 부족의 깃털 머리 장식을 쓰고 나온 게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2012년 전사의 용맹을 상징하며 추장이 쓰는 모자를 속옷 패션쇼에서 쓰고 나온 것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17년 패션쇼에서도 비슷한 장식을 썼다. 음식에도 문화적 도용 논란이 있었다. 2019년 뉴욕에서 한 유대계 미국인 커플이 중식당을 열면서 ‘건강한 재료로 깨끗한 중국음식’을 광고로 내건 것이다. 식문화에 대한 존중심 없이 돈만 벌겠다고 작정한 거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호평을 쏟아낸 국내 언론 보도와 달리 쉐이크쉑의 고추장버거가 미국에서 문화적 도용 논란에 휘말린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식 요소를 차용한 건 맞는데 제대로 차용한 건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권지애가 트윗한 것처럼 무슨 음식이든 고추장만 바른다고 한식이 되진 않는다. 그는 <이터 뉴욕>과의 인터뷰에서 쉐이크쉑의 신제품이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아주 초보적으로 따라 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코미디언 역시 백인들이 자기들 눈에 한식으로 보이는 걸 뭉뚱그려 음식으로 내고 이득을 취하려는 거 아니냐며 혹평했다. 너무 예민한 반응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미국 쉐이크쉑에서 출시한 고추장 치킨버거에 꺼림칙한 구석이 있긴 하다. 마크 로사티는 한국식 치킨버거를 흑당 바닐라 셰이크와 함께 내놨다. 로사티의 눈에는 흑당 버블티도 한국 음식으로 보였거나 아니면 한국 음식과 대만 음식을 구분할 필요 없이 아시아 음식으로 보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한식에 대한 깊은 이해나 존중이 보이지 않는 메뉴 구성이다. <이터 뉴욕>에서 보도한 것처럼 메뉴명에도 문제가 있다. 코리안 고추장 치킨 바이트, 코리안 고추장 프라이, 코리안 스타일 프라이드치킨 샌드위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리야키 소스를 바르면 일식이고 고추장을 바르면 한식이라는 식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가을 한국에서 출시되었을 때 메뉴명은 고추장 쉑, 고추장 치킨 쉑, 고추장 프라이였던 것처럼 미국 메뉴명도 코리안 스타일이란 말은 빼고 그냥 고추장만 넣는 게 나았을 거라는 지적이다.

논란이 커지자 신제품 개발 책임자인 마크 로사티가 직접 나서서 해명했다. 자사에서 내놓은 햄버거가 넓은 의미에서 한식의 변형일 뿐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이 아니라는 걸 명시하기 위해 ‘코리안 스타일’이란 수식어를 붙였다는 해명이었다. 뉴욕에서 한식 레스토랑 두 곳(단지, 한잔)을 운영하는 김훈이 셰프도 <인사이더>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긍정적 의견을 냈다. 한국 식재료나 음식을 미국 주류로 들여오는 건 좋은 일이고, 쉐이크쉑에서 한식 요소를 차용한 것은 미국인이 세계의 다양한 맛에 친숙해지는 데 필요한 하나의 과정이란 이야기였다. 그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고추장을 써서 테이스팅 메뉴를 개발해도 되고 패스트푸드 체인은 쓰면 안 된다는 건 지나치다면서, 다만 맛이 그리 좋지 않은 게 문제라고 썼다. 고추장버거의 시작이 쉐이크쉑은 아니다. 2002년 한국 맥도날드에서 고추장 소스로 맛을 낸 ‘신(辛)불고기버거’를 출시해 두 달 동안 한정 판매한 적이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햄버거를 많이 먹지 않는 성인층도 좋아할 거라며 내놓은 신제품이었다. 2009년 말에는 CJ에서 고추장 소스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내세운 이벤트가 고추장버거 콘테스트였다. 고추장만 바르면 한식이라는 고정관념의 진원지는 한국이었던 셈이다. 언론의 화제가 된 이후 고추장버거 트렌드가 계속되고 있는 곳도 한국이다. 미국 쉐이크쉑의 고추장버거는 판매가 종료되었지만 한국 버거킹에서 올 초 출시한 고추장 소불고기버거는 여전히 판매 중이다. GS25 편의점에서도 고추장 소불고기버거를 내놓았다. 기존의 한식을 넘어 한국 기업에서 만든 식품까지 세계화 트렌드에 올라타면서 K푸드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지만 현실은 이렇다. 철학이나 원칙이 전혀 없다. 햄버거에 고추장을 바르면 한식인가, 외국 기업이 한식의 요소를 차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가, 토론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현지에서 먹힌다면 그냥 그걸로 기쁜 일로 간주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외국인이 비빔밥, 불고기, 김치를 먹는다고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한 존중심이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닌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한식을 먹는다고 그 본질과 가치에 대해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없다. 들여다보고 고민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러니 멀리 뉴욕에서 고추장버거를 놓고 벌어진 논란을 지켜보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식이란 무엇인가.

    정재훈(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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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kesha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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