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파인즈 티핀을 영국 연극계 출신 배우의 명맥을 잇는 신선한 후계자쯤으로 여겼다면 그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런던에서 포착한 ‘영 셜록’의 진실한 일상들.

가이 리치 감독이 만드는 영화 속에서 후져 보이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수준이니까.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 The Ministry Of Ungentlemanly Warfare>(2024) 촬영 첫날, 히어로 파인즈 티핀 Hero Fiennes Tiffin이 나치들을 향해 기관총 쏘는 장면을 찍을 때 아주 날카로운 한마디가 날아온 이유는 그래서다. “더 쿨해 보여야 해요, 제발.”
다섯 번이나 다시 찍었지만 여전히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쿨하게 보이기’란 너무 어렵고, 그것은 무어라 정의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파인즈 티핀은 깨달았다. “가이 감독님과 작업할 때는 진지하게 연기하면 안 돼요. 진정성을 밀어붙이면 안 되죠. 그의 캐릭터들은 이미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걸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는 가이 리치식 언어를 배워야 했다. <언젠틀 오퍼레이션> 속 또 다른 장면에서는 총격전 한가운데 휘말렸는데, 파인즈 티핀은 이를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말 그대로 ‘으아아악!’ 상태”였다고 회상한다. 컷 사인이 떨어진 뒤 근처 무전기에서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린 순간도 함께. 그것은 감독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였다. 이어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해보라고 해요. 더 건달같이.” 스태프는 그 말을 부드럽게 번역해주었다. “감독님께서 정중히 부탁하시기를 조금 더 음···, 터프하게 해주시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그리고 2026년, 이 배우와 감독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 역사상 가장 많이 재해석된 캐릭터의 프리퀄 시리즈인 <영 셜록 Young Sherlock>을 통해서다. 한 차례 가이 리치를 경험한 파인즈 티핀은 이제 그의 기대에 부응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스물여덟 살인 히어로 파인즈 티핀은 군더더기 없이 냉철하고, 가시같이 예민한 가이 리치식 주인공 계보에 합류했다. 파인즈 티핀 버전의 아마존 프라임 시리즈 셜록은 소매치기 혐의로 뉴게이트 감옥 Newgate Prison에 수감된 상태로 시작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면모가 돋보이는 셜록은 건방지면서도 매력적이고,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유쾌한 면이 있어요.” 그는 셜록을 이렇게 설명한다. “결국에는 해결해내리란 걸 항상 알고 있는 사람 같아요.”
셜록 홈즈는 무성영화부터 오슨 웰즈가 연출한 라디오 드라마를 거쳐 일본 비디오 게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매체에서 3백 명이 넘는 배우가 연기해왔다. 가이 리치 감독도 이미 2009년과 2011년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주연을 맡은 영화 <셜록 홈즈>와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을 만들었으니 익숙한 소재를 다시 다루는 셈이다. 이처럼 한 세기가 넘는 역사와 전통을 등에 업고 파인즈 티핀은 <영 셜록>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부담감은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설레기도 했어요.” 이 묘한 감정에 대해 그는 현장 총괄 프로듀서인 매튜 파크힐 Matthew Parkhill에게 물어보았던 때를 떠올린다. “‘이걸 써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요?’라고 제가 물었어요. ‘저는 이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역사상 가장 똑똑한 캐릭터를 글로 묘사해야 하잖아요’라고요. 그랬더니 그가 ‘글쎄요,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나니 이젠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어요’라고 하더라고요.” 파인즈 티핀이 웃음을 터뜨린다. 결국 핵심은 하나였다. 그냥 ‘쿨하게’ 하는 것.

우리는 지난해 12월 어느 비 내리던 오후, 클래펌 커먼 Clapham Common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파인즈 티핀이 자란 스톡웰 Stockwell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아침 운동을 막 마치고 온 그는 아무 무늬 없이 단순한 검은색 티셔츠에 회색 러닝 쇼츠 차림이었다.
원래 그에게는 의도적으로 쉬어가는 해였다. 그럼에도 새로운 버전의 ‘셜록 홈즈’ 작품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데는 가이 리치 감독과 다시 작업한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저는 항상 그를 존경해왔어요. 엄청나게요.” 그가 수란의 노른자를 칼로 가른다. “그에게는 희한한 오라가 있어요.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메타 캐스팅, 즉 극 중 캐릭터와 배우의 실제 모습이 절묘하게 투영되는 캐스팅으로 셜록의 아버지 역할에는 조셉 파인즈 Joseph Fiennes가 발탁됐다. 쉽게 감동하지 않고 까다로운 성격의 캐릭터로, 프로듀서 매튜 파크힐이 조셉 파인즈에게 이 역할을 제안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이 실제 가족 관계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파인즈 티핀이 “조”라고 부르는 조셉 파인즈는 그의 삼촌이다. “실제 삼촌과 연기하는 게 괜찮은지 제작진이 물었는데 저는 곧바로 ‘말도 안 돼!’라고 외쳤어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죠?’라고요.” 물론 파인즈 티핀의 다음 대답은 “예스!”였다.
그는 뼈대 있는 영화인 가족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를 언제든 환영한다고 말한다. 삼촌 조, 영화감독인 어머니 마사 Martha, 그의 또 다른 삼촌인 랄프 파인즈 Ralph Fiennes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덧붙인다.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말이 되지 않는 방식은 원치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정말 자연스럽고 잘 맞는다고 느껴졌어요.”

파인즈 가문의 명성은 막강해서 위키피디아에 트위슬턴-와이켐-파인즈 가문 Twisleton-Wykeham-Fiennes Family에 대한 별도 페이지가 있을 정도다. 그는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먼저 그 미묘한 주제를 꺼냈다. ‘가문 덕을 본 배우’라는 시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왜 그런 논란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누가 ‘너는 가족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라고 말한다면, 저는 ‘잠깐만요, 저도 노력했고 연습했고 최선을 다해왔어요’라고 말할 거예요. 하지만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서는 1백 퍼센트 인정해요. 그런 기회는 가족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거예요.”
히어로 파인즈 티핀을 처음 알게 되면 대개 그의 독특한 이름에 먼저 시선이 갈 것이다. 특히 ‘히어로 Hero’라는 이름 말이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이 “자신들의 창의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렇게 지었을 거라고 추측하곤 했다. 형제들의 이름인 ‘머시 Mercy’와 ‘타이탄 Titan’을 보면 그 생각에 더 힘이 실린다.
어찌 되었든 ‘히어로 Hero’라는 이름은 어떤 운명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부여해주는 느낌이 있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높이 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그의 침실 천장을 파란색으로 칠하고 솜을 뭉쳐 구름 장식을 해주었다. 두 사람은 할머니 집 근처 문구점에서 산 미니어처 비행기를 함께 조립해 낚싯줄로 매달아두곤 했다.(또 다른 비행기는 그의 갈비뼈 사이를 가로지르는 ‘스피트파이어’ 전투기 타투다.)
그가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다름 아닌 “학교를 하루 빠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족끼리 잘 아는 사이였던 감독 수지 헤이우드가 연출한 2008년 작 코미디 영화 <비가 댄 벤 Bigga Than Ben>에서 파인즈 티핀은 초콜릿 바를 훔치는 단역을 연기했고, 출연료로 1백 파운드를 받았다. 그는 그 돈을 전부 들여 자신의 이름이 등에 새겨진 웨스트햄 축구 유니폼을 샀다.

이후 영화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에서 마이클 갬본과 호흡을 맞추고, 삼촌 랄프 파인즈가 연기한 볼드모트의 어린 시절인 톰 리들 역을 맡으면서, 그 경험들을 통해 그는 깨닫게 된다. 영화 세트장 안에서 보호받으며 매일을 보내는 아역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학교를 일주일만 빠져도 돌아가보면 그새 누군가는 팔이 부러져 있고, 어떤 선생님은 출산 휴가를 가셨다는 그런 일들 있잖아요.” 특히 어린 나이일수록 마법사 연기를 하며 보낸 일주일 후 돌아온 현실은 마치 수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저는 ‘그냥 평범한 아이로 지내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 흙과 나뭇가지가 담긴 자루를 나르는 조경 일, 브릭스톤 Brixton에서 바비큐를 굽는 일, 영화 촬영장의 심부름꾼 일 등등. 어머니가 제작하던 작품 현장에서 차와 커피를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모델로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페라가모와 돌체앤가바나 런웨이에 서는 경험도 좋았지만, 파인즈 티핀의 평소 스타일은 그의 표현대로 “대체로 그냥 트레이닝복”이다.
진정한 전환점은 2019년에 찾아왔다. 해리 스타일스의 팬픽이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강렬한 로맨스 <애프터 After>가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이 작품은 다섯 편의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파인즈 티핀을 ‘온라인 남자친구’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가 이 역할을 맡았을 때 제작진은 그를 따로 불러 앞으로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이야기는 아마 심리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해야 할걸요.” 파인즈 티핀이 말한다. “갑자기 사람들이 알아보고, 주목하기 시작하고, 그런 식으로 인생이 바뀌는 건 정말 엄청나게 비현실적이고, 압도적이고,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 미친 경험이에요. 그런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꽤 벅차게 느껴졌죠.”

시리즈가 끝난 후 그의 책상에는 비슷한 대본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업계는 그의 ‘매혹적인 이미지’를 활용하려고 몰려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로맨스 장르와 완전히 담을 쌓은 건 아니다. 그는 “이 장르와 저를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바치는 의미”로 2022년 드라마 <퍼스트 러브 First Love>에 출연했고, 지난 해에는 시몬 애슐리와 함께 아마존 프라임의 로맨틱 코미디 <픽쳐 디스 Picture This>의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역할 선택에서 더욱 신중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할 수도 있었던 길은 분명했다. 잘 먹히는 공식을 계속 밀고 나가면서, 편안하지만 정체된 상태에 머무는 것. “구체적으로 제목을 말하진 않겠지만, 며칠 전 아마존 프라임을 둘러보다 보니 ‘내가 할 수도 있었던 작품’이 네다섯 개는 있더라고요.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고백한다. 파인즈 티핀은 용돈을 벌기 위해 처음 연기를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자신의 삶 전체를 커리어에만 맡긴 적은 없다. “제가 원했던 건 유명세가 아니에요. 그걸 발판 삼아서 LA로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가 말을 잇는다. “전 그저 진흙 묻히며 축구를 하고, 골프를 하고, 친구들 만나는 게 좋아요.”
결국 히어로 파인즈 티핀은 ‘완전한 동네 청년’이다. 어쩌면 가이 리치 감독도 그에게서 그런 모습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매주 화요일에 축구를 하는 사람, 셜록 홈즈를 연기하는 이야기만큼이나 자신이 참가했던 골프 대회 이야기를 들뜬 목소리로 늘어놓는 사람 말이다. “저는 저의 ‘사기 같은 아마추어 운동선수 라이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셈이죠.” 그가 웃는다. “그냥 제 어린 시절 꿈대로 살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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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Iana Mur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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