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의 핵심이자 민주화의 상징 도시였던 그단스크. 창대한 역사를 뒤로 하고 차차 창백한 운명을 맞이했지만, 도시는 여전히 매혹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20세기 유럽에서 가장 중대한 두 사건이 여기 그단스크에서 발생했어요.” 미카엘 마지가 말한다. 이곳은 도심 북쪽 해안가인 브르세스노 Brzeźno의 한 주방이다. 텅 빈 와인 한 병이 방금 오픈해 서빙한 다른 와인 병과 나란히 테이블에 놓여 있다. 한겨울의 새벽 3시,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닫힌 상황에서도 평소 가이드로 일하던 미카엘은 전과 다름 없이 전형적인 폴란드인다운 다정함과 사근사근함으로 성실히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그단스크 도시의 굴곡진 역사를 5시간에 걸쳐 이야기했고, 나는 그 스토리에 완전히 취했다.
첫 번째 역사적 사건은 1939년 9월 1일, 독일 군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비스와강으로 이동해 도시 북쪽 베스테르플라테의 폴란드군 보급품 창고를 포격하면서 일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이다. 한 달에 걸친 공습으로 폴란드는 점령당했고,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두 번째 사건은 1980년 8월 31일, 그단스크의 레닌 조선소에서 발생한 대대적인 파업이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단체를 조직했고,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독립자유 노동조합 연대가 탄생했다. 탄압과 비폭력 투쟁이 이어졌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그것은 또 다른 종말의 시작이었다. 10년간의 무혈 혁명 후 바웬사는 자유 폴란드의 대통령이 되었다. 재앙과 희망이라는 두 사건은 마치 아코디언의 주름처럼 끊임없이 울려 퍼져, 폴란드가 팽창하고 수축하는 쌍둥이 축 역할을 해왔다.
그단스크에서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비스와강이 발트해로 흘러 들어가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곳은 독일,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등이 유럽 대륙의 심장부로 향할 수 있는 곡물, 들판, 숲, 도시의 관문이다. 한때 도시는 모든 것을 이동시키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13세기부터 1800년대 중반까지, 북유럽 전역을 연결하는 한자동맹의 중심지였고, 전성기에는 심지어 런던보다도 많은 무역을 유치했다. 웅장한 타운하우스들은 부조와 벽화로 장식한 독일-네덜란드 특유의 르네상스풍으로 지었으며, 중세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기중기와 방앗간, 가장 정확한 시계, 2만 명이 넘는 교구 주민을 수용할 만한 최대 규모의 벽돌 교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최고점이 기록되었다. 프레데릭 대제는 “그단스크를 지배하는 자는 그 어떤 왕보다 폴란드의 주인이 될 것”이라 말했고, 나폴레옹은 “모든 것의 열쇠”라 표현했다.
동이 트자 미카엘과 나는 이 메트로폴리스를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때 300개가 넘는 중세 곡물창고들이 있던 비스파 스피초 Wyspa Spichrzów에 머물렀다가 모트와바강을 바라보는 장엄한 그린 게이트를 거쳐 중심 시가지로 향했다. 오래된 마켓들이 늘어서 ‘긴 시장’이라 불리는 드우기 타르그 Długi Targ를 지나면 그림 같은 보행자 도로가 펼쳐진다. 중세의 상징과 휘장으로 가득한 이곳은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린, 블루, 바이올렛으로 장식한 궁전들의 내부는 오크, 대리석, 크리스털, 벨벳 등으로 가득해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아르투스 코트 Artus Court를 포함한 모든 것이 마치 중세의 카멜롯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그 끝에는 유명한 골든 게이트, 침략자들을 고문하기 위해 당시로선 가장 발달한 설비를 갖춘 수인탑, 도시의 정문 역할을 했던 업랜드 게이트 등이 펼쳐진다.
게이트 사이 중심부에는 ‘왕의 길’이 있다. 이 길을 사계절 내내 봐왔다. 토룬의 남쪽 강가를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터라, 지난 15년간 간헐적으로 그단스크에 살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곳은 대개 붐빈다. 특히 여름 철엔 레스토랑 테라스가 꽉 차 있고, 바닷바람이 여행자의 리넨 셔츠를 펄럭이게 만든다. 사람들은 유난히 활기 넘쳐 보여 이곳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그단스크의 탄압과 자유노동조합 연대를 떠올리는 구세대에게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흑백 TV 속, 조선소 앞에서 손수 적은 요구사항들을 들고 엄중한 표정으로 시위 중인 수많은 사람의 모습이아직도 기억 속에 있다면 말이다.
도시는 웅장하면서 아주 정교하게 보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부분이 복제되거나 재건된 것이다. 그단스크는 2차 세계 대전 말, 영국 공군과 붉은 군대에 의해 대부분 소실되었다. 물리적 실체는 잔해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의식적으로도 죽음을 맞이했다. 폴란드인과 유대인은 말살되고, 독일인은 죽거나 추방되었다. 독일어와 플라망어를 주로 사용하던 사람들이 지배하던 이 도시에서 수세기 동안의 연대표가 끊긴 셈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동쪽에서 폴란드인들이 유입되었고, 놀라운 자긍심으로 잿더미에서 많은 것을 부활시키기 시작했다. 더 느슨하고 더 즉흥적인 시간이었다.
예술가들은 고고학자들보다 더 자유롭게 복원 작업에 참여했고, 일부는 충실한 복원이고 일부는 새것이었다. 농담, 패러디, 캐리커처, 과장된 사자상, 상반신을 노출한 채로 뭉크의 ‘마돈나’만큼이나 파격적인 모습의 님프들이 등장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먼 역사로부터 최근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악의 깊숙한 곳까지 타락했다가 다시 희망의 고지로 올라가는 굴곡이 반복되었다. 끊임없이 대조적으로 굴곡진 역사가 방문하는 곳마다 등장한다. 나치가 강제로 해체했던 유대인 회당 옆, 옛 펜싱 스쿨 자리에는 17세기 셰익스피어 극단의 순회 배우들이 운영하던 기념비적인 셰익스피어 극장이 세워졌다. 우리는 2019년 1월 13일, 꾸준히 사회적 소수 세력에 대한 관용을 주창하다가 괴한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시장 파벨 아다모비치의 명패 앞에 잠시 머물렀다. 그런 다음 만일 살아 있었더라면 1920년대와1930년대 ‘단치히 자유시(옛 그단스크) 시절 민족주의를 비판했을 법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생가로 우회했다.
여기서 북쪽으로 더 가면 옛 우체국이 나타난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 베스테르플라테를 폭격할 당시, 50여 명의 우체국 직원이 나치군에 포위되었던 곳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구소련식 철제 조각상들과 함께 처형당하기 전 벽에 늘어서 있던 직원들 사진과 그들의 손자국을 상징하는 사각 몰딩이 전시되어 당시의 사건을 기리고 있다. 나무들 사이로 우리는 2차 대전 박물관의 기울어진 콘크리트와 유리 탑을 볼 수 있었다. 작가 닐 애셔슨 Neal Ascherson이 “전쟁은 어떤 목적의식적 투쟁이 아닌 재앙, 비참, 파멸, 상실일 뿐”이라 표현했듯이, 건축물 자체가 전쟁의 참상과 이념적 전장을 폴란드식으로 형상화한 대담한 시도라 할 수 있다.
구공산권 붕괴를 초래한 바웬사의 유명한 1980년 8월 선언문부터 노동조합과 시민 저항운동을 포함한 다양한 전시가 이뤄지는 자유노조 박물관 European Solidarity Centre과 그 주변은 한때 벽돌과 부서진 창문들이 뒹구는 버려진 땅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조선소가 아시아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폴란드인들은 재치 넘치는 구조 변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야외 음악 공연장과 팝업 레스토랑, 창작 공간 등이 버려진 컨테이너를 활용해 확산되기 시작했고, 마치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아티스트 체스로우 포들스니 Czeslaw Podlesny의 메탈 조각상들 역시 고철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우리는 미카엘의 차를 타고 북쪽으로 더 내려갔다. 구소련 시대의 아파트들이 늘어선 자스파 지역은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그려낸 60개가 넘는 멀티 스토리 벽화가 장식된 야외 갤러리로 재탄생했다. 시내 곳곳, 지하도, 터널, 담벼락, 폐건물 등에서 거리 예술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바다 쪽으로 방향을 틀면 브르세스노로 다시 돌아온다. 이곳은 해안가를 따라 옛 스파들이 늘어서 있으며, 특히 소폿 Sopot은 거대한 목재 부두와 워터사이드 호텔로 유명하다. 우리는 잠시 산책을 위해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백조들이 날갯짓을 하고, 빨간 크리스마스 요정 모자를 쓴 남자와 비키니 차림의 여자가 차가운 회색 물속으로 사라져 간다.
아티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말고자타 제르베는 “바다가 나를 이곳에 머물게 했다”고 말한다. “50년 전 학생으로 이곳에 왔는데, 바다 자체보다는 바다를 따라 걷는 것을 좋아해요.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바다는 바라보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가져다주죠. 배들이 곳곳에서 오가고, 스칸디나비아가 아주 가까워 보여요. 폴란드는 다소 폐쇄적일 수 있지만, 그단스크에서는 모든 게 해방되는 느낌이에요.”
그녀는 그단스크의 브제슈치 Wrzeszcz에 살고 있는데, 아파트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귄터 그라스의 동상이 있는 공원이 내려다보인다. 귄터 그라스와 <양철북>의 주인공 난쟁이 오스카가 벤치 위에서 담소를 나누는 동상이다. 브제슈치는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그라스 시절 이후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말고자타에게 그단스크에서 예술가가 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물었다. “우리는 산업화된 도시에서 새들을 그렸어요.” 그녀가 말한다. “미대에서는 6년 간 파티를 벌였죠. 소폿에 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가, 추락한 날개를 갖고 돌아와 조선소 노동자들과 마주쳤어요. 계엄령이 내려진 동안 우린 모두 갇혀 있었지만, 아파트에서 밀주를 만들어 저마다 목소릴 높였고요. 그건 흥분되는 일이었죠. 우린 폭풍의 중심에 있었고 전 세계가 지켜본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후 1980년대 후반에는 일종의 예술적 폭발이 있었어요. 한동안 환율이 좋아서 1년에 하나라도 판매되면 그해를 버틸 수 있을 정도였죠.”
“이곳에선 예술가들이 존중받는다고 생각해요. 시 차원에서 문화 자문단의 일원으로 초빙되기도 했고, 후임 시장이 임명된 후에도 계속 유지되어 왔으니까요. 흔히 다른 도시에서는 아티스트보다는 관리자들을 위해 이런 자리를 남겨두곤 하죠.”
도시가 꿈을 지원하는 혜택을 받은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문학자 제르지리몬은 대학원생 시절부터 영국 유학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런던처럼 셰익스피어를 상연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했고, 이 개념은 고착되어 리몬 이후에도 많은 학생에게 2천5백만 달러가 넘는 지원이 이루어졌다. 올해 초에 사망한 리몬은 유럽의 랜드마크라 불릴 만한 주요 극장에서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제르지 리몬은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근사한 곳을 걸으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세상엔 그 어떤 확률의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그러고는 덧붙인다. “그단스크는 유럽 연합의 축소판입니다. 이 도시는 항상 다른 국적, 다양한 종교를 유입해왔고 동시에 반항적이죠. 여기서부터 도시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우리에겐 본보기가 된 무혈 혁명이 있었으니까요. 이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소외되었지만,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었죠.” 다이내믹한 변화가 꿈틀거리는 그단스크는 결코 지루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SLEEPING, EATING, AND WANDERING IN GRANSK
STAY 오리지널 아트 컬렉션이 있는 푸로 그단스크 스타르 미아스토 호텔 Puro Gdańsk Stare Miasto Hotel(더블 룸 $55부터. purohotel.pl), 타운하우스를 개축한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아이비비 호텔 들루기 타르그 IBB Hotel Dlugi Targ(더블 룸 $77부터. hoteldlugitarg.pl), 바로크풍 호텔 포데빌스 그단스크 Hotel Podewils Gdańsk(더블 룸 $109부터. podewils.pl), 부둣가 옛 곡물창고가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단스크 부티크 Gdańsk Boutique(더블 룸 $90부
터. hotelgdansk.com.pl).
EAT 도시의 음식 풍경은 고기 요리와 감자가 전부는 아니다. 채식 메뉴가 인기를 끌고 있고 지역적으로 신선한 재료들이 공급되고 있다. 실험적인 폴란드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라치아 피노 Restauracja Fino(2인 디너 기준 $62.restauracjafino.pl), 하이 콘셉트 요리를 서빙하는 크미엘라 베 그제고스 라부다 Chmielna by Grzegorz Labuda(2인 디너 기준 $46. restauracjachmielna.pl), 멧돼지 등심과 트러플 소스를 얹은 뇨키 등의 메뉴가 있는 카니스 Canis(2인 디너 $65 정도. canisrestaurant.pl).
DRINK 산업적인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15세기 레시피 그대로 요펜 맥주를 선보이는 피지4 PG4(pg4.pl), 아르투스 코트 저장고의 주조법을 따르는 피우니카 라코프 Piwnica Rajców(piwnicarajcowgdansk.pl), 60년대 분위기가 가득한 카페 라무스 Café Lamus, 카프카의 <심판>을 테마로 주인공 이름을 본딴 요제프 K Józef K(jozefk.pl).
WANDER 가이드 미하우 마즈 Michał Maj(polandguide.pl)의 워킹 투어를 예약하거나 인스티투트 쿨투레 미에이스케 Instytut Kultury Miejskiej(ikm.gda.pl)의 무료 가상 가이드를 택할 수 있다. 로컬 스토리텔러 야첵 고르스키 Jacek Gorski는 성곽, 수로, 옛 공장 부지의 변화된 풍경을 포함해 로어 타운을 통과하는 코스를 제공한다. 자스파 지역의 벽화들을 둘러보는 짧은 여행도 좋고, 저녁 무렵에는 조선소 인근 엘렉크리코프 Elektryków 거리의 클럽이나 푸드 트럭으로 향해도 좋다.
- Writer
- Timothy O' Grady
- Photographer
- Tom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