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더그 앳킨 X 생 로랑 2022 봄 여름 컬렉션

2021.10.05김유진

베네치아의 낭만주의와 1970년대의 로큰롤을 입고 물 위를 걸었다.

흐드러진 초록색 식물들이 붉게 지나는 노을을 만나 커다란 거울에 하얗게 부서진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온갖 풍요로움, 시시각각 변하는 물과 하늘의 색이 담긴 거대한 만화경은 미국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예술가인 더그 앳킨 Doug Aitken의 작품 ‘그린 렌즈’다. 베네치아 석호 한가운데 체르토사섬 Isola Della Certosa에 날카롭게 선 ‘그린 렌즈’ 사이로 생 로랑의 2022 봄여름 컬렉션을 입은 모델이 등장했다.
몸에 꼭 맞는 날씬한 재킷과 팬츠, 나풀거리는 러플 블라우스, 뾰족한 코의 부츠를 신고 손은 바지 포켓에 찔러 넣었다. 뒤이어 등장한 모델들도 머리가 촉촉이 젖은 채 하늘거리는 실크 셔츠를 배꼽까지 풀어헤치거나 몸이 비치는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고 무심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해 보이지만 걸음걸음엔 1970년대 록스타의 당당함이 무겁게 실렸다. 해 질 녘 붉었던 하늘은 어느새 인디고 블루 빛으로 순간 낯빛을 달리했고 조명이 하나 둘 켜졌다. 블랙 & 화이트의 빅토리안 고딕 스타일 룩도 짙은 그린, 로열 퍼플, 금빛 옐로 컬러의 벨벳 재킷, 실크 시가렛 팬츠로 변주되며 화려한 로큰롤 룩으로 뒤바꼈다. 컬렉션 사이사이 생 로랑의 1979년 ‘Picasso’와 1978년 ‘Jazz’ 컬렉션에 등장한 투우사 스타일 스펜서 재킷, 1977년 ‘China’ 컬렉션의 브로케이드 볼레로 등 여성복 아카이브를 적극 차용해 다양하게 변형했다. 여기에 플랫폼 부츠와 베네치안 무드의 주얼리가 적절히 자리를 찾아 남성성과 여성성이 불편하지 않게 뒤섞였다. 새까만 밤이 될 때까지 쇼는 계속됐다. 마침내 베네치아의 풍광을 모두 쓸어 담을 만큼 커다란 자카드 케이프가 무대 위로 휘몰아치며 생 로랑식 다크 로맨티시즘이 절정으로 향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긴 케이프 자락은 춤추듯 일렁였고 모두가 그 리듬에 충실히 몸을 맡겼다.

보헤미안 스타일 블라우스와 둥근 보머 재킷도 점점 더 풍성하게 부풀어 올랐다. 음악 감독 세바스티앙이 지휘하는 사운드 트랙에 맞춰 끊임없이 울리는 수면의 파동처럼 생 로랑의 2022년 봄여름 컬렉션은 긴 여운을 남겼다. 더그 앳킨의 ‘그린 렌즈’는 이번 컬렉션과 함께 2021 베네치아 건축 비엔날레에 맞춰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비엔날레의 내러티브인 “미래란 무엇인가?”의 대답으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전통적인 베네치아의 자연 경관과 미래지향적인 동시대 물성을 혼합한 작품이다. 더그 앳킨은 거울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과 우리의 미래가 소통하길 바라며 ‘그린 렌즈’를 완성했다. 생 로랑의 2022 봄여름 컬렉션 역시 1970년대 록 스타일과 베네치아의 신낭만주의 복식을 21세기 패션으로 재해석한 점에서 뜻을 같이한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생 로랑의 컬트적인 관점은 항상 예술과 패션 전반에 걸쳐 창의적인 결합을 추구해왔다. 이번 협업을 통해 패션과 예술적 비전을 독특한 형태로 융합하고 싶다”라고 전하며 특별히 더그 앳킨과 협업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그린 렌즈’는 살아 있는 예술이자 무대가 되어 컬렉션을 눈부시게 완성했다. 찰나이자 아스라한 과거의 빛이 미래를 환하게 비추는 순간이었다.

    패션 에디터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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