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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이가 제일 웃기지" 개그맨 이용진을 만났다

2021.11.26전희란

안녕하세요 개그맨 이용진입니다.

지오메트리 패턴 풀오버, 체크 셔츠, 모두 꼼 데 가르송 옴므 플러스. 데님 팬츠, 리바이스. 러버 슈즈, 크록스.

GQ 드디어 <코미디 빅리그>에 방청객이 들어왔죠?
YJ 네. 1년 9개월 만에요.
GQ 벅차던가요?
YJ 낯설었어요. 어느 날 전 국민이 한 번에 다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당연한 건데 또 낯설더라고요.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GQ 처음 누군가를 웃긴 순간이 기억나요?
YJ 초등학교 때부터 오락부장이었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줄곧 남들 웃기는 걸 좋아했어요. “용진이가 제일 웃기지.” 이 얘기는 늘 들었어요.
GQ 이상하네. 지금은 이렇게 진지한데요?
YJ 그것도 맞아요. 평소에는 거의 말이 없어요. 굳이 쓸데없는 얘기는 잘 안 하려고 해요.
GQ 무대 체질이라고 생각해요?
YJ 저는 아닌데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평가해요. 말 한마디 없다가 녹화 들어가면 봇물 터진다고.
GQ 무대에 서면 어떤 기분이에요?
YJ 익숙한 기분. 신인 때는 굉장히 떨렸고, 제대하고 <코미디 빅리그>에서 적응할 때는 마냥 좋았어요. 지금은 익숙한 단계예요. 벌써 16년 됐네요.
GQ 익숙해지면 재미없지 않아요?
YJ 아니요. 다른 느낌이에요. 잘하는 일을 계속하는 느낌이죠. 원래 긴장을 많이 안 하기도 하고요.

카툰 패턴 패딩, 2 몽클레르 1952. 스트라이프 니트 스웨터, 이자벨 마랑 옴므. 브라운 카고 팬츠, 드리스 반 노튼 at mrporter.com. 옐로 스니커즈, 코스. 마이크, 젠하이저.

GQ 누굴 웃길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YJ 어렵다. 예전에는 동종업계 개그맨이 웃어주면 특별해지는 것 같고 인정받은 느낌이었어요.
GQ 99명이 웃지 않아도, 웃어주면 좋은 한 명은요?
YJ 요즘엔 우리 아기요. 아들이 볼 때 창피하지 않고 “우리 아빠 개그가 좀 재밌네” 해주면 좋겠어요.
GQ <지큐>는 매년 12월호에 ‘맨 오브 더 이어’를 발표하는데 제 맘대로 번외편 ‘개그맨 오브 더 이어’를 꼽아봤어요. 요즘 대세인 거 실감해요?
YJ 아유, 아유 그런 거 없어요. 전혀 없어요.
GQ 달라진 반응을 느낄 텐데요?
YJ 예전보다 프로그램 한두 개 더 하는 것뿐이죠. 데뷔한 지 16년 됐는데 대세라는 얘기는 쑥스러워요. 누구는 재작년에 라이징 스타라고 했다가, 누구는 올해 루키라고 하고. 잘 모르겠어요. 수식어 없이 개그맨 이용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GQ “나는 비주류다, C급이다” 주문처럼 외던데요.
YJ 개그의 일종이죠. 그런데 요즘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런 거예요. 제가 공격적인 토크를 한다면, 공격한 만큼 나도 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 그래서 “나는 그렇게 공격적인 사람이 아니야”라는 스탠스를 취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죠. 저는 못 배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나 잘난 맛에 떠드는 게 아니란 얘기예요.
GQ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YJ 어느 순간 제가 하는 멘트나 행동이 너무 날카로워 보이더라고요. 요즘은 상대를 공격하기보다 상대를 이용해서 웃기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어요. 직설적이지 않고 돌려서, 기분 나쁘지 않게끔. 만약 상황이 역전되어 상대가 나를 공격하게 될 때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공부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상대가 나를 공격하게 만들까도 고민해요. 요즘 신기루 누나 보면서 느끼는 건데, 결국은 자기를 희생하거나 비하해서 웃기는 게 제일 좋은 웃음인 것 같아요.
GQ ‘터키즈’, ‘괴릴라 데이트’ 등의 콘텐츠는 모두 분명한 공격 대상이 있어서 사랑받았잖아요.
YJ 그래서 적절하게 섞으려고 해요. ‘괴릴라 데이트’는 1부터 10까지 공격이었다면, ‘터키즈’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죠. 시청자분들이 제가 당하는 걸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잘 당하는 노하우를 빨리 더 쌓고 싶어요. 그러면 할 수 있는 콘텐츠가 더 많아질 것 같아요.

멀티 컬러 니트 카디건, JW 앤더슨. 핑크 셔츠, 에트로. 데님 팬츠, 로에베. 브라운 러버 부츠, 보테가 베네타.

GQ 지금 새롭게 구상 중인 무언가가 있을까요?
YJ 하나 생각하고 있는 건 있어요.
GQ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YJ 가져가실려고요?
GQ 네?
YJ 으흐흐. 비가수 중에 노래 잘하는 분들을 모아서 킬링 벌스를 만드는 거예요. 그들이 좋아하는 18번을 모아서 5~6곡씩 부르는 거죠. 개그맨, 배우, 스포츠 스타, 동네 호프집 아저씨까지 주변에 노래 잘하는 사람 정말 많거든요. 유튜브 통해서요.
GQ 개인 유튜브는 안 하고요?
YJ 개인 유튜브 채널도 있어요. 팔로워가 4천 명 정도인데, 소리 수집해서 올리는 용이에요. 파도, 폭죽, 분수대 등을 3분씩 찍어서 올려요. 주로 이런 댓글이 달려요. “지구 종말 전 마지막 인류를 녹음하는 사람 같다.”
GQ 한때 여행 작가, 가이드를 꿈꿨던 감성이 거기에 있군요. 요즘도 여행을 업으로 삼는 꿈을 꿔요?
YJ 아니요. 그냥 아이가 잘 자랐으면 좋겠다, 그뿐이에요. 책임감 있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GQ 원래 욕심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요즘 갖고 있는 욕심은 없나요? 더 웃기고 싶다든지.
YJ 건강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몸을 한번 만들어볼까? 술 마시는 것보다 굉장히 생산적인 활동일 것 같아서요. 아이한테도 좋고.
GQ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궁금해요. 아이가 “아빠 개그맨 안 하면 안 돼?”라고 하면요?
YJ 그럴 수는 없죠. 아이가 갖고 있는 장난감 한 120개를 제가 다 사준 건데요. 일하면서 오는 행복도 아주 크니까요.

멀티 컬러 재킷, 오버사이즈 팬츠, 스트라이프 머플러, 모두 로에베. 화이트 티셔츠, 리바이스.

GQ 올해 일하면서 느낀 행복 중 기억에 남는 건요?
YJ 신기루 누나 나온 ‘터키즈’ 편이 잘됐잖아요. 그 후로 <놀면 뭐하니>도 같이 나오게 됐고요. (잠시 침묵) 정말 행복했습니다. 기루 누나랑 알고 지낸 지 16년 됐는데, 저는 그때부터 이 사람이 개그우먼 중에 가장 재밌다고 이야기했어요. 기회만 한번 열리면 훨훨 날 거라고. 기루 누나 토크가 요즘 스타일인데, 그걸 16년 동안 고수해준 것도 고마워요. 몇백만 넘는 조회수 수치보다 뿌듯한 건 누군가 인정해줬다는 사실이에요.
GQ 신규진, 양배차, 미키광수, 최우선 등 주변의 잘 알려지지 않은 개그맨을 계속 건져올리고 있죠. 경쟁이 아닌 공생의 분위기가 찡하더라고요.
YJ 다 함께 잘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홍보해주고 싶거든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런 분위기 아니었거든요.
GQ 그래서 용진 씨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YJ 아니요. 그런 거창한 사명감은 아니고요. 제가 할 일은 첫 번째가 웃기는 것, 두 번째가 재미있는 사람들이랑 좋은 케미를 이루는 것, 그다음 세 번째가 재밌는 사람들을 알려주는 거예요. 함께하면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뿐이에요.
GQ 대학로 무대 시절부터 반골 기질로 유명했다죠?
YJ 싫은 소리 네가 대신 해줬으면 좋겠어 하면 저는 늘 대변자 역할이었어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못 참았죠. 정의감에 안 해도 될 얘기를 대신하고 그랬어요. 망토 두르고 온 히어로마냥 왜 그리 멋있어 보이려 했는지…. 어린 날의 객기였죠.
GQ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 좀 멋있었다 싶나요?
YJ 아니요. 군대 가서 떠올린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그거였어요. 뭐가 씌었었나 봐요. 너무 창피해요.
GQ 그런 청개구리 기질이 잘 다듬어져서 지금의 이용진이 있는 거 아닐까요?
YJ 제대하고 복귀했을 때 이런 다짐을 했어요. ‘스무살 초반에 했던 행동들을 다시는 하지 말자.’ 제 성격 중 장점은 안 하기로 하면 진짜 안 한다는 거예요. 그 이후로 말을 아끼게 됐어요.
GQ 지금은 어른스럽다고 자평할 수 있나요?
YJ 완벽하진 않지만 나이에 맞는 어른인 것 같아요.
GQ 철없던 시절이 그립진 않고요?
YJ 돌아가도 뾰족한 수가 없어요. 그립진 않습니다.

그레이 울 코트, 그린 스웨이드 팬츠, 실크 스카프, 모두 김서룡 옴므. 니트 스웨터, 마르니 at yoox.com. 네이비 스니커즈, 코스. 네이비 캡, MR. P at mrporter.com.

GQ 앞으로 기대되는 일들이 있다면요?
YJ 전에 <플레이어>라는 멤버십 버라이어티가 있었는데, 그런 떼샷 버라이어티가 굉장히 그리워요. 요즘 제가 하는 프로그램 중 출연자 수가 4명이 넘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너무 외로워요. 인원이 늘면 늘수록 재밌잖아요. 부담도 줄고요. 매주 만나는 게스트들과 연장선이 있으면 거기서 나오는 케미나 웃음이 있거든요.
GQ 직접 기획한다면 어떤 사람들 데려오고 싶어요?
YJ 재석 선배님이 봉선이 누나, 미주 데리고 프로그램 하듯이 독특하게 혼성으로 하고 싶어요. <개식스>랑 <무한걸스>를 합쳐도 좋을 것 같아요.
GQ 거기서 용진 씨는 어떤 역할이 어울릴까요?
YJ 어떤 포지션도 상관없어요. 여럿이 있어도 제 자리를 빨리 찾아가는 편이라서요. 버라이어티는 눈치 싸움이잖아요.
GQ 그런 눈치는 어디서 왔어요?
YJ 유전인 거 같아요.
GQ 치고 빠지는 게 거의 작두 타는 수준이에요.
YJ 아직은 부족해요. 더 잘하려고 노력 중이고 더 잘해야죠. 애기 장난감 더 사주려면.
GQ 센스는 갈수록 진화하나요?
YJ 나이를 먹을수록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지잖아요. 어릴 땐 어떤 얘기를 해도 설득력이 없을 때가 있는데, 중견 탤런트의 별거 아닌 에피소드는 웃기죠. 확실히 짬이나 연차가 중요한 거 같아요. 선배들이 늘 하던 “여물어야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씩 알겠어요.
GQ 앞으로 용진 씨의 앞날이 훤하군요.
YJ 그랬으면 좋겠어요. 못해도 마흔다섯까지는 감성을 유지하고 싶어요.
GQ 그런 의미에서 지큐로 이행시 갈까요?
YJ ‘큐’가 어려운데.
GQ 바로 갈게요. 지!
YJ 지상렬 형 소속사.
GQ 큐.
YJ 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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