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수 "요즘 텔레비전을 틀지 못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박해수 "요즘 텔레비전을 틀지 못해요"

2022-03-24T10:05:19+00:00 |interview|

박해수는 채운다. 천천히, 끝까지.

셔츠, 타이, 모두 루이 비통. 팬츠, 메종 마르지엘라. 벨트, 살바토레 페라가모.

GQ 배신감마저 들었잖아요.
HS 왜요, 왜요?
GQ <지큐>와 만난 날이 2020년 10월 8일인데, 그때가 <오징어 게임> 한창 촬영중이었을 시기더라고요. 이렇게 세계적으로 휩쓸 작품을 찍고 계셨으면서 어떻게 그리 평온했을까, 어떻게 힌트 하나 주시지 않았을까.
HS 하하하하. 시간이 후딱 갔네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감독님 믿고 다 잘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는 저도 예상 못 했죠. 그때는 촬영 중이라 한창 작품에 빠져 있기도 하고, 그래서 오히려 말을 못 했을 거예요. 무슨 내용이 스포일러가 될지 상상도 못 했을 때니까.
GQ 사실 지난 녹취록을 보니 제가 모르고 지나쳐서 그렇지 <오징어 게임>에 대해 스쳐 말씀하신 게 있더라고요.
HS 어, 저도 궁금합니다.

셔츠, 구찌. 이너 톱, 모두 핼무트랭.

GQ “먹는 것 앞에서는 누가 봐도 눈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평정심이 깨진다. (그런데 그걸 참고 감내하는 이유는) 몸매를 관리하는 다이어트의 의미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캐릭터에 필요한 상태, 지금 캐릭터가 겪고 있는 상황에 어울리는 정도로 준비하게 된다.”
HS 제가 먹을 거에 진짜 약해요. 배고프면 음식을 공격해요. 기억납니다.
GQ 그러면서 당시 하는 작품으로 <오징어 게임> 제목을 이야기했어요. 상우를 보니 왜 허기짐을 감내해야 했나, 그 상태가 무엇이었나 바로 이해되더군요.
HS 서울대 경영대학 수석 입학해서 졸업하고 회사 다니고, 상우가 딱히 운동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인물은 아니었는데, 갇혀 있어야 하니 그동안 변화하는 모습을 좀 보여주고 싶었죠. 그런 노력을 모든 배우가 다 같이 했어요.
GQ 상우로서는 좀 더 수척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던 거겠죠.
HS 그렇죠. 후반으로 갈수록 좀 날카로워지면 좋겠다, 그런. 캐릭터에 다가가기 위해 많은 분이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데 저는 신체적으로 먼저 다가가는 게 좀 더 와 닿아서 그런 선택을 지금도 하고 있나 봐요. 그런 목적성이 생기면 뭐랄까···, 제가 제일 약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GQ 일단 몸으로 먼저.
HS 차라리 몸으로 먼저 부딪히는 게 편하고 (캐릭터에) 다가가기도 쉽다. 저한테는 그런 방법이 좀 어울린다 싶죠.

재킷, 벨루티. 셔츠, 제이백 쿠튀르. 팬츠, 루이 비통.

GQ 이것도 몸으로 부딪힌 방법이었을까요? 서울대학교에 가서 지나가는 학생들 붙잡고 인터뷰도 하셨다면서요.
HS 굳이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찾아간 건 아니었는데, 하하하, 네, 그랬습니다.
GQ 그럼요? 무엇이 궁금했어요? 왜 학교까지 찾아갔나요?
HS 그냥 무작정 버스를 타고 서울대학교에 갔어요. 그 교정에 가보고 싶다, 상우가 다닌 학교니까 교정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계시고 어떤 풍경인지 여러 가지 느껴보고 싶어 갔다가 즉흥적으로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원래는 도서관에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거기 들어가지는 못하고, 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커피숍에 좀 앉아 있다가 학과 건물 뒤쪽으로 갔는데 한 분이 나와 계시더라고요. 제가 낯을 좀 가리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사람들도 없길래 가서 “저, 인터뷰를 해도 되겠습니까?” 해서 얘기 나누게 된 분이 물리학과 조교였어요.
GQ 즉흥적이었군요.
HS 네. “저는 이런 배우고 이런 역할을 맡았는데···” 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물어봤죠. 방학인데도 학교 나와서 잠깐 휴식 중이던 대학원생이었는데 한 45분 정도 얘기했나. 그분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많은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 후로 용기가 생겨서 지나가는 분 두 분 정도와도 더 얘기 나누고. 재밌었어요, 그런 인터뷰들이.
GQ 쌍문동의 자랑 서울대 경영대학 수석 입학 조상우는 뭐 하나 빠진 게 없는 사람 같은데 왜 이럴까, 이게 박해수 씨가 채우고 싶은 빈칸이었나요?
HS 그러면서 ‘기훈이 형에 대한 시선이 어떨까’ 그런 질문이었죠. 감독님한테 여쭤봐도 되지만 배우 자신이 찾아야 할 것도, 연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사실 과정이 제일 재밌어요. 준비 과정에서 느끼는 게 재밌죠.

코트, 팬츠, 모두 루이 비통.

GQ 앞으로 공개 예정인 신작을 위해서는 또 무엇을 어떻게 쌓아왔을지 궁금해지는데, 네 작품이 기다리고 있어요. <야차>, <수리남>, <종이의 집>, <유령>.
HS 맞습니다. 넷플릭스 <야차>가 제일 먼저 4월 8일에 공개되고요, 그 작품은 저로서는 (설)경구 선배님을 처음 만난 작품인데 선배님 덕분에 힘을 많이 얻었죠. ‘현장에서 행복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많이 생각했을 만큼 제게 의미가 깊은 작품이고, 시원시원한 액션이 있는 영화예요.
GQ 지난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나요. 그때 <야차>도 촬영 중인데 설경구 배우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연기적인 것을 넘어 현장을 아우르는 매력이나 포용력을 언급하셨죠.
HS 정말 그래요. 뭐랄까, 현장에서 선배님이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마치고 났을 때와 그 전의 에너지 차이가 엄청나요. 평소에 밥 사주시고 술 사주실 때의 모습과 어떤 배역으로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을 마치고 연기하실 때의 그 에너지 간극이 너무 커서, 그때는 저도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많은 흥분과 매력을 느끼죠.
GQ 그러고 보면 온-오프가 확실히 탁 되는 점에 흥미가 깊으신가 봐요. 단 두 예긴 하지만, 그때 이정재 배우 이야기도 하면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어떻게 그런 스타일을 생각하셨냐고 너무 인상 깊어 다가가 물었다던 기억도 겹치는데, 배우가 배역을 입기 전과 후에 완전히 달라지는 카리스마 적인 요소에 관심이 많은 건가요?
HS 매력을 많이 느끼죠. 쉽게 말해서 광대는, 아 광대라 일컬으면 그렇지만, 분장을 자기 스스로 하면서 자신과 다른 캐릭터로 들어가잖아요. 분장을 하는 순간 캐릭터 표현이 정확하게 되는 점에 대해서 저는 굉장히 존경해요. 존경이죠. 저 역시 그런 순간, 그런 부분을 좋아하고요.

팬츠, 커머번드, 모두 제이백 쿠튀르. 시계, 옉거 르쿨트르. 슈즈, 루이 비통.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음, 분장은 아니지만 캐릭터를 입는 행위라는 면에서 궁금해지는 점이 있어요. <유령>의 이해영 감독이 그러더라고요. 박해수 배우가 1백 퍼센트 일본어로 말해야 하는 일본인 역인데 단 열흘 만에 모든 대사, 심지어 상대 배우 대사까지 외워왔다고.
HS 아후···. 그때는 ‘지이인짜’ 초인적인 힘이 나왔던 순간 같아요.
GQ 물론 이해영 감독은 너무나 성실하고 훌륭한 배우라고 칭찬했지만, 관찰자로서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아니 대체 왜? 왜 그렇게까지? 그보다 일단 어떻게? 원래 일본어를 좀 하세요?
HS 하하하하하, 아뇨.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해요. 그런데 그 배역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너무 하고 싶은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이상한 도전 의식이란···. 처음에는 물리적인 시간과 물리적인 양에서 이건 불가능하다, 이건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GQ 다른 작품 촬영과 겹쳐서요?
HS 아뇨, 그건 아니었는데 대본 리딩을 며칠 앞두고 합류했고 (연기는)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다가 아니니까. 말을 하는 게 연기자는 아니고 감정을 표현해야 하니까. 그런데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완벽하진 않습니다. 나중에 나오면 어떨지. 많이 부족한데 잘 봐주신 거겠죠. 어쨌든 당시에는 너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갭에서 에너지가 막 나온 것 같아요.
GQ 오히려. ‘이상한 도전 의식’.
HS 네. 그런데 감독님께서 절 보시자마자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다고, 한번 해보자고, 그래서 “예, 그럼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랬죠. 공대유 선생님이라고 있어요. 이 작품 나오면 저는 공대유 선생님 이름을 꼭 얘기할 겁니다. 저보다 한 살 동생인 일본어 선생님인데 <야차>에서 짧은 일본어 대사가 있어서 그때 알게 됐거든요. <유령> 대본 보면서 서로 “이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하···. 그런데 하고 싶다”, “그러면 해봅시다!” 그렇게 됐죠. 숙소 잡아서 둘이 거의 살면서 하루 열몇 시간씩 주야장천 외웠어요. 하여튼 할 수 있다고 믿어주고 도와주는 모든 에너지가 내게 쏟아진 것 같아요. 올림픽 나가는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었죠.
GQ 그러니까. 너무 훌륭한 자세지만 어느 정도 가볍게 훑고 촬영 당시에 그 신만 집중해서 외울 수도 있잖아요.
HS 저 혼자만 말을 한 5분씩 해야 하는 분량이 팍 팍 팍 있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촤악’ 연설을 해서 (상황을) 잡았다 놨다 잡았다 놨다 해야 되니까 그랬던 거지, 아마 상황이 달랐다면 저도 꼼수를 부렸겠죠, 하하하하. 그런데 피할 수 없게 만들어놨어요.
GQ 어쩌면 어떤 식으로든 그 준비 과정이란 박해수의 자신감에 옷을 입히는 행위일 수도 있겠어요.
HS 맞아요. 정말 그래요. 예를 들어 ‘솔’이라는 음을 낸다 할 때 ‘솔’ 음표에 정확하게 전부 시커멓게 칠하지 않고 반만 칠해도 소리는 나는데, 꽉 채워진 음을 내려는 건, 말씀하신 것처럼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부여하는 일 같아요. 그런 준비가 좀 덜 되면 현장에서 불안해지는 모습을 스스로 느끼니까. 완벽주의는 아니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재밌으면서 조금 힘들고, 귀찮아지면 스스로가 참 부족해 보이고 그래요.

니트, 산드로 옴므. 이너 티셔츠, 올세인츠. 팬츠, 모두 제냐.

GQ 혹시 조상우처럼 모범생 스타일이었어요?
HS 아우, 지금에서야 모범생이 된 것 같고 예전엔 신나게 놀았죠. 잘 놀고 이제는 정신 잘 차리고. 어릴 때도 철 없었고, 지금도 철이 든 건 아니지만, 배우가 그렇게 철이 많이 드는 것도 좋지도 않은 것 같고.
GQ 철이라. 의외예요. 예나 지금이나 박해수 씨를 보면 우직한 에너지가 전해지거든요. 그런 얘기 자주 듣지 않나요?
HS 아이구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렇다기엔 저 약해요. 비 오면 금방 시들고, 가끔 축 처지고, 햇빛 쨍쟁하면 또 날아다니다가.
GQ 그럼 이건 어떨까요. 우선 축하드려요. 인생에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셨잖아요. 어떻게 아기가 <오징어 게임> 공개 10분 전에 태어났을까.
HS 감사합니다. 너무 신기하죠? 9월 17일이었으니까 딱 160일 지났습니다.
GQ 어떠세요? 단순히 아빠가 됐다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삶에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일일 수도,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박해수라는 인물에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HS 아직은 감정적인 변화 이런 건 잘 모르겠고 여전히 신기해요. ‘왜 이렇게 빨리 커’ 싶기도 하고. 너무 우는데 방법은 없고. 너무 울면 달래지지도 않고. 나는 아무런 힘이 없고. 우는 데다 대고 “나 조상우야” 이럴 수도 없고.
GQ 하하하하.
HS 그냥 애랑 저랑 똑같은 느낌이에요. 나도 울고, 걔도 울고. “울어? 왜 울어? 같이 울자” 그래요. 아빠의 마음은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시작이기도 하고. 아빠니까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 마음.

GQ 2020년 10월의 박해수는 사춘기를 갓 지난 시기 같다고 그랬는데 2022년 4월의 박해수는 어떤가요?
HS 맞아요, 그랬죠. 지금은···, 사춘기는 지난 것 같아요. 항상 어느 시기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생각해보면, 나는 제자리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거든요. 세상이 변하는 것만큼 저는 그렇게 막 빨리 적응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다르게 볼 때가 있더라고요. 보다 훨씬 늦게 움직인다고 여기거나, 보다 빨리 움직인다고 여기거나. 그런 다름을 인지 못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요. 이제는 동료들, 회사 식구들과 책임감있게 잘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다 싶어요.
GQ 사춘기에서 부쩍 한 스텝 나아갔네요.
HS 그 책임감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하려고 하는 그 마음 자체와 과정들 소중히 여기는 것 잊지 않고, 하나하나 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GQ 그럼 마지막 질문으로 가볍게, 박해수 배우는 요즘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보나요? <오징어 게임>에 이어 신작 중 세 작품이 넷플릭스 공개죠.
HS 뭐 봤지, 나? 얼마 전에 <돈 룩 업> 너무 재미있게 봤고, 컴버배치 워낙 좋아해서 <파워 오브 도그>···는 사실 보다 못 보고 있어요. 솔직하고 싶어서, 솔직해야 하니까 말씀드리자면 요즘 텔레비전을 틀지 못해요. 틀어도 볼륨을 ‘0’이나 ‘1’로 놓고 볼 수밖에 없는 상태라. 그런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같이 영화 하는 사람으로서, 드라마 하는 사람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