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서울아트북페어에서 고른 네 권의 책

2022.11.04이진수

UE14에서 고른 네 권의 책.

출처 UE14 홈페이지

01 <무과수의 기록>무과수
무과수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신기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집에서도 잘 있고, 밖에서도 잘 있는 사람이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일 하는 사람.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새 내 마음의 주파수가 묘하게 안정되고 있음을 느끼는데, 그 와중에도 무과수는 항상 미묘한 떨림을 유지하며 고민하고 기록하고, 사람들과 그 물음표를 나누는 데에 매우 익숙하다. <오늘의집>에서 오래동안 일해온 그는 길거리에 온갖 문제로 가득한 서울에서 ‘나의 삶’과 꼭 맞는 곳을 찾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불평하지 않는다. 도쿄에 가서도 아마 그랬을 거다. 물음표를 갖되 불평하지 않고 어떻게 더 나아갈까 생각하는. 사랑스럽고 현명한 친구의 기록.

02 <6699프레스 10주년 기념특별판 <1-14>6699프레스
매력적이고 견고한 작업을 풀어내는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인 6699프레스가 10주년을 맞이했다. 서울이라는 격동의 도시에서 스튜디오이자 출판사가 10년을 버텼다는 것. 그리고 이만큼의 결과물을 아카이빙 했다는 것은 가히 칭찬할 일이다. 내가 6699프레스를 출판사로 또렷하게 인식했던 것은 사라지는 서울의 목욕탕을 사진으로 기록한 <서울의 목욕탕>(2018)이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우리는 서울에 산다: 친구에게>(2013)라는 책도 6699프레스의 책이었다. 탈북청소년이 바라본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는데, 상경하여 어렵게 살고 있을 나를 어여삐 여긴 고향 친구가 내게 선물해줬던 책이다. 다시 돌아보니 6699 프레스의 책들은 내게 서울의 면면을 알려줬던 존재였다. 궁금하지만 들어가볼 수 없었던 골목길의 오래된 목욕탕, 가족과 연인들의 전유물 같았던 공원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이방인처럼 이 도시를 떠도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어루만질 수 있었던. 그렇기에 이 10주년 아카이브 책은 단순한 기념의 책 그 이상의 의미라고 말하고 싶다.

출처 까만개프레스 인스타그램

03 <번쩍번쩍 초고층빌딩>까만개프레스
2019년 발간된 책이지만 이 책을 발견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이창섭 군의 초고층 빌딩 드로잉과 설계작을 모은 책, <번쩍번쩍 초고층 빌딩>. 이창섭 군의 이야기를 알게된 것은 16년도에 나왔던 SBS <영재발굴단>을 최근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되면서였다. 보통 영재를 주목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우려심이 많은 터라 알고리즘에 뜨더라도 보지 않는 편인데, 유난히 눈이 갔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아이의 눈빛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부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열 살에게?) 영상이 끝이 나고 며칠 뒤 자연스레 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이후 건물 모형을 보면 종종 그 이야기가 생각 났다. 그리고나서 까만개프레스의 부스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건물을 건물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내게 아이의 그림은 설계도나 사진,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자본주의가 쌓아올린 마천루가 아닌 사람들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시선.

04 <아주 오래된 나무들>도어스프레스
이 책의 기획을 처음 읽었을 때 깜짝 놀랐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언젠가 도시 곳곳에 ‘버티고 서있는’ 나무들을 훈장님처럼 여기며, 꼭 그들을 담은 사진집을 내보고 싶다고 상상했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젊고 새로운 사진들을 발굴해 발행하는 사진 매거진 『BRETT MAGAZINE』를 발행해온 도어스프레스에서 UE14를 기점으로 새롭게 공개한 신간. 세계 곳곳의 아주 오래된 나무 사진을 모은 아카이브 북 《LIFE TIME TREE: ANCIENT TREE ARCHIVE》. 나무와 나무 사진을 좋아해서 수 년 전부터 세계 각지의 오래된 나무들 사진을 수집해오다가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먼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산책 중에, 혹은 여행 중에 찍은 나무 사진을 모았다. 하지만 그 시선과 노력만으로 이 책은 박수 받기에 충분하다. 500부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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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미티드 에디션은 2009년 1회를 시작으로 매해 한 차례씩 열려 온 독립출판, 아트북의 축제입니다. 그때그때 시기와 장소, 방식을 달리하며 그해 어떤 제작자, 예술가들이 작은 규모의 서적을 매개로 활동하고 있는지, 올해 어떤 작업을 발표했는지 확인하고 조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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