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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니어스라는 슈퍼 그룹을 재탄생시킨 방식

2024.03.17김은희

피비 브리저스, 루시 데이커스, 줄리엔 베이커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왼쪽부터 | 피비 브리저스의 블레이저, 스커트, 슈즈, 이어링, 모두 펜디. 양말, 팔케. 루시 데이커스의 블레이저, 팬츠, 스커트, 모두 에드워드 섹스턴. 네크리스는 데이커스의 것. 줄리앤 베이커의 블레이저, 팬츠, 모두 스키아파렐리. 이어링, 브레이슬릿은 모두 베이커의 것.

지난여름 어느 밤, 피비 브리저스 Phoebe Bridgers(이하 브리저스)는 보이지니어스 공연 도중 무대에서 내려와 밴드와 관객을 분리해둔 가림막 쪽으로 향했다. 브리저스는 투어 중에 과거 자신의 해로운 관계에 대해 쓴 느린 템포의 슬픈 노래 ‘Letter To An Old Poet’을 부를 때면 주기적으로 이런 행동을 한다.(“You Think You’re A Good Person Because You Won’t Punch Me In The Stomach? 당신은 내 배에 주먹을 날리지는 않았으니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라고 노래하면서. 누구에 대한 노래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객석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스쿠버 다이버가 잠수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브리저스의 금발 머리가 사람들 사이로 묻히는 순간을 볼 수 있을 뿐, 그는 군중의 파도 속으로 금세 사라진다. 이때 밴드 멤버인 루시 데이커스 Lucy Dacus(이하 데이커스)와 줄리엔 베이커 Julien Baker(이하 베이커)도 순간적으로 관객이 된다. 보이지니어스, 이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기회는 보이지니어스 코스프레를 하고 탈수로 거의 쓰러질 지경인데도 몇 시간 내내 줄을 서서 공연장에 입장한 열광적인 팬들만이 얻는다.

매일 밤 무대를 시작하기 전, 브리저스는 관객들에게 노래를 부르는 동안 스마트폰은 치워달라고 요청한다. 브리저스에 따르면 이 노래를 부른다는 건 “내 음악 중에서, 내게 일어났던 최악의 일을 이야기하는 부분”으로, 인생에서 엄청나게 힘들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이자 이는 그 자신에게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브리저스가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과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진실한 집중이 필요하다.

이 특별했던 밤, 팬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보였고 덕분에 브리저스는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는 가림벽 너머 한 소녀의 손을 붙잡고는 노래를 부르는 내내 소녀의 눈을 바라보며 팬들이 팬픽을 통해서나 상상할 법한 친밀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브리저스가 그 순간을 떠올렸다. “우리는 미칠 것만 같은 아이 콘택트 경험을 공유한 거예요.” 그러나 브리저스의 시선은 금세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애의 스마트폰이 가슴골 사이 셔츠에 쑤셔 넣어진 채로 녹음되고 있다는 걸 발견했거든요.” 연결은 즉시 끊겼다. 배신감에 화가 난 브리저스는 다시 베이커와 데이커스에게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군중은 브리저스가 그들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았던 단 한 가지를 빼앗아갔다. “나를 슬프게 했어요.”

브리저스는 어떤 초월적 연결의 순간을 서핑 중 파도를 타는 느낌에 비유한다. “무섭기도 해요. 끝나고 나면 지금이 몇 시인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깨닫게 되죠. 그 소녀가 순간을 망쳐버렸기 때문에 저는 그 애를 알아볼 거예요.” 브리저스가 말을 잇는다. “하지만 내가 미처 알아볼 수 없는 수천 명이 이 무대를 아름답고 초월적이며 놀랍게 만들어주었어요.” 화가 난 채 무대로 다시 걸음을 옮긴 브리저스는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공연의 하이라이트 격인 ‘Salt In The Wound’에 맞춰 기분 좋게 뛰어다녔고, 매일 밤 하던 대로 데이커스와 베이커에게 입을 맞췄다.

몇 주 후 브리저스는 오늘 밤 다시 공연을 할 영국 웨스트요크셔의 도시 핼리팩스 Halifax의 피스 홀 Piece Hall-영국 내 레즈비언들의 고향과도 같은 지역 근처에 약 5천5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풍스러운 광장-에 마련된 무대 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베이지색 방에는 너무 밝은 형광등이 켜져 있어 스태프들이 어떻게 꺼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중이다. 구석에서는 딥티크의 ‘베이 Baies’ 캔들이 일렁일렁 타고 있다.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홈메이드 그래놀라 바와 아쿠아 리브라 탄산 캔에 둘러싸인 꽤 우울한 환경이었을 거라고 브리저스는 말한다. 브리저스, 베이커, 데이커스는 모두 솔로 투어를 하면서 공연 전 대기 시간 동안 홀로 수없이 게임을 하며 반십 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왔다. 그 시간에 소외감은 늘 동행했다. “나는 어디를 가든 어디에도 없었어요. 집에서조차요. 집에 익숙해질 정도로 오래 머무르질 않았죠.” 그러다 5년 전, 커리어 초기 단계이던 이 세 명의 솔로 아티스트들이 그룹 보이지니어스를 결성했다. 이들은 그야말로 슈퍼 그룹으로 성장했고, 투어의 고단함도 조금은 나아졌다. 데이커스가 두통을 유발하는 밝은 형광등 불빛을 피해 눈을 가리며 말문을 열었다. “이제는 이 친구들과 함께 투어하는 일이 내 집에 있는 것보다 더 편안해요.” 이들이 밴드 장비를 갖추고 무대에 오르기까지 이제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다만 브리저스와 데이커스는 언젠가는 다시 솔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시점을 함께 고민하고 걱정도 하고 있다. 브리저스는 “(끝이) 두렵긴 해요”라고 말한다. 데이커스가 말을 잇는다. “그냥 감사할 뿐이죠.”

드레스, 발렌시아가. 브레이슬릿, 링, 모두 데이비드 모리스. 새끼손가락의 링은 브리저스의 것.

보이지니어스는 우연한 기회에 모였다. 2018년에 베이커와 데이커스는 각각 두 번째 앨범인 <Turn Out The Lights>와 <Historian>을 발표했고, LA 출신인 브리저스는 스물아홉 살 때 낸 꽤 주목받은 데뷔 앨범 <Stranger In The Alps>로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특유의 감미로운 멜랑콜리아 무드로 곧바로 피치포크의 사랑을 받았다. 스물여덟 살의 베이커는 왜곡된 기타 사운드를 통해 자신의 신앙과 싸우고 중독을 극복하는 과정을 노래하고, 마찬가지로 스물여덟 살인 데이커스는 7분에 걸쳐 물렁하고 그런지한 브리지로 이어지는 서사시 ‘Night Shift’에서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지 않기를 꿈꾼다. “5년 후쯤엔 이 노래가 새로운 연인을 위한 커버곡처럼 느껴지면 좋겠네요.” 한편 브리저스의 초기 히트곡인 ‘Motion Sickness’는 거의 완벽한 포크 록으로, 예전 파트너이자 동료였던 사람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내용이다. “왜 영국 억양으로 노래하냐고요? 이제 와서 교정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요.”

2016년에 데이커스와 만난 베이커가 데이커스에게 브리저스를 소개해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서로 연락은 계속 주고받았지만, 세 사람이 운명적으로 함께하게 된 계기는 각자의 소속사가 트리플 헤드라이너 투어에 세 사람을 참여시키면서다. 2018년에 있었던 이 우연한 투어를 앞두고 세 사람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음악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 결과 같은 해에 보이지니어스 EP가 탄생했다. 처음부터 이들은 팬만큼이나 서로를 위해 곡을 썼고, 각자의 사운드를 한데 섞어 더 멋진 곡을 만들어냈다. (보이지니어스가 1969년 셀프 타이틀 앨범 커버를 모방한 포크 록 슈퍼 그룹) 크로스비, 스틸스&내시 Crosby, Stills & Nash를 연상시키는 하모니 코러스가 특징인 노래 ‘Ketchum, ID’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당시 투어를 끝으로 셋은 다시 솔로 활동으로 돌아가기 위해 헤어졌다. 그 후 몇 년 동안 멤버 각자가 인디 음악계 최전선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가는 사이 보이지니어스 팬층은 점점 더 헌신적이고 열성적으로 형성됐고, 2020년 여름, 두 번째 앨범 <Punishe>의 성공으로 인기가 급상승하던 브리저스가 그룹 채팅을 통해 밴드를 다시 결성할 수 있는지 물었다. “2018년에 했던 투어가 끝난 후 우리 모두 우울했던 적이 있지 않아?” 데이커스가 묻자 브리저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있지.”

팬데믹으로 인한 오랜 연기 끝에 보이지니어스는 2022년 1월 말리부에서 데뷔 앨범 <The Recor>를 녹음한다. 지난 2023년 3월에 발매된 이 앨범은 팬층은 물론 비평가와 동료 뮤지션들에게도 열렬한 찬사를 받았고, 영국에서는 차트 1위, 미국에서는 빌보드 톱 10을 기록했다. 세 사람은 보이지니어스가 부업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들은 항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내놓으려고 한다. 이는 브리저스가 커리어 초기에 잠깐 만난 한 아티스트의 조언을 따르는 방향이다. “좋아하는 걸 먼저 내놓으라는 조언이었어요. 항상 제일 최선인 걸 먼저 내는 거예요. 자기가 쓴 이 똥 같은 게 제일 맘에 든다면 과감하게 내버리라는 거죠.” 브리저스는 베이커, 데이커스와 처음 작곡을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을 했고, 원래는 자신의 두 번째 앨범에 넣으려고 했던 곡 ‘Me And My Dog’를 보이지니어스에 간절한 마음으로 가지고 왔다.

스스로가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진 솔로 작업과 달리 보이지니어스에서는 모든 멤버가 곡을 쓰는 데 동등한 책임을 공유한다. 베이커는 이러한 방식이 예술적 추구를 창작보다는 발견에 가깝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고 표현한다. “혼자서 작업할 때는 무언가 위대한 것을 창조하려는 이상하고 개인주의적인 탐구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과 함께 일할 때는 필연적으로 우리 모두가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예측 불가능하고 미지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들이 함께 일할 수 있게 하는 연금술을 정량화하기는 어렵다. 브리저스의 말처럼 그걸 누군들 알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 보이지니어스와 각 멤버의 솔로 활동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들이 그룹 활동에서 더 큰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는 라이브 공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멤버들의 솔로 공연을 본 적이 있는 한 사람으로써 <The Record>에 수록된 업 템포의 톰 페티 Tom Petty 스타일의 히트곡 ‘Not Strong Enough’를 연주하는 모습에서 바로 알 수 있다. 그 속에서는 기쁨과 해방감이 느껴진다. (빌리 아일리시는 이메일로 “재능 있는 개인들이 이렇게 강력한 집단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라이브 공연에서나 <The Record>앨범에서나 이들은 번갈아가며 리드 보컬을 맡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각자에게 더 자연스러운 자리이기도 하다. “투어는 함께하면 훨씬 더 재미있고, 더 쉬워요.” 데이커스는 멤버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Cool About It’을 부를 때나 ‘Anti-Curse’를 부르면서 서로를 바라볼 때면, 그냥 함께 서 있다는 게 귀여운 것 같아요.” 그들은 혼자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를 밴드로 활동하며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이다.

드레스, 구찌. 슈즈, 크리스찬 루부탱. 링, 그리마.

이번 보이지니어스 투어가 첫 번째 투어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관객의 규모다. 첫 투어 때 가장 많았던 관객 수는 2천 명이었다. 며칠 전, 나는 이 밴드가 런던의 군너즈베리 파크 Gunnersbury Park에서 2만 5천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로에 대한 플라토닉한 사랑 노래와 경쾌한 록이 섞인 <더 레코드 The Record> 투어 특유의 친밀함이 이 넓은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이 밴드는 친밀한 순간을 대규모로 전달하는 데도 능숙해졌다. 군너즈베리 파크는 열성 팬들로 가득 찼는데, 그중 상당수가 퀴어를 자처하는 청소년으로 보였다.(베이커, 데이커스, 브리저스가 자기 자신들을 인식하는 방식 그대로.) 브리저스가 했던 염색을 따라 금발이나 회색으로 염색한 사람들도 있었고, 톰 브라운이 디자인한 밴드의 시그니처 룩을 거의 코스프레 수준으로 재현한 셔츠와 넥타이를 착용한 사람들도 있었다. 보이지니어스가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게 했다는 건 그들의 집단적 힘을 암시한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데이커스의 공식 굿즈인 ‘Lucy Loves Me, Dads Fear Me’ 모자를 쓴 한 10대 소녀가 공황 발작으로 인해 울음을 터뜨리자 주위 친구들이 달래주었다. 직접 만든 ‘보이지니어스 × 바비’ 티셔츠를 입은 또 다른 한 무리의 팬들은 밴드가 씬 리지 Thin Lizzy의 노래 ‘The Boys Are Back In Town’에 맞춰 등장하자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았다. 이들은 좋아하는 가사를 낼 수 있는 한 가장 큰 소리로 목청껏 외쳤다. “You Say You’re A Winter Bitch But Summer’s In Your Blood 넌 겨울 년이라고 하지만 네 피 속에 여름이 흐르고 있어”, “She Called Me A Fucking Liar 그녀는 날 망할 거짓말쟁이라고 불렀어”. 데이커스가 멤버들을 위해 만든 곡인 ‘We’re In Love’를 부르며 무대를 이 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걸을 때 같이 차분한 순간에는 관객들도 소름 돋을 정도로 정중하게 조용히 있었다. 브리저스가 ‘Letter To An Old Poet’ 무대에서 관객 속으로 다이브할 때 어느 팬의 천둥 같은 흐느낌이 마이크에 잡힌 것만 빼고는 말이다. “저를 둘러싸고 주변에 다섯 명이 있었는데 진짜 너무 시끄러워서 모두 웃기 시작했죠.” 브리저스가 그때를 떠올린다.(2023년 10월에 열린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에서 보안요원들은 ‘Souvenir’을 부르는 사이 관객들에게 휴지를 나눠주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관중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노래의 내용이 감동적이어서만이 아니라 보이지니어스가 상징하는 것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멤버 모두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닌,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현시대 록 그룹으로, 2023년 초 <롤링 스톤> 커버를 찍으며 1994년에 너바나가 비즈니스 수트를 입고 촬영한 화보를 유쾌하게 재현하는 등 이성애자 남성들만이 지배하던 공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무대 다이빙 퍼포먼스 등으로 가득한 라이브에서 알 수 있듯 매우 전통적인 의미의 록 스타인 동시에, 매일 밤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서로가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하는지를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베이커가 덧붙인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른답게 그 감정들을 소화해요.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무대 뒤에서 보드카 병을 집어 던지는 대신에 말이죠.”

런던 공연 중에는 최소 여섯 번 이상, 밴드는 실신한 팬에게 의료적 조치를 취해야 해서 연주를 중단해야 했다. 길고 더운 2023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팬들이 애칭으로 부르는 ‘보이 The Boys’의 공연이 (이번 한 번뿐 아니라) 여러 차례 예정돼 있었기에, 나는 이런 상황이 일회성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이커스에 따르면 모든 공연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관객들은 수분이 부족한 상태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거든요. 사람들은 그들의 기본적 욕구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어요. 공연 중간에 우리는 몇 번이고 멈춰야 했어요. 저희는 공연장을 신뢰하려고 노력했고 매 공연을 알려왔는데, 이런 일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수트, 장 폴 고티에. 이어링은 베이커의 것.

지난 며칠 동안 런던에서 요크셔까지 투어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는 동안 베이커, 데이커스, 브리저스는 지루함에서 비롯되는 사고 실험을 시작했다. 세 사람 중 누가 ‘삶’이고 누가 ‘웃음’이며 누가 ‘사랑’인지를 정하는 노력이 그것이다.

Dacus 난 ‘웃음’이 아니어도 괜찮아.
Bridgers 줄리안(베이커)이 ‘사랑’인 것 같지 않아?
Baker 내가 왜 ‘웃음’이 아니야?
Bridgers 내가 생각하는 너의 가장 큰 약점은 ‘사랑’에 대한 능력이야.
Baker 그건 맞지.
Bridgers 해로운 공감 능력. 뭐 이런 거지, “방금 나한테 뭘 던진 남자는 아마 오늘 아주 끔찍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일 거야.”
Dacus 모든 현실을 공감으로 승화시키는 거지. 나도 그런 편인데. 네가 그러고 있는 걸 보는 게 나는 덜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이 돼.
Baker 내 인생의 첫 16년 동안 그게 미덕이라고 배웠으니까.
Dacus 나도.
Bridgers 줄리안과 루시(데이커스)의 차이점은 줄리안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았다고 생각했고, 루시는 “오 주여, 빨리 내 영혼의 동반자 같은 애들을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생각했다는 점이지.(일동 폭소.)

이것이 내가 보이지니어스와 같이 있는 동안 목격한, 거의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그들은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투어 전에 받은 세 명 사이의 관계 상담 덕분일 수 있으며, 상담은 지금도 가끔씩 받고 있다고 한다. 브리저스가 상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하게 교육을 많이 받고 지나치게 자격을 많이 갖춘 우리의 치료사는 두 문장만으로 현명하게 정리해요. 가끔 그녀가 마지막에 무언가 얘기하면 저는 ‘젠장 이년아, 나 대신 네가 얘기하라고 할 걸 그랬어’라고 생각하곤 하죠.”(그들과 2시간 동안 계속 앉아 있다 보니 이제 이런 화법에 익숙해졌다.)

베이커는 몸을 경직시키고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며 길게 끊기는 구간 없이 말을 이어간다. 때때로 베이커는 자신의 말에 초집중한 나머지 데이커스가 추가한 어떤 단서들을 실수로 놓치곤 한다. 한두 번을 넘어 종종 있는 일인데,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외곽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자의식적인 비유를 웅얼거리곤 하는 베이커는, 브리저스와는 달리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자란 데이커스와 공유하는 게 있다.(브리저스는 “저는 약간 배배 꼬인 신자예요”라고 말한다.) 밴드에서 가장 전통적으로 록을 좋아하는 멤버인 베이커는 리드 기타리스트로서 ‘Salt In The Wound’나 강렬한 ‘$20’과 같이 음악적으로 어려운 곡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세 사람 모두 베이커가 그룹의 ‘대디’라는 데 동의한다. “줄리안은 팀에서 이런 걸 담당하는 사람이에요. 영화를 준비해오고, 커피를 가져오고, 와이파이를 찾아내고….” 베이커에 대한 브리저스의 묘사다.

브리저스가 밴드를 다시 결성하자는 문자를 보냈을 때, 베이커를 설득하는 데는 그다지 공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완전 좋았어요. 전 그냥 밴드에 있는 게 좋아요. 저는 제가 밴드라면 원하지 않을 곡을 혼자 냈을 뿐이라서 솔로 뮤지션이 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베이커가 자신이 지금 작업 중인 곡이 담긴 구글 드라이브 링크를 보내주었다.

데이커스는 투어에서 자신의 역할은 “전체적인 무드와 인재개발팀”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사람들을 음악으로 좀 더 끌어당기는 느낌을 불어넣는다. “Will You Still Love Me If It Turns Out I’m Insane? 내가 미쳤다는 게 확실해도 계속 날 사랑해줄 건가요?”라고 노래하는 음색은 구식 무선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것같이 풍부하고 비음이 섞인 따뜻한 목소리다. 저는 피비(브리저스)와 줄리안에게서 많은 사람이 가족에게 느끼는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껴요. 쉴 때는 항상 두 사람이 생각나죠.” 데이커스는 브리저스의 문자가 도착했을 때 좋은 의미에서 “속이 뒤집어졌다”고 말한다. “이게 진짜라면 제 인생이 바뀔 것만 같았어요. 그 당시 저는 굉장히 절망적인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그들과 함께 뭔가를 만들고 계속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기쁨의 연결고리가 돼주었어요.”

브리저스는 투어 동안 그룹 내 “10대”를 담당하고 있다고 자신을 정의한다. “저는 그저 먹고 자면서 ‘잘 먹여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생각해요.” 2020년에 보이지니어스로 다시 모여보자는 메시지를 보낼 무렵 브리저스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큰 개인적 격변을 겪고 있었다. 그해 6월에 공을 들여 작업한 두 번째 앨범 <Punisher>가 발매된 때는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의 시대였다. 외로움, 고립감, 우울증, 해리 등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추악하고 엉킨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한 것으로 비춰지면서 갑자기 여성 뮤지션이 이끄는 새로운 인디 포크 물결의 선봉에 서게 됐고, 2010년대 초 밴드 본 이베어의 프론트맨 저스틴 버논 이후 이 장르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됐다. 그 과정에서 대형 팝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The 1975, SZA, 키드 커디 Kid Cudi, 테일러 스위프트(브리저스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미국 내 ‘디 에라스 투어 The Eras Tour’의 오프닝 무대를 여러 차례 장식하기도 했다)와 함께 자신을 주류층 관객에게 노출하게 된다.

이 모든 일에 앞서, <Punisher>를 발매하자마자 브리저스는 <노멀 피플>로 인해 브리저스처럼 급작스런 인기 상승기를 누리고 있던 배우 폴 메스칼과 만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인터넷에서 가장 핫한 커플이 되었고, 브리저스 인생 최초로 타블로이드지들이 그를 요주의 감시 대상에 올려두는 일을 겪게 된다.(브리저스와 폴 메스칼은 2022년에 결별했다.) 브리저스는 갑작스럽고 강렬한 관심에 불안해했다. “그건 마치 제 인생의 ‘비포 앤 애프터’ 같은 시점이었어요.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이 몰래 저를 촬영해요. 이건 그냥 이상하고 무서운 일이죠. 코로나 이후 독에 오염된 세상에 나온 ‘버블 보이(Bubble Boy, 일반인들과 접촉하지 않고 투명한 버블 돔을 쓰고 사는 미국 영화 캐릭터)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때가 아마 제가 가장 비관적이었던 시기였어요.” 이후 거듭된 보이지니어스의 성공은 이들에 대한 더 많은 뒷조사를 양산했다. “웃기죠. 이런 현상에 대한 제 첫 번째 반사적 반응은 ‘거지 같네’였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매체와 이야기하기로 동의한 거죠.”

브리저스가 말을 잇는다. “우리가 정한 일정의 방식인데요, 우리 허락 없이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생활에 대한 가십을 보도하는 타블로이드, 휴가 중에도 그들을 따라다니는 파파라치들, 그리고 그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팬들이 그들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저한테 너무 많은 걸 주는 거예요. 그럼 전 ‘도대체 나한테서 뭘 더 바라?’ 이렇게 된다고요.”

왼쪽부터 | 브리저스의 블레이저, 에드워드 섹스턴. 데이커스의 블레이저, 보스. 베이커의 톱, 보스. 이어링, 브레이슬릿은 모두 베이커의 것.

지난 2023년 8월 벨기에 푸켈팝 Pukkelpop 페스티벌에서 브리저스는 ‘Salt In The Wound’를 열창하며 절정에 오른 공연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백 보컬이 함성을 지를 때 셔츠를 찢어 맨가슴을 드러낸 것이다. 곧이어 데이커스도 뒤를 따랐고,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 이벤트의 동영상은 거의 즉시 소셜 미디어를 강타했다. 팬들의 열렬한 지지가 쏟아지는 가운데, 과거 트위터였던 플랫폼 X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공공연한 음란 행위로 간주하며 데이커스와 브리저스를 비판했다.(참고로 벨기에에는 여성의 상반신 노출 금지와 관련한 법적 제제가 없다.) 정작 브리저스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트위터는 죽었어요. 트위터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세계 최고의 부자가 소유하고 있고, 지금은 ‘X’라고 불리죠. 정보 교환의 자유로운 장이 아니에요. 그냥…, 괴상해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브리저스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 “그리고 저는 ‘내 젖꼭지가 최악이라(고 떠든다)면 페미니즘은 더 촉발될 뿐이야 아마도’, 뭐 그렇게 생각해요.” 세 사람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비판이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브리저스는 “사람들이 우리 몸에 대해 떠들어대는 게 슬프다”며,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우리)공연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터넷 댓글을 보고 낄낄대다가 ‘잠깐, 이런 걸로 진짜 영향을 받는 누군가를 이것들이 망치고 있잖아’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항상 너무 화가 나 있는 상태라서 셔츠를 벗을 수가 없었어요.” 데이커스가 말한다. “기능적으로나 건강상으로나 저는 어지럽고 혈액 순환이 잘 안 돼요. 가끔은 망할 윗옷을 까버리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성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방식으로 벗으려고 노력해요. 제 말은, 당연하게도 우린 무대 위에 올라가 있잖아요. 퍼포먼스 중이라고요. 보여주기일 수도, 누군가에겐 충격일 수도 있는 거예요. 재밌었어요.”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데이커스도 셔츠를 벗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다른 밴드와 페스티벌 직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좀 더 오랫동안 (벗은) 그 상태로 있었다. “기분도, 신체적으로도 좋았어요.” 데이커스가 떠올린다. “개인적으로 과거에 내 몸이 다른 이들로부터 유희적 학대와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기에…, 그런 행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죠. 하지만 누구한테 쿨해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그럴 필요는 없는 거예요. 제 개인사를 떠나서 멋있어야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끝내주긴 했어요. 다른 모두가 벙쪄 있게 말이죠.”

정치적 이슈에 기꺼이 뛰어든 이 밴드는 팬들과의 유대감을 더욱 단단하게 다졌다. 올여름 초 테네시주의 성소수자 및 드래그 금지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 위해 테네시주에서 드래그 복장을 하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2022년 5월에는 미국 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힐 것이라는 정보가 유출되자 브리저스는 트위터에 자신이 전년도에 낙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한 동시에 기부 페이지 링크를 공유했다. 취약한 어린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록 밴드가 그들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강력한 일이며, 팬들이 느끼는 사랑과 감사는 라이브 공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금까지 콘서트에서 아티스트에게 스마트폰, 브리 치즈,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골 등 물건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보이지니어스 공연에서는 팬들이 ‘We’re In Love’에서 데이커스가 노래하는 부분의 가사(“I’ll Be The Boy With The Pink Carnation Pinned To My Lapel 나는 내 옷깃에 핑크 카네이션을 꽂은 소년이 될 거야”)를 인용해 분홍색 카네이션을 던지곤 한다. 데이커스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인터뷰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 했어요. 그것이 어쩌면 준사회적 관계의 한 줄기 작은 희망일지도 모르잖아요? 사람들이 우리를 신비롭고, 건드릴 수 없고, 겁먹지 않고, 다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친구처럼 대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

보이지니어스는 자신들이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거나 때로는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는 큰 자부심이자 작업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베이커는 “우리 밴드를 좋아한다는 것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애들을 불러모으는 휘파람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데이커스가 덧붙인다. “센서티브한 게이 베이비들처럼요.” 베이커가 이어 말한다. “그래서 이 직업이 저에게 의미 있는 일이에요. 가족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건 비합리적이거나 이기적이라고 느껴지는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저는 ‘와, 저 애들 좀 봐’ 그랬어요. 실제로 2만 5천 명의 게이 키즈들이 저희가 하는 이런 말들을 들었대요. ‘네 인생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져. 인생은 살 가치가 있어.’”

이들은 자신들이 어렸을 때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롤 모델이 되었다. 데이커스가 드는 예시처럼 말이다. “제가 어렸을 때 퀴어 아이돌이나 트랜스 아이돌이 더 많았다면 그런 것을 접하는 일이 더 정상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무대 위에서 하는 모든 장난을 포함해 키스를 하는 퍼포먼스는, 이제는 좀 너무 가긴 했지만, 아무튼 퀴어를 좀 더 밝고 유쾌하게 묘사하는 모습으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왼쪽부터 | 베이커의 톱, 팬츠, 모두 보스. 양말, 팔케. 슈즈, 디올. 이어링, 브레이슬릿은 모두 베이커의 것. 데이커스의 수트, 보스. 슈즈, 그렌슨. 브리저스의 수트, 에드워드 섹스턴. 오른손의 링, 그리마. 왼손의 링은 브리저스의 것.

2022년 12월, 보이지니어스가 앨범 발매를 위한 언론 홍보, 공연, 리허설 등 긴 행보를 시작하기 직전에 브리저스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브리저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슬픔에 휩싸였다. “아버지와는 정말 복잡한 관계였어요. 때로는 더 나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 나아지기도 했어요. 저는 절친한 친구를 잃은 듯한 느낌이 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맺을 수 없는 부녀 관계라는 걸 잃어버린 개념이었어요.” 그 후 브리저스의 몸은 원래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한 3개월 동안 똥을 못 쌌어요.” 그가 정정했다. “몸이 내보내고 싶어 한 똥 같은 무엇을요.” 브리저스는 지금 웃고 있지만 농담이 아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주 후에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엑스레이에서 그 똥덩어리를 찾아냈죠.”

대중의 주목을 받은 지 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브리저스는 공항에서 취재진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평생 공항에서 파파라치에게 사진 찍힌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는 저와 남자친구의 사진을 찍더라고요.” 브리저스는 그 일도 좋지 않았지만, 온라인의 일부 반응에는 더 큰 상처를 입었다. “지금까지는 팬들과의 관계를 잘 조율해왔는데 올해는 여러 가지 악플이 제 눈을 의심하게 만들더군요.” 그가 말한다. “많은 사람이 ‘유명인이니까 그렇게 얘기해도 괜찮아. 그건 그들이 선택한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언론에) 정보를 흘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죠. 사람들끼리 끝도 없이 말을 얹는 걸 보고 ‘온라인에 도배된 사진 속에서 내가 7일 내내 울고 있던 것처럼 보이길 원한다고 여기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What The Fuck?”

‘정밀한 조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월에 <Punisher>투어를 마무리한 호주에서 브리저스가 다시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몇 달 동안 해변에서 촬영을 당했는데 자살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고, 해변에서 사진에 찍혔죠.” 이 사진은 <데일리 메일>에 게재되는 걸로 종결됐다.

“제가 어렸을 때 나이 든 여자들이 ‘네가 특정 방식으로 옷을 입으면 그건 뭔가를 요구하는 거야’라고 말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데이커스는 말한다. “우리가 언론, 광고, 공연을 통해 스포트라이트 받는 걸 선택했다고 해서 우리의 사생활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스파이를 원한다는 뜻은 아니죠.”

이 경험은 보이지니어스에게 상처를 입힌 타블로이드 언론과의 수많은 경험 중 하나다. “머독이 죽으면 우리는 춤을 출 거예요.” 브리저스가 운을 뗀다. “머독이 죽는다면 우리 셋이 서로에게 키스를 할 겁니다. 또 죽으면 좋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 브리저스의 블레이저, 셔츠, 스커트, 슈즈, 모두 톰 브라운. 양말, 팔케. 보타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베이커의 수트, 톱, 모두 마르니. 이어링, 브레이슬릿은 모두 베이커의 것. 데이커스의 수트, 톰 브라운.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사이, 브리저스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불안감보다는 위안을 얻었다. 이 경우 일이란,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브리저스는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 위해 보이지니어스로서 해야만 하는 일정을 미루는 대신 일에 몸을 던졌다.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거예요. 제게는 완벽한 지원 시스템이 있었고, 제 인생에서 제일 많은 사랑을 준 여러분이 없었더라면 절대 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죽여주게 놀라운 일이었어요.”

“피비는 유명세 때문이든 사생활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 때문이든 간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갖기 힘든 타입의 사람이에요.” 보이지니어스의 유럽 투어 일정을 지원 사격했던 밴드 무나 Muna의 리드 싱어 케이티 개빈 Katie Gavin이 브리저스와 보이지니어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베이커와 데이커스는) 피비가 같이 있다 해도 편하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느끼는 두 사람이고요.”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밴드의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브리저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지난 2023년 10월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무대에서 베이커는 자신의 <리틀 오블리비언스 Little Oblivions> 투어 이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목소리를 잃었다고 관객들에게 말했다. “보이지니어스로 리허설을 시작했을 때 노래를 부를 수 없었어요. 심리적인 문제였죠. 음을 낼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 친구들이 제 목소리를 되찾아주었기 때문에 더 크게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을 담은 온라인에 떠도는 수많은 비디오 클립에선 관객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데이커스 역시 삶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피비와 저는 최근 2023년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해가 될까 봐 걱정하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리고 올해를 평생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게 하고 싶다고 말했죠.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켰으니까요.” 핼리팩스로 돌아와 보자. 밴드의 지원군인 에델 케인 Ethel Cain이 세트리스트를 마무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라이브 공연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이 소리에 ‘보이’들이 냉큼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트를 갖춰 입을 시간이 20분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이들의 바다로 나가 보니 무대에서 약 2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믹싱 데스크 앞에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촬영하지 말아달라는 브리저스의 간곡한 부탁이 유난히 가슴에 와닿았다. “제가 노래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게 나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가 관객에게 말한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꺼내는 사람이 있으면 야유하세요.”

노래가 시작되고 멤버들이 무대에서 몸을 낮추자 나는 좀 더 좋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가림막 위로 올라가 관중들을 살펴보았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저리 치워!”라고 외쳤다. 언뜻 스마트폰처럼 보였던 것은 자세히 보니 무지개색 야광봉이었고, 그것은 하트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Ben Allen
    포토그래퍼
    Ben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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